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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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일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는게 분명하다. 그래서 수년 전에 그렇게도 파울로 코엘료의 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연금술사 한 권쯤은 사거나, 읽거나 했었다. 그리고 잠시 한쪽으로 미뤄졌던 그였는데, 이번에 새로운 장편 소설이 출간되었다. 반가운 마음 반, 정체모를 의리 반으로 사게 된 <히피>. 가장 최근에 쓰여졌으면서, 어쩌면 가장 오래 전의 기억을 쓰고 있는 소설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바꿨던 '매직 버스' 여행 이야기, 그 여행에 함께 했던 히피들의 이야기이다. 매직버스는 당시 (1970년 전후) 고작 약 100달러로 삼 주에 걸쳐 수천 킬로미터(암스테르담에서 네팔의 카트만두까지)를 여행할 수 있는 버스의 공식 명칭이다.

인생 자체가 여행이라고도 하고, 우리는 길든 짧든 다양한 여행길을 떠나고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여행은 인생을 바꾸는 책을 만나기만큼 어렵다. 이 소설은 감히 인생을 바꾼 여행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여행' 자체만 말하는 소설은 아니었다. 작가 자신인 파울로와 그와 여행을 떠난 일행들 한 명 한 명이 우리 독자들의 생각을 다양하게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작가 특유의 사유의 결과물들이 쉼없이 읽는 이들을 생각하게 하고 때론 평화롭게 해주었다. 모든 여정과 사유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 나를 돌보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것.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이제 유명한 작가가 되어, 당시 여행의 출발지인 암스테르담에 와있다. 그는 수피가 되려고 버스의 종착지인 네팔까지 가지않고 이스탄불에 머물렀었다. 물론 그는 그 생각을 포기하고 작가가 되었지만 "일 년 가까이 수행했고, 그때의 배움은 그를 평생 따라다닐" 거라고 확신한다. 자신을 평생 따라다닐 만한 '배움'을 얻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일지를 생각해본다.

한 때 그의 책과 스타일에 매혹되었던 독자라면 추억을 떠올리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의 책들보다 좀더 리얼하고 스피디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처음 시작하는 이 작가의 책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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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7일 완성 손글씨
유제이캘리(정유진) 지음 / 진서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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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에 대한 가치는 더 높아지는 것 같다. 단순 노동 정도로 여겨졌던 공예들이 '한땀한땀', '장인', '단 하나뿐인' 같은 수식어들로 장식되며 제대로 대접받게 된 경우도 많다. 워드 프로그램들이 자리잡고, 손으로 글씨 쓸 일이 줄어들면서 가치가 없어질 것만 같았던 (실제로 한동안은 글씨는 잘 쓰는 것의 가치가 낮아졌던 것 같은데) 손글씨도 최근들어 새롭게 빛을 발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높아가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혹은 잊으려는 노력이 잠시 흐려졌던, 손글씨에 대한 나의 열등감과 더 예쁘게 써보고 싶다는 열망이 조금씩 다시 강렬해지고 있는 요즈음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씨를 정확히 읽을 수 있으니, 나 역시 내 글씨를 잘 알아볼 수 있으니, '악필'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고 또 봐도 뭔가 불균형하고 유치해보이는 내 글씨. 더 잘 쓸 수는 없을까? 악필교정 학원이나 학습지에 눈길을 주기도 했었는데, 예쁜 글씨를 혼자 연습해 볼 수 있는 책들이 여러권 나온 것을 보고, 이 책을 골라 '독학'으로 예쁜 글씨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책은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책과 부록. 부록은 연습장이어서 반복해서 더 많이 써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론적인 내용 같은 것들이 같이 실린 본 책에도 연습 페이지가 있지만, 기술을 익히는 일에는 연습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별도의 연습장은 필수적이고 유용한 부록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제까지의 글씨 연습책이 예스러운 궁서체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유제이체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이다. sns에스는 제법 유명한 글씨체인 것 같고, 내 눈에도 꽤나 낯익어 보이는 예쁜 서체이다. 직선을 이용한 필체이다보니 궁서체보다는 따라쓰기도 편안했고 시각적으로도 현대적인 감성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작정 따라쓰라는 식이라기 보다는, 글씨 쓰는 자세나 펜을 잡는 방법, 줄맞추기와 띄어쓰는 요령 등 다양한 '이론수업'도 포함되어 있다. 또 글씨와 관련된 여러가지 고민에 대한 실천적인 해결책들도 실려 있다. 예를 들자면, 글씨가 너무 어려보이는게 고민이라면 어떻게 보완해서 좀더 어른스러운 글씨를 쓸 수 있을지와 같은 팁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어드바이스를 해주고 있었다. 또 마지막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좀 더 멋지게 할 수 있을지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단순해서 쉽게 적용해 볼 수 있는 팁을 전해준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정독하고, 7일 동안 따라 쓴다고 해서 며칠 만에 멋진 유제이 서체를 완성할 수 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손에 익히기 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수십년 간 써오던 나의 글씨체를 완전히 바꾸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익숙하게 연습된 한 두개의 자음이나 모음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바꿔간다면, 그리고 꾸준히 연습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내 마음에 드는 나만의 글씨체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며칠 연습한 결과 일단 '이응'의 모양을 조금 바꿀 수 있었다.

