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라이터
사미르 판디야 지음, 임재희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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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도계 미국 작가의 소설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작가 사미르 판디야는 여덟 살 때 캘리포니아로 이주했고, 지금은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치며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 속에는 이러한 그의 이력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어 조금쯤은 자전적인 느낌, 작가 본인의 성장소설 느낌으로 읽히기도 했다.

대학원생 라케시는 우연히 인도인 맹인 작가, 아닐의 조수 일을 하게 된다.
"작가가 되고픈 강렬한 욕망이 있었음에도 정작 내 꿈을 드러내거나 인정하기가 두려웠다. 실제로 작가와 가까이 지내면 글쟁이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것만 같아 아닐의 조수가 되기로 결심한 터였다." (23쪽)
그리고 조금씩 그와의 대화와 그의 생활, 아름다운 그의 아내 미라에게로 빠져들어간다. 그렇게 아닐과 미라에 대해 새롭게 발견해가는 시간들을 보낸다. "아닐은 초기에 기성 작가들을 흉내 내가며 작가의 면모를 갖추고 싶어 했더랬다. 자기 이름이 새겨진 문구 용품을 주문한다든지, 고급 만년필을 사서 점자번역가에게 사용하게 한다든지, (중략) 이런 버릇들 가운데 카페인 중독만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42쪽) 혹은 "아닐은 아는 작가들의 책 서평은 듣고 싶지 않다고 햇다. 호평은 부럽고, 악평은, 마치 자기 책의 서평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이 상한다고 했다." (57쪽) 와 같은 문장들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읽혀서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이처럼 이 소설 속의 작가 아닐과 조수 라케시는 둘 다 작가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인가는 둘의 부부싸움을 지켜보기도 한다. "부부싸움을 지켜보니 그들의 일기를 몰래 훔쳐본 기분마저 들었다. 한편으로 미안했지만 둘 사이에 균열이 있음을 알게 되어 기쁘기도 했다." (73쪽) 그렇게 라케시의 마음 한켠은 언제나 부인 미라 쪽으로 뻗쳐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닐의 갑작스런 약속으로 마침내 라케시와 미라,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둘은 꽤나 긴 이야기를 나누고, 사소한 이유로 미라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린다. 그녀는 말한다. "그냥 웃음을 터트릴 기회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조금 가벼워지고 싶었어요. 어제 일로 마음이 무거웠거든요." (81쪽)

이제 뭔가 본격적인 삼각관계가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을 주며 1부. '그 해 가을'이 끝나고, 이야기는 2부 '겨울 휴가'로 이어진다.

2부에서는 라케시가 별거중인 어머니와 아버지를 각각 만나는 이야기가 기본 사건을 이룬다. 그 사건을 함께 치르며 아닐과 마리, 라케시 이렇게 세 사람은 보다 서로를 들여다보고, 보다 가깝게 다가서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3부, '봄날의 야구 경기'는 아닐이 라케시의 습작을 읽고 평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내가 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조언은, 작가로서 감정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걸세. (중략) 진짜 중요한 것은 감정이지. 감정만 남는 거야. 자신에게 솔직해야 되네. 그리고 자네의 독자들에게도" (158쪽) 그리고 이어서 미라를 떠나보내고 싶다는 결심을 내보이며, 자신이 작업한 마지막 책의 원고를 건네준다.

이제 아닐의 책에 대해 라케시가 평을 해야할 차례이다. 그는 생각한다. "아닐은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정작 해야 할 말은 빠쁘린 느낌이 들었다. 새 원고뿐 아니라 아닐이 쓴 모든 책이 그랬다." (166쪽) 그리고 봄날, 야구장에서 함께 귀로 야구경기를 듣다가, 마침내 아닐이 감추고자 했던 진실을 듣게된다.

세 사람은 이렇게 함께 한 시간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새로운 자각을 얻게 되고, 또 좀더 어른이 된다. 그리고 아닐의 마지막 선택이 미라와 라케시에게  찬란한 기억과 깊은 흉터를 남기며 이들의 관계는 끝이 난다. 이들의 삶은 결정적으로, 영원히 각자의 방향으로 튕겨져나간다. 이로써 이야기는 끝이 난다기보다 새롭게 각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 속에서 맹인 작가 아닐은 자신의 자전적인 글들을 통해 작가로서의 명예와 안정을 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한조각 진실을 숨김으로써 자신의 평생이 허위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느낌에 시달렸을거란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흘러도 결코 흐려지지 않는 그런 감각 때문에 온전한 행복에 이르지 못했던걸까. 그리고 그런 아닐을 행복하게 해줄수 있다고 생각했던 미라. 하지만 행복이란 타인에게 줄수도, 받을수도 없는 성격의 것이라는걸 조금씩 깨달아간다.

