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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냥 마음이 답답해져서 잠깐씩 읽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게되는 책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성실한 남자, 스토너의 한 생애를 따라가기가 그리도 힘겨운 건 아마도 행운이나 반전과 같은 어떠한 장치도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우리의 生과 너무도 딱 닿아있고, 닮아있기 때문일까.
읽는 내내 마음이 울컥하고 안타까운건 오히려 독자들이다. 우리의 주인공 스토너가 담담하고 묵묵하게 인생의 길을 견디며 걸어가는 모습은 오히려 독자를 위로하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이 끝까지 애정할 수 있는 공부의 울타리 안에서 생을 보낼 수 있었기에 그의 삶이 그리 불행하진 않다고, 그는 행복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온 마음으로 학문을 사랑했고, 자신이 쓴 책을 만지며 죽었으니... 비록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는 삶이 그리 빛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스스로 그다지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지 못했었다고 해도 끝내 열정을 바칠만한 대상이 있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는 행운아였을지도 모르겠다. 책표지의 그림이 그런 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참 잘 드러냈다는 생각이 든다.
간단히 줄거리를 정리해보면,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일을 돕고, 공부도 그저 조금 쉬운 의무(노동) 정도로 생각하며 지낸 어린 시절을 보낸 스토너. 이미 17살에 중노동으로 몸이 휘어버릴 정도였다. 대학에서 농업을 공부해 집으로 돌아오려던 그는 먼 친척의 집에서 목장일을 도우며 역시나 노동과 학업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문학의 세계에 빠져든 그는 부모 모르게 전공을 바꾸고 영문학을 공부한 뒤 모교의 대학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고, 정년 즈음에 생을 마친다. 끝? 끝이다.
생활을 위한 노동만이 중요했던 성장기가 지낸 그, 그는 문학 교수로부터 장래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방에 틀어박혀 처음으로 자신에게 집중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내면을 성찰하는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찾아 헤매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살짝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자신에게 내놓을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 내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 또한 거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졸업 후 강의를 맡고, 독립을 한 후 그녀를 만난다. 너무도 섬세하고 우아히게 움직이는 날씬한 그녀 앞에서 그는 "자신이 정말로 서투른 인간임을 절감"한다. 그리고 결혼, 하지만 그는 한 달도 안 돼서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닫는다. 어쨋든 큰 빛을 안고 제대로된 집을 얻고, 직접 헌가구를 수리해 자기만의 서재를 꾸미면서 조금쯤은 행복이라는걸 느끼는 스토너. 그는 가르치는 일에도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가고 자신의 책을 출판하는 등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가지만 세상사에 요령부득인 그는 결국 동료 교수와 불화하면서 대학 내에서 어려운 입지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마흔두 살인 그의 앞날에는 즐겁게 여길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다오 굳이 기억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즈음 그는 젊은 대학원생과 애정과 교감을 나누며 "자신은 타인에게 진정한 친밀감이나 신뢰나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최종적인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감정을 배우게 되지만 결국 그 만남은 아픈 헤어짐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젊음이나 나이와 상관이 없고 현실과도 유리된, 호기심 많은 학자의 열정으로 그는 아직까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은 유일한 삶으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아픈 몸으로 퇴직을 한 그는 거의 유일한 친구인 고든 핀치에게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생겨도 난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를 걸세.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생을 마친다.
특별히 가장 안타까웠던건 딸과의 관계였다. 서재 구석 작은 책상에서 책을 읽던, 어리지만 지성이 반짝이던 그레이스는 어느날 갑자기 아빠와 단절당한채 엄마의 욕구에 맞춰 키워진다. "스토너는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며 슬픔을 느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만을 보여주었다. 죄책감이라는 편안한 사치품을 자신에게 허락할 수는 없었다. 타고난 본성과 이디스와의 생활이라는 조검을 감안할 때, 지금까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깨달음이 죄책감보다 훨씬 더 슬픔을 부추겼고, 딸에 대한 사랑은 더운 깊어졌다." 그리고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딸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그의 모습은 정말이지 마음이 아팠다. 왜? 좀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방어하고 딸과의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을까? 딸이 그만큼 소중했다면 자신의 본성에 어긋나거나 넘어서는 행동을 시도해봤어야하는건 아니었을까? 아... 하지만 타고난 성격과 과거의 삶을 극복한다는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책을 읽기에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답고, 또한 매우 쉽다. (선데이 타임즈 리뷰 중에서)
(85쪽)
아직 제대로 출세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이, 그도 유난해 허영심이 강했으며 자신이 아주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는 스토너가 처음 장인을 만나는 장면에서 나오는 글이다. 남자들의 허세에 대한 매우 공감할만한 문장이었다.
(127쪽)
관이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 울어준 사람은 바로 스토너였다. 이제 완전히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망자의 고독이 그 울음으로 조금 덜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가 운 것이 자신 때문인지, 슬론과 함께 보낸 젊은 시절이 함께 땅속에 묻히고 있기 때문인지, 그가 사랑했던 저 마르고 가엾은 사람 때문인지는 스토너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우리가 다른 이의 죽음 앞에서 우는 데에는 정말 복잡한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
(252쪽)
그는 보잘것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無로 돌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자신의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 하는 의문을 가진 스토너
(293쪽)
스토너는 빙긋 웃었다. "옛날에 데이브 매스터스가 말하기를, 자네는 개자식이 덜돼서 진짜로 출세하기 힘들 거라고 했지."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핀치가 말해따. "하지만 내가 이미 개자식이 됐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아."
(387쪽)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중략)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죽음을 앞두고 삶을 돌아보는 스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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