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물이 고이도록 아름다운 전쟁 이야기, 너무나도 사랑스런 도둑 이야기.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울 책도둑, 9살 소녀 리젤의 이야기이다.

처음으로 훔친 책 <무덤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 한 권과 죽은 남동생에 대한 처참한 기억만을 지닌 채, 2차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독일의 한 작은 도시에 홀로 부려진 리젤.

그럼에도 보살핌의 방식은 다르지만 마음 따뜻한 양부모와 이웃집 소년과 숨어지내는 유대인 권투선수 등과의 부딪힘과 한권씩 보태지는 책과 더불어

소녀는 글을 배우고, 세계를 배우고, 사람을 배워나간다.

전쟁을 관통하며, 한권씩 한권씩 책을 훔쳐가며 성장해나간다.


내가 책을 읽으며 더욱 집중했던 인물은 주인공이 아닌 리젤의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이었다.

자신의 모든 기능과 마음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 음악을 연주할 때면 "태평하면서도 집중을 한" 표정이 되는 사람. 하루하루 폭격의 날이 다가오던 여름을 책도둑 리젤에게 인생 최고의 시간으로 기억하게 만들어준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스 후버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略) 이 사람은 배경에만 머무는 능력을 지녔다. 심지어 줄의 맨 앞에 서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늘 그냥 거기 있을 뿐이었다." (51쪽)


리젤이 조금씩 말과 글의 지평을 넓혀가며 자라는 모습도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악몽으로 잠들지 못하는 리젤 곁에서 새벽마다 함께 책을 읽은 양아버지. 그리고 그녀에게 서재를 열어주고, 책을 훔쳐갈 수 있게 창문을 열어둔 시장 부인. 캄캄한 지하실에 숨어서 히틀러의 책에 페인트를 덧입히고 그 위에 그림과 글을 써서 리젤에게 선물하는 유대인, 한겨울에 기꺼이 물에 뛰어들어 책을 건져주는 이웃집 소년. 이 모든 진주알들이 꿰어져 알파벳도 제대로 모른던  리젤은 말과 글을 사랑하며, 자신만의 글을 쓰게 된다.


이 책의 공식적인 話者는 저승사자(?)이다. 전쟁 중이라 너무나 바쁜 그이지만 이미지를 색으로 기억하고, 사랑스런 리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낭만파이다.  가끔씩 그의 매우 객관적이거나 직관적이거나 예언적인 멘트들이 소설 중간중간 끼어든다. 아직은 말과 글에 미숙한 리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리젤은 말을 갖추지 못한 책도둑이었다. 하지만 나를 믿어라. 말은 오고 있다. 말이 왔을 때 리젤은 그것을 구름처럼 손에 잡을 것이며, 비처럼 짜낼 것이다."


이제 소녀는 대피소에서 모두들 불안감에 휩싸일 때 그들에게 책을 읽어줄 만큼 자랐다.  전쟁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유대인 행렬은 "도움보다는 설명을 간청"하는 고통받는 얼굴로 시내를 지나간다. 견딜수 없어 유대인 노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양아버지의 돌발행동은 비참하게 끝났지만 우리의 저승사자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노인은 인간처럼 죽을 터였다. 적어도 자기가 인간이었다고 생각하며 죽을 것이다." (136쪽)


가슴이 뽀개질듯한 그리움과 통증 속에서도 따뜻한 사람들의 빛을 쬐며 그렇게 아이는 자란다.

결국 참전하게된 아버지의 무사 귀대, 아코디언 소리, 수프 한그릇 그리고 소녀의 웃음소리...

더 자주 지나가는 유대인 행렬. 리젤은 생각했다. "너무 추해서 견딜 수가 없어.."


이 마지막 평화는 석달 뒤 폭격으로 모두 끝나버린다. 하나의 세상이 끝나고, 소녀만이 남겨진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모두가 그녀를 떠나버렸다.

 "나를 행복하게 하지마. 제발 나를 채우지마. 여기 어디에선가 뭔가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지마. 막스가 안전하게 살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지 않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누릴 자격이 없으니까."  (307쪽)


내가 가장 집중했던 양아버지, 그의 죽음에 대해 우리의 저승사자는 이렇게 적고있다.

