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읽다 - 실감나게 읽는 성경 속 광야 이야기 광야 시리즈
이진희 지음 / 두란노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광야를 읽다.

우리는 복을 받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복은 불편함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나 은혜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다. 복을 받지 못하면 좀 불편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광야를 지날 때는 복을 구하지 말고 은혜를 구하라. 광야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광야를 읽다 중에서

 

기독교 도서 가운데 광야를 주제로 하거나 광야를 언급하고 있는 책이 생각 보다 많은데 무엇을 이야기 하려 했던 대부분의 책들이 광야에 대해서 제대로 알며, 인식하고 이야기 하기 보다는 너무 추상적이나 비 객관적 지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광야를 읽다이 책은 저자 이진희 목사님이 광야에 대해서 잘 알고 그것을 토대로 길지 않은 메시지를 전 달 함으로 내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광야의 그림이 정리가 되었으며 또한 그 광야를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좀더 쉽게 알아 갈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는 어려움들은 경제적, 사회적, 인간관계적인 면에서 불쑥 나타나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가 만나는 여러 종류의 광야는 가나안에 이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고, 우리는 그 광야를 견뎌 내야만 한다.

-광야를 읽다 중에서

 

나에게 위로와 도전이 되었던 글이다. 삶을 살아가다보면 정말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게 되고 때론 그 때 주저앉게 되는데 주저 앉았다고 해서 문제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닌데 또 다시 그 문제가 나에게 주어지며 때론 더 큰 문제로 다가오는데 왜 자꾸 피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셔서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목자와 같이 그들을 인도하셨는가?

첫째, 목자는 늘 양보다 앞서 간다. 길을 인도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목자는 양들과 항상 같이 간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늘 이스라엘 백성보다 앞서 가시며 길을 인도해 주셨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항상 함께 하셨다.

둘째, 목자는 잘 따라오지 못하는 어린 양이나 다친 양, 또는 아프거나 징계하느라 다리를 부러뜨린 양을 어깨에 메거나 품에 안고 간다.

우리가 광야를 지나다가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지치면 주님은 우리를 안고 가신다. 결코 버려두지 않으신다. 앞에서 잡아끌지 않으신다. 뒤에서 커우보이들처럼 몰아치지 않으신다.

-광야를 읽다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존 비비어의 결혼
존 비비어 지음, 유정희 옮김 / 두란노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존비비어의 결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나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았다. 형상이란 모습을 말하는 것이지 전 존재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 동등해질 것라는 거짓 약속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무언가를 얻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잃어버리고 있는데 말이다. 그들은 지혜를 받지 않고 기만을 받아들였다.”

 

결혼, 남들이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는 지났지만 결혼이라는 단어가 아직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독신으로 살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던 중 이 책 존비비어의 결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존비비어의 결혼존 비비어혼자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 리사 비비어와 함께 공동으로 글을 썼으며 총 6개의 PART로 구성되어 있고 각 파트에는 5개의 파트와 그 파트에 연결된 묵상과 토론이 행복한 결혼을 위한 묵상, 행복한 결혼을 위한 토론 이라는 주제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갖고 계신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다. 결혼은 사랑의 제도로서 하나님이 정하신 첫 번째 제도다. 그뿐만 아니라, 결혼은 하나님이 그의 교회이자 신부인 우리를 향한 사랑과 헌신의 깊이를 말씀하실 때 사용하시는 시적 상징이기도 하다. 신부와 신랑은 교회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기 원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결혼을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그 사랑을 전해야 하며 그 사랑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것은 결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결혼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며 사랑의 기초요 시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요즘 결혼이 하나님 사랑의 실천이 아닌 나의 만족 및 나의 것을 더 내세움을 통하여 결혼에 관한 조건들이 너무나도 많아지며 또한 결혼에 위기가 오고 그로 인해 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성숙함에 대해 가르치실 때, 하나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환난''박해'가 있을 거라고 하셨다.(4:17) 헬라어 원본에서 이 단어들은 '들립시스''디오그모스'. 들립시스는 "고통, 압박, 괴로움, 시련을 초래하는 곤경"이다. 디오그모스는 "어떤 사람을 괴롭히고 억압하기 위해 계획된 프로그램 또는 과정"이다. 둘 다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이러한 힘들이 우리를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게 한다.”

