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멀리 뛰기 - 이병률 대화집
이병률.윤동희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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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를 읽어본 일은 없다. 내게 있어 이병률은 다만 여행 에세이스트로만 각인되어 있다. 다른 여행작가보다 조금 더 시적이고, 조금 더 사랑에 무른 사람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의 대화집 <안으로 멀리 뛰기>를 읽으면서 그 자신이 원하는 모습은 '시인'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이 대화집은 평소 이병률의 글을 애독하고, 이병률을 애정하는 북노마드 대표 윤동희가 그와 맘먹고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이다. 더 잘, 더 깊이 알고싶어하는 질문자와 왠지 '말'이 어색한 답변자의 주거니 받거니가 조금 신선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글쓰는 사람은 역시 '글'로 만날 때 더 매끄럽고 빛이 난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그에게 팬심이 있는 이들에게라면 이렇게 '말'로 만나는 것도 참으로 정겹고 가깝게 느껴지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글보다 사진 이야기를 먼저 꺼내자면, 내내 바닥과 하늘을 찍은 사진에 더 눈길이 갔다. 그냥 바라보기와 내려다보기, 올려다보기. 한 자리에 선 채 그렇게 좀더 입체적으로 그 장소를 바라보고 느낄수 있는게 바로 여행자의 특권이고, 여행자의 몫인 것 같다. 집앞 골목에 서서도 애정을 가지고 시각을 이리저리 바꿔보면 순간의 떠남 비슷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는것처럼 말이다. 내용 전체에 특별한 章 구분없이 이렇듯 마음을 훌쩍 띄우는 사진들이 중간중간 끼워져 있다.


대화는 우선 가벼운 계절 이야기, 술 이야기로 시작된다. 무해하고 무난한 소재들. 하지만 그마저도 시인의 대답들 속에서는 조금 특별해진다. "술버릇이 있다면 집에 가는 길에 좀 걷는 편인데 꽃을 꺾어요. 꽃이 피는 계절에는 그렇죠. 그래서 가방 밑에는 꽃잎 마른 것들이 수두룩."(41쪽). 술에 취한 뒤끝이 수두룩한 마른 꽃잎이라니..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이야기를 보면, 그는 친구를 자주 부르는 편이라고, 친구를 불러서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여행지에서 그릇을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참 따뜻하다.누구나처럼 거기서는 여기가 그립고, 여기서는 거기가 궁금한 모양이다. 그래서 거기서는 여기에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그릇을 고르고, 여기서는 늘 떠날 마음을 품고 지내는가 보다. 


그 밖에도 돈에 대한 솔직한 심경이라든지, 에세이스트나 출판사 사장이기보다는 결국에는 시인이고 싶은 바램이라든지, 문학과 인생에 대한 나름의 생각 등등의 대화가 오간다. 매우 솔직하게, 라고 하기에는 살짝 방어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말' 역시도 감성 뚝뚝 떨어지게 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그 안에 필요한 뼈대는 굳건히 세워두고 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트집아닌 트집을 잡아보자면 사실 작가 본인의 사진을 곳곳에 두는 책은 내 취향에 반했다. 하지만 대화집인 만큼, 그의 조금은 사적인 부분을 엿보고 싶은 팬들에게는 오히려 그 사진들이 반갑게 느껴질 것 같다. 그다지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없으니 말이다.


시인이고 싶은 사람, 이병률. 시는 사람이고, 시는 사랑이라고 말하는 남자의 조금은 감성적인 인터뷰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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