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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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십사 년이 지나 나는 그녀의 마력에서 벗어난다. 오직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에 의해서"


마력, 매혹 같은 단어들은 권력의 또다른 이름이다. 그렇게 권력에 종속당한 그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12살 소녀와 충격적이고 집요한 사랑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어린 소녀을 향한 성적 동경이라는 '롤리타 신드롬'을 일으킨 문제작으로 사랑, 은밀한 욕망의 구현 등등 온갖 그럴듯한 포장지에 싸여있다.  하.지.만.


벼르다가 마침내 읽게된 나의 개인적인 느낌은 불쾌감이었다. 타임지가 '고밀도의 서정성과 강렬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고 했다던가? 사실 아름다운 문장과 진지한 유머들, 시대와 지역을 세밀하게 반영하는 멋진 묘사들은 스토리와 별개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그 윤리적 책임의 문제를 완전히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나로서는 그저 수컷의 동물적인 본능을 미화해놓은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 속에서 말하고 있듯 '안 간 곳이 없었으나 본 것은 거의 없'었던 '떳떳지 못한 여행'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의 감정만을 섬세하게 논하고, 본질과 상관없는 애매한 정황묘사를 통해 롤리타를 겨누는  그의 날카로운 칼끝을 무디게 느끼도록 한다.


지적인 언어유희와 찬란한 묘사로는 가릴수 없는 파렴치함, 결국 롤리타의 생각은 무시되어지거나 그저 터프하게 다뤄지고 있을 뿐이었다. <롤리타>에 롤리타는 없었다.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는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눈 책누에 멤버가 소개한 책, 현재는 절판이다. 도서관에서 한번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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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 - 매일 더 행복해지는 "감성 미니멀 홈스타일링"
선혜림 지음 / 앵글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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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심삼일 리스트에 거의 항상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물건 정리하기'. 하지만 늘 게으름과 창의적인 핑계거리들에 가로막히고 만다. 물건을 버리고, 쇼핑을 자제하고, 좀더 꼼꼼히 수납하고, 내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곰곰히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리고 관련 책도 읽어보고. 그렇게 또 한권의 책을 읽었다. <처음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


집을 예쁘게 꾸미고 싶었던 저자가 처음 했던 작업은 더하기. 예쁘고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더하고 또 더해서 마음에 드는 집을 완성하고자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물건들에 둘러싸여 물건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빼기를 통한 집꾸미기 작업을 시작한다. 본인이 디자인 전공자인만큼 단순히 미니멀라이프의 트랜드를 쫓기보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신의 필요에 맞게 '예쁘게 비우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그녀만의 스타일리쉬하고 기능적인 미니멀 인테리어를 이 책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모두 세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part 1에서는 자신의 집꾸밈 과정을 구체적으로 공간별로 소개하고, 누구라도 궁금해할 각각의 제품에 대해 상품명, 회사명, 가격대 등을 알려주고 있다. 충분한 사진자료와 자신이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더해져 한 눈에 쉽게 과정을 살펴보고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구상해볼 수도 있을것 같다. 아기자기 예쁜 소품들로 꾸며진 예전의 사진들도 눈길을 끌지만 역시 심플하고 미니멀한 느낌의 바뀐 공간들이 멋져보였다.


두번째 part에서는 미니멀하게 집을 꾸미기 위한 디자인 tip을 소개한다. 그동안 알쏭달쏭했던 나무로 만든 가구들의 목재별 특징과 장단점 소개 같은 것들은 실재 가구를 구입하거나 할 때 매우 유용할 것 같다. 더불어 가구에 대한 안목을 높이기 위해, 말하자면 눈요기하기에 좋은 여러 사이트들도 한데 모아서 소개하고 있다. 요즘 관심이 가는 조명에 대해서도 선택에서 시공까지를 잘 알려주고 있어서 꼼꼼히 읽다보면 스스로 미니멀 홈스타일링에 도전해 볼수도 있겠다.


마지막 part 3은 '사례로보는 감성 미니멀 홈스타일링'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잇는데, 거의 모든 페이지가 실제 공간의 사진들과 그에 대한 설명들로 되어 있어서 보다 현장감있게 디자인 렛슨을 받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작심삼일이지만 나름 심플라이프,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나로서는 그저 사진을 넘겨보는 것 만으로도 눈과 마음이 힐링되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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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지음, 박재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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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은 어찌할수 없는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죽은자의 혼령같은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 속으로 불쑥 끼어들어와도,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다만 묘하게 소설 속의 시공간이 살짝 비틀어져 있다는 느낌, 붕 떠있는 느낌 같은 것들이 있다.


