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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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가 후기에서 이 책이 번역된 것은 빨간책방에 소개된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 덕분이라고 적고 있다. 나 역시도 그의 중편 '환상의 빛'을 읽고 그의 다른 작품을 기다렸었다.


금수錦繡  1. 수를 놓은 작품.  2. 아름다운 직물이나 화려한 의복.  3. 아름다운 단풍이나 꽃을 비유하는 말.  4. 시문, 훌륭한 문장을 비유하는 말.


재혼하여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는 아키는 아들에게 별을 보여주려고 탔던 케이블카 안에서 우연히 10년전 이혼한 남편과 마주친다. 그리고 이후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녀는 제대로 아물지 못한채 그녀 속에 고여있던 아리마(전남편)와의 시간을 정리하게 된다. 그 역시 과거 사건 속 시간 이래 멋대로 내버려두며 전락해가는 자기자신을 꼿꼿이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둘은 모호했던 과거 속 사건과 감정을 정확히 다시 보고, 자리매김해 줌으로써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마음에 품은 채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스물다섯이었던 저는 그때 아무리 해도 고운 마음으로 관용을 베풀 수 없었고, 스물일곱이엇던 당신은 자신을 더 이상 비굴하게 할 수 없었겠지요." 이렇게 그들은 결혼 2년만에, 여전히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이혼하게 된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서야 그 때의 사건에 대해 그녀는 제대로 알고싶고, 따져물을 용기도 생겨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역시 담담히 그당시와 이후의 전락에 대해 이야기해 나간다.


그 둘은 편지에서 더이상 감정을 포장하거나 슬쩍 숨기려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이혼 후 되풀이햇던 생각들을 적어나간다. "세상 사람들의 눈이 뭐란 말인가. 산산조각이 난 항아리면 또 어떻다는 말인가. 내가 좀 더 큰 사람이었으면 좋았을걸. 그러면 당신을 용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를 얼마나 증오했는지를 말이다.


이렇게 편지 주고받기를 끝내고 이제 그들은 평화롭다. 휴화산처럼 언제나 깊은 곳에서 들끓던 감정의 불꽃들은 이제 따뜻한 온기만으로 남아있다. 옮긴이는 이 소설이 '이키가 아리마의 공백을 채워나가는 과정이자 사랑을 추억의 자리로 돌리는 과정을 담고있다'고 쓰고있다. 모르기때문에 끝내 지우지 못하고 담아두었던 과거와 그에 대한 애증이 끝나고, 더불어 사랑에 대한 미련과 환상도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든다.


끝까지 수수께끼를 안고 갔기에 아름다웠던 '환상의 빛', 수수께끼가 풀리고 환상이 현실 속으로 들어왔지만, 이제 과거를 벗고 힘겹지만 앞으로 나아갈 두 남녀의 이야기 '금수'도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공간 중 하나인 까페 '모짜르트'덕분에 오랫만에 클래식 CD로 모짜르트의 음악을 틀었다. 한동안 모짜르트의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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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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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 모두이니까.


한 노인이 본인의 장례식을 바라다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은 광고회사에 근무하며 세번의 결혼과 세번의 이혼을 거쳐 은퇴 후 혼자 생활하던 노인이다.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이도 있었고 자신을 사랑했던 이도 있었지만 결국 홀로 수술침대 위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죽음'을 의식하는 삶을 살았다. 9살때 탈장수술을 받고 옆침대 소년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로 말이다. 젊은 날 충수염 수술을 받았고, 이후 "병이라는 역경과 잠복해 기댜리는 불행을 면제받은 이십이 년"을 보낸 후 심장수술, 모두에게 가까이 있는 죽음을 상기시킨 9.11사태, 이후 거듭되는 심장수술을 겪으면서 그는 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일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되었다. 이제 한 해도 입원없이 지나가지 않았다. (중략) 이제 죽음을 피하는 것이 그의 삶에서 중심적인 일이 되었고 육체의 쇠퇴가 그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렇게 죽음과 투쟁하듯 사는 그에게는 건강한 형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시들지 않는 육체를 가진 형이다. 늘 그를 염려하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마음이 있는 형.


하지만 "건강한 몸을 타고난 형에 대한 미움. 스스로도 정당하다고 느끼진 않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는 형에게 미워하고 질투하는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는 "갑자기 그는 원시적으로, 본능적으로 형을 견딜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형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홀로 죽은 순간까지도.