처음 글씨를 배울 때처럼, 마음을 가다듬고 바른 자세로 앉아서, 바르게 펜을 쥐고, 한글자 한글자 천천히 써내려가는 시간이 또한 나쁘지 않다. 하루 중에서 작고 반복적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의외로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긴 시간 집중하긴 힘들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잠깐씩이라도, 모음이나 자음 하나씩이라도 자주 연습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본 책을 꽉 채우고, 부록인 연습장까지 꽉 채우고, 부족하다면 저학년용 국어공책을 사서 채워가면서 시나브로 좋아진 내 글씨와 만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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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 카오스부터 행동경제학까지, 고품격 심리학!
이영직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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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리학에 대한 책들은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하고 매우 그럴듯하지만, 다 읽기도 전에 '그 얘기가 그 얘기'같아서 뭔가 뒤죽박죽 헷갈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한마디로 뷔페 상차림같은 책이었다. 심리학과 관련된 여러 개념들이 각각 독립된 접시에 담겨져 있어서, 심리학 입문자용 백과사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36개의 작은 꼭지들로 나뉘어져 있고, 각 꼭지 안에 다시 몇가지 개념들이 추가로 나오기도 하는데 그 내용은 뒤쪽 찾아보기를 통해 나중에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한번쯤 들어본 개념이라면 다시 확인해보거나, 그 용어가 나오게된 배경 같은 것을 새롭게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낯선 개념들은 당연히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한마디로 '공부가 되는' 책이었는데,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알쓸신잡' 수준의 심리학 공부에 적당할 것 같았다. 책장에 꽂아두고 수시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무엇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서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나아가 사회적, 역사적 현상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예는 심리학적 실험뿐 아니라 신화, 역사적 사건, 위인들에 관한 에피소드, 현재의 시사적 문제 등에서 차용하고 있어서 이야기를 읽어나가듯 읽을 수 있었다.

2.

이 책 앞부분에서는 다양한 심리적 기재를 소개하기에 앞서 우리의 뇌가 '복잡계'라는걸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은 이성과 감정, 양심과 욕심, 유혹과 충동, 개인적인 습관이나 신념, 경험 등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카오스 상황의 많은 구성 요소들이 상호 작용을 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복잡계이므로 어느정도의 '패턴'을 가지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뇌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심리적 특성, 각종 증후군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어느정도 행동을 예측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세 가지 이상의 변수가 작용하는 한, 아주 작은 차이가 엄청난 차이로 발전할 수도 있는만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기란 결국 불가능할 것이다. '공부'와 '책'으로 털릴만큼 인간의 뇌는 허술하지도, 단순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턴을 아는 것이 완전히 무용하지는 않을테고, 끝내 모든걸 알 수없는 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학문이 바로 심리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앗! 뭔가 아무말대잔치가 된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ㅠ

심리학에 대해 공부를 해봤던 사람에게는 너무 쉽고 원론적인 내용들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심리학과 관련된 여러가지 개념들에 대해 확실히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했다.수많은 오류를 저지르고, 다양하고 사소한 것들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의 기저에는 살아남으려는 진화적 본능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개개인은 너무나 약한 존재이니까. 하지만 결국 그런 개개인의 심리적 문제와 선택이 어마어마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도 하다.

3.