이 소설 속에는 혼령이나 유령따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뭔가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픽션 속에 또다른 픽션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액자소설은 아니다.)


절반 정도까지는 '거짓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후반부는 사람사이의 '따뜻함'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얼마전 읽은 정여울의 <공부할 권리>에서 작가는 '용기를 내지 못해 솔직해질 수 없었던 그 수만은 시간들이 아직도'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갑작스레 할퀴어진 상처의 흔적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움추러들게 하고, 나아가 두려움에 익숙해지게 하고, 이런 두려움은 거짓말을 낳는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의 거짓말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읽어가다보면 마음이 한없이 아파지다가도, 정말 그렇게 속수무책일수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따뜻한 심지 하나만 살려두어도 그 온기는 자라고 자라서 주위를 따뜻하게 하고, 결국 자신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게한다는 것을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래서 책 띠지에 한 영화감독의 이런 글이 쓰여져 있는가보다. "산다는 것의 아름답지 못한 부분까지 부드럽게 감싸준다."


세상과 조금은 불화할 용기를 낸다고해도, 내가 나의 목청을 좀더 높이고 나를 주장한다고해도, 세상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은 그런 나도 충분히 품을 만큼 넓고 다채로우며, 세상에는 니의 보잘것 없는 온기에라도 기대고싶은 이들이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고보니 이 소설은 내게 '살아갈 용기'에 대한 것으로 읽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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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모스크바에서의 오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부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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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의 오해>는 미발표작으로 남아있다가 보부아르 사후인 1992년에 발표된 중편소설이다. 적어도 귀에는 익숙한 그녀의 소설들이 많지만, 보부아르의 작품이면서도 뭔가 상큼한 표지그림과 처음 듣는 책제목이 신선해서 냉큼 읽어버렸다. 게다가 분량까지 만만한 중편이니 말이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라는 느낌이다. 상황이 전개되는 장소는 '모스크바', 상황의 내용은 '오해'이니 말이다. 각자 아들과 딸을 가진 앙드레와 니콜은 앙드레의 딸 마샤를 만나기 위해 한달간의 모스크바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후 제법 빠르게 두사람의 시점을 번갈아 쓰고있는데, 이로써 독자는 둘의 생각과 입장이 어떻게 비슷한지, 또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보게된다. 같은 장면에서 두 인물의 독백이나 생각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심각한 사건사고가 일어난다거나, 거창한 역사의식 같은 것이 정면에 드러나있지 않아서 살짝 가볍게 읽어버릴 수도 있는 이 소설의 특별한 점은 독자에 따라서 여러가지 포인트를 짚어낼 수 있다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회의 변화와 개혁이 관심이 많고, 몸소 참여해오고 있는 앙드레가 소련을 방문하면서 느끼게 되는 정치적인 환멸, 체제와 자유에 대한 문제도 꽤나 깊이있게 다뤄져 있어서 '역사'와 '역사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 사랑으로 인해 부부간의 오해가 생기고, 결국 사랑으로 인해 그 오해가 새로운 이해로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타인들 간의 의사소통의 문제를 떠올려볼 수도 있는 소설이었다. 어쩌면 여성의 지위나 부부관계의 다양한 국면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나이듦'에 대한 서술과 성찰같은 것들이었다.


"마흔 살 무렵에는 그녀도 한 번 더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전에는 아니었다. 그녀는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53쪽), 이렇듯  나이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초조함을 동반한다는 문장에서, 호기심이 살아있는한 늙은 것이 아니라고도 하지만 어쩌면 초조함이 계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쫓게 만드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짧은 대화 속에서도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 잘 드러나 있었다. "이가 아파서 그래? 치과에 가봐."  "아프지 않아."  "그런데 왜 계속 뺨을 만져?"  "아프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거야." (59쪽) 이 대목에서 니콜이 떠올리는 것은 라루스 사전의 '노화'에 대한 정의였다. "노화; 늙음에 의해 유발된 육체와 정신의 약화."