특별히 멋지거나, 칭찬할만한 구석이 없는 주인공, 그는 그냥 에브리맨이다.

그렇기에 한때의 욕정을 다스리지 못해 소중한 사람을 잃고, 부당한 감정인 줄 알면서도 형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그의 모습이 우리에겐 그리 낯설지 않다.


한 때자신의 존재를 즐기고 맛볼수 있는 시절, 삶이 팽창하던 시절, 신체의 완벽함이 당연하던 시절을 거쳐 에브리맨은 늙음을 지나 죽음으로 나아간다. 더이상 그림을 그리는 일도, 가장 즐거웠던 젊은 날을 떠올리는 일도, 회한어린 심경으로 과거를 떠올리는 일도, 책을 읽는 일도 공허하게 느껴지고, 이웃과 어울리는 일도 견디기 힘들어진 은퇴 후의 삶.


 "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그것은 정지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이제 그는 없다.


"...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 빠졌다는 점이었다."


늘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삶, 죽음이란 화두가 머리에서 맴도는 삶이야말로 생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삶이 아닐까? 죽음은 병이나 주위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확인시키는 방법으로 생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 대결에 쉽게 말려들어버리고 만다, 쉽게 죽음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살아있는 한 '살아있음'만을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는 죽음에게 실패를 안겨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살아있으니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내 육신에 대한 집착도 덜어내려고 애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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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는 용기 - 온전히 나로부터 시작하는 삶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박재영 옮김 / 유노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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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에서 느껴지는 感으로는... 자기계발서? 혹은 심리학 관련?

사실 이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저자의 약력을 통해 이 책의 정체를 엿본다면 심리학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인 고코로야 진노스케는 심리 상담사로, '성격은 바뀔 수 있다'는 모토로 수많은 사람들의 성격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유명해서 '성격 리폼 카운슬러'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성격개조라니...? 뭔가 수상쩍으면서도 호기심이 동한다. 가끔은 이런 책을 통해 추락하는 자존감에 대한 원인 치료까지는 아니어도 효과적인 대증요법 치료를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이유'나 '조건'에 따른 자신감을 가장 경계하는데, 이런 자신감은 이유나 조건이 사라지면 잃을 수 밖에 없으니 '꺽이지 않는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믿으라는 것, 실패하고, 잘못하고, 저평가받고, 미움을 사는 나. 그런 나까지 믿는 용기에 대해 그는 이 책에서 내내 이야기한다.


본문은 여섯개의 '꺽이지 않는 자신감을 만드는 마음 혁명'을 한 장에 한가지씩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각각이 단 한문장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결국 여섯가지 모두가 하나도 수렴된다. 제목처럼 나를 믿고 사랑할 용기를 가지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례가 직장생활 중심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간의 관계나 자신의 상황에 빗대어 생각할 수 있을만한 것들이고, 글이 짧고 명확하여 쉽고 빠르게 읽힌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내려가다가 '아, 이건 정말 그래.'라는가 '어라? 내 얘기네!' 하는 부분에서 잠시 읽기를 멈추고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문장 내용을 되새겨보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대부분 금방 잊히기도 하겠지만 한두가지라도 마음에 새길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자신감을 채울 수 있다면 충분할것 같다.


슬쩍 소제목만 본다면 분명 조금 무책임하고 터무니없이 들릴 수 있는 것들도 있기는 하다. 그리고 생각을 바꿔서 자신을 바꿀수 있다는 얘기인데, 먼저 다른 내가 되어야 생각을 바꿀수 있는거 아닌가..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읽어가기보다는 아주 조금쯤이라도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써보고, 비교하는 습관이 불쑥 튀어나오려 할 때 한번쯤 이 책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애 책이 알려주는 대로 마인드 콘트롤을 해보는거다. 나는 훌륭해, 가치가 있어. 나는 내가 좋아. 이렇게 중얼거리며 주문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테지.


책을 마치면서 그는 이렇게 권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불가능한 일, 다른 사람이 말하거나 결정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느낀 일을 해보기 바랍니다. 해보면 세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205쪽) 책 한 권 분량의 세뇌를 착실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물론 번지점프대에서 몸을 던지고 싶진 않다. 세상에나.. 그건 불가능하다고!

"어떤 사건을 보고 `문제야...`하고 생각할 때부터 그 일은 그렇게 생각한 사람의 문제가 됩니다."