이 책 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져 있다. "한 번만 봐도 언떤 사람인지 꿰뚫어 보는 마음의 시력을 가져라!" 책을 다 읽었지만 그런 목표에는 결코 이르지 못했다. 오히려 나의 행동에 대해 더 많이 되돌아보았고, 나를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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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을 만날래요 신데렐라는 뻔뻔하게 말했다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김한나 옮김 / 유노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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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랫만에 자기계발서類를 집어들었다. 무엇보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다. 차례를 살펴보니 첫 장부터 연예 이야기. 정말이지 내게는 필요없는 소재가 아닌가. 지금 있는 세 남자들(남편과 두 아들)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단언코 내 인생에 더이상의 남자는 필요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라는 말에 홀리고 말았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의 공통적인 성격이 바로 뻔뻔함이라고 언제나 생각해왔던 나, 그래서 짜증이 나고, 그래서 드라마는 왠만하면 보지 않는 나. 하지만 어쩌면 '뻔뻔한 여자'는 내게 '신포도'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이 책을 읽고나면 그 포도송이를 딸 수 있을까? 후다닥 읽어볼만한 분량이기도 해서, 다 읽고 후회하더라도 일단 읽어보기로. 시작!

프롤로그

"'염치없고 제멋대로에다 남에게 미움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짜 공주님입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뻔뻔하지 않나요?" (10쪽)
작가는 이렇게 그야말로 정확히 '공주병'의 증세를 요약하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공주병에 걸려서, 공주처럼 사랑받고, 공주처럼 누리면서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대놓고 쓰고있다.

1. "그 여자의 매력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이 장에는 뺄셈 여성과 덧셈 여성이라는 작가만의 분류법이 등장한다. 여러면이 함께 하는 행사에서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받아먹기만 하는 여성은 이른바 '뺄셈 여성'이다. "뺄셈 여성은 남성에게 이것저것 많이 받지만 반대로 남성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니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5쪽)
이 말도 안되는 주장은 중간중간 <미움받을 용기>의 내용과 비슷하게 정리된다. 말하자면 남에게 미움받거나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반면 '덧셈 여성'은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남을 배려하는데, 받는데는 서투르기 때문에 남성이 도망가버린다는 얘기인데... 어째 내게는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역시 뻔뻔해지는 건 내게는 불가능한 미션인걸까.
첫 장의 마지막 꼭지인 '당신이 뺄셈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렇게 시작한다. "뺄셈을 하면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덧셈 여성은 좀처럼 뺄셈을 하지 못할까요?"(39쪽) 그건 계속 oo하면 사랑받는다는 식으로 조건이 딸린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고, 그 조건을 버릴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러니 맨얼굴이 드러날때까지 자신을 두껍게 덕지덕지 싸고있는 껍질을 과감하게 벗어버리라고 조언한다.
얼핏 그럴듯하지만 역시나 납득이 가지않는... 그렇다치고 이왕 시작한 김에 좀더 읽어보자.

2. "당신의 연애가 고달픈 결정적 이유"

죽어라 노력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덧셈 여성과는 달리 뺄셈 여성은 '나니까 그걸로 충분해'라고 생각하기에 아무것도 안하면서도 사랑받는다는 주장이 반복된다. 덧셈 여성이라면, 뭐든지 노력해서 인정받으려는 덧셈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최선을 다할수록 상대는 귀찮아하고 불편해한다고. 그러니 노력하지 말고 뻔뻔해지라고. "최선을 다할수록 상황이 악화됩니다. 노력은 노력을 낳고, 최선은 최선을 낳습니다."(55쪽) 심지어 2장 속 한 꼭지 제목은 이러하다 '남자의 바람기에는 이유가 있다' 이쯤되면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막장 드라마, 아니 막장 책? 아니면 그저 내가 삐딱한 독자인건가?

3. "우리 엄마는 왜 항상 불행해 보일까?"

이제 덧셈 여성의 심리적 근원을 파헤친다. 마음 한구석에서 어릴적 엄마가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 자신때문이라고 스스로를 탓하는 자책감이 '노력형'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엄마께 칭찬받으려 애쓰던 기특한 아이에서 남자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여성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다. 이런... 이건 뭐 백프로 틀린 이야기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대놓고 단정적으로 말할만한 이야기도 아니지 않은가...?

4. "더 이상 상대에게 맞추지 않아도 된다."

대체로 1장에서 3장까지의 내용을 되풀이하며 복습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될 용기를 가지고, 지금 그대로의 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라는 것. 물론 훌륭한 제안이다. 이런 문장은 때로는 마법처럼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한 뻔뻔함이나 민폐 개릭터인 공주병과는 분명 차이가 있음이 분명한데도 이 책에서는 이 두가지가 교묘하게 뒤섞여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어보인다.

