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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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매번 뒷이야기가 궁금한 나폴리 4부작, 1권 <나의 눈부신 친구>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 이어 3권을 읽었다. 제목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가 말해주는 것처럼 고향 나폴리를 떠나 결혼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삶을 마주하게 된 레누(엘레나 그레코)와 여전히 그 곳에 머물며 살지만 역동적으로 자신의 삶과 맞서는 릴라(라파엘라 체룰로)의 이야기가 그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리며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1, 2권이 주로 릴라를 중심으로 쓰여진 것에 비하면 3권은 분량이나 내용면에서 모두 레누가 보다 전면에 나서고 있다.

 

1장의 이야기는 화자인 레누가 5년 전 마지막으로 릴라를 만났던 것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60의 나이에 이른 레누는 사람이든 사람이든 그간의 긴 시간이 가져온 변화와 여전히 정체되어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1장을 읽으며 나는 상대(대상)의 '현재'만을 보는 사람과 그 상대의 '과거'까지를 알고 있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얼마나 클지를 생각해본다. 그 둘은 아마도 같은 상대를 보고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사람을 보고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장에서 레누는 여전히 나폴리에 머물렀던 릴라에게 지금가지 살아온 삶에서 멀리, 영원히 도망가라고 말하고 싶었던 그 시절, 자신은 실제로 그 곳을 떠났던 그 시절, 바로 2장부터 시작될 이 책 속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제야 나는 생각한다. 병든 것은 우리 고향 동네가 아니라, 나폴리가 아니라 지구 전체다. 유일한 우주 또는 무수히 많은 우주가 모두 병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사물의 본질을 숨길 줄 아는 능력이다."

5년전 레누는 릴라를 만나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릴라가 나폴리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도 이미 이 모든 이치를 다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인정한다. 이제는 늙어버린 떠난간 자와 머무른 자는 그렇게 결국 같은 시대에, 하나의 세상에 살았음을 나눈다.

20대 후반부터 시작되는 2장부터의 이야기는 앞 권들에 비해 보다 시대적 배경과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진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스스로를 닦달하고 책 속에서 길을 찾으며 다른 세계의 언어를 정복하려 노력하는 레누는 마침내 다른 세계에 속한 남자인 피에트로를 만나 결혼한다.

"아이로타 집안 사람들에게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 그들의 관대함을 증명하기 위한 왕관의 보석같은 존재?"


하지만 그는 결코 성숙한 남자는 아니었다. 가사와 육아 역시 레누를 지치게 했다. 그리고 결국 너무나 간절히도 원했던 첫사랑 니노의 접근 앞에서 레누는 무너지고만다.

"니노에게는 피에트로나 그와 함께 보낸 일상에는 없었던 뭔가 역동적인 면이 있어."

끊임없이 회한에 시달리는 레누의 모습은 사실 안쓰럽게 느껴졌다. 갈팡질팡 모든 일에 확신없이 흔들리는 레누. 떠나기 전, 그녀는 릴라를 상대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이제 떠나온 이상 세상 전체를 상대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한편, 릴라 역시 끊임없는 과제를 맞닥뜨리지만 그녀만의 방식으로 문제들과 정면 대응하며 나아간다. 중간에 앞서 있었던 '경계의 해체' 현상을 겪으며 레누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릴라는 (레누의 기대처럼) 혼자 힘으로 모든 난관을 헤치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도 혼자 감내해 나간다. 그렇게 둘은 자신의 자리를 힘겹게 지키느라,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내느라 조금씩 멀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추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중략) 우리는 서로에 대
한 실체감을 회복해야 했지만 너무나 멀어져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릴라는 컴퓨터라는 새로운 분야에 발을 디디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는다.

4부작 중 이제 3권이 끝났다. 세 권에 걸쳐 끊임없는 사건과 시대사와 개인사를 숨가쁘게 쫓아온 기분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며 방황하는 화자, 레누의 모습이 있었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지나 이제 중년을 향해 가면서도 같은 종류와 같은 무게의 고뇌를 업고가는 레누. 숱한 결심과 반성을 되풀이하면서도 불안정한 레누에게서 나는 나의 모습을 또한 보았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나이를 먹고, 많은 일들을 겪어도 여전히 극복되지 않는 나의 문제는 이미 오래전 과거에서부터 데리고 다녔던 것들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며 1권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 모든 일들, 릴라와 레누 사이의 어찌할 수 없는 愛憎.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누가 '나의 눈부신 친구'가 되주길 원하는 릴라의 마음만큼은 진심일까? 진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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