"거절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절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거절할 수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거절할 용기가 없으면 하고 싶지 않은 일에 계속 힘을 쏟아야 하고, 허드렛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거나..."

"진짜 고민을 깨닫고 싶지 않아서 다른 고민을 교묘하게 준비합니다. 고민을 깨닫는다는 말은 무능력한 나를 깨닫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진짜 고민을 아는 것이 두려워서 일부러 다른 고민을 준비하고 무능력한 자신을 깨닫는 고통에 대해 얼버무립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실제로 자기 진심을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평소에는 억누르고 있지만 마음 속으로 늘 간직해 온 자신의 바람을 실현하는 사람을 우연히 목격하면 부럽고, 자기도 모르게 험담과 비판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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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담은 사찰 밥상 - 24가지 사찰음식 이야기와 간편 레시피
이경애 글.사진 / 아름다운인연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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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북촌 생활사 박물관장인 저자가 수년에 걸쳐 잡지 '불교문화'에 여내했던 글과 사진, 사찰음식 레시피를 모아 만든 사찰의 밥상이야기 책이다. 저자는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는 자명한 이치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며 사찰음식에 대한 가벼운 예찬을 들어가는 글에 써넣고, 그러한 사찰음식을 세간에 전하는 기쁨이 크다고 한다. 본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여러가지 꽤나 심각한 돌발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사찰 밥상을 찾아다닌 저자의 뚝심이 느껴지고, 이러한 예찬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어느새 속인 공양주에게 부엌살림을 내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맛을 먼저 권하는 음식문화가 사찰에까지 들어앉고 보니 제대로된 옛맛을 찾기에 많은 품이 들어갈만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님들의 정갈함과 지혜로운 전통이 깃든 소박한 사찰음식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본문은 네 개의 장, 총 스물네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스물네개의 절 이름과 음식 이름들을 읽어내려가기만 해도 청정함이 느껴진다. 투박하면서 정감어린, 혹은 낯선 음식들.. 상추불뚝이, 느티나무잎 향내가 난다는 느티떡, 빳대기죽과 감태장아찌 등등.


사실 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음식을 일일이 따라 만들어보는건 내게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쪼로로 쫓아가 낼름 얻어먹거나 돈만 내면 사먹을 수 있는 음식들도 아니다. 그저 음식들의 사진을 보고, 공양간을 엿보고, 스님들의 지나간 이야기와 수행 이야기와 식재료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불러온다. 재료도 조리법도 단순하지만 공들인 손맛과 기다린 시간의 맛이 스미고 스민 그 맛을 각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찰 음식 중에는 세간에서는 거의 버려지는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들이 제법 많다는 점이 각별하게 느껴졌다. 가을 수확기에 뒤늦게 생겨나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버려져 있는 들깨의 초록 송아리를 거두어 만드는 들깨송아리 부각, 쓴맛이 지나쳐 쌈으로 먹기에 거북스러운 상추의 고갱이 부분으로 만드는 상추 불뚝이 물김치같은 음식들에 대한 소개를 읽으며 검약함을 지혜롭게 실천하는 스님들의 생활을 엿볼수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사찰음식 배우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여러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면서 소위 스타급 스님들과 음식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들도 여러 권 나와있다. 그런데 이 책은 집에서 따라 만들어 볼 생각으로 집어들만한, 말하자면 '요리책'은 아니다. 지금은 재료조차 낯설고, 너무 소박하거나 지나치게 손품이 들어가는 요리들이 실려있어 그야말로 이래저래 엄두가 나지않는 요리들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그냥 마음 편안히 앉아서 저자가 발품들여 찾아낸 낯선듯 낯설지 않은 옛 요리를 만나고, 옛 절집 공양간을 들여다보고, 옛시절 먹거리를 위한 스님들의 울력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책이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눈 덮인 고요한 산사에서 정갈한 사찰 밥상과 마주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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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 2015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작품 수록
한강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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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단편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종종 읽곤 하는데, 무엇보다 지금 우리 옆에서 글을 쓰고있는 한국 작가들의 글을 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에 대해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내게 맞는 작가, 내 눈높이에 멋져보이는 글을 쓰는 작가를 나름대로 꼽아보는 재미도 있다. 2016년을 맞아 읽은 책은 제 1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 <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이다. 작가 한강의 작품은 사실 처음이다. 늘 읽어봐야지.. 벼르던 작가였다. <희랍어 시간>과 <소년이 온다>를 미뤄두고 결국 단편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최종심에 오른 작가들 중 김애란과 황정은의 단편들은 늘 좋았던 기억이 있어 모든 작품들에 기대감이 컸다.


