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
루스 오제키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시간과 존재에 대해 이 소설은 참 따뜻하게 이야기한다.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면
모두가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의 문제조차 제대로 풀지 못하고 애쓰며 살아가지만, 한편으로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삶을 보살펴주고 있는 것이라는 걸 조금씩 깨달아가게 된다.
뉴욕의 화려한 문명을 사랑하지만 치매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캐나다 외딴 섬에서 지내는 소설가, 루스.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아빠의 실직으로 일본에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나오. 이 두명의 화자가 번갈아 소설을 이끌어간다.
둘은 각각 캐나다와 일본에 있고, 세대도 다르고, 서로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며, 상대가 어떤 시간에 놓여있는지도 분명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루스와 나오와의 거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점점 가까이 가까이 좁혀진다. 그리고 마침내 루스는 나오의 운명 속으로까지 걸어들어가게 되는데... 루스는 나오를 구할 수 있을까? 너의 이야기를 내가 완성할 수 있을까?
시간과 시간 속의 존재, 좌선, 꿈, 道, 수없이 쪼개져 나란히 존재할수도 있는 가능성의 세계들 등이 이끌어가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바로 지금 우리의 세계를 또렷하게 인식시켜주는 서사들(일본의 쓰나미, 9.11 테러)은 읽는 과정을 자연스럽과 사고와 명상으로 이끌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나오가 가장 집중했던 단어 'now' 대한 이야기들도 여러모로 새롭고 흥미로웠다.
(46쪽) "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다. 그리고 모든 존재는 시간이다... 본질적으로, 온 우주의 만물은 시간 속에서 연속적이면서도 별개인 한순간으로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14쪽) "최소한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긴 했어요. 그건 좀 중요하잖아요. 목표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의미 없는 삶을 사는 동안 우리를 바쁘게 해줄 구체적인 것을 찾을 수만 있다면요."
(331쪽) "정적과 소음 사이의 면도날 같은 경계에 온 신경을 모으로 있으니까요. 마침내 목표를 달성해서 어린 시절에 가졌던 나우에 대한 집착을 해결하는 거죠. (중략) 북을 치는 순간 나우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정적이 소리로 변하는 순간."
또한 번갈아 이어지는 둘의 이야기에서 특히 나오의 부분은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고싶을 만큼 읽는 재미가 있었다. 십대 소녀의 통통 튀는 감성과 표현이 뻣뻣해진 내 몸 어딘가를 두드려주는 것 같았다.
나오의 참 벗이자 스승이 되어주었던 지코 할머니는 104세의 승려로 그녀의 이야기와 태도들 역시도 나를 집중시켰다. 늘 세상의 모든 시간을 다 가진 것처럼 결코 서두르지 않았고, 세상은 단지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여겼고, 좌선을 통해 자신만의 슈퍼파워를 키울수 있다고 나오를 격려했던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남긴 글자는 '生'이었다.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던 책, 오히려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가며 읽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부디 '이 세계'에서 모두가 행복하기를... 따위의 다소 거창한 기도를 하면서 책장을 덮었다.
"도를 공부한다는 것은 자신을 공부하는 것이다. 자신을 공부한다는 것은 자신을 잊는 것이다. 자신을 잊는다는 것은 만물에 의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도겐선사 <쇼보겐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