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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엽서
안느 브레스트 지음, 이수진 옮김 / 사유와공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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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 브레스트의 '우편엽서'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덮고 이 책이 소설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충격에 빠졌다. 입체적인 구성과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틱한 이 이야기를 나는 작가가 고심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철저히 조사한 끝에 조직해낸 소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실제로 작가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묘한 끌림의 표지의 여인은 책에도 수없이 등장한, 만나는 이들 모두 재능을 의심치 않았고, 나중에 뛰어난 작가가 될거라고 믿었으나 20대 초반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노에미 라비노비치'라는 사실도 책을 다 읽고 알게 되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가 구성해낸 이야기라고 해도, 책속의 이야기는 유대인 가족이 겪었을 법한 이야기로 충분히 나를 흔들어놓을 법 했다. 하지만, 정말 그 '노에미'가, '미리얌'이 실재로 존재하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책속의 낱낱의 일들이 모두 사실이었다는 것이, 책속의 지명, 등장인물들, 언급되었던 책, 연도 등 모든 것이 사실에 기초한다는 것이 나의 폐부를 찌른다.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러하다. 2003년의 어느 날, 책의 화자인 '안'의 엄마 '렐리아'는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엽서를 받는다. 오래 전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엽서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들은 렐리아의 조부모와 삼촌, 이모의 이름만이 적혀 있었다.

'에브라임, 엠마, 노에미, 자크'

발신인이 없이 이미 세상을 떠난 렐리아의 엄마이자 에브라임과 엠마의 딸이며 가족중 유일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미리얌 앞으로 온 엽서는 가족들을 의아하게 만들었지만, 누가 보낸 것인지 알 길이 없기에 그뒤로도 한동안 그 엽서는 잊힌다.

십년의 시간이 흐르고, 책의 화자이자 저자인 '안'은 임신을 하면서 엄마인 렐리아에게 그동안 궁금했으나 듣지 못했던 선대를 살아간 그녀의 가족의 이야기에 대해 묻는다. 책은 그렇게 엄마가 딸에게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도대체 누가 그 엽서를 보낸 것인지, 그것을 밝혀나가는 과정으로 구성된 이 책은 뛰어난 스릴러처럼 한번 읽기 시작하면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러시아 소설이 다 그렇듯, 모든 이야기는 엇갈린 사랑 이야기에서 시작된단다."