 

많은 시험이 그렇듯 결혼의 위기도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여 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으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 또한 나의 잘못을 먼저 깨달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진 것은 삶을 희생하기 위함이다. 만일 우리가 단지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산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낭비하고 죄와 이기심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와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려고 죽으셨는데 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특히 배우자를 섬기며 사는 법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결혼은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만드신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상대방을 위하여 삶을 희생하는데 그것이 희생이 아닌 기쁨이 되어 질것이고 또한 결혼을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님께 놀라다 - 믿고 싶은 대로 믿던 불신앙을 끝내다
마이크 어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하나님께 놀라다

 

하나님께 놀라다 이 책은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마음대로 믿고 있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 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원하시는 모습은 성경에 다 기록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처음부터 읽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우리 마음의 구멍을 채워 주겠다고 약속하시는 대목이 없다. 아니, 하나님은 흔히 '정반대의 일'을 하신다. 수많은 이들이 하나님에게 실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시지 않은 일을 하나님 대신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일인 것처럼 이야기 하며 성경에 요절을 끄집어 내어 나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 한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또한 오신 예수님이 구약에서 통하여 예연하신 이가 바로 자기라고 가르치실 때에 많은 놀랐고 또한 믿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 자신이 믿고 싶은 예수가 아니니까. 나이 신앙생활의 모습을 볼 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일 거야 하며 막상 기도 하지 않고 내가 주관적으로 선택할 때가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관심은 그저 우리를 행복한 사람들로 만든 데 있지 않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 나라의 백성,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백성으로 만들고자 일하신다. 우리의 안락이나 안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과업이 관건이다. 예수님의 선언은 행복이나 편의, 안락, 안전을 다루지 않는다 예수님은 주된 관심사가 지기 보호나 만족이 아닌 사람들을 찾으신다. 예수님은 건강해지고 행복해지고 안전해지는 방법을 말씀하시거나 그에 관한 실용적 조언을 해 주신 적이 없다. 우리는 예수님이 지금 이 세상에서의 안전과 편안함을 약속하셔서 우리의 염려를 진정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도 굶주리고 헐벗을 수 있음을 아신다.”

 

일부 기독교계는 슬픔이나 의심, 하나님에 대한 실망 등은 믿음이 부족함을 나타낸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리스도가 오셨고 다시 오실 것이니 분노와 슬픔을 노골적으로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탄식은 믿음의 여정에 허용될 뿐 아니라 꼭 필요하다. 탄식은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탄식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탄식은 세상을 가상의 방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배울 수 있다. 우리는 긍정적인 것이건 부정적인 것이건, 모든 경험을 하나님 앞에서 드려야 한다. 탄식을 노래하는 시편은 이 일에 예외인 상황이 없고, 부적절한 주제 역시 없음을 가르쳐 준다. 어떤 것도 보류해서도 안 된다.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가져가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참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또한 내가 살아가고 내 삶속에서도 많은 일들이 있는데 이상하게 기독교인 안에서는 항상 똑같은 일들만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 같은 은혜 같은 헌신 같은 간증을 강요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만져 주심은 다양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기 때문에 각자의 표현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합니다. 주님 안에 있다면 잘못된 것 없다고 생각 합니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이름을 팔며 자신의 생각으로 남을 정죄 하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 - 그리스도에게 배우는 삶의 방식
임영수 지음 / 두란노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

 

세상적인 것, 즉 육적인 것의 속성은 부피가 큰 것, 화려함, 허세, 과장, 인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속성은 반대로 참됨, 진실, 변화와 성장의 힘을 가진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성서에서 말씀해 줄 뿐 아니라 신실한 기독교인들의 삶속에서 많이 입증되는 사실입니다. 참됨, 진실, 겸손에는 과장, 선전, 강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거짓, 불의 사악함, 교만에는 강요, 세뇌, 허세, 과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것에 쉽게 속습니다. 그러한 분위기에 휩싸여 자신이 무엇이 된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 중에서

 