읽어내려가면서 처음에는 조금 맹숭맹숭한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다. 글쓰기를 꿈꾸는 대학원생이 유명한 맹인 작가의 조수가 된다, 라고하는 정말 흥미로운 설정에 비한다면 더욱 싱겁게 읽혔다. 그저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읽어나갔다. 하지만 뒤쪽으로 갈수록 무게감이 느껴졌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1부보다 2부가, 2부보다 3부가 더더 멋진 소설이었다. 역자는 첫 몇페이지를 읽고 곧바로 이 소설에 사로잡혔다고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정말 많은 생각들에 사로잡히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내가 살았던 삶과 살고 싶었던 삶 사이에서 가끔은 나 스스로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는 걸, 살아온 세월의 길이와 죄책감의 크기가 비례할지도 모른다는 걸, 셀 수없는 선택의 순간들 속에서 언제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본인의 욕망이거나 이기심일거라는 걸... 책장을 덮으며 이런 맥락없는 생각들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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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하나, 꽃 한 송이
김이랑 지음, 꾸까 도움말 / 미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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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꽃향이 폴폴 나는 예쁜 책을 읽었다. 작가가 그리고 쓴 이 책은 한 면은 그림으로, 한 면은 짧은 글로 되어있다. 그림만 보아도 마음이 환해지고 풍성해지는데, 그 옆에 쓰인 조심조심 소심하게 써내려간 짧은 글들을 읽다보면 가볍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늘 꽃집 유리를 통해 보았던 꽃들이 한가득이다. 이제 그냥 '꽃'이 아니라 그 이름을 불러줄 수 있을 것 같다. 옥시, 스토크, 헬레보루스... 이렇게 말이다. 이름을 아는 꽃들은 그대로 반갑고, 이름을 모르고 얼굴만 알았던 꽃들은 또 그래서 반가웠다. 굳이 김춘수의 詩를 들먹일 것도 없이 '이름'을 알고 부른다는건 참 기분좋은 일이 아닌지. 각각의 꽃들에 대한 작가의 감상적인 글들과 뒤편에 붙어 있는 꽃에 대한 정보(꽃말, 쓰임새, 돌보는 요령 등등)까지, 꽃이야기가 책 제목처럼 마음이 된다.

양귀비는 그 영롱한 느낌 때문에 빨간 눈물방울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특히 폐허 속에 피었을 때 잘 어울려 보이는 꽃처럼 보였다. 화려한만큼 황폐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꽃, 내게는 그런 꽃이었다. 작가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가보다. "어쩐지 위로가 필요한 날이면 나 대신 눈물 흘려줄 양귀비가 보고 싶어집니다."(27쪽). 뒤쪽 정보를 보니 '덧없음'이라는 꽃말도 가지고 있었다.

라벤더라면 끝없는 보랏빛 들판이 먼저 떠오르고, 그래서 잘 알고 있는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한송이 한송이는 눈여겨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책속의 그림을 보면서 언제고 라벤더 꽃밭에 가게되면 한송이 한송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어졌다. 그러면 왠지 익숙한 비누향이 나지 않을까.

분꽃은 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시멘트 마당 한쪽 파란 플라스틱 화분에 피어있던 분홍색 꽃들, 까맣고 오돌도돌하던 여문 씨들을 따던 기억. 이 꽃의 영어 이름이 'Four O'clock Folwer'라고 한다. 네시가 되면 피었다가 아침이면 오무라드는 꽃이라고.. 활짝 피었던 분꽃의 기억은 아마도 방과 후 저물녘의 기억이었나보다.

유칼립투스, 작가은 "마음이 지쳤을 때, 생기가 필요할 때는 초록색이 마음을 채워줄 수 있답니다."(39쪽)라는 말로 유칼립투스를 소개하고 있다. 예전에 눈이 피로할 때 보라고 초록색 속표지를 가진 노트가 많이 팔렸던 때가 있었는데, 눈의 피로도 마음의 피로도 풀어주는 초록 유칼립투스 한 단을 지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어진다.