1부의 첫문장을 보면, 이 책이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유대인 학살에 대한 것 말고 많은 풍부한 것에 대해 풀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러시아에서 시작된다. 라비노비치 가문은 러시아에서 살았던 유대인이었다. 책의 초반을 읽다보면 '유대인' 가정이 어떠했는지, 어떤 문화를 갖고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았는지를 너무도 잘 알 수 있다. 몇천 년 전 유대민족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의 이야기를 여전히 유월절 저녁에 읊고 있는 유대인들. 그들의 아픈 역사는 '어느 한때 그랬던 것'으로 끝나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진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20세기에 들어서도 유대인 혐오 감정은 계속되고, 혐오로 인한 비극은 세대를 거쳐서 조부모 대에서도, 부모 대에서도, 자식들에게서도 일어나게 된다. 책의 초반에 놀랐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홀로코스트가 나치에 의해 촉발된 그 시대만의 정치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던 나였다. 반유대주의는 비단 독일에서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 퍼져있었던 말하자면 흔한 정서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것에 대한 의문은 책을 읽고도 풀리지 않았기에 관련책을 좀 더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엽서에 적힌 사람 중 에브라임의 부모는 유대인에게 점점 험학해지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자신들은 팔레스타인으로 갈거라며 자식들에게도 러시아를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가라고 조언한다. 당시는 1920년대 무렵이다. 밝힌대로 에브라임의 부모는 러시아를 떠나 팔레스타인으로 가고, 자식들은 뿔뿔히 흩어지지만 부모의 말대로 안전한 나라를 택하지 않았다. 에브라임과 엠마 부부는 팔레스타인에 머물렀었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생활이 아니기에 에브라임의 동생이 있던 프랑스로 이주한다. '미리얌, 노에미, 자크' 세명의 아이들을 낳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에브라임, 엠마 부부는 그렇게 프랑스에서 2차 세계대전을 맞게되고,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에서의 상황이 어땠을지는 다들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가족중에 유일하게 큰딸인 미리얌은 프랑스인과 결혼을 하게 되고 비극을 피할 수 있게 되는데, 그녀가 차 트렁크에 숨어서 검문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도주하는 상황을 보면, 여기서도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게되는지는 순전히 운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미리얌은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고, 딸인 렐리아를 낳고, 렐리아가 다시 안을 낳으면서, 렐리아가 엄마의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조사하고, 그것을 안과 공유하며 안이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책은 이렇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만으로도 손을 놓을 수 없게 하지만, 책의 감동과 흡입력은 내용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책에 빠져들 수 밖에 없게 하는 구성, 앞서 말했듯이 인간사의 여러면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통찰, 번역문이지만, 지나칠 수 없는 문장의 아름다움 등이 그 어떤 책보다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 주목해보고 싶은 것이 여느 훌륭한 소설이라면 모두 갖고 있듯, 바로 그러한 보편성과 특수성이다. 말하자면, 나치에 의해 희생된 가족이야기라는 특수성과, 가족사 혹은 인간사라는 보평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작가는 특수한 가족의 이야기에서 '인간'으로서의 보편성을 무엇보다 아름답게 이끌어낸다. 책에서 내게 가장 와닿은 부분은 화자 '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인 '미리얌'과 '빈센트'의 엇나간 사랑이야기이다. 미리얌에게 결혼은, 결국 그것이, 그리고 남편의 가족이 그녀를 죽음의 위협속에서 구해내긴 했지만, 아름답고도 충동적인 남자에게 이끌려서 어떨결에 하게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녀를 살리는데에는 적극적이었던 빈센트는, 막상 위험이 가라앉자 마음이 더 없이 멀어진다.

"위험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의 유일한 배경이었다. 빈센트는 그걸 좋아했다. 그에겐 그게 필요했다. 반대로 미리얌은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딴 농촌에서 맞이하게 된 단순하고 조용한 새 일상이 좋았다." (432쪽)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빗장을 걸어 잠갔다. 그렇게 미리얌은, 살아있는 그를 볼 때마다 마치 움직이는 그림을 보듯 바라보아야 했다." (432쪽)

"웃으며 즐거운 저녁을 보낸 뒤, 아침에 눈을 뜰 때면 마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침대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그녀를 바라보았다. 함께 매일매일을 보내도 아무것도 축적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433쬭)

"그날 밤, 미리얌은 자신이 쓸모없는 육신을 짊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얌은 그녀에게 아무런 욕망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수수께끼의 남자를 세상 그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이 아름답고 슬픈 남자는 그녀만의 것이었다. 때론 아이처럼 순진하지만 번득이는 눈을 가진 남편이었다. 서로를 이어주는 반지 하나 만큼의 가냘프고 연약한 친밀함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그는 하루 종일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는 그녀에게 삶과 죽음을 맹세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말은 없었다."(435쪽)