이 책을 읽기 전 모세골에 관해서 이야기만 들었지 모세골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에서 모세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없지만 이 책의 쓰신 임영수 목사님의 모세골 생활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 있어서 대략 어떤 곳 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고 또 기회가 된다면 가보고 싶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자주 꿈을 꾸며 때론 소망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너무나 막연하고 때론 하나님이 원하는 삶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더 살려고 할 때가 많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기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 갈 때가 많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새로운 세계를 지향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는 사실을 약속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변화의 세상에 대한 미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책임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 중에서..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을 1:1에 초점을 맞추며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 안에 복음과 구원이 나 자신을 위한 편협한 복음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보지 못함으로 이 세상에 대하여 한탄만 정죄만 하려 하지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나의 삶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이 아닐 때가 많은 것을 이 책을 통하여 발견하게 됩니다.

 

진정한 축복을 받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복 있는 자의 삶, 행복한 자의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복, 또는 행복은 명사가 아니고 동사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정 중에서.

기독교 신앙에서 변화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도덕적인 변화 이전에 정체성의 변화가 먼저입니다. 성서에서 인간을 '너희는 사랑받는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 즉 자존감이 됩니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정체성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이루어가야 할 소명을 알고, 그것을 향해 살아갈 때 드러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정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 창세기 2 김양재의 큐티 노트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래도 살아 냅시다.

 

사랑의 하나님이기에 은혜를 주시지만, 그 은혜는 내가 죄인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살아 냅시다 중에서...

 

사역을 쉬는 기간이 조금 길어지게 되면 우리들 교회에 예배에 자주 참석을 합니다. 왜냐 하면 다른 교회 예배와 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특징은 목사님이 말씀 중에 눈물을 흘리시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씀에 대한 적용(간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후 기도가 더욱더 적극적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읽은 그럼에도 살아냅시다라는 책은 그런 우리들 교회의 모습이 그대로 닮겨 있습니다. 말씀이 있고 말씀을 통한 기도와 간증 그리고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다 보면 목사님이 이 부분에서 눈물을 흘리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살아냅시다는 목사님이 우리들교회 예배 중 성경 창세기 6-11장 말씀을 전하셨던 것을 정리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 안에는 3개의 파트로 나누워 져 있습니다. 첫 번째 파트는 악한 시대의 예배자(창세기 6-7), 두 번째 파트는 사람의 끝, 하나님의 시작(창세기 8-9) 마지막 세 번째 파트는 살아 있는 날의 은혜(창세기 9-11)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파트는 4개의 단락으로 나누워 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악을 보시고 근심하며 한탄하십니다. 그 악을 쓸어버리겠다고 하십니다. 그 사람을 깨닫고 나와 가족의 악을 인정하며 고통하는 것이 은혜 입은 자의 태도입니다. 폭력과 거짓말, 술과 음란으로 쓸어버림을 당하는 사건이 와도, 여호와의 은혜를 입은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 가정의 구속사가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중에서.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남편을 사모하며 잉태하여 아이를 낳는 수고를 원죄에 대한 형벌로 허락하셨습니다. 그 고난을 통해 여인의 후손 예수님이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거룩'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중에서.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와 책을 보면 결혼생활에 관련하여 자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혼하지 말 것을 강력하가 말씀하시며 이 책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의에 보면 교회 안에서 서도 너무 쉽게(?) 이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또한 목회자들이 상담을 할때도 이혼에 관해서 허락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결혼은 김양재 목사님 말씀처럼 불신결혼이 아니라 믿는 자 안에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정욕에 의해서 그것을 생각지도 않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후 그것이 잘못 되었다면 너무 쉽게 이혼하려 합니다. 심지어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결혼하지 않았으니 이혼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위의 글처럼 결혼의 목적은 내 정욕이 아닌 거룩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은 이 땅의 행복과 축복이 아닙니다. 방주를 짓고, 방주에 들어가고, 방주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메시지가 들리는 것이 진정한 구원입니다. 말씀이 들리는 것이 구원입니다. 사명자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데, 돈이 생겼다고, 대학에 붙었다고, 병이 나았다고 이게 구원이라고 떠벌리는 것이 얼마나 유치한 수준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중에서.

 

이 땅만 바라보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직분이나 가진 것으로 교회 안에서 세상에서 당당한 것이 아닌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또한 세상에서 당당해 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