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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서양사 1 - 문명의 탄생에서 중세의 해체까지, 남경태의 가장 독창적 역사 읽기 ㅣ 종횡무진 시리즈
남경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4월
평점 :
초보자도 쉽게 흐름을 잡을 수 있도록 정리가 잘 되어있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표현과 문체가 자유롭고 재미있어서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스터디에서 함께 공부할 책으로 정했는데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두 권으로 서양사 전체를 다루다보니 지엽적인 부분이 조금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으로 줄기를 잡고, 보다 호기심을 느끼는 부분은 다른 책으로 보충해간다면 좋을 것 같다.
우선 프롤로그와 1부만 정리해보았다.
- 프롤로그
문명은 동양문명의 뿌리를 이루는 황허 문명과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명이 합쳐져 서양문명의 뿌리가 된 오리엔트 문명의 2대 문명으로 나눌어 볼 수 있다.
두 문명의 가장 큰 차이는 황허 문명은 지역적으로는 꾸준히 넓어졌지만 중심은 변하지 않았던 반면 서양 문명은 태어난 곳과 자란 고사 홀동한 곳이 모두 다른 문명, 이를테면 끊임없이 중심이 이동하는 유목적 문명이라는 점이다.
이 책이 다룰 서양문명의 씨앗은 지금의 소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이집트 일대에서 태어나 점차 서쪽으로 이동해 그리스에서 처음 뿌리를 내린다. 이후 그리스는 주로 사상과 문화 측면에서, 로마는 언어와 제도, 종교의 측면에서 서양 문명의 뿌리를 이루게 된다. 다시 게르만 민족과 합쳐진 로마문명은중세를 거치면서 문명의 줄기가 점점 굵어져 14~16세기에 이르면 대항해시대, 종교개혁, 르네상스로 꽃을 피우게 된다. 이제 서양 문명은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주의 문명으로 부장하고 세계 정복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국제 질서을 만드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전쟁이 이어지고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통합적 국제질서가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문명의 이동 또한 계속되어 20세기 말에 이르면 동북아시아도 서양 문명권에 편입된다. 이로써 적어도 하드웨어적인 면에서 서양 문명은 지역 문명에서 벗어나 세계 문명이 되었다.
1부 1장 두 차례의 혁명
오랜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농업 혁명과 함께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다. 농경과 사육으로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를 감당하기 힘들어진 사람들은 아나톨리아 고원을 떠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일대로 내려와 최초의 문명을 이룩하게 된다. (기원전 4000년경~기원전 300년경) 이때부터 약탈농경에서 관개를 이용한 농경으로 이행되면서 치수에 성공한 자가 지배자가 된다.
한편 비옥학 초승달 지대의 반대편인 나일강 유역에서도 독자적인 문명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이집트 문명이다. 반복되는 홍수로 비옥한 토양을 지닌 이들은 점차 지역적 통합체를 이루고 왕국의 형태를 갖춰간다. 여러번의 혼란기가 있었지만, 이후 로마 속주로 편입되기까지 이집트 왕조는 무려 3,100년간 이어지게 된다.
1부 2장 충돌하는 두 문명
3000년 동안의 이집트 역사는 결코 단일한 역사는 아니지만 뭉뚱그려 이집트 왕국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제국이라기보다 파라오가 신적 권위를 가졌다는 점에서 神國에 가까웠다. 이집트 사회는 관료와 귀족, 기술자, 상인 등의 계층구분이 이루어져 있었으며, 나일강을 다스려야 했으므로 수학과 토목학, 천문학 등이 발달해 있었다.
한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문명의 빛을 발하던 도시국가들은 서로 치열한 다툼을 벌이다가 기원전 2350년 경 첫 통일왕조인 아카드 왕조가 열린다. 이후 처음으로 비중있는 나라로 기록되는 바빌로니아가 세워지고, 바빌론은 오리엔트 세계의 중심도시가 된다. 하지만 함무라비 사후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이후 오리엔트의 세력 판도는 인도쪽에서 이주해온 아리아인들에 의해 건설된 신흥 강호 히타이트와 선진문명을 자랑하는 전통의 강호 이집트의 대결로 압축되는데, 이 둘의 대결은 결국 무승부로 끝나고 이후 500년이 지난 기원전 8세기에 이르러 앗시리아에 의한 오리엔트의 통일이 이루어진다.
1부 3장 새로운 판 짜기
이집트와 히타이트는 충돌(카데시전투)이후 동시에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집트는 종교개혁에 실패하면서 왕권이 쇠퇴하고, 이것은 바로 국력의 쇠퇴를 의미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 동부 지중해지역에 강력한 해적이 등장하면서 괴롭힘을 당했다.
한편 히타이트의 붕괴로 철기 문명이 확산되면서 비옥한 초승달이 부풀어 지중해 동부연안에 다양한 도시 연맹체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을 총칭해 페니키아라 부른다. 이들은 오리엔트 세계의 선진 문명을 지중해 여러 섬에 전파하고,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페니키아 문자를 만들어 오늘날 서구 문명을 낳은 산파노릇을 하게 된다. 단일한 국가를 이루지 못한 이들은 점차 해적들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지중해 서부로 확장해가며 로마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다.
페니키아가 문자에서 통상까지 오리엔트 문명을 지중해 일대에 퍼뜨렸다면 종교라는 유산을 서구 문명에 전달한 이들은 헤브라이 인들이다. 아라비아를 고향으로 하는 셈족의 한 갈래인 이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나 하층계급을 형성하며 살던 중 람세스 2세 때 모세의 영도로 이집트를 탈출하여 기원전 11세기에 가나안 지역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다. 이후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왕국으로 분립하다가 기원전 6세기에 다시 남의 나라 땅에서 노예생활을 하게된다.
1부 4장 통일, 그리고 중심 이동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붕괴 이후 혼란기(전환기)를 지나 오리엔트는 아시리아에 의해 통일에 이르게 된다. 기질이 사납고 체격이 건장했던 이들은 철기 문화를 주로 무기 제작에 이용하면서 9세기 초반에 이르러 잔인하고 파괴적인 정복 사업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 639년, 역사상 최초로 오리엔트 통일의 위업을 이룬다.
하지만 문화적 토양이 부족했던 아시리아는 막상 정복이 끝나자 동력을 잃고 쇠퇴하게 되고, 이후 오리엔트 무대는 바빌론과 메디아, 부활한 이집트와 소아이아에서 일어난 리디아의 네 나라가 병립하는 형세를 이룬다.
이후 신바빌로니아가 잠깐 빛을 발하지만 바로 힘을 잃었고, 인도 유럽계인 엘람이 페르시아로 명패를 바꾸고 도약하게 된다. 페르시아는 아시리아보다 더욱 확고한 오리엔트의 통일을 이루고 최강의 제국을 이루었으며, 소아시아를 넘어 그리스까지 진출하면서 오리엔트의 역사는 그리스의 역사와 맞물리게 된다.
1부는 문명의 빛이 서쪽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첫번째 요인은 지리에 있다. 비옥한 초승달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길게 늘어진 지역에서는 통일이 이루어지더라도 오래가기 어려웠고, 큰 문명을 끌어안을 만한 넓이도 깊이(토착문명)도 없었다.
두번째 요인은 오리엔트 문명 자체에 내재해 있다. 그들은 고도로 발달한 정치와 행정 제도를 갖추었고 훌륭한 문화를 꽃피웠지만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모순을 억압하기만 했을 뿐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삼지 못했다.
"이제 문명의 씨앗은 서쪽의 유럽으로 옮겨갔고 뿌리를 내리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