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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담은 사찰 밥상 - 24가지 사찰음식 이야기와 간편 레시피
이경애 글.사진 / 아름다운인연 / 2015년 9월
평점 :
이 책은 북촌 생활사 박물관장인 저자가 수년에 걸쳐 잡지 '불교문화'에 여내했던 글과 사진, 사찰음식 레시피를 모아 만든 사찰의 밥상이야기 책이다. 저자는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는 자명한 이치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며 사찰음식에 대한 가벼운 예찬을 들어가는 글에 써넣고, 그러한 사찰음식을 세간에 전하는 기쁨이 크다고 한다. 본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여러가지 꽤나 심각한 돌발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사찰 밥상을 찾아다닌 저자의 뚝심이 느껴지고, 이러한 예찬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어느새 속인 공양주에게 부엌살림을 내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맛을 먼저 권하는 음식문화가 사찰에까지 들어앉고 보니 제대로된 옛맛을 찾기에 많은 품이 들어갈만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님들의 정갈함과 지혜로운 전통이 깃든 소박한 사찰음식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본문은 네 개의 장, 총 스물네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스물네개의 절 이름과 음식 이름들을 읽어내려가기만 해도 청정함이 느껴진다. 투박하면서 정감어린, 혹은 낯선 음식들.. 상추불뚝이, 느티나무잎 향내가 난다는 느티떡, 빳대기죽과 감태장아찌 등등.
사실 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음식을 일일이 따라 만들어보는건 내게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쪼로로 쫓아가 낼름 얻어먹거나 돈만 내면 사먹을 수 있는 음식들도 아니다. 그저 음식들의 사진을 보고, 공양간을 엿보고, 스님들의 지나간 이야기와 수행 이야기와 식재료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불러온다. 재료도 조리법도 단순하지만 공들인 손맛과 기다린 시간의 맛이 스미고 스민 그 맛을 각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찰 음식 중에는 세간에서는 거의 버려지는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들이 제법 많다는 점이 각별하게 느껴졌다. 가을 수확기에 뒤늦게 생겨나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버려져 있는 들깨의 초록 송아리를 거두어 만드는 들깨송아리 부각, 쓴맛이 지나쳐 쌈으로 먹기에 거북스러운 상추의 고갱이 부분으로 만드는 상추 불뚝이 물김치같은 음식들에 대한 소개를 읽으며 검약함을 지혜롭게 실천하는 스님들의 생활을 엿볼수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사찰음식 배우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여러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면서 소위 스타급 스님들과 음식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들도 여러 권 나와있다. 그런데 이 책은 집에서 따라 만들어 볼 생각으로 집어들만한, 말하자면 '요리책'은 아니다. 지금은 재료조차 낯설고, 너무 소박하거나 지나치게 손품이 들어가는 요리들이 실려있어 그야말로 이래저래 엄두가 나지않는 요리들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그냥 마음 편안히 앉아서 저자가 발품들여 찾아낸 낯선듯 낯설지 않은 옛 요리를 만나고, 옛 절집 공양간을 들여다보고, 옛시절 먹거리를 위한 스님들의 울력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책이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눈 덮인 고요한 산사에서 정갈한 사찰 밥상과 마주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