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자책] 모스크바에서의 오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부키 / 2016년 9월
평점 :
판매중지
<모스크바에서의 오해>는 미발표작으로 남아있다가 보부아르 사후인 1992년에 발표된 중편소설이다. 적어도 귀에는 익숙한 그녀의 소설들이 많지만, 보부아르의 작품이면서도 뭔가 상큼한 표지그림과 처음 듣는 책제목이 신선해서 냉큼 읽어버렸다. 게다가 분량까지 만만한 중편이니 말이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라는 느낌이다. 상황이 전개되는 장소는 '모스크바', 상황의 내용은 '오해'이니 말이다. 각자 아들과 딸을 가진 앙드레와 니콜은 앙드레의 딸 마샤를 만나기 위해 한달간의 모스크바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후 제법 빠르게 두사람의 시점을 번갈아 쓰고있는데, 이로써 독자는 둘의 생각과 입장이 어떻게 비슷한지, 또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보게된다. 같은 장면에서 두 인물의 독백이나 생각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심각한 사건사고가 일어난다거나, 거창한 역사의식 같은 것이 정면에 드러나있지 않아서 살짝 가볍게 읽어버릴 수도 있는 이 소설의 특별한 점은 독자에 따라서 여러가지 포인트를 짚어낼 수 있다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회의 변화와 개혁이 관심이 많고, 몸소 참여해오고 있는 앙드레가 소련을 방문하면서 느끼게 되는 정치적인 환멸, 체제와 자유에 대한 문제도 꽤나 깊이있게 다뤄져 있어서 '역사'와 '역사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 사랑으로 인해 부부간의 오해가 생기고, 결국 사랑으로 인해 그 오해가 새로운 이해로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타인들 간의 의사소통의 문제를 떠올려볼 수도 있는 소설이었다. 어쩌면 여성의 지위나 부부관계의 다양한 국면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나이듦'에 대한 서술과 성찰같은 것들이었다.
"마흔 살 무렵에는 그녀도 한 번 더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전에는 아니었다. 그녀는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53쪽), 이렇듯 나이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초조함을 동반한다는 문장에서, 호기심이 살아있는한 늙은 것이 아니라고도 하지만 어쩌면 초조함이 계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쫓게 만드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짧은 대화 속에서도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 잘 드러나 있었다. "이가 아파서 그래? 치과에 가봐." "아프지 않아." "그런데 왜 계속 뺨을 만져?" "아프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거야." (59쪽) 이 대목에서 니콜이 떠올리는 것은 라루스 사전의 '노화'에 대한 정의였다. "노화; 늙음에 의해 유발된 육체와 정신의 약화."
여성으로서, 교사생활을 하며 나름 힘차게 자신을 지켜온 그녀에게 있어 이렇게 나이들어가는 일은 이중으로 힘든 일처럼 보였다. "그녀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여성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나 다른 여자들-그녀가 좋아하지 않은 다른 여자들-처럼 남편에게, 아들에게, 가정에 잠식당했다. " (78쪽). 더구나 자신의 근거지인 파리를 떠나 이곳, 모스크바에서 니콜은 몸과 정신의 쇠락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파리에서 니콜은 자기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앙드레와 함께 혹은 그녀 혼자 여러가지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여기서는 주도권이, 발의권이 다른 사람에게 가 있었다. 니콜은 마샤의 세게 안에 존재하는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88쪽) 어느 순간 스스로의 결정에 자신감이 사라지고, 뭔가 의견을 가지는 일이 힘들어지는 것도 노화의 한 측면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은 조금씩 약화되어가는 몸과 정신은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편입시켜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요원한 사회 진보를 말하고,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말하고, 노화의 쓸쓸함을 말하는 이 소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읽혔던 것은 오해가 이해로 끝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꿔놓아도 상대에 대한 사랑(애정)이 굳건하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며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마무리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