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 4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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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끝내지 못할 것 같은 이야기가 드디어 끝났다."

다음 권의 출간을 기다려가며 읽었던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마지막 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작가는 영원히 끝내지 못할 것 같은 이야기였다고 말한다. 내게는 영원히 떠나보내지 못할 것 같은 릴라와 레누이다. 아마도 머뭇머뭇하는 나의 삶의 순간에 그녀들이 삶이 문득문득 끼어들지 않을까.

어느 한 순간도 서로에 대한 복잡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돌아섰다가 마주보았다가를 되풀이하며 둘은 각자의 길을 걸어갔고, 그렇게 노년이 된다. 그렇게나 긴 세월과 숱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공유했음에도 둘은 너무도 달랐고, 그런만큼 서로를 원했고, 둘이 있음으로서 온전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의 존재로 인해 느끼는 결핍 또한 컸던것 같다.

사실 1권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살짝 아쉬운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특히 4권에서는 작가 자신의 나폴리 사랑이 담뿍 담겨있다보니 서사가 약해지면서 조금 지루한 부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주로 여자들의 힘을 이요해 자신의 입지를 완성해가는 나쁜 남자의 전형인 리노의 태도가 짜증을 돋우었는데, 그야말로 '욕먹어도 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결국 자기 멋대로인듯 보였던 릴라는 세월이 지나고 보니 끝내 고향을 지켰고, 많은 고향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레누가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작가로 이름을 얻기까지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었던 '뮤즈' 릴라, 그에 비해 레누는 착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격하게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작가라는 직업군에게 도덕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터무니없다는걸 알면서도 개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함 선망이 있어서인지 읽어나가면서 레누에게 실망 비슷한 감정을 품기도 했다.

1권에서 4권까지 진행되어 오면서 이제 세상이 바뀌고, 많은 이들이 죽었고, 많이 이들이 떠났다. 그럼에도 끝내 릴라는 릴라였고 레누는 레누였다. 변하는 것들이 아무리 많아 보여도, 변하지 않는 것들 또한 무수히 존재한다는걸 느낀다. 그리고 릴라는 왜? 어디로? 갔을까. 이 책의 서사가 전적으로 레누에 의해 이어지다보니 릴라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다만 레누의 시각과 감각을 통과한 릴라만이 있을 뿐이라는게 마지막에 가서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왜 떠났는지, 어디로 떠났는지 독자는 끝내 알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라는 분명 언제까지나 가장 릴라다운 모습으로 살고있을거라고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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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미드나잇 스릴러
로저먼드 럽튼 지음, 윤태이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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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심리 서스펜스 소설 시리즈인 <시스터>, 오랫만에 읽은 스리러물이다. 작가 로저먼드 럽튼은 영문학을 전공하고 카피라이트, 서평작가, 시나리오 작가 등등 다양한 글들을 써오다가 2010년, 이 소설로 데뷔했다고 하는데, 이 책의 여주인공 역시 영문학 전공자로, 중간중간 문학 작품이나 영시들을 인용하는 대목들이 나오곤 한다. 전혀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쓰면서도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슬쩍 끼어드는 점이 재미있다.

제목처럼 두 자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언니인 비어트리스는 어느날 동생 테스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뉴욕에서 급히 런던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동생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경찰은 자살로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시키려 하지만, 비어트리스는 테스가 자살하지 않았을거란 확신을 가지고 혼자 동생 주변을 탐색하며 범인을 찾아나간다. 모두를 의심하며, 주위 사람들의 만류와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면서도 그녀는 포기할 마음이 없다. 누구보다 동생을 잘 아니까, 결코 자살할 테스가 아니니까. 뉴욕에서의 직장을 읽고, 약혼자를 떠나보내고, 무엇보다 세상을 대하는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꿔가면서 그렇게 단서를 찾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과 마주한 순간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게 되는데... 

전체적인 스토리 구성이 매우 전형적인 추리물의 룰을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소설은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긴박감이나 속도감이 조금 부족했다. 읽어나가면서 단박에 훅 빨아들이는 힘이나 책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몰입감 면에서 '느슨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스타일리시한 만큼 흥미로운 이 작품은 범죄소설과 문학작품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자리를 동시에 차지했다'는 제프리 디버의 글이 쓰여있는데, 양립하기 어렵다는 부분 만큼은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범죄소설이라기엔 느슨하고, 문학작품이라기엔 스토리가 지나치게 쟝르적이라는 느낌이랄까.