이런 사랑을 알고 있기에 나는 이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미리얌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굳게 믿어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빈센트는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저자이자 손녀인 '안'은 그를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할머니인 미리얌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빈센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할머니를 통해 파악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떻게 만난적도 없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낼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에 대한 부분은 그를 똑 닮았다고 여겨지는 작가의 어머니를 통해서 추론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외에도 책에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가가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고, 대부분이 그녀가 태어나기 이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수많은 질문과 빈칸은 어떻게 채워나갈 수 있었을까? 이 책의 저자뿐 아니라 책속에 등장하는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관청의 공적인 기록, 날짜 같은 것에서도 도움을 받았지만, 살아간 집에 남긴 흔적, 사진, 살아남은 이웃들, 지인들의 이야기가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냈던 것이다. 어떤 이가 자신이 평생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면, 그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교집합이 다른 이의 이야기의 퍼즐을 풀어주는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너무도 많이 들어서 상투적이 되어버린 그 속담처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속에서 또하나의 공감이 되었던 부분은, 자식에게 조상에 대해서 잘 알려주지 않으려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저자의 가족사에서와는 물론 다른 이유때문이라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나의 부모님 또한 내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거의 이야기해주지 않으신다. 분명히 그분들 세대는 일제시대며, 한국전쟁을 거쳐오셨을텐데,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과거는 그들의 머릿속에만 있다. 책속에서 화자인 '안'은 끊임없이 엄마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엄마의 고통을 들추어낸다. 화자의 엄마가 왜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려 했는가를 생각해보면, 고통과 더불어 수치심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참혹한 일의 피해자였던 것이 수치스러워할일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수치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나의 부모님도 과거를 부끄러워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엮어 내야한다. 끊어진 곳에서부터 다시 연결시켜야한다. 나의 이야기와 너의 이야기에서 교집합을 찾아내어 비어있는 퍼즐을 채워야한다. 최근의 '파친고'의 이민진과 같은 한국 혹은 한국계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이러한 퍼즐을 맞추려는 노력이 보여서 좋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위해 대단한 작가여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들은 것, 나만이 알고 있는 것을 기록하고 채워나가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악이라고 할 수 있는 나치는 어떤 가족을 살해하고, 그들의 삶을 말살했다. 그것에 대항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책으로 구성해내는 것만큼 아름답고 강력한 복수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나치는 유대인의 존재를 말살하려고 했지만, 수많은 이들은 죽어가면서도 그들의 삶 자체로서 이야기를 남겼다.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책이 된 것이다. 듣는 것 만으로도 수많은 이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나치', 그에 반해 이 작가의 책은 읽음으로해서 그러한 악은 더이상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그 어떤 것보다도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깨닫고 느끼고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책이 주는 무한한 감동이다. 책을 읽고, 그것이 불러오는 마음의 소용돌이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고, 결국 우리를 행동하게 만들 것이다. 악에 대항하는 것은 또다른 악이 아니라, 그 정 반대의 것임을, 예술로서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평화의 가치임을 하나의 고귀한 문학작품에서 우리는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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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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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인공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치 세계는 인간의 무대이며, 지구의 거의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최근에 아주 오랜만에 자연에 대해서,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책을 만나게 되어 여기 소개해본다. 자연주의자 베리 로페즈의 사후에 그의 에세이를 엮어 만든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라는 책이다.

베리 로페즈는 1945년에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자연을 탐구하면서 기록한 것들이 책이 되어 많은 저서를 남겼고, 1986년에는 << 북극을 꿈꾸다 >>라는 책으로 미국도서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저 책은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자연에 관한 책은 내게는 좀 생소하다. 평소 자연이라고 하면 내게는 우선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탐험을 하다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은 이 책에도 많이 나와 있다. 남극에 가고, 밀림 속의 오지에 가고, 그곳에서 몇날 며칠을 야영을 하며 야생동물과 조우하기도 하는 작가는, 그 순간이 위험하다는 것을 작가도 알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적었다. 처음에는 작가가 왜 그리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이 살지 않는, 머나먼 오지를 탐험하고자 하는지 의아했다. 책을 읽다보니 그의 자연에 대한 관심은, 넓게는 지구를 향한 것이고, 그것은 결국 인간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여기에 살아 숨쉬는 것, 즉 생명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목에서 주지하듯이 말이다.

