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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맛집 - 음식칼럼니스트 주영욱의 서울 맛집 77
주영욱 지음 / 지식과감성#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먹기위해 사는가? 살기위해 먹는가?" 이 낡아빠진 질문을 자꾸만 되풀이하게 되는건 그만큼 '먹는 일'과 '사는 일' 간의 패권경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일까. 어디선가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데, 사람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을 때라는 글을 읽은 일이 있다. 너무 단순하지만 크게 생생하게 공감했었다.
살기 위해 먹어야하고, 행복하기 위해 먹어야하고... 그래서 넘쳐나는 정보들에 때론 신물이 나면서도, 그래도 뭔가 좋은 정보 없을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게 된다. 그리고 산더미 속에서 빛나는 것들만 쏙쏙 골라놓은 책을 만나면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다. 이번에 읽게된 <이야기가 있는 맛집>은 제대로 된 음식철학, 그야말로 이야기를 가진 맛집들을 선정해놓아서 우선 좋았고, 현재 내가 살고있는 서울의 맛집만을 소개하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작가인 주영욱은 경영학박사, 기업 CEO를 역임하고 지금은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여행칼럼니스트이자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노는 것'이라는데... 이렇게 너무 다재다능한 사람은 사실 나의 배앓이를 유발하기에 예뻐해주고 싶진 않지만, 인정은 해주기로.
제목이 말해주듯, 또 작가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의 주인공은 음식점이라기보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들의 인생 이야기이다. 그들의 삶과 태도를 읽으며 한가지 일에 진진하게 매진한다는 것이 주는 묵직함을 조금씩 배우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덤으로 바로 그들의 손이 깃든 맛난 음식을 먹으러 갈 기대에 들뜨게 된다.
소개되어 있는 음식점은 모두 77개인데, 소박하고 따뜻하게 차린 집밥이 그리운 날, 데이트로 특별하게 즐기고 싶은 날, 제철재료로 건강하게 몸보신이 필요한 날 등등 아홉개의 소주제로 분류해두었다.
특별한 날이라면 하루 한 팀만을 위해 요리상을 차리는 식당 '가가'를 찾아가면 어떨까? 이 곳의 셰프는 가정주부로만 살다가 50세가 넘어서 식당을 열었다고 한다. 기꺼이 그 분의 손님이 되어서 맛있는 한 상도 받고, 오래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에 품고, 키우고, 실천에 옮긴 그 분의 뚝심도 배워오고 싶다.
불쑥 짜장면 한 그릇이 먹고싶은 날에는 '중국'으로 가고 싶다. 하루에 딱 100그릇만 먹을 수 있다고 하니 서둘러 가서 줄을 서야겠다. 주인인 부부는 이렇게 일찍 가게를 끝내놓고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일들을 한다고 한다. 서예도 배우고, 태극권도 하고, 근처 화랑을 돌아다니며 그림 공부를 하고도 한다고. 그들의 행복이 더해진 짜장면 한그릇을 먹기 위해서라면 찾아가는 길도, 기다리는 시간도 그리 아깝지 않을 것만 같다.
조금 전형적인 성공스토리를 가진 '아야진 생태찌개',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같은 여사장의 비법은 좋은 재료, 정성, 푸짐함이라는데 역시나 전형적인 답변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런 기본적이고 평범한 철학이 어쩌면 가장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요 며칠 부쩍 추워저서인지 생태찌개 사진에서도 그 칼칼함과 뜨끈함이 느껴졌다.
정말 모두 가보고 싶은 집들, 이제 지갑과 의논해볼 일만 남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