여성으로서, 교사생활을 하며 나름 힘차게 자신을 지켜온 그녀에게 있어 이렇게 나이들어가는 일은 이중으로 힘든 일처럼 보였다. "그녀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여성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나 다른 여자들-그녀가 좋아하지 않은 다른 여자들-처럼 남편에게, 아들에게, 가정에 잠식당했다. " (78쪽). 더구나 자신의 근거지인 파리를 떠나 이곳, 모스크바에서 니콜은 몸과 정신의 쇠락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파리에서 니콜은 자기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앙드레와 함께 혹은 그녀 혼자 여러가지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여기서는 주도권이, 발의권이 다른 사람에게 가 있었다. 니콜은 마샤의 세게 안에 존재하는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88쪽) 어느 순간 스스로의 결정에 자신감이 사라지고, 뭔가 의견을 가지는 일이 힘들어지는 것도 노화의 한 측면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은 조금씩 약화되어가는 몸과 정신은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편입시켜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요원한 사회 진보를 말하고,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말하고, 노화의 쓸쓸함을 말하는 이 소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읽혔던 것은 오해가 이해로 끝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꿔놓아도 상대에 대한 사랑(애정)이 굳건하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며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마무리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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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멀리 뛰기 - 이병률 대화집
이병률.윤동희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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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를 읽어본 일은 없다. 내게 있어 이병률은 다만 여행 에세이스트로만 각인되어 있다. 다른 여행작가보다 조금 더 시적이고, 조금 더 사랑에 무른 사람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의 대화집 <안으로 멀리 뛰기>를 읽으면서 그 자신이 원하는 모습은 '시인'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이 대화집은 평소 이병률의 글을 애독하고, 이병률을 애정하는 북노마드 대표 윤동희가 그와 맘먹고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이다. 더 잘, 더 깊이 알고싶어하는 질문자와 왠지 '말'이 어색한 답변자의 주거니 받거니가 조금 신선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글쓰는 사람은 역시 '글'로 만날 때 더 매끄럽고 빛이 난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그에게 팬심이 있는 이들에게라면 이렇게 '말'로 만나는 것도 참으로 정겹고 가깝게 느껴지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글보다 사진 이야기를 먼저 꺼내자면, 내내 바닥과 하늘을 찍은 사진에 더 눈길이 갔다. 그냥 바라보기와 내려다보기, 올려다보기. 한 자리에 선 채 그렇게 좀더 입체적으로 그 장소를 바라보고 느낄수 있는게 바로 여행자의 특권이고, 여행자의 몫인 것 같다. 집앞 골목에 서서도 애정을 가지고 시각을 이리저리 바꿔보면 순간의 떠남 비슷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는것처럼 말이다. 내용 전체에 특별한 章 구분없이 이렇듯 마음을 훌쩍 띄우는 사진들이 중간중간 끼워져 있다.


대화는 우선 가벼운 계절 이야기, 술 이야기로 시작된다. 무해하고 무난한 소재들. 하지만 그마저도 시인의 대답들 속에서는 조금 특별해진다. "술버릇이 있다면 집에 가는 길에 좀 걷는 편인데 꽃을 꺾어요. 꽃이 피는 계절에는 그렇죠. 그래서 가방 밑에는 꽃잎 마른 것들이 수두룩."(41쪽). 술에 취한 뒤끝이 수두룩한 마른 꽃잎이라니..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이야기를 보면, 그는 친구를 자주 부르는 편이라고, 친구를 불러서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여행지에서 그릇을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참 따뜻하다.누구나처럼 거기서는 여기가 그립고, 여기서는 거기가 궁금한 모양이다. 그래서 거기서는 여기에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그릇을 고르고, 여기서는 늘 떠날 마음을 품고 지내는가 보다. 


그 밖에도 돈에 대한 솔직한 심경이라든지, 에세이스트나 출판사 사장이기보다는 결국에는 시인이고 싶은 바램이라든지, 문학과 인생에 대한 나름의 생각 등등의 대화가 오간다. 매우 솔직하게, 라고 하기에는 살짝 방어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 역시도 감성 뚝뚝 떨어지게 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그 안에 필요한 뼈대는 굳건히 세워두고 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트집아닌 트집을 잡아보자면 사실 작가 본인의 사진을 곳곳에 두는 책은 내 취향에 반했다. 하지만 대화집인 만큼, 그의 조금은 사적인 부분을 엿보고 싶은 팬들에게는 오히려 그 사진들이 반갑게 느껴질 것 같다. 그다지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없으니 말이다.


시인이고 싶은 사람, 이병률. 시는 사람이고, 시는 사랑이라고 말하는 남자의 조금은 감성적인 인터뷰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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