"그의 영혼은 일어나 앉아 있었다. 영혼은 나를 맞이했다. 이런 종류의 영혼은 늘 그렇게 한다... 이런 영혼은 늘 가볍다. 영혼의 더 많은 부분이 이미 나가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부분이 이미 다른 곳을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이 영혼은 아코디언의 숨, 여름 샴페인의 묘한 맛, 약속을 지키는 기술에 의해 밖으로 나갔다."  (325쪽)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에 대해서 그는 말한다.

"나는 책도둑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름다움과 잔혹에 관하여. 그러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그녀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똑같은 일이 그렇게 추한 동시에 그렇게 찬란할 수 있냐고, 말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저주스러우면서도 반짝일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 - 음식으로 들여다본 글로벌 정치경제
킴벌리 A. 위어 지음, 문직섭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뭔가를 먹는다는건 생존을 위한 본능이면서 동시에 '즐거움'을 주기에

늘 먹기위해 사는가, 살기위해 먹는가... 라는 질문은 헷갈리기 마련이다.

아무튼 먹을게 흔해지면서 먹는다는게 사치의 한 부분이 되는 경우도 흔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TV에는 굶주린 아이들이 나오고, 조금만 관심을 넓히면 한 끼 식사가 절실한 이웃들이 눈에 띈다. 왜일까?

이 책은 그 해답에 대한 실마리를 전해준다


본문에 해당하는 3장~7장에서는 특정 음식에 대한 소개와 그 음식 자체의 역사, 인류와 얽히게되는 이야기, 우리의 주요 식품 중 하나가 된 오늘날에 생산과 관련된 문제들, 그리고 나아가 세계적인 음식 공급시스템 내에서 그 음식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적인 문제들을 제시한다.


어쨋든, 항상 충분한 생산과 보존의 끝에 남는 것은 분배의 문제이다. '음식'은 생산에서부터 여러 정치적인 문제를 안고있고, 분배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인간의 욕망과 환경의 문제까지 얽혀있는 복잡한 대상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침해하며 뒤엉켜있어 점점 풀기 힘든 엉킨 실뭉치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충분한 생산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불법노동의 현장이 되고 있는 농장들, 여러 단체들의 노력도 헛되이 한쪽에선 버려지고 한쪽에선 굶주리는 세계 곳곳, 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가 계속되고, 공해상의 어족자원 붕괴가 연안 어민들의 삶을 무너뜨리는 현상들...

이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음식'을 넘어 우리의 삶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국가 이기주의, 다국적 기업의 무한 욕망, 육식에 대한 개인의 갈망 등에 공동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낮은 임금에 신음하면서도, 그것만이 또한 유일한 경쟁력인 후진 개발도상국가들의 딜레마는 결국 기업이 욕망을 덜어냄으로서만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금씩 육식에 대한 욕심을 줄임으로서 더 적은 작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먹고살수 있을 것이다.

정말 많이 이야기들이, 다소 반복적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결국 다국적 기업들의 욕망과 소비시장의 탐욕스러운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한 음식 생산을 위한 삼림파괴, 과도한 어획, 노동자 학대 등을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음식을 공급해나갈수 있을 것이라는게 작가의 생각이다.


"대중의 압박과 의정서를 통한 협력, 그리고 공정무역으로 인해 높아진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는 소비자의 의지. 이 모두가 인간과 환경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   (357쪽)


이 책 속의 생소한 음식소개 코너는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는데, 곤충이야기에서 "갑각류는 사실 물에 사는 곤충인데, 바닷가재와 새우, 머드벅 등은 땅에 사는 곤충을 꺼리는 그 나라에서 별미로 인기를 끌고있다." (139쪽)는 문장에서 읽으며 먹는 문화에 있어서도 선입견과 편견이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다시금 느껴졌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곤충식당이 등장했다는 기사를 접한 일도 있는데, 여러가지 면에서 미래의 대체식품으로서의 가치는 있어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나 영화 '설국열차' 속의 장면이 먼저 떠오르며 생각만으로도 찜찜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연일 화제가 되고있는 요즈음, 과학 기술의 발전이 과연 우리를 어떤 지경에까지 이르게 할지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적어도 神 혹은 우주의 섭리에 도전할 정도의 무모한 진보가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지... 여러 영화나 책 등을 통해 비관적으로 그려져와서인지, 나 역시 불안한 마음이 더 크다.


