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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은하에서 - 우리 시대 예술가들과의 대화
김나희 / 교유서가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언제, 왜 글을 쓰고싶어질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제각각 '쓰고싶은'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쓰고싶은'이라기 보다는 '쓰지않을 수 없는' 순간을. 파리에서 피아노와 법학을 공부했다는 작가(인터뷰어) 김나희는 오래전부터 "내 손 끝에서 나온 내 문장으로 음악적 순간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을 완전히 압도하는 아름다움, 음악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을 압도하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글로 쓰는 일. 이 책이 그러한 일의 결과물이라는 것만으로도 설레일만하지 않을까? 사실 개인적으로 음악에 대해 부끄러울만큼 둔감한 편인데, 왠지 이 인터뷰집을 읽고나면 음악과 음악가에 대해 조금쯤은 절실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이어 책을 읽어나가고 마침내 책장을 덮기까지 이런 예감은 어느정도 간직되었고 실현되었다.
대체로는 음악가들과의 인터뷰이지만 다른 쟝르 예술가들과의 인터뷰도 있다. 내게는 이름조차 낯선 음악가들도 꽤 있어서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우선 친숙한 한국 작가, 음악가 들의 인터뷰부터 읽기 시작했다. 박찬욱, 봉준호, 신경숙, 조수미... 그리고 이어서 차례 속 소제목이 마음에 드는 것부터 읽어나갔다. 예를 들면 '피아노는 그저 악기일 뿐 - 피에르 로랑 에마르' 혹은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법 - 사무엘 윤' 같은 것들.
읽어나가며 분명하게 느껴졌던 것 중 한가지는 젊은 연주가들과 오래 연주를 해 온 연주가들의 차이였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당연히 똑같지만 음악이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눈'은 조금 달랐다. 젊은이들과 노인 들이 같은 무게로 삶을 사랑해도 삶을 바라보는 눈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와 비슷한 나이거나, 나보다 윗 연배 작가나 연주가들과의 인터뷰가 더 크게 와닿았다.
그 중 하나는 작가 미셀 슈나이더(1944~)와의 인터뷰이다. <슈만, 내면의 풍경>을 쓴 작가인 그는 처음 음악과 만난 순간에 대해 아버지가 연주하는 피아노 밑에서 놀았던 기억을 말한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피아노 아래에 있으면 피아노 현에서 전해지는 음들, 미세한 공기의 진동이 마치 장막처럼 온몸을 감싸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내 육체를 에워싼 음악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라면서 엘리트 코스를 거쳐 공무원이 된 그는 서른다섯 살에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피아노를 치면서 절대로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리라는 살실과 마주하지만 거장들의 연주를 듣는 것과는 다른 어떤 기쁨을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직접 그 음악을 구현하는 기쁨 같은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또다른 인상적인 인터뷰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피에르로랑 에마르(1957~)이다. 다섯 살 때 처음 업라이트 피아노 건반을 만져본 그는 첫눈에 반한 것처럼 강령하게 피아노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피아노를 평생에 걸쳐 함께하고픈 무엇으로 원하고 열망할 것 같은 느낌을 그 때 이미 가졌다고. 그럼에도 그는 피아노는 피아노일 뿐이라고 말하며,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그만의 태도를 확실이 보여준다.
"음악을 하는 매력적인 방법들은 여러가지이다. 실내악 전문 반주자가 되거나, 성악가들의 반주를 맡거나, 내가 열정을 가지고 공부한 것처럼 피아노를 치며 합창 지휘를 한다거나, 또 가르치는 일도 매력이 엄청나다. (중략) 이처럼 피아니스트라는 단어는 솔로 피아니스트만이 아니라 모든 일에 두루 사용될 수 있다. (중략) 음악인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피아노로 음악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자신이 애정하는 대상을 함께 애정하는 이들, 그 대상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 그런 이들을 만나 실컷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너무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 행복하고 기분좋은 시간에 대한 기록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음악가가 된다는건 '음악'이라는 우주 속에서 유영하며 숨쉬는 삶이란 생각을 하며 그들의 언어인 '음악'을 좀 더 이해하고 배워보고 싶어졌다. 슬그머니 조율한지 백만년쯤 된 채 방 한쪽에 방치되어 있는 피아노를 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