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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7일 완성 손글씨
유제이캘리(정유진) 지음 / 진서원 / 2018년 10월
평점 :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에 대한 가치는 더 높아지는 것 같다. 단순 노동 정도로 여겨졌던 공예들이 '한땀한땀', '장인', '단 하나뿐인' 같은 수식어들로 장식되며 제대로 대접받게 된 경우도 많다. 워드 프로그램들이 자리잡고, 손으로 글씨 쓸 일이 줄어들면서 가치가 없어질 것만 같았던 (실제로 한동안은 글씨는 잘 쓰는 것의 가치가 낮아졌던 것 같은데) 손글씨도 최근들어 새롭게 빛을 발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높아가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혹은 잊으려는 노력이 잠시 흐려졌던, 손글씨에 대한 나의 열등감과 더 예쁘게 써보고 싶다는 열망이 조금씩 다시 강렬해지고 있는 요즈음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씨를 정확히 읽을 수 있으니, 나 역시 내 글씨를 잘 알아볼 수 있으니, '악필'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고 또 봐도 뭔가 불균형하고 유치해보이는 내 글씨. 더 잘 쓸 수는 없을까? 악필교정 학원이나 학습지에 눈길을 주기도 했었는데, 예쁜 글씨를 혼자 연습해 볼 수 있는 책들이 여러권 나온 것을 보고, 이 책을 골라 '독학'으로 예쁜 글씨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책은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책과 부록. 부록은 연습장이어서 반복해서 더 많이 써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론적인 내용 같은 것들이 같이 실린 본 책에도 연습 페이지가 있지만, 기술을 익히는 일에는 연습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별도의 연습장은 필수적이고 유용한 부록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제까지의 글씨 연습책이 예스러운 궁서체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유제이체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이다. sns에스는 제법 유명한 글씨체인 것 같고, 내 눈에도 꽤나 낯익어 보이는 예쁜 서체이다. 직선을 이용한 필체이다보니 궁서체보다는 따라쓰기도 편안했고 시각적으로도 현대적인 감성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작정 따라쓰라는 식이라기 보다는, 글씨 쓰는 자세나 펜을 잡는 방법, 줄맞추기와 띄어쓰는 요령 등 다양한 '이론수업'도 포함되어 있다. 또 글씨와 관련된 여러가지 고민에 대한 실천적인 해결책들도 실려 있다. 예를 들자면, 글씨가 너무 어려보이는게 고민이라면 어떻게 보완해서 좀더 어른스러운 글씨를 쓸 수 있을지와 같은 팁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어드바이스를 해주고 있었다. 또 마지막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좀 더 멋지게 할 수 있을지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단순해서 쉽게 적용해 볼 수 있는 팁을 전해준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정독하고, 7일 동안 따라 쓴다고 해서 며칠 만에 멋진 유제이 서체를 완성할 수 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손에 익히기 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수십년 간 써오던 나의 글씨체를 완전히 바꾸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익숙하게 연습된 한 두개의 자음이나 모음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바꿔간다면, 그리고 꾸준히 연습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내 마음에 드는 나만의 글씨체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며칠 연습한 결과 일단 '이응'의 모양을 조금 바꿀 수 있었다.
처음 글씨를 배울 때처럼, 마음을 가다듬고 바른 자세로 앉아서, 바르게 펜을 쥐고, 한글자 한글자 천천히 써내려가는 시간이 또한 나쁘지 않다. 하루 중에서 작고 반복적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의외로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긴 시간 집중하긴 힘들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잠깐씩이라도, 모음이나 자음 하나씩이라도 자주 연습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본 책을 꽉 채우고, 부록인 연습장까지 꽉 채우고, 부족하다면 저학년용 국어공책을 사서 채워가면서 시나브로 좋아진 내 글씨와 만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