소설 <나를 보내지마>는인간 클론(clone)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장기이식에 필요한 복제인간을 키우는데, 이들은 몇 번의 장기 이식에 사용된 후 폐기되는 운명을 지닌다.


클론 : <생물> 단일 세포 또는 개체로부터 무성 증식으로 생긴,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군. 또는 그런 개체군.     (네이버 국어사전)


동일한 세포군... 당연히 이들에게도 그들만의 기억과 정신세계와 의식을 가진다. 단순 소비재일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주로 영국 시골마을의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평범해보이지만 이 학교 학생들은 어렴풋한 비밀을 공유한다. 10대들에게 때론 매력적인 '비밀', 그들의 사랑과 性 그리고 슬픈 운명이 가느다란 붓으로 그려진듯 세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전체 그림은 뭔가 모호하게 그려진다.


바깥 세상에서 클론으로서의 운명과 똑바로 마주선 인물들에게 지난 과거는 세세한 순간까지도 아로새겨져 있지만, 결국 그 모든 감정의 흔들림들이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된다. 그럼에도 그 곳에서의 삶을 아름다웠고, 그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있어 단 한번뿐인 삶이었기에 책을 덮는 마음은 참 쓸쓸하였다.


꼭 클론 이야기일 필요도 없이,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조장되고 소비되는 삶은 분명 우리 가까이에 있다. 전체적으로든 부분적으로 타인을 그런 시각에서 바라보고 수단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점점 흔한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같다. 그리고 언젠가 인간의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인간 클론이 실재하게 된다해도, 적어도 이 책에서와 같은 방식이어서는 안될거란 생각을 해본다. 단지 다른 개체를 위해 소비되기 위한 삶은 의식이 있는 '인간'에게 있어 너무나 참혹한 일이기 때문이다.


성장소설과도 같은 잔잔한 십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한편으로 인간의 '존엄'과 '의식'에 대해 생각해보았던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 -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작가가 추상적이고 철학적으로 들리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제에서 밝혔듯이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통해 가짜 자유, 자유의 환영과 진정한 자유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있어 읽기에 쉽고 명쾌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도스토예프스키는 4년간의 수형생활과 군생활을 지내며 자유의 문제에 대해 깊게  사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형생활을 기록한 <죽음의 집의 기록>과 <죄와 벌>을 중심으로 한 1부에서는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 하는 행위 들은 어떤 것인지, 그 행위들의 의미는 무언지 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여기서 저자는 돈, 도박, 술 등과 같이 본능으로서의 자유만을 추구하는 행위는 일시적으로 자유롭다는 느낌만을 주는 자유의 환영이라고 말한다. 식욕과 성욕처럼 본능으로서의 '자유욕'보다 중요한 가치로서의 자유 추구는 본능의 억제를 요구하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러한 자유를 '진정한 자유'라고 불렀다. 진정한 자유란 궁극에 가서는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인간이 스스로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도덕적 상태를 획득할 정도로 자아를 극복하고 자신의 의지를 극복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자유의 환영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 가짜 자유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자유의 환영을 극한까지 쫓는 인물들은 겉보기에는 자유를 획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유욕의 실현 과정에서 극단적이 이기주의 를 드러내고, 인간성과 도덕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부자유의 화신, 가짜 자유인이라고 불릴수 있으며, 그들은 결국 '자유인의 환영'이라고 말한다. 문학 작품에서 우리에게 자유인의 상징처럼 보이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조르바에게 자유란 오로지 자유욕이며, 시간은 그 자유욕의 실현을 방해하는 힘일 따름이다. (略) 그는 자유욕을 실현하기 위해 시간과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그 전투에서 이기려면 돈과 건강이라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손년 딸 나이의 여성과 결혼하여 회심의 미소를 짓는 조르바의 자유는 남성적이고 전투적이고 험오스럽다. 나이에 비해 너무 씩씩한 노인들이 뿜어대는 게걸스러움을 상기시킨다."