내게 자연 깊숙히 빠져들어본 경험으로 생각나는 것은 수년전 스쿠버다이빙을 해본 것이다. 바닷속에 들어가보고 싶어서 스쿠버다이빙 초급이라고 할 수 있는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다. 그뒤로 다시 바다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자격증을 따면서 몇 번, 전에 가본적 없는 비교적 깊은 바다에 들어가보게 되었다. 가장 처음으로 느끼는 것은 나의 생명유지장치, 즉 산소통의 무게감이다. 산소통이 짓누르는 무게는, 그 짊어지기도 힘들고, 내가 잘 알지못하는 기구에 의지해 깊은 물속에 들어가야한다는데서 오는 두려움이었다. 막상 물속에 들어갔을 때는, 나의 숨소리가 나의 감각을 지배하고,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소리가 둔탁해진 바닷 속에서는 나와 바다가 오롯이 홀로 존재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멀리 빛나는 햇빛만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줄 뿐이었다.

내가 바닷속에서 느꼈던 것을 떠올리며, 아마도 베리 로페즈가 자연속에서 이런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퓨마나 늑대와 같은 동물들이 나오는 정글에서 헤매고 싶지도, 얼어죽을지도 모르는 남극에서 야영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지만,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있었을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그것이 단지 호기심이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된다. 그런 미지의 세계 이외에도, 그는 미국에서 원주민이 학살된 장소라던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이 인간의 잔혹함이 행해지던 장소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또한 남극과 같이 인간의 삶이 존재하기 불가능한 곳에서도 그의 시선은 온난화와 기후변화를 향한다. 그는 자연을 탐구하고 탐험하는 것을 통해서 인간이 동물과 자연과 함께 조화롭게 삶을 지속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몰두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예술가'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제까지 예술가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다른 세상을 창조해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관점은 나와 좀 다른 것 같다. 그의 관점으로 예술가는 그들만의 관점으로 세상과 우리를 매개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해석을 통해서 자연과 세계의 진실에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도시 계획을 할 때, 자연에 변화를 가할 때, 그는 예술가들의 시선을 참고하고 그들과 소통해야한다고 말한다. 그의 글을 읽다가 예전에 적어놓은 글을 읽어보았다. 한창 예술과 사진에 심취해있을 때였고, 나는 세상이 '예술적'이길 바란다고 적었다. '예술적'인 세상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표현이 자유로운 세상, 그리고 대립된 의견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세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폭력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베리 로페즈의 생각도 그것과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술가 이외에도 그는 탐험을 나설때 다양한 학자들과 함께한다. 사실 그의 탐험 중 대부분은 학자들의 연구를 위한 여정에 동행하는 것이었다. 재밌는 것은 예술가도, 학자들도 세상과 인간의 매개자라는 점이다. 예술가를 통해서, 그리고 학자들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된다. 베리 로페즈 자신은 어떠한가? 그는 새로운 자연을 경험하고 글로 남기는 사람이었다. 그가 매개자를 중요시여기는 것을 보면, 그가 왜 작가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는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지구 깊숙히 탐구하는 모습은 그의 깊은 트라우마와 연결된 거 같아보인다. 그는 책의 초반에는 그의 어린시절에 겪은 고통에 대해서 언급한 글이 몇 편있었다. 그가 7살 무렵이던 때부터 엄마의 지인이며 의사로 알려진 사람에게 4년이 넘도록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고 마음이 너무 아팠고, 뇌리에서 지울 수 없었다. 이 일이 큰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임에도 그는 잘 성장하여 작가가 되었는데, 그의 글을 보면 어린 날의 고통은 평생 그를 뒤흔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저 추측해볼 뿐이다. 그가 자신의 깊은 내면의 깊은 곳에, 어둠과 고통 뿐인 그 곳에 닿아보았기 때문에, 인간의 깊은 고통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타인의 고통에 가깝게 닿으려고 했던 그의 삶과 기록은 이제껏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책속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그가 세계 80여국이상, 그리고 수많은 장소를 여행했음에도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오리건주 픽록 지역에 있는 숲속의 자신의 집이라고 한 점이다. 그는 오랜시간을 매킨지강과 그것을 둘러싼 숲 속에서 보내면서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부분을 읽고 나는 나에게 묻게되었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내가 평생을 두고 가까워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내게도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나를 기다려줄 그곳, 나의 부족한 인간성을 품어줄 그곳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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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 - 경조증과 우울 사이에서, 의사가 직접 겪은 조울증의 세계
경조울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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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까, 요즘처럼 이 문제에 대해 골돌히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늘 내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를 사랑해본 적이 없고, 늘 나를 부끄럽게 생각했다. 지금도 내가 찍힌 사진이며 동영상, 내 목소리가 녹음 된 것 등을 보고싶지가 않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마음속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면서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채로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보니, 나의 불안정한 마음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아이들도 나처럼 마음 속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떤 것보다 막고 싶은 일이다. 내가 겪은 것을, 낮은 자존감으로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을 아이들이 똑같이 겪게 할수는 없다.