이처럼 애매하다면 애매한 소설이었지만 두 명의 '시스터'가 있는 내게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 들이 있었고, 결국 한 개인의 공명심과 망상, 과학의 힘에 대한 맹신 등이 어떻게 반사회적인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고 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이 소설 속의 자매, 비어트리스와 테스는 성격과 삶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데다 다섯 살의 나이차가 있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친했다'. 자매라는게 그런 것 같다. 상대의 스타일을 굳이 모두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자라면서 함께 했던 축적된 시간의 힘, 몸 깊은 곳에까지 스며들어 있을 함께 보고 경험했던 숱한 사건의 경험 들, 자매라는 낙인이 새겨져 있을 이중나선 DNA를 그 관계를 단단히 붙잡아 주는게 아닐까.

너와 나는 레오의 죽음과 아빠의 부재, 학교에 이미 지각했는데 숙제를 잃어버린 기억, 스카이섬으로 떠난 휴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만의 규칙으로 이어져 있어. 우리는 우리의 몸을 반으로 가르고 들어와 그저 기억만으로 남지 않고 우리 존재의 일부를 이루는 수십만 개의 기억으로 이어져 있어.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 사소한 것까지 모두 안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결정적인 것을 알지 못했다는 자책까지 더해진다면 모든 언니들은 아마도 끝까지 진실을 찾고 싶을 것이다. 이 소설 속의 비어트리스처럼 말이다.

쫄깃하고 서늘한 스릴러,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추리물을 생각한다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멋진 문장이나 문학성을 기대하기에도 역부족인 소설인 것 같다. 내게 있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언니가 자신과 다른 동생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애정을 가지며 변해가는 모습이 주는 소소한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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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맛집 - 음식칼럼니스트 주영욱의 서울 맛집 77
주영욱 지음 / 지식과감성#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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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위해 사는가? 살기위해 먹는가?" 이 낡아빠진 질문을 자꾸만 되풀이하게 되는건 그만큼 '먹는 일'과 '사는 일' 간의 패권경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일까. 어디선가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데, 사람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을 때라는 글을 읽은 일이 있다. 너무 단순하지만 크게 생생하게 공감했었다.

살기 위해 먹어야하고, 행복하기 위해 먹어야하고... 그래서 넘쳐나는 정보들에 때론 신물이 나면서도, 그래도 뭔가 좋은 정보 없을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게 된다. 그리고 산더미 속에서 빛나는 것들만 쏙쏙 골라놓은 책을 만나면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다. 이번에 읽게된 <이야기가 있는 맛집>은 제대로 된 음식철학, 그야말로 이야기를 가진 맛집들을 선정해놓아서 우선 좋았고, 현재 내가 살고있는 서울의 맛집만을 소개하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작가인 주영욱은 경영학박사, 기업 CEO를 역임하고 지금은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여행칼럼니스트이자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노는 것'이라는데... 이렇게 너무 다재다능한 사람은 사실 나의 배앓이를 유발하기에 예뻐해주고 싶진 않지만, 인정은 해주기로.

제목이 말해주듯, 또 작가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의 주인공은 음식점이라기보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들의 인생 이야기이다. 그들의 삶과 태도를 읽으며 한가지 일에 진진하게 매진한다는 것이 주는 묵직함을 조금씩 배우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덤으로 바로 그들의 손이 깃든 맛난 음식을 먹으러 갈 기대에 들뜨게 된다.

소개되어 있는 음식점은 모두 77개인데, 소박하고 따뜻하게 차린 집밥이 그리운 날, 데이트로 특별하게  즐기고 싶은 날, 제철재료로 건강하게 몸보신이 필요한 날 등등 아홉개의 소주제로 분류해두었다.

특별한 날이라면 하루 한 팀만을 위해 요리상을 차리는 식당  '가가'를 찾아가면 어떨까? 이 곳의 셰프는 가정주부로만 살다가 50세가 넘어서 식당을 열었다고 한다. 기꺼이 그 분의 손님이 되어서 맛있는 한 상도 받고, 오래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에 품고, 키우고, 실천에 옮긴 그 분의 뚝심도 배워오고 싶다.

불쑥 짜장면 한 그릇이 먹고싶은 날에는 '중국'으로 가고 싶다. 하루에 딱 100그릇만 먹을 수 있다고 하니 서둘러 가서 줄을 서야겠다. 주인인 부부는 이렇게 일찍 가게를 끝내놓고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일들을 한다고 한다. 서예도 배우고, 태극권도 하고, 근처 화랑을 돌아다니며 그림 공부를 하고도 한다고. 그들의 행복이 더해진 짜장면 한그릇을 먹기 위해서라면 찾아가는 길도, 기다리는 시간도 그리 아깝지 않을 것만 같다.