조금 과하게 표현된 부분도 있지만... 자연스러움의 미덕은 자유보다 더 강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르바를 읽으며 내내 불편했던걸 이렇게 풀어적어 주다니. 시간을 거스르려는 의지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고, 승리하더라도 찰나적인 승리에 불과한게 아닐까. 그런 싸움은 족쇄일 뿐이고 결코 아름다워보이지도 않는다. 결국 조르바 역시 "자유인의 환영에 불과했던 것이다."


2부에서는 어떻게 진정한 자유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금 종교적으로 풀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결국 우주 전체의 거대 질서 정도로 이해하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많은 분량의 메모를 했는데, 소제목만을 적어보자면 1. 다르게 보기. 2. 광장으로 나가기. 3. 시간과 함께 살아가기.의 세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도스토예프스키가 생각한 자유란 결국 본능의 자유로운 충족과는 정반대되는 사랑과 헌신, 절제와 희생의 삶이라 요약된다."   (329쪽)


우주의 섭리와 시간과 자유, 가장 인간다운 삶에 대한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횡무진 서양사 1 - 문명의 탄생에서 중세의 해체까지, 남경태의 가장 독창적 역사 읽기 종횡무진 시리즈
남경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보자도 쉽게 흐름을 잡을 수 있도록 정리가 잘 되어있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표현과 문체가 자유롭고 재미있어서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스터디에서 함께 공부할 책으로 정했는데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두 권으로 서양사 전체를 다루다보니 지엽적인 부분이 조금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으로 줄기를 잡고, 보다 호기심을 느끼는 부분은 다른 책으로 보충해간다면 좋을 것 같다.


우선 프롤로그와 1부만 정리해보았다.


- 프롤로그


문명은 동양문명의 뿌리를 이루는 황허 문명과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명이 합쳐져 서양문명의 뿌리가 된 오리엔트 문명의 2대 문명으로 나눌어 볼 수 있다.

두 문명의 가장 큰 차이는 황허 문명은 지역적으로는 꾸준히 넓어졌지만 중심은 변하지 않았던 반면 서양 문명은 태어난 곳과 자란 고사 홀동한 곳이 모두 다른 문명, 이를테면 끊임없이 중심이 이동하는 유목적 문명이라는 점이다.


이 책이 다룰 서양문명의 씨앗은 지금의 소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이집트 일대에서 태어나 점차 서쪽으로 이동해 그리스에서 처음 뿌리를 내린다. 이후 그리스는 주로 사상과 문화 측면에서, 로마는 언어와 제도, 종교의 측면에서 서양 문명의 뿌리를 이루게 된다. 다시 게르만 민족과 합쳐진 로마문명은중세를 거치면서 문명의 줄기가 점점 굵어져 14~16세기에 이르면 대항해시대, 종교개혁, 르네상스로 꽃을 피우게 된다. 이제 서양 문명은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주의 문명으로 부장하고 세계 정복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국제 질서을 만드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전쟁이 이어지고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통합적 국제질서가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문명의 이동 또한 계속되어 20세기 말에 이르면 동북아시아도 서양 문명권에 편입된다. 이로써 적어도 하드웨어적인 면에서 서양 문명은 지역 문명에서 벗어나 세계 문명이 되었다.


1부 1장 두 차례의 혁명


오랜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농업 혁명과 함께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다. 농경과 사육으로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를 감당하기 힘들어진 사람들은 아나톨리아 고원을 떠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일대로 내려와 최초의 문명을 이룩하게 된다. (기원전 4000년경~기원전 300년경) 이때부터 약탈농경에서 관개를 이용한 농경으로 이행되면서 치수에 성공한 자가 지배자가 된다.

한편 비옥학 초승달 지대의 반대편인 나일강 유역에서도 독자적인 문명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이집트 문명이다. 반복되는 홍수로 비옥한 토양을 지닌 이들은 점차 지역적 통합체를 이루고 왕국의 형태를 갖춰간다. 여러번의 혼란기가 있었지만, 이후 로마 속주로 편입되기까지 이집트 왕조는 무려 3,100년간 이어지게 된다.


1부 2장 충돌하는 두 문명


3000년 동안의 이집트 역사는 결코 단일한 역사는 아니지만 뭉뚱그려 이집트 왕국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제국이라기보다 파라오가 신적 권위를 가졌다는 점에서 神國에 가까웠다. 이집트 사회는 관료와 귀족, 기술자, 상인 등의 계층구분이 이루어져 있었으며, 나일강을 다스려야 했으므로 수학과 토목학, 천문학 등이 발달해 있었다.