그런 고민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던 중 내 삶을 돌아보게하는 의미있는 책을 만난다. 의사이면서 이름도 생소한 2형 양극성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경조울 작가의 '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이라는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다. 의사이면서 조울증을 겪고 있다니 내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교내 장애인휴게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한 적이 있었고, 그때 나는 조울증을 앓는 선배를 만나게 됐다. 그 선배에게 조울증을 겪을 당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것을 통해 어렴풋이는 어떤 병인지는 알고 있었다. 98학번이었던 그가 20대 초기에 발병을 하고 2007년이 되어서야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을만큼, 그 병은 그를 오랫동안 뒤흔들었던 것 같다. 경청하며 듣기는 했지만, 그가 겪은 극단적 증상들은 실로 '질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들이었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되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가 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말도 나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잘 모르겠다.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의사가 된 누군가의 조울증에 관한 이야기가 내 손에 들렸던 것이다. 나는 그 조울증, 양극성장애라는 세계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 기회를 맞아 호기심에 들뜰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던 초반에 '남자친구'라는 단어가 나오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이제껏 '조울증'과 '의사'라는 단어로 조합해낸 작가의 이미지는 내게 의심의 여지없이 '남자'였던 것이다. 의사이기에 당연히 남자를 떠올린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 책은 내게 전혀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가 담긴 책 속에서 아직도 웅크리고 누군가 알아봐주길 바라는 내 마음 속의 어린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의대를 다니던 작가가 우울증이 심각해짐을 느끼고 교내의 상담실을 찾아가면서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는 그가 2형 양극성장애라는 것을 알게된다. 양극성장애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되는 조울의 의학용어인것 같고, 양극성장애는 조증도 우울증만큼 강하게 나타나는게 1형, 조증은 우울증보다 좀 더 약하게 나타나는게 2형이라고 나는 단순하게 이해를 하였다. 작가의 경우도 우울증이 훨씬 길고 자주 나타나기에 조울증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우울증뿐아니라 가끔이지만 조증도 찾아오는, 단순한 우울증과는 다른 질환이라고 한다.

그녀가 우울증이 찾아올때 겪었던 시간들은 내가 대학시절 방황하던 때와 너무도 겹쳐보였다. 타인에게 나의 가치를 찾으려는 모습, 불안정한 이성관계, 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 등이 딱 내 모습이었다. 다만 작가는 2형 양극성 장애를, 나는 개인적인 트라우마의 거대한 터널의 초입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만 말이다.

작가는 무엇때문에 자신이 2형 양극성장애를 얻게 되었는지에 골몰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시절 부모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를 돌아본다. 그녀는 어린시절 공부를 잘했음에도 칭찬받지 못하고,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보다 학업에 부족한 언니에게 관심과 사랑이 쏠리는 것을 보면서 차별을 느끼며 자라왔다고 한다. 그녀는 책 속에 자신과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막상 엄마와의 애착의 문제가 자신의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적는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의학적 지식도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나도 지금 나라는 사람이 되고보니, 부모와의 관계나 어린시절의 가정환경이 나에게 꽤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내가 대학생때 장애인휴게실에서 만났던 그 선배 또한 대학교 입학 후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이 되었다고 했다. 이 작가가 수많은 페이지를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는 것으로 할애했다는 점도, 작가가 사실은 자신의 문제와 커온 환경이 많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반증하는게 아닌가 한다.

