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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이 책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 모두이니까.
한 노인이 본인의 장례식을 바라다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은 광고회사에 근무하며 세번의 결혼과 세번의 이혼을 거쳐 은퇴 후 혼자 생활하던 노인이다.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이도 있었고 자신을 사랑했던 이도 있었지만 결국 홀로 수술침대 위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죽음'을 의식하는 삶을 살았다. 9살때 탈장수술을 받고 옆침대 소년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로 말이다. 젊은 날 충수염 수술을 받았고, 이후 "병이라는 역경과 잠복해 기댜리는 불행을 면제받은 이십이 년"을 보낸 후 심장수술, 모두에게 가까이 있는 죽음을 상기시킨 9.11사태, 이후 거듭되는 심장수술을 겪으면서 그는 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일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되었다. 이제 한 해도 입원없이 지나가지 않았다. (중략) 이제 죽음을 피하는 것이 그의 삶에서 중심적인 일이 되었고 육체의 쇠퇴가 그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렇게 죽음과 투쟁하듯 사는 그에게는 건강한 형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시들지 않는 육체를 가진 형이다. 늘 그를 염려하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마음이 있는 형.
하지만 "건강한 몸을 타고난 형에 대한 미움. 스스로도 정당하다고 느끼진 않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는 형에게 미워하고 질투하는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는 "갑자기 그는 원시적으로, 본능적으로 형을 견딜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형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홀로 죽은 순간까지도.
특별히 멋지거나, 칭찬할만한 구석이 없는 주인공, 그는 그냥 에브리맨이다.
그렇기에 한때의 욕정을 다스리지 못해 소중한 사람을 잃고, 부당한 감정인 줄 알면서도 형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그의 모습이 우리에겐 그리 낯설지 않다.
한 때자신의 존재를 즐기고 맛볼수 있는 시절, 삶이 팽창하던 시절, 신체의 완벽함이 당연하던 시절을 거쳐 에브리맨은 늙음을 지나 죽음으로 나아간다. 더이상 그림을 그리는 일도, 가장 즐거웠던 젊은 날을 떠올리는 일도, 회한어린 심경으로 과거를 떠올리는 일도, 책을 읽는 일도 공허하게 느껴지고, 이웃과 어울리는 일도 견디기 힘들어진 은퇴 후의 삶.
"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그것은 정지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이제 그는 없다.
"...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 빠졌다는 점이었다."
늘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삶, 죽음이란 화두가 머리에서 맴도는 삶이야말로 생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삶이 아닐까? 죽음은 병이나 주위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확인시키는 방법으로 생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 대결에 쉽게 말려들어버리고 만다, 쉽게 죽음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살아있는 한 '살아있음'만을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는 죽음에게 실패를 안겨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살아있으니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내 육신에 대한 집착도 덜어내려고 애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