배롱나무를 보면서는 나무에 꽃이 붙은 별난 모양새에 눈이 갔다, 라넌쿨러스를 보면서는 여태 그 꽃을 보고 장미겠거니 생각하고 지나갔던게 문득 미안해지기도 했다. 안개꽃이 Baby's Breath라는 예쁜 영어이름을 가지고 있는줄도 처음 알았다.

예쁜 꽃에 내 마음 한자락 얹어놓고 싶을 때, 슬슬 책장을 넘기며 꽃그림과 눈을 맞추고 그 이름을 한번씩 불러줘야겠다. 그리고 마음이 동하면 가까운 꽃집에 가서 꽃한다발 사게될지도 모르겠다.

멈춰 서서 찔레꽃을 가만히 보다
꽃잎이 하트 모양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꽃잎 한 장에 마음 하나,
다섯 개의 마음이 모여서 하나의 찔레꽃을 피웁니다.
소중히 아끼는 마음 한 장, 궁금한 마음 한 장,
행복한 마음 한 장, 염려하는 마음 한 장,
그리고 그리워하는 마음 한 장.
다섯 개의 마음이 모여 내게도 꽃이 피었습니다.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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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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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소설을 고를 때 나름의 기준이 있을텐데,
나만의 점수표에 따르면 실화에 기반을 둔 작품은 가산점을 얻는다.
<그레이스>는 실제 살인 혐의로 기소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오랜 시간 옥살이를 했던 그레이스 마크스의 이야기에 바탕을 둔 소설이다. 그녀가 불과 열여섯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이 무엇보다 놀라운데, 사실상 열여섯이 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성인'이었다. 아일랜드에서 이미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줄곧 하층 계급으로 살았던 그레이스는 열여섯에 이미 경력있는 하녀였다. 동료하인과 고용주를 죽인 혐의를 받은 그녀는 과연 살인을 사주하고 가담한 살인마였을까? 아니면 단지 살인범에게 이용당하고 누명을 뒤집어 쓴 가련한 희생자였을까?

실존 인물이지만 드라마의 여주인공답게 아름다웠던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여러 기관 단체는 그녀의 무죄를 청원하고,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그녀의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고자 주목한다. 이 소설은 정신과 전문의 사이먼 조던 박사가 그레이스와 상담하면서 그녀의 과거를 위시한 무의식을 찾아가는 여정이 중심 줄거리를 이룬다. 둘 사이의 상담은 평화를 위장한 채 팽팽한 줄다리기처럼 이어지고, 그렇게 소설은 전체적으로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를 오간다.

결국 소설은 그녀의 석방과 행복한 결혼을 짧게 다루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는데 19세기를 다루는 소설에서 쉽게 보여지는 키다리 아저씨의 그림자가 강하게 느껴져서 그다지 좋은 마무리로 생각되진 않았다.

스토리가 궁금증을 자아내긴 했지만 그다지 흡인력이 강한 소설은 아니었다. 살짝살짝 지루하기도 했던.. 그럼에도 그레이스의 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19세기 서구사회의 분위기였다. 자연과학의 약진에 취해 점차 인간의 정신까지도 규명하고 싶었던, 감히 뇌를 가지고 실험을 자행하기까지 했던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그런 가운데 심령술이 유행하고, 최면술의 과학논쟁이 오고가고, 사회는 여전히 비합리적인 일들 투성이였던 시대. 사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합리적인 것을 쫓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비합리적인 것에 현혹당하고 만다. 이런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종종 등장하는 비유나 표현이 마음에 들어 포스트잇을 붙여두었는데, 다 읽고 다시 살펴보니 역시나 요렇게 소설의 주제나 소재와 무관하지만 솔깃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있어 <시녀들>에 이어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을 읽기로 했던 것 같다. <시녀들> 역시도 뭔가 살짝 흡족하지 않았고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었는데도 말이다.