그녀는 막상 제2 양극성장애의 진단을 받고서도 그 질병을 받아들이는데 오랜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늘 머리가 좋았고 전교 1등을 하던 학생, 공부잘하고 촉망받는 의대생과 조증과 우울증을 오가며 수없이 자살을 생각하고, 이성간의 관계가 편안하게 유지되지 않는 그녀의 모습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녀는 속으로는 불면증과 자살에 대한 생각에 시달리며 죽을 것 같아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고, 주어진 일상생활도 착오없이 잘 해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것을 '가면우울증'이라고 표현했는데, 내가 이해하는 뜻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듯한 경험은 내게도 너무 익숙하다.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억누르고, 밖으로는 평범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삶 말이다.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것 외에도 그녀가 상담을 받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내게도 큰 도움을 주었다. 내게도 무언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는 오래되었다. 다른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그럼에도 한번도 그 생각을 실행한 적이 없었는데, 그녀가 기록한 상담과정, 치료과정은 내게 어떤 의사를 만나서 어떤 대화가 오고갈 수 있는지를 실제로 알 수 있게 해주어서, 내게도 병원에 찾아가볼 용기를 내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나의 상처를 드러내어 이야기를 한다는데에는 자신이 없지만, 나의 정신상태에 대한 전문적인 정신감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빠져들어서 책을 읽었다. 그녀의 치유과정은 아직 진행중이다. 상태가 안정적이지만 치료는 계속 받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완치'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이가 인생의 중반에 이르고보니, 누구나 어디 망가진데 한군데 쯤은 짊어지고 살아간다는 걸 알게됐기 때문이다. 정신적이든, 신체적이든. 중간에 죽지않고,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만두지 않고 살아가면 되는 것 같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그녀의 주치의가 했던, 늘 마음속의 어린아이를 돌보라는 말이었다. 내 마음속의 어린아이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말을 걸고, 어떻게 느끼는지 말을 걸으라는 것이다. 내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바라는 게 그것이다. 내게 좀 괜찮은지 물어봐주었으면. 몸은 괜찮은지, 밥은 잘 먹었는지 물어봐주었으면. 나라도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겠다.

"00아, 오늘은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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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 지우개
작가 水 지음 / 좋은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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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긴 문학이라는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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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 지우개
작가 水 지음 / 좋은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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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더이상 우리의 육신이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것이 있겠지만, 아주 평범했던 사람들의 경우에 아마도 그것은 남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은 '기억'이 아닐까 한다. 작가 수 대본집의 첫번째 이야기인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 지우개'에서는 이러한 기억과 우리의 존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다룬다.



50대이며, 아들을 잃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정은 접촉사고로 젊은 20대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다름 아닌 어린시절 친구 점순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알고보니 현재는 개명을 해서 유미가 된 점순이는 얼굴과 몸이 젊어지는 시술을 받고 20대로 회춘했던 것이다. 그 시술의 대가는 다름아닌 그녀가 갖고 있던 '기억'이었다. 기억을 잃는 대가로 몸은 젊어지고, 더 많은 기억을 지울 수록 더 많이 젊어진다. 친구의 권유로 시정도 마찬가지로 기억을 지우면서 젊어지는 시술을 받게 되는데, 최근 3년 간의 기억이 사라진 그녀는 그 사이에 자신의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들의 죽음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시정은, 나중에 그 사실을 남편에게 전해듣고 마치 살아있던 아들을 다시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경험하게 된다. 기억이란, 비록 그것이 받아들이기 힘든 상실의 기억일지라도, 존재에 대한 마침표를 찍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야기 속에서는 기억을 잃은 시정의 관점에서만 다루어졌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을 떠난 아들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역할로서의 기억이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정의 아들은, 남아있는 이들의 기억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사라진다면, 그가 존재했었다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될까?



