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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멀리않은 미래(2022년)를 상정해 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는 과정과 그 이후를 그린
이 소설은 비이슬람교도가 보기에 분명 디스토피아적 소설이다.
하지만 현실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슬람 박애당의 집권과정이 너무나도 있음직할 뿐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더 살만한 세상이 되어버린 집권 이후를 보면 완전한 디스토피아라고도, 완전한 유토피아라고도도 말하기 힘들어 보인다.
결국 정치라는 것의 속성은 어디서든, 어떤 가치 하에서든 권력욕에 뿌리를 두고 그 유지를 위한 수단은 어떻게라도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가장 근간이 되는 사상적 기반(그것이 심지어 종교일지라도)도 권력집단의 이익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어지는 것이 정치인 것 같다. 이슬람 정권 역시도 이슬람에서 취할 것은 취하되, 뭔가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슬며시 밀쳐두지 않았을까?
어쨋거나 제정일치의 사회를 꿈꾸며 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서서히 바꿔가고 무엇보다 교육의 이슬람화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우리네 정치 현실이 자연스레 끼어들며 불쑥불쑥 분노하게 되는걸 보면 정치에 대한 무기력함은 비단 이슬람 정권 하에서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이 소설의 또하나의 축은 주인공 교수의 이야기이다. 매우 시니컬하고 똑똑하며 스스로 그것을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는 교수 프랑수아. 그는 뛰어난 학생에서 조교수를 거쳐 정교수가 되었지만 자신이라는 존재를 무난히 감당해내지 못한다. 젊은 여성들과의 관계가 거의 유일한 삶의 이유처럼 보일 정도이다.
"사실 내겐 즐거움의 원천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이 쾌락 외에 다른 즐거움은 없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지적인 삶에 대한 나의 관심은 현저히 감소했다. 사회적 삶도 육체적 삶 못지않게 거의 만족스럽지 않았다."
선거 후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거부하여 교수직을 잃은 그는 자신의 연구 대상인 작가 위스망스를 떠올린다.
"나는 다시 한 번 위스망스를, 개종에 따른 그의 고통과 의심을, 예식에 동화되고자 했던 그의 필사적인 염원을 떠올렸다."
이후 과거의 학문적 성과를 축으로 다시 주류사회와의 접점이 생긴 그가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결심하고 교수직을 수락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개종 결심의 결정적 동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돈, 여자, 사회적 인정 등등 그 모두였을 것이다. 어쨋거나 그의 분신처럼 보이는 위스망스 역시도 끝내 희구했던 것은 소시민적 행복이었고, 개종으로 인해 막대한 희생을 치르지는 않았다.
제한된 자유와 복종이 가져다주는 안정을 구가하고 싶은 마음,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가와는 별개로 현재를 사는 '나의 고통'에 현저히 민감한 우리에게 우엘벡은 소설 <복종>울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걸까...
"내가 죽고 난 뒤, 홍수가 난들 무슨 상관이랴." 루이 15세가 했다고도 하고, 그의 정부인 퐁파두르 부인이 했다고도 전해지는 이 말이 문득 떠올랐다.(87쪽)
우엘벡은 이렇게 덧붙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살아있더라도 내가 노아의 방주에 타고 있다면, 홍수가 난들 무슨 상관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