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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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가 대통령 문재인에게 추천한 책이라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관심을 갖게 된 책이다. 마침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고는 냉큼 집어와서 읽게 되었다. 1993년 1월 자신의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친부모를 살해한 장클로드 로망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팩션 소설이다. 김영하는 이 책을 추천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가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에요. 선량한 사람이고 남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분인 것 같아요. 하지만 대통령은 악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누구나 선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리더라면 악이 무엇인가, 인간의 악함, 나쁜 것들을 어떻게 적절히 제어하느냐도 중요해요. 지도자라면 악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해요.

모두들 그를 세계 보건 기구에 근무하는 연구 의사로 알고 있었지만, 그는 의사가 아니었고 심지어 의대를 졸업하지도 못했다. 모든 것의 시작은 거짓말 한마디였고, 이후 모든 현실은 거짓 위에 세워졌고, 결국 모든 현실이 허물어지는건 다만 시간문제였다. 그는 오직 타인의 행복과 평화를 지켜주고 싶어서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제목인 <적>은 성서에서 사탄, 즉 악마를 뜻하는 것이고 그 근본적인 의미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한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던만큼 이 사건과 범인 장클로드 로망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매체너덜너덜해질만큼 파헤쳐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이 이야기를 글로 써내고자 했던 것은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고 가짜의 삶을 영위하던 그 오랜 세월 동안 살인자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생각들을 알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적'은 장클로드 로망이 아니라, 그가 평생 '적'과 대면하고 있었다고 작가는 느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1인칭 화자가 되어 사건을 파헤쳐 가는 과정과 작가 자신이 그가 살아왔던 모든 장소들을 되밟아 가며 살인자의 과거를 재구성하기도 하면서 펼쳐진다. 이는 객관적인 시각 이상을 보여주면서, 어찌보면 범죄자에 대한 편들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끔찍한 범죄자이지만 동시에 알수없는 '악' 혹은 '적'과 끊임없이 대결해야했던 힘없는 한 희생양의 이야기로 말이다.

부모님은 제 말을 들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을 거고, 플로랑스(그의 아내)도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전 말을 할 줄 몰랐습니다. ... 그리고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톱니바퀴에 빠져 들자 한번의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렇게 해서 일평생 거짓말의 악순환에 빠져 들어...

사실 거짓말을 한번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는 걸 적어도 한번 이상의 체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불쑥 첫 거짓말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느껴지는 그 난감함과 아득함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용기'라는 걸 알 것이다. 그 일그램의 용기조차 없을 때 결국 거짓의 톱니에 삼켜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전에 읽었던 <립반윙클의 신부> 속 여주인공이 떠오르기도 했다. 자신의 거짓말에 서서히 삼켜지는 모습에 화가 나고 답답했지만 한편으론 공감하기도 했었는데...

그의 삶은 더는 연기할 수 없는 바로 그날을 기다리며 흘러갔다. 수백번도 더 그 지점에 도달했고, 수백 번도 더 어떤 기적이나 우연이 그 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종말이 어떤 모습일지 의심하지 않은 채, 도대체 언제까지 운명이 사태의 진행을 연기시키는지 정말로 알고 싶어 했다.

순간 순간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삶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아직 껍질은 멀쩡해보이지만 가장 깊은 속씨앗부터 썩어가고 있는 열매와도 같은 삶. 거짓으로 가득 채워져가는 그런 삶에서, 언젠가 껍질에 까지 이르게 될 부패만이 유일한 진실일 것이다.

선고내용을 보면 "장클로드 로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2년 동안은 가석방의 기회가 없다는 단서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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