오에 겐자부로의 책 '인생의 친척'에서 그런 대목이 나온다. 자식을 둘을 잃고 고통스러워하던 엄마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자식을 잃은 고통이 너무나 크지만 자신은 죽을 수 없다고, 왜냐하면 그녀가 죽는다면 머릿속에 그녀의 자식들에 대한 기억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유미는 친구에게 시술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너도 잊고 싶은 기억이 있지 않아?"하는 말을 한다. 나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있고, 적어도 그 기억이라도 사라졌으면 하는 일도 있다. 잊고 싶은 기억은 사실상 망각으로 접어들기도 한다. 잊어야만 살 수 있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20년전 세상을 떠난 나의 동생에 대해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첫 수능을 치던 바로 그날, 동생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아직 어리던 내게 그 일은 크나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 일이 있은 후 10년 정도는 내 기억 속의 그의 존재와 상실간의 충돌로 괴로워했다. 내 기억속에 손에 닿을 듯이 존재하는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었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자연히 선택하게 된 방법은 '망각'이었다. 나는 그가 존재했었다는 사실과 함께 죽었다는 것도 점점 망각해갔다. 말하자면 나의 기억 속에 그의 존재가 점점 옅어져 간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에 대한 것들은 너무도 희미한 기억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단 한가지만은 내가 죽는 날까지 기억할 것이다. 바로 그가 '존재했었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내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그의 모습, 그와의 추억, 다툼, 그의 17년의 인생은 누가 기억해줄까. ​




이 책은 다섯편의 대본이 수록된 것이었는데, 책 속의 다른 이야기들도 내게는 잘 와닿는 내용이었다. 다섯편을 다 읽고나니 작가의 성향이 드러나는듯 했고, 무엇보다도 작가가 전해주는 정서를 통해 그가 나와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점이 문학의 가치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경험한 바로 그 시대를 기록하는 것 말이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한국이 들어있고, 바로 그녀가 나고 자라고, 보고 듣고 경험한 한국이 들어있었다. 매우 익숙한 정서이기에 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도 없지는 않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독창적이고 새로워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80년대 광주 민주화운동의 한 장면을 이야기로 쓴 것을 보면 그녀는 오히려 잊혀진 우리를 기억해내고 상기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보인다.



그래서인지 각각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중요한 문제를 화두로 제시하고 있다. 첫번째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난무하는 성형수술을 비롯한 '젊음에 대한 찬양'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호상'과 '수목장'은 고령화되는 사회에서의 병든 부모를 간호하는 문제, 안락사 문제에 대해 다루고, '새순'은 80년대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갈릴리 병원'은 병의 치유와 신의 존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모든 이야기가 잘 읽히고 좋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이야기라서인가 '수목장'이 가장 여운을 남겼다. 사실 유일하게 사랑이야기라서 더 흥미있게 읽는지도 모른다. 간호사로 일하는 현주가 (아마도) 말기암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부탁으로 안락사를 시키면서 살인죄로 감옥에 가게되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를 더 예전에 읽었더라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감옥에 갈 것을 무릅쓰고 안락사를 도울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년 전, 개그우먼 박지선이 엄마와 같이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후, 가까운 이의 고통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병으로 쇠약해진 부모가 삶을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서평단 신청을 하여 읽게 되었다. 사실 나는 대본집인 줄도 모르고 신청을 했던 것을 책을 받고서야 알았다. 황당함 반, 걱정 반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몇 시간만에 다 읽어버렸으니 말이다. 소설을 잘 읽지 못하고, 특히 단편집은 어려웠던 나인데, 이 책은 짧은 이야기의 묶음이었음에도 읽기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내용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쉬워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여기, 지금, 한국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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