퍼플라인 1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 김청환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이번 추석연휴에는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가 지은 <퍼플라인>을 읽었다.

앙리 4세의 연인으로서 왕이 결혼 계획을 발표한 후 곧 의문의 죽음을 한 가브리엘 데스트레에 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참으로 독특하기 그지없다. 독일 태생 저자가 프랑스의 역사 이야기를 쓴 것도 그러하지만 야사처럼 소문과 의혹만 가득하던 과거의 이야기를 그림 한 장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풀어나간다는 것이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라 아닐 할 수 없다. 게다가 논문에나 적합할 듯한 예술사적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낸 것도 그러하고.

 사실 난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특히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나 <푸코의 추(진자)>는 정말 즐겁게 읽곤 했다. 비슷한 책으로는 근래의 <다빈치 코드>가 있었지만, 내 개인적으로 볼 때에는 실망스럽고 지루하였다. 그러나 이 <퍼플라인>은 적당히 예술사적인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으면서 추리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대중적으로나 지적 허영심 측면에서 모두 만족시켜주는 수작이다.

 앙리 4세는 중고교 시절과 대학에서 세계사를 수강할 때 기억에 남던 몇 안되는 프랑스 왕들 중의 한 명이다. 특히 낭트칙령으로 유명하니까. 30년 전쟁 후에 구신교도 간의 상잔의 비극 속에서 위험한 정치적 줄다리기를 하던 인물이었고, 결국 나중에는 구교도에서 암살되지 않았던가? 그의 일생을 보면 왕권 확립을 위한 전쟁, 종교간 분쟁, 종교와 왕권의 갈등, 화려한 로맨스 등 가히 중세시대의 거의 모든 특징을 집약해놓은 것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런 시대와 인물을 배경으로, 수수께끼의 연인 가브리엘과의 연애담과 그녀의 기묘한 죽음, 정치적 이해 관계를 엮은 후, 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예술사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가브리엘의 그림들을 배치하고 있다. 또한 이 그림들을 열쇠로  아주 흥미진진한 '근거있는' 해석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 매우 대담하면서도 치밀하다.

 오랜만에 읽게 된 참 괜찮은 소설이라 아니할 수 없고, 한편으로는 저자가 부럽기 짝이 없다.

문학박사과정이면서 저렇게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와 연구를 자유스럽게 하다니. 게다가 좋은 소설도 써내고.

 저자가 후기에 이야기 하듯 논문 대신 소설을 썼다고 주위 사람들이 아까와했다는 것을 보면 외국도 우리나라처럼 논문을 훨씬 더 값진 것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보고 휙 내던져버리는 논문대신 대중 독자들에게 예술사적인 소설로 읽히는 것이 더 보람된 것이라고 판단한 저자는 참으로 좋은 선택을 한 것이다. 나 같은 독자에게 읽을 기회를 줬으니까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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