사이먼은 서재로 안내된다. 서재가 어찌나 남의 눈을 의식한듯 전형적인지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지경이다
그녀는 마흔다섯 살쯤 되어 보이고 상당히 존경받는 위치인 게 분명하지만, 레이스와 주름 장식 한 줄이 예쁘면 세 줄은 더 예쁠 거라고 생각하는 시골 사람 특유의 요란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의도했던 것보다 더 따뜻하다. 굽실거리는 먼 친척뻘 조카에게 25센트짜리 동전을 주고 볼을 한 번 꼬집어 준 다음 오페라를 보러 얼른 도망치는, 호탕하고 성의 없는 삼촌의 목소리 같다.

이런 문장들에 나는 낚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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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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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여덟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첫 단편의 제목은 '모르는 사람', 단편집의 제목은 <모르는 사람들>. 결국 모든 단편들이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불과 몇 쪽을 넘기기도 전에, '아.. 역시 이승우'라는 생각을 했다. 문장이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한자리를 맴돌며 소용돌이를 만들고, 그렇게 크고 작은 소용돌이가 이어지며 하나의 물줄기로 흐르는 그만의 문장 속으로 나는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에 한마디 반박도 못하고 그대로 설득당했다. '아.. 역시 이승우'다.

작가의 말을 통해 그는 소설을 쓸 때 시대의 간섭이 선명하다고, 소설은 그 간섭에 대한 토로이기에 가장 자율적인 것도 자율적이지 않다고 쓰고 있다.사실 이번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이전보다 '시대의 간섭'을 더 받은 것처럼 느껴졌었다. 수많은 의사소통 도구들이 생기고, 누구라도 말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나의 말은 어쩌면 수많은 간섭으로 헤질대로 헤진, 전혀 자율적이지 않은 것이 아닐까. 작가 이승우의 겸손한 표현들 속에서 '나의 말, 나의 글'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단편들은 그가 전에 비해 한결 아버지 혹은 신(神)과 불완전하나마 어느 정도 화해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버지(신)와 무척이나 대립각을 세웠던 지난 작품들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그런만큼 세상을 향해 더 활짝 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특별히 동남아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룬 단편도 두 편이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야기들이 여전히 각 개인의 삶과 정신적 문제에 깊이 침잠해 들어가고 있었다.

전혀 영향력은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랭킹을 매겨보자면 '모르는 사람'과 '신의 말을 듣다'를 베스트로 꼽고싶다.

끝으로 그의 소용돌이치는 문장들을 옮겨적어 본다.

어떤 이야기는 자주 말해지고, 어떤 이야기는 덜 말해지거나 전혀 말해지지 않기도 한다. 자주 말해졌는데도 말해지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야기가 있고 전혀 말해지지 않았는데도 자주 말해진 것으로 간주되는 이야기가 있다.
'복숭아 향기' 중에서
반가움이 아니라 무서움이었다는 그때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갑자기 맞닥뜨린 친숙함이 가장 무섭다는 말을 했다. 친숙한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들러붙은가 뒤통수를 때리든가 간섭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또 실제로 간섭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는데, 그 말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윔블던 김태호' 중에서
궁금한 것이 모두 물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음은 때때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감당할 것을 요구한다. 어떤 물음들은 그런 자신감 내지 책임감 없이는 물어질 수 없다. 궁금함에도 불구하고 묻지 앟거나 궁금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묻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떤 궁금한 것들은 물어야 하지만 묻기가 어렵기 때문에 묻지 않고, 어떤 궁금하지 않은 것들은 묻지 않아도 되지만 묻기가 쉽기 때문에 물어진다.
'찰스' 중에서
이 사람이 한 말이나 저 사람이 한 말에 내용의 차이가 없으면 굳이 이 사람이 이 말을 했고 저 사람이 저 말을 했다고 구별해서 새길 이유가 없다. 우리는 하나다, 라는 안도가 이 상황이 제공하는 혜택인데, 실상 그것은 나는 고유하지 않다,의 다른 말이고, 나는 실체가 없다,를 덮는 말이고, 그러니까 허위다.
'신의 말을 듣다' 중에서
안경을 오래 쓰다보면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게 되고, 안경이 몸의 일부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받아들이기까지가 언제나 어렵다. 안경이 몸의 일부라는 것은 실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정한 하루' 중에서
계획대로 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의 일과가 단조롭과 규칙적이기 때문이다. 단조롭고 규칙적이기 위해서는 외부와 접촉하지 않거나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그의 삶이 그랬다. 그가 외부에 거의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도 그를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중략) 습관적이거나 규칙적이다. 장필수씨는 자기가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는지 규칙적으로 그렇게 하는지 단정해서 말하지 못한다.
'안정한 하루' 중에서

