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박철현 옮김 / 이제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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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계적인 성서학자이자 신약성경의 역사, 초기 기독교 교회사, 성경 사본학의 거장으로 알려진 바트 어만. 그가 쓴 이 책은 역시 그가 쓴 <성경 왜곡의 역사>의 자매서라 할 수 있다.

후자의 책이 오늘날 정경으로 확립된 27권의 (신약)성경의 위조, 왜곡을 포함한 변개의 역사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책이라면, 이 책은 20세기 중반에 발굴된 나그함마디 문서 등의 다양한 외경서까지 꼼꼼하게 살피면서 초기 기독교의 다양성을 폭넓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오늘날 정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독교가 어떻게 다양한 기독교들과 겨뤘으며, 어떻게 승리하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초기의 다양한 기독교들과 관련해서 저자는 에비온파와 마르시온파, 영지주의파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결과적으로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특정한 한 경향이었던 원정통 기독교가 살아남게 되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잊혀지게 되었지만, 당시의 논의들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단과 정통 시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는 또한 관용과 배타성의 문제도 제기한다.

“오늘날 기독교의 다양한 형태는 초기 기독교계 내부에서 일어난 싸움에서 승리한 한 형태의 기독교에서 나왔다. 전투에서 승리한 기독교인들은 정통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교리와 신앙에 대한 결정권을 틀어쥐었는가 하면 당시에 유행한 모든 기독교 텍스트들을 정경서와 이단서로 갈라놓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최후의 일격으로 논쟁으로 얼룩진 기독교의 역사를 자신들의 입장에서 다시 기술했다. 그들은 그러한 전투가 마치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꾸미고, 자신들의 견해가 예수와 그의 제가가 살았던 당시부터 줄곧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견해는 항상 정통, 즉 바른 믿음이 되었고, 다른 경전을 받든 그들의 반대자들의 견해는 언제나 사람들을 속임수로 꿰는 이단으로 치부되었다.”(위의 책, 27~28쪽)

승자와 패자가 갈린 초기 기독교들 사이의 싸움에서 원정통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수단들을 동원했다. 신학적 혹은 비신학적 이유로 스스로 정합성을 갖추기 위한 위조와 변조는 다반사였으며, 이단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위조행위가 빈번히 일어났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끌어들이며 윤리적 공격과 인신 공격성 비난도 일삼았다.

그러나 기독교들 사이의 내적 긴장과 경쟁은 아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원정통 기독교 내부로 흡수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원정통 기독교는 여러 가지 독특한 사상이 혼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원정통은 마르시온파에 반대하고 에비온파에 동조하여 유대 경전들의 권위를 인정한 반면, 에비온파에 반대하고 마르시온파에 동조하여 역사적 유대교에 반대했다. 그들은 에비온파에 반대하고 마르시온파에 동조하여 예수의 신성을 인정한 반면, 마르시온파에 반대하고 에비온파에 동조하여 그의 인격성을 인정했다. 그들은 마르시온파와 영지주의파에 반대해서 유일하신 참하나님이 이 세계의 창조자라고 주장한 반면, 마르시온파와 영지주의파에 동조해서 이 세계를 무가치하게 보고 고행적인 수행을 통해 물질세계라는 덫에서 벗어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위의 책, 524쪽)

오늘날 기독교가 갖고 있는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인정한 최초의 인물은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아타나시우스였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의 저술이 나온 후 300년도 더 지난 서기 367년 아타나시우스가 쓴 편지에 나온다. 300여년이 흐르는 동안 일어난 일들과 관련해서는 <성경 왜곡의 역사>에 상세히 잘 나와 있다.

“기독교의 배타성은 그 당시 지배적인 로마시대 사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로마 제국의 다신론적 종교들은 제각기 다른 종교들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종교들 중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종교가 옳고 그 외의 다른 종교들은 삿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527쪽)

다른 종교들과 달리 기독교는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로 하여금 개종하기 전에 가졌던 모든 종교적 관습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기독교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것과 경쟁 관계에 놓여 있던 종교들을 괴멸시켰던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전대미문의 배타적인 태도 탓에 기독교가 성공적으로 전파될 수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계속 용인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그 답은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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