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지음, 박재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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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은 어찌할수 없는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죽은자의 혼령같은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 속으로 불쑥 끼어들어와도,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다만 묘하게 소설 속의 시공간이 살짝 비틀어져 있다는 느낌, 붕 떠있는 느낌 같은 것들이 있다.


이 소설 속에는 혼령이나 유령따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뭔가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픽션 속에 또다른 픽션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액자소설은 아니다.)


절반 정도까지는 '거짓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후반부는 사람사이의 '따뜻함'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얼마전 읽은 정여울의 <공부할 권리>에서 작가는 '용기를 내지 못해 솔직해질 수 없었던 그 수만은 시간들이 아직도'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갑작스레 할퀴어진 상처의 흔적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움추러들게 하고, 나아가 두려움에 익숙해지게 하고, 이런 두려움은 거짓말을 낳는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의 거짓말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읽어가다보면 마음이 한없이 아파지다가도, 정말 그렇게 속수무책일수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따뜻한 심지 하나만 살려두어도 그 온기는 자라고 자라서 주위를 따뜻하게 하고, 결국 자신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게한다는 것을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래서 책 띠지에 한 영화감독의 이런 글이 쓰여져 있는가보다. "산다는 것의 아름답지 못한 부분까지 부드럽게 감싸준다."


세상과 조금은 불화할 용기를 낸다고해도, 내가 나의 목청을 좀더 높이고 나를 주장한다고해도, 세상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은 그런 나도 충분히 품을 만큼 넓고 다채로우며, 세상에는 니의 보잘것 없는 온기에라도 기대고싶은 이들이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고보니 이 소설은 내게 '살아갈 용기'에 대한 것으로 읽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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