5장 "나는 이제부터 뻔뻔해지기로 했다."와 6장 "내 인생의 시나리오는 내가 결정한다." 역시 구성과 문장이 조금씩 바뀐 반복학습의 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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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대를 대할 때 때로는 당당해야 하지만, 때로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자신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때로는 당당하게, 때로는 겸손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늘 남을 의식하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있지만, 뻔뻔한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행운과 행복을 거머쥘 수 있다는건 그저 억지 아닐까? 이런 책을 썼다는 것 자체가 뻔뻔한 일이라고 나는 감히 뻔뻔하게 결론지었다. 물론 이 책의 본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착한 여자 코스프레를 하지말고, 보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라는 좋은 뜻이라고 믿고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심리를 지나치게 단선화함으로써 선동적인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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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시간은 서두르지 않는다 - 안나푸르나 트레킹 이야기
이필형 지음 / 실크로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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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많은 이들에게 이런 단어는 낯익으면서도 먼 이야기로 들린다. 내게도 그저 실현 불가능한 버킷리스트의 한 줄처럼 꿈의 상징일 뿐이다. 그러니 가끔은 전문가가 아닌 '아무나'가 훌쩍 그곳에 다녀온 이야기가 솔깃하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사진과 영상물로 그 곳을 본다고 해도, 단 한 번 그 곳에 서보는 경험과 바꿀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매우 부러운 마음으로, 언젠가 나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을 가져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특별한 山사람이 아닌 저자의 13박 14일, 안나푸르나 산행기를 읽었다.

이아기는 그 산에 가기 전의 준비과정부터 시작된다. 정신적인 준비와 신체적인 준비, 물건의 준비(준비물 체크리스트) 등등. 무엇보다 몸을 단련하며 팀원들끼리 호흡을 맞추어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걷기에도 예절이 있고 요령이 있고, 서로 너무 멀어져서도 안되지만 '내 길'에 집중해야한다는 것. 출발하면서 팀의 리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산은 체력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다. 오르고 싶은 의지가 중요하다. '내'가 오르는 것이다."

트레킹 출발지로 향하면서 저자는 "네팔에 있다는 생각만 해도 매 순간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쓰고 있다. 매 순간 새로운 풍경과 마주서게 되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그 곳으로 떠나는 일'과 '그 곳에 머무는 일'만으로도 정말로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것 같다. 어쩌면 그건 내 안의 다른 나를 발견해가면서 느끼는 감정과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가난해 보이는 집들도 페인트로 야한 멋을 부렸다. 하늘이 맑아서 그런지 허름한 기색은 없어 보였다. 여기서도 햇볕은 강렬하다. 강렬한 빛은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카트만두 외곽에서 본 한장면을 작가는 이렇게 적고있다. 눈(雪)이 어수선한 풍경을 덮어버리는 것처럼,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강렬한 빛을 떠올리며 함께 실린 수수한 사진 한 장을 본다. 빛이 강한만큼 더 선명한 그림자를 거느리고 흙길을 활기차게 걸어가는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자본주의 서사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버린 우리에게 가난과 불행은 한 쌍처럼 생각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어느 틈엔가 잃어버린 것들, 넘치도록 가지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풍요와 정겨움과 구체적 일상 속의 행복같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어지는 산행 이야기 역시 구체적인 등반일기라기보다는 새로운 '배움'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산이라는 존재에게서, 산에 오르는 과정 속에서, 함께 오르는 사람들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도 배운다.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또한 죽음에 대해서.

이곳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갖는 마지막 생각이 그 다음 환생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힌두교 경전은 '인간은 육신을 버릴 때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다음의 삶을 얻는다. 그가 몰두해 있는 그 상태를 그는 얻게 된다'고 가르친다.

뭔가 생각이 많아지는 문장이었다.

당연히 구체적인 산행 지도와 필요한 정보들도 있었고, 더불어 그들 문화에 대한 소개와 정보도 꼼꼼하고 다양하게 실려 있어서 네팔에 대한 소소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살아가는 날들 가운데 13일은 작은 날들'이지만 '그렇게 13일을 보낸 뒤 나는 안나푸르나를 말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내 속에 새겨진 안나푸르나는 누구 것도 아닌 나 자신만의 안나푸르나가 되었다'고 쓰고 있다. 나는 나만의 안나푸르나를 영영 갖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나만의 어딘가를 갖고 있고 또 새롭게 갖게될 것이 분명하다. 내가 말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곳이 많아지는만큼 나 역시도 더 많이 배우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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