조금 전형적인 성공스토리를 가진 '아야진 생태찌개',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같은 여사장의 비법은 좋은 재료, 정성, 푸짐함이라는데 역시나 전형적인 답변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런 기본적이고 평범한 철학이  어쩌면 가장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요 며칠 부쩍 추워저서인지 생태찌개 사진에서도 그 칼칼함과 뜨끈함이 느껴졌다.

정말 모두 가보고 싶은 집들, 이제 지갑과 의논해볼 일만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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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은하에서 - 우리 시대 예술가들과의 대화
김나희 / 교유서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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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왜 글을 쓰고싶어질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제각각 '쓰고싶은'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쓰고싶은'이라기 보다는 '쓰지않을 수 없는' 순간을. 파리에서 피아노와 법학을 공부했다는 작가(인터뷰어) 김나희는 오래전부터 "내 손 끝에서 나온 내 문장으로 음악적 순간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을 완전히 압도하는 아름다움, 음악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을 압도하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글로 쓰는 일. 이 책이 그러한 일의 결과물이라는 것만으로도 설레일만하지 않을까? 사실 개인적으로 음악에 대해 부끄러울만큼 둔감한 편인데, 왠지 이 인터뷰집을 읽고나면 음악과 음악가에 대해 조금쯤은 절실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이어 책을 읽어나가고 마침내 책장을 덮기까지 이런 예감은 어느정도 간직되었고 실현되었다.

대체로는 음악가들과의 인터뷰이지만 다른 쟝르 예술가들과의 인터뷰도 있다. 내게는 이름조차 낯선 음악가들도 꽤 있어서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우선 친숙한 한국 작가, 음악가 들의 인터뷰부터 읽기 시작했다. 박찬욱, 봉준호, 신경숙, 조수미... 그리고 이어서 차례 속 소제목이 마음에 드는 것부터 읽어나갔다. 예를 들면 '피아노는 그저 악기일 뿐 - 피에르 로랑 에마르' 혹은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법 - 사무엘 윤' 같은 것들.

읽어나가며 분명하게 느껴졌던 것 중 한가지는 젊은 연주가들과 오래 연주를 해 온 연주가들의 차이였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당연히 똑같지만 음악이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눈'은 조금 달랐다. 젊은이들과 노인 들이 같은 무게로 삶을 사랑해도 삶을 바라보는 눈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와 비슷한 나이거나, 나보다 윗 연배 작가나 연주가들과의 인터뷰가 더 크게 와닿았다.

그 중 하나는 작가 미셀 슈나이더(1944~)와의 인터뷰이다. <슈만, 내면의 풍경>을 쓴 작가인 그는 처음 음악과 만난 순간에 대해 아버지가 연주하는 피아노 밑에서 놀았던 기억을 말한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피아노 아래에 있으면 피아노 현에서 전해지는 음들, 미세한 공기의 진동이 마치 장막처럼 온몸을 감싸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내 육체를 에워싼 음악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라면서 엘리트 코스를 거쳐 공무원이 된 그는 서른다섯 살에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피아노를 치면서 절대로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리라는 살실과 마주하지만 거장들의 연주를 듣는 것과는 다른 어떤 기쁨을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직접 그 음악을 구현하는 기쁨 같은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또다른 인상적인 인터뷰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피에르로랑 에마르(1957~)이다. 다섯 살 때 처음 업라이트 피아노 건반을 만져본 그는 첫눈에 반한 것처럼 강령하게 피아노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피아노를 평생에 걸쳐 함께하고픈 무엇으로 원하고 열망할 것 같은 느낌을 그 때 이미 가졌다고. 그럼에도 그는 피아노는 피아노일 뿐이라고 말하며,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그만의 태도를 확실이 보여준다.

"음악을 하는 매력적인 방법들은 여러가지이다. 실내악 전문 반주자가 되거나, 성악가들의 반주를 맡거나, 내가 열정을 가지고 공부한 것처럼 피아노를 치며 합창 지휘를 한다거나, 또 가르치는 일도 매력이 엄청나다. (중략) 이처럼 피아니스트라는 단어는 솔로 피아니스트만이 아니라 모든 일에 두루 사용될 수 있다. (중략) 음악인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피아노로 음악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자신이 애정하는 대상을 함께 애정하는 이들, 그 대상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 그런 이들을 만나 실컷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너무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 행복하고 기분좋은 시간에 대한 기록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음악가가 된다는건 '음악'이라는 우주 속에서 유영하며 숨쉬는 삶이란 생각을 하며 그들의 언어인 '음악'을 좀 더 이해하고 배워보고 싶어졌다. 슬그머니 조율한지 백만년쯤 된 채 방 한쪽에 방치되어 있는 피아노를 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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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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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매번 뒷이야기가 궁금한 나폴리 4부작, 1권 <나의 눈부신 친구>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 이어 3권을 읽었다. 제목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가 말해주는 것처럼 고향 나폴리를 떠나 결혼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삶을 마주하게 된 레누(엘레나 그레코)와 여전히 그 곳에 머물며 살지만 역동적으로 자신의 삶과 맞서는 릴라(라파엘라 체룰로)의 이야기가 그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리며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1, 2권이 주로 릴라를 중심으로 쓰여진 것에 비하면 3권은 분량이나 내용면에서 모두 레누가 보다 전면에 나서고 있다.