덧. 습관적이거나, 규칙적이거나, 혹자는 이를 '리츄얼'이라 부르던데... 같은 행동도 이름표를 붙이는데 따라 다른 뉘앙스를 주는건 분명하다. 이름표를 붙이는 일에는 당연히도 의식적인 판단이 들어갈텐데, '안정한 하루' 속의 장필수씨는 이제 더이상 그런 판단조차 내리고 싶지 않은가보다. 그러니 습관적인지 규칙적인지 스스로의 행동을 단어로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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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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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가 대통령 문재인에게 추천한 책이라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관심을 갖게 된 책이다. 마침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고는 냉큼 집어와서 읽게 되었다. 1993년 1월 자신의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친부모를 살해한 장클로드 로망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팩션 소설이다. 김영하는 이 책을 추천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가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에요. 선량한 사람이고 남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분인 것 같아요. 하지만 대통령은 악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누구나 선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리더라면 악이 무엇인가, 인간의 악함, 나쁜 것들을 어떻게 적절히 제어하느냐도 중요해요. 지도자라면 악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해요.

모두들 그를 세계 보건 기구에 근무하는 연구 의사로 알고 있었지만, 그는 의사가 아니었고 심지어 의대를 졸업하지도 못했다. 모든 것의 시작은 거짓말 한마디였고, 이후 모든 현실은 거짓 위에 세워졌고, 결국 모든 현실이 허물어지는건 다만 시간문제였다. 그는 오직 타인의 행복과 평화를 지켜주고 싶어서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제목인 <적>은 성서에서 사탄, 즉 악마를 뜻하는 것이고 그 근본적인 의미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한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던만큼 이 사건과 범인 장클로드 로망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매체너덜너덜해질만큼 파헤쳐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이 이야기를 글로 써내고자 했던 것은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고 가짜의 삶을 영위하던 그 오랜 세월 동안 살인자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생각들을 알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적'은 장클로드 로망이 아니라, 그가 평생 '적'과 대면하고 있었다고 작가는 느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1인칭 화자가 되어 사건을 파헤쳐 가는 과정과 작가 자신이 그가 살아왔던 모든 장소들을 되밟아 가며 살인자의 과거를 재구성하기도 하면서 펼쳐진다. 이는 객관적인 시각 이상을 보여주면서, 어찌보면 범죄자에 대한 편들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끔찍한 범죄자이지만 동시에 알수없는 '악' 혹은 '적'과 끊임없이 대결해야했던 힘없는 한 희생양의 이야기로 말이다.

부모님은 제 말을 들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을 거고, 플로랑스(그의 아내)도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전 말을 할 줄 몰랐습니다. ... 그리고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톱니바퀴에 빠져 들자 한번의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렇게 해서 일평생 거짓말의 악순환에 빠져 들어...

사실 거짓말을 한번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는 걸 적어도 한번 이상의 체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불쑥 첫 거짓말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느껴지는 그 난감함과 아득함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용기'라는 걸 알 것이다. 그 일그램의 용기조차 없을 때 결국 거짓의 톱니에 삼켜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전에 읽었던 <립반윙클의 신부> 속 여주인공이 떠오르기도 했다. 자신의 거짓말에 서서히 삼켜지는 모습에 화가 나고 답답했지만 한편으론 공감하기도 했었는데...

그의 삶은 더는 연기할 수 없는 바로 그날을 기다리며 흘러갔다. 수백번도 더 그 지점에 도달했고, 수백 번도 더 어떤 기적이나 우연이 그 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종말이 어떤 모습일지 의심하지 않은 채, 도대체 언제까지 운명이 사태의 진행을 연기시키는지 정말로 알고 싶어 했다.

순간 순간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삶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아직 껍질은 멀쩡해보이지만 가장 깊은 속씨앗부터 썩어가고 있는 열매와도 같은 삶. 거짓으로 가득 채워져가는 그런 삶에서, 언젠가 껍질에 까지 이르게 될 부패만이 유일한 진실일 것이다.

선고내용을 보면 "장클로드 로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2년 동안은 가석방의 기회가 없다는 단서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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