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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8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읽지도 않고 읽은 셈 치는게 고전이라면 <인형의 집>은 내게 확실히 그런 책이었다.
그거, 노라가 집나간 얘기잖아... 정도로 지나쳐버렸던 책이다.
그리고 이번에 제대로 읽어보니 역시 '노라가 집나간 얘기'다. 하지만 줄거리 요약만으로 그 책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남편은 그녀를 종달새라 부른다. 사랑을 듬뿍 준다. 유지비가 많이 든다며 투덜대면서도 어여쁜 그녀는 그의 자랑이다. 그리고 곧 은행 총재로 취임하게되는 능력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소유물로 생각할 뿐이다. 지극히 가부장적이다.
그렇기에 얼핏 철없고 사랑받는 낭비꾼으로 보이는 노라는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숨어서 마카롱을 먹어야하고, 기꺼이 즐거운 종달새 코스프레를 해야하고, 게다가 남편의 치료를 위해 몰래 부당하게 빚을 얻은 사실이 곧 탄로나게 생겼으니 좌불안석이다.
일이 곤란하게 되자 "당신은 나의 행복을 모두 부서뜨렸어."라며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던 남편 헬메르는 일이 해결되자마자 시혜자인양 노라를 용서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자기 아내를 용서했다는 걸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건 남자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달콤하고 만족스러운 일이지. 자기 아내를 전심으로, 거짓 없이 용서했다는 것 말이야. 그럼으로써 여자는 두 배로 그의 소유물이 되니까."
이제 노라는 자신의 결혼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이 남편에게 단지 노리갯감이었다는 것, 눈꼽만큼도 가치있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가장 마음 조였던 외적인 문제(차용증서)가 해결되었지만 결혼 8년만에 처음으로 남편과 제대로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해요."라며 집을 나갈 결심을 전한다. 낯선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면 그의 호의마저도 모두 집에 남겨두고 그곳을 나선다.
그녀가 집을 나서서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알 수 없다. 그 시대에 여자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했을지... 당연히 객관적인 노라의 삶은 더 쪼그라들고 가난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남편에게 "재주를 부리는 것으로 먹고살았던" 그런 가난에서는 해방되었을 것이다. 독립의 외적인 성공 여부를 떠나 그녀는 주체로서의 여성이 되었고, 오늘날 까지도 독립적인 여성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남녀가 평등해졌다고들 말한다. 남성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물론 지엽적으로 그런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입센이 <인형의 집> 언고 앞에 적어두었다는 '오늘날의 비극에 대한 메모'는 현재의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정신적인 법률이 두 가지 존재하고, 양심이 두 가지 존재한다. 남성 안에 한 가지가 있고, 아주 다른 한 가지가 여성 안에 있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여성은 실제적인 삶에서 마치 이들이 여성이 아니고 남성인 듯이 남성의 법으로 판단을 받는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