 

1장의 이야기는 화자인 레누가 5년 전 마지막으로 릴라를 만났던 것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60의 나이에 이른 레누는 사람이든 사람이든 그간의 긴 시간이 가져온 변화와 여전히 정체되어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1장을 읽으며 나는 상대(대상)의 '현재'만을 보는 사람과 그 상대의 '과거'까지를 알고 있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얼마나 클지를 생각해본다. 그 둘은 아마도 같은 상대를 보고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사람을 보고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장에서 레누는 여전히 나폴리에 머물렀던 릴라에게 지금가지 살아온 삶에서 멀리, 영원히 도망가라고 말하고 싶었던 그 시절, 자신은 실제로 그 곳을 떠났던 그 시절, 바로 2장부터 시작될 이 책 속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제야 나는 생각한다. 병든 것은 우리 고향 동네가 아니라, 나폴리가 아니라 지구 전체다. 유일한 우주 또는 무수히 많은 우주가 모두 병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사물의 본질을 숨길 줄 아는 능력이다."

5년전 레누는 릴라를 만나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릴라가 나폴리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도 이미 이 모든 이치를 다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인정한다. 이제는 늙어버린 떠난간 자와 머무른 자는 그렇게 결국 같은 시대에, 하나의 세상에 살았음을 나눈다.

20대 후반부터 시작되는 2장부터의 이야기는 앞 권들에 비해 보다 시대적 배경과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진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스스로를 닦달하고 책 속에서 길을 찾으며 다른 세계의 언어를 정복하려 노력하는 레누는 마침내 다른 세계에 속한 남자인 피에트로를 만나 결혼한다.

"아이로타 집안 사람들에게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 그들의 관대함을 증명하기 위한 왕관의 보석같은 존재?"


하지만 그는 결코 성숙한 남자는 아니었다. 가사와 육아 역시 레누를 지치게 했다. 그리고 결국 너무나 간절히도 원했던 첫사랑 니노의 접근 앞에서 레누는 무너지고만다.

"니노에게는 피에트로나 그와 함께 보낸 일상에는 없었던 뭔가 역동적인 면이 있어."

끊임없이 회한에 시달리는 레누의 모습은 사실 안쓰럽게 느껴졌다. 갈팡질팡 모든 일에 확신없이 흔들리는 레누. 떠나기 전, 그녀는 릴라를 상대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이제 떠나온 이상 세상 전체를 상대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한편, 릴라 역시 끊임없는 과제를 맞닥뜨리지만 그녀만의 방식으로 문제들과 정면 대응하며 나아간다. 중간에 앞서 있었던 '경계의 해체' 현상을 겪으며 레누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릴라는 (레누의 기대처럼) 혼자 힘으로 모든 난관을 헤치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도 혼자 감내해 나간다. 그렇게 둘은 자신의 자리를 힘겹게 지키느라,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내느라 조금씩 멀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추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중략) 우리는 서로에 대
한 실체감을 회복해야 했지만 너무나 멀어져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릴라는 컴퓨터라는 새로운 분야에 발을 디디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는다.

4부작 중 이제 3권이 끝났다. 세 권에 걸쳐 끊임없는 사건과 시대사와 개인사를 숨가쁘게 쫓아온 기분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며 방황하는 화자, 레누의 모습이 있었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지나 이제 중년을 향해 가면서도 같은 종류와 같은 무게의 고뇌를 업고가는 레누. 숱한 결심과 반성을 되풀이하면서도 불안정한 레누에게서 나는 나의 모습을 또한 보았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나이를 먹고, 많은 일들을 겪어도 여전히 극복되지 않는 나의 문제는 이미 오래전 과거에서부터 데리고 다녔던 것들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며 1권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 모든 일들, 릴라와 레누 사이의 어찌할 수 없는 愛憎.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누가 '나의 눈부신 친구'가 되주길 원하는 릴라의 마음만큼은 진심일까? 진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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