한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문명의 빛을 발하던 도시국가들은 서로 치열한 다툼을 벌이다가 기원전 2350년 경 첫 통일왕조인 아카드 왕조가 열린다. 이후 처음으로 비중있는 나라로 기록되는 바빌로니아가 세워지고, 바빌론은 오리엔트 세계의 중심도시가 된다. 하지만 함무라비 사후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이후 오리엔트의 세력 판도는 인도쪽에서 이주해온 아리아인들에 의해 건설된 신흥 강호 히타이트와 선진문명을 자랑하는 전통의 강호 이집트의 대결로 압축되는데, 이 둘의 대결은 결국 무승부로 끝나고 이후 500년이 지난 기원전 8세기에 이르러 앗시리아에 의한 오리엔트의 통일이 이루어진다.


1부 3장 새로운 판 짜기


이집트와 히타이트는 충돌(카데시전투)이후 동시에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집트는 종교개혁에 실패하면서 왕권이 쇠퇴하고, 이것은 바로 국력의 쇠퇴를 의미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 동부 지중해지역에 강력한 해적이 등장하면서 괴롭힘을 당했다.

한편 히타이트의 붕괴로 철기 문명이 확산되면서 비옥한 초승달이 부풀어 지중해 동부연안에 다양한 도시 연맹체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을 총칭해 페니키아라 부른다. 이들은 오리엔트 세계의 선진 문명을 지중해 여러 섬에 전파하고,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페니키아 문자를 만들어 오늘날 서구 문명을 낳은 산파노릇을 하게 된다. 단일한 국가를 이루지 못한 이들은 점차 해적들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지중해 서부로 확장해가며 로마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다.

페니키아가 문자에서 통상까지 오리엔트 문명을 지중해 일대에 퍼뜨렸다면 종교라는 유산을 서구 문명에 전달한 이들은 헤브라이 인들이다. 아라비아를 고향으로 하는 셈족의 한 갈래인 이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나 하층계급을 형성하며 살던 중 람세스 2세 때 모세의 영도로 이집트를 탈출하여 기원전 11세기에 가나안 지역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다. 이후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왕국으로 분립하다가 기원전 6세기에 다시 남의 나라 땅에서 노예생활을 하게된다.


1부 4장 통일, 그리고 중심 이동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붕괴 이후 혼란기(전환기)를 지나 오리엔트는 아시리아에 의해 통일에 이르게 된다. 기질이 사납고 체격이 건장했던 이들은 철기 문화를 주로 무기 제작에 이용하면서 9세기 초반에 이르러 잔인하고 파괴적인 정복 사업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 639년, 역사상 최초로 오리엔트 통일의 위업을 이룬다.

하지만 문화적 토양이 부족했던 아시리아는 막상 정복이 끝나자 동력을 잃고 쇠퇴하게 되고, 이후 오리엔트 무대는 바빌론과 메디아, 부활한 이집트와 소아이아에서 일어난 리디아의 네 나라가 병립하는 형세를 이룬다.

이후 신바빌로니아가 잠깐 빛을 발하지만 바로 힘을 잃었고, 인도 유럽계인 엘람이 페르시아로 명패를 바꾸고 도약하게 된다. 페르시아는 아시리아보다 더욱 확고한 오리엔트의 통일을 이루고 최강의 제국을 이루었으며, 소아시아를 넘어 그리스까지 진출하면서 오리엔트의 역사는 그리스의 역사와 맞물리게 된다.


1부는 문명의 빛이 서쪽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첫번째 요인은 지리에 있다. 비옥한 초승달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길게 늘어진 지역에서는 통일이 이루어지더라도 오래가기 어려웠고, 큰 문명을 끌어안을 만한 넓이도 깊이(토착문명)도 없었다.

두번째 요인은 오리엔트 문명 자체에 내재해 있다. 그들은 고도로 발달한 정치와 행정 제도를 갖추었고 훌륭한 문화를 꽃피웠지만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모순을 억압하기만 했을 뿐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삼지 못했다.


"이제 문명의 씨앗은 서쪽의 유럽으로 옮겨갔고 뿌리를 내리는 일만 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