굳이 세월호를 끌어들일 것도 없이, 우리 주변에는 늘 터무니없는 폭력과 죽음이 널려있다. 심상해보이는 건조한 한 줄의 기사, 한 장의 보도사진 뒤에 얼마나 많은 사연과 눈물이 깃들어 있을지, 그 뒤에 남겨진 이들의 머리와 가슴은 얼마나 호되게 멍들어 있을지. 과연 상상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심사평에서 심진경 평론가는 "이번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한강과 권여선, 조혜진의 소설은 모두 (중략) 죽음과 고통, 죄의식 등과 같은 문제를 그들 고유의 문학적, 윤리적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세 작품 모두 일인칭 '나'가 친지와 직장 선배의 죽음 직전 혹은 직후에 관한 관찰적 증언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표제작이자 수상작인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에서는 부당해고, 출근투쟁, 천막농성이 소재이면서도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결은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이에 맞서는 사람들의 다양한 입장, 윤리의 문제와 남겨진 이의 마음 속 균열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리움이나 추억이라 불리기에도 애매한 기억들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구원의 가능성을 또한 이야기 한다. 話者인 그녀에게 평화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아니요, 불가능해요. 이 세상에서 평화로워진다는 건.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죽고.

나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뒤척이고 악몽을 꾸고.

내가 입을 다물었는데 누가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이를 악물고 억울하다고 , 억울하다고 말하고.

​간절하다고, 간절하다고 말하고.

​누군가가 어두운 도로에 던져져 피흘리고,

​누군가가 넑이 되어서 소리 없이 문을 밀고 들어오고,

​누군가의 몸이 무너지고, 말이 으스러지고, 비탄의 얼굴이 뭉개어지고.


​권여선의 <이모>는 아들만을 편애하는 어머니 밑에서 가장 역할과 남동생 치닥거리로 내리막의 삶을 견뎌온 시이모가 홀연 잠적했다가 암환자가 되어 2년만에 나타나고, 일주일에 한번씩 그녀를 만나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다.

이모는 내게 말한다. "우리 서로 만나는 동안만은 공평하고 정직해지도록 하자. 나는 네가 글을 쓴다는 것도 좋지만 내 피붙이가 아니라는게 더 좋다. 피붙이라면 완전히 공평하고 정직해지기는 어렵지..."

이모는 또한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타적인 면도 있고 인내심도 강하시지. 중요한 건 무엇을 위한 희생이냐, 무엇에만 배타적으로 이타적이냐, 하는거 아니겠니?"

마침내 가족을 떠나 잠적하는 그녀에게 가족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가해자? 천형?

가족을 떠나 자기만의 우주를 구축했던 짧은 마지막 2년의 삶만이 온전히 그녀의 것이었을까? 외부와 스스로를 끊어내고 오직 책만 읽으며 보내면서도 그녀는 한편으론 끊임없이 과거를 복기하고, 불가해한 장면들을 애써 풀이해보며 지냈다. 현재는 가족과 절연했지만, 과거의 자신과는 끊임없이 만나며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해 뭔가 설명 같은걸 하고 싶었던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뭘까... 나를 살게 한... 그 고약한 게..."

이기호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 매일같이 시위를 시작하면 어떤 마음이 될까. 이 '안타깝지만 성가신' 일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무형의 부채감과 사회적인 것의 함수를 작가 특유의 감각으로 흥미롭게 써내고 있었다.

황정은의 <웃는 남자>에서그는 과거의 아픔을 하나하나 소환하고, 곱씹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거의 반사적으로 이기적이 되어버리는 '그'는 과연 소설 속에만 있는 그일까? 외면하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나를 포함한 '우리' 독자들에게 작가는 묻고있는 것만 같다. 살아있는 자, 살아남은 자로써 떠난 이들을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하는거 아니냐고 묻고있는 것만 같다.

"그때 내 곁에 서있던 노인이 내 쪽으로 쓰러졌고 간발의 차이로 나는 그를 피해 비켜섰다. (중략) 그는 조짐도 없이 기울어지기 시작해서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에 퍽, 하고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다른 차원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버스가 크게 회전했을 때...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있는 힘껏 붙들었지. 그 짧은 순간... 나는 그녀가 아니고 가방을 붙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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