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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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고이도록 아름다운 전쟁 이야기, 너무나도 사랑스런 도둑 이야기.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울 책도둑, 9살 소녀 리젤의 이야기이다.

처음으로 훔친 책 <무덤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 한 권과 죽은 남동생에 대한 처참한 기억만을 지닌 채, 2차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독일의 한 작은 도시에 홀로 부려진 리젤.

그럼에도 보살핌의 방식은 다르지만 마음 따뜻한 양부모와 이웃집 소년과 숨어지내는 유대인 권투선수 등과의 부딪힘과 한권씩 보태지는 책과 더불어

소녀는 글을 배우고, 세계를 배우고, 사람을 배워나간다.

전쟁을 관통하며, 한권씩 한권씩 책을 훔쳐가며 성장해나간다.


내가 책을 읽으며 더욱 집중했던 인물은 주인공이 아닌 리젤의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이었다.

자신의 모든 기능과 마음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 음악을 연주할 때면 "태평하면서도 집중을 한" 표정이 되는 사람. 하루하루 폭격의 날이 다가오던 여름을 책도둑 리젤에게 인생 최고의 시간으로 기억하게 만들어준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스 후버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略) 이 사람은 배경에만 머무는 능력을 지녔다. 심지어 줄의 맨 앞에 서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늘 그냥 거기 있을 뿐이었다." (51쪽)


리젤이 조금씩 말과 글의 지평을 넓혀가며 자라는 모습도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악몽으로 잠들지 못하는 리젤 곁에서 새벽마다 함께 책을 읽은 양아버지. 그리고 그녀에게 서재를 열어주고, 책을 훔쳐갈 수 있게 창문을 열어둔 시장 부인. 캄캄한 지하실에 숨어서 히틀러의 책에 페인트를 덧입히고 그 위에 그림과 글을 써서 리젤에게 선물하는 유대인, 한겨울에 기꺼이 물에 뛰어들어 책을 건져주는 이웃집 소년. 이 모든 진주알들이 꿰어져 알파벳도 제대로 모른던  리젤은 말과 글을 사랑하며, 자신만의 글을 쓰게 된다.


이 책의 공식적인 話者는 저승사자(?)이다. 전쟁 중이라 너무나 바쁜 그이지만 이미지를 색으로 기억하고, 사랑스런 리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낭만파이다.  가끔씩 그의 매우 객관적이거나 직관적이거나 예언적인 멘트들이 소설 중간중간 끼어든다. 아직은 말과 글에 미숙한 리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리젤은 말을 갖추지 못한 책도둑이었다. 하지만 나를 믿어라. 말은 오고 있다. 말이 왔을 때 리젤은 그것을 구름처럼 손에 잡을 것이며, 비처럼 짜낼 것이다."


이제 소녀는 대피소에서 모두들 불안감에 휩싸일 때 그들에게 책을 읽어줄 만큼 자랐다.  전쟁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유대인 행렬은 "도움보다는 설명을 간청"하는 고통받는 얼굴로 시내를 지나간다. 견딜수 없어 유대인 노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양아버지의 돌발행동은 비참하게 끝났지만 우리의 저승사자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노인은 인간처럼 죽을 터였다. 적어도 자기가 인간이었다고 생각하며 죽을 것이다." (136쪽)


가슴이 뽀개질듯한 그리움과 통증 속에서도 따뜻한 사람들의 빛을 쬐며 그렇게 아이는 자란다.

결국 참전하게된 아버지의 무사 귀대, 아코디언 소리, 수프 한그릇 그리고 소녀의 웃음소리...

더 자주 지나가는 유대인 행렬. 리젤은 생각했다. "너무 추해서 견딜 수가 없어.."


이 마지막 평화는 석달 뒤 폭격으로 모두 끝나버린다. 하나의 세상이 끝나고, 소녀만이 남겨진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모두가 그녀를 떠나버렸다.

 "나를 행복하게 하지마. 제발 나를 채우지마. 여기 어디에선가 뭔가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지마. 막스가 안전하게 살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지 않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누릴 자격이 없으니까."  (307쪽)


내가 가장 집중했던 양아버지, 그의 죽음에 대해 우리의 저승사자는 이렇게 적고있다.

"그의 영혼은 일어나 앉아 있었다. 영혼은 나를 맞이했다. 이런 종류의 영혼은 늘 그렇게 한다... 이런 영혼은 늘 가볍다. 영혼의 더 많은 부분이 이미 나가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부분이 이미 다른 곳을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이 영혼은 아코디언의 숨, 여름 샴페인의 묘한 맛, 약속을 지키는 기술에 의해 밖으로 나갔다."  (325쪽)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에 대해서 그는 말한다.

"나는 책도둑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름다움과 잔혹에 관하여. 그러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그녀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똑같은 일이 그렇게 추한 동시에 그렇게 찬란할 수 있냐고, 말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저주스러우면서도 반짝일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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