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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 - 후암동 골목 그 집 이야기
권희라.김종대 지음 / 리더스북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꼭 이 바보같은 집짓기에 동참해보길 권한다." (뒷날개)
정말 이 정도로 고난의 길이라면, 그저 못마땅해도 아파트에서 투덜거리고 사는게 나아보일만큼 '바보같은 집짓기' 과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과 그 뒷 이야기가 드러내보이는 일명 '뽐뿌질'에 낚여 누구라도 한번쯤 그 바보같은 집짓기에 착수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집짓기는 곧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과정이라고들 한다" (124쪽)
집을 짓는다는게 단순히 공사이거나 경제활동의 일환이거나 아니면 그저 미친짓이거나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아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임을 이 책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신도시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그 곳에서는 자신들의 취향이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걸 느낀다. 딸이 태어나자 더더욱. 걷기를 좋아하는 그들에게 신도시는 보행자보다 자동차가 우선인 곳이었고 유명 체인점 식당들이 즐비하게 번쩍이지만 작은 단골 떡볶이집을 만들기는 쉽지 않은 곳, 서울의 일터를 오가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길에 버려야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넓은 집을 채워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돌이켜보며 "집이란 건 그냥 두면 점점 비대해지는 물건임을 살수록"(13쪽)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무언가에 홀린듯 '집짓기'를 시작한다.
이후 집터를 찾아다니고, 계약을 하고, 설계를 하고, 허가를 받고, 공사를 하고... 수없는 단게를 거치는데 어느 하나 만만한 낮은 언덕이 아니었다. 사실 공사과정을 읽다보면 나까지 주먹이 불끈 쥐어질만큼 모진 사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정말이지 남의 이야기임에도 '집지으면 10년 늙는다'는 어른들 말씀을 가슴으로 알아들을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이것은 결국 해내야하는 일이었고, 우리 누구나가 한번쯤 해볼만한 일이 아닐까? 옷이 맘에 안들거나, 미용실에서 잘라준 헤어 스타일이 마음에 안들어도 종일 마음 한쪽이 찜찜한데 내 삶을 몸땅 맡겨야하는 터전인 '집'이라는 공간은 훨씬 영향력이 클 것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여러면에서 워낙 덩치가 큰 상대이다보니 변화시켜보자는 의지는 일찌감치 접어버리고 '어쩔수 없다'고 나를 다독이며, 휘둘리며 살고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젊은 부부의 고군분투기를 읽으며 안타까움과 분노와 아직은 미완성인 해피엔딩에 시샘어린 시선을 보내면서도 흐믓한 마음으로 푹 빠져서 읽었다. 멋진 대리만족과 대리체험을 선사했고, 집과 공간에 대해 보다 투명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론 내가 직접 해보겠다는 용기는 오히려 조금 꺽였지만 말이다.
덧붙이자면 이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지은 이 집에 Craft House라는 이름을 붙였다. 참 잘 어울린다.
"공예 작품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것은 실용적이면서 동시에 심리적인 도구다. (중략) 공예는 단순히 예쁘게 생긴 사물이 아니며, 더 깊고 풍족하고 충만한 삶으로 이끄는 일상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자연스레 느끼면 좋겠다." (알랭 드 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