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영작문 : 5형식편 - 문장으로 완성하는 따라쓰기 누구나 영작문
오석태 지음 / PUB.365(삼육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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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영어 컨텐츠 전문 저자라는 작가 오석태의 영어책을 접했었다. 조금 서정적인 색을 입힌 색다른 영어교재여서 제목 <다시, 영어를 보다>처럼 다시 영어에 눈길을 주게 되었는데 이어서 다시 그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누구나 문장으로 완성하는 영작문 따라쓰기>라는 긴~ 제목을 가졌지만 얄팍한 책이다. 영어 컨텐츠 전문가답게 역시나 특색있게 편집된 영작문 책이었다.

사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데 가장 곤란을 겪는 부분은 우리말과 너무도 다른 영어의 '어순'일 것이다. 어순은 결국 사고의 진행순서와도 밀접할테고, 그러다보니 사고의 과정과 방향 자체를 영어식으로 바꾸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그저 띄엄띄엄 영어를 접하고, 단어를 달달 외워서는 해결되기 힘든 문제처럼 보인다. 결국 어떤 순서로 단어들을 늘어놓을 것인가, 영어식으로 사고하는 훈련 같은 것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을 하기 위해서도 영작문은 영어의 단계 단계를 거치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은 1형식에서 5형식까지, 핵심적인 문장을 제시함으로써 영어식 문형의 기초를 익히고 영어식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모두 100개의 문장이 실려있는데 사실 그리 많은 양이라고 볼 수도 없고, 굳이 난이도라는 걸 따지자면 초급에서 초중급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영어식 사고를 익히기에 적합한 구성과 예문들을 잘 추려담고 있고, 분량이 적은 것 역시 오히려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어서 편안하게 여러번 읽으며 영작문의 기본을 다지기에 좋은 책으로 보였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다른 영작문 책들과의 차별점은 책제목 '따라쓰기'가 말해주듯 따라쓰면서 연습할 수 있게 편집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도 필기체로 따라쓸 수 있도록 되어있다. 한 페이지의 기본 구성을 보면 이런 식이다. 먼저 우리말을 제시하고, 그에 들어간 주요 어휘를 알려준다. 그다음 우리말 순서로 단어들을 나열하고, 다시 영어 어순으로 우리말을 나열한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영어문장을 보여준다. 이처럼 일단 우리말의 어순을 영어 어순으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초점이 있다. 그리고 완성된 문장을 필기체로 적어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필기체는 중학교 입학하면서 몇 번 써봤지만 지금은 거의 '추억의 글씨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다시보니 반갑네...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고 옛기억을 떠올리며 따라 써보다보니 부드럽게 흐르는 맛이 제법 좋았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는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즐거움을 준다. 옆에 노트를 두고 적어내려가다보니 영작문 공부가 아닌 필기체 연습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어쨋든 이것도 일거양득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어려운 책, 두툼한 책을 들고 낑낑대기보다 조금 편안하게 영어어순을 머리로 익히고 손으로 써보고 말로 소리내어 연습하기 좋은 책이었다. 물론 한 권으로 영어를 끝낼 수 있는 마법의 책은 없다는걸 우린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너무도 넘쳐나는 영어 교재들 중에서 보다 효과적인고 내게 맞는 교재를 고를수는 있을 것이다.  영어를 어느정도 자연스럽게 말하는 수준이라면 멋진 필기체 연습을 위해 사용해볼 수도 있겠고, 단어 수준에 비해 아직 영어식 문장구성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한번쯤 살펴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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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수업 - 섬마을 젊은 한의사가 알려주는 쉼의 기술
김찬 지음 / 웨일북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만병통치약이나 불로초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단어가 되었고, 그 자리를 메꾼 것이 '잘 먹고 잘 쉬고 스트레스 줄이고'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한편으론 건강을 위해 병원과 약을 찾지만 그만큼 어떻게 잘 먹고 잘 쉴 것인가에 대한 강의나 책들도 많이 찾아보는 것 같다. 이 책은 질병보다는 사람을 보고 싶다는 젊은 한의사가 '휴식'에 대해 쓰고있는 책이다. 우리에게 왜 휴식이 필요한지, 제대로 쉰다는 것이 뭔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수업을 하듯 총 4교시로 실려있다.

이 책이 내 마음을 끈 가장 큰 이유라면 표지이다. 평소 낯선 곳에서 빈의자를 발견하면 사진을 찍곤 했는데, 하얀 표지에 그려진 미니멀한 빈 의자가 '쉼'이라는 이 책의 키워드와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표지 속 빈 의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언제든 몸과 마음을 앉힐 수 있을 것 같은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성장하면서 쉼없이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시기, 그리고 찾아온 알수없는 통증과 불안을 겪던 시기를 거치며 작가가 다시 펴보게 된 책이 학창시절 잠시 공부했던 <양생학 養生學>이었다고 한다. 그저 시험과목의 하나였던 그 책에서 그가 읽어낸 성인들의 지혜의 요체는 '비워내고 휴식하라'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이 때 휴식에는 마음을 다시리고 욕심을 비워 삶의 균형을 찾으며 자신의 삶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1교시 수업의 부제는 '피로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이다. 대체로 한병철의 <피로사회>나 알랭드보통의 <불안> 등에서 다뤄진 내용들, 즉 자유라는 이름아래 열심히  하면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초래한 패배주의와 자기착취 등을 논하며 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소극적 휴식이 아닌 보다 적극적 노력이란 의미의 휴식을 이야기한다.

외부의 물질이나 서비스가 내 상처를 치유해줄거란 기대, 소비를 부추기는 힐링 산업에 휩쓸려 수동적 쾌락에 빠지게되면 휴식은 커녕 더 피곤해져 버리고 주머니만 털린 씁쓸함을 느끼게 될테니 말이다. 욕망에 기인한 자기착취를 수동적 쾌락으로 치료하려는 것은 결국 또다른 욕망으로 옮겨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홍삼 권하는 사회'라는 꼭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아마도 내가 요즘 남편과 아들들에게 홍삼을 권하고있어서 제 발이 저렸던 모양이다. 작가 말처럼 자기착취를 부추기고 있는 느낌이랄까. '건강'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기능'을 향상시키려고 먹이고 있는 느낌이랄까... 무심히 봐넘겼던 홍삼 광고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2교시, 마음수업에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욕망이라고 말하며 욕망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자크 라캉의 유명한 말을 이용하면서 작가는 타자의 욕망을 따르는게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쨋든 내 것은 아니므로, 타자의 욕망을 고민없이 받아들일수록 주체인 '나'는 점점 소외되어 간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최근 부쩍 자주 접하게 되는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있는데, 이 장에서는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꼼꼼히 다루고 있었다. 한의학에서 분노는 칠정의 하나로, 생존본능과 연관되어 꼭 필요한 감정으로 본다고 한다. 하지만 풍족해진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생존에 대한 강박이 점점 강해져 사람들이 더 자주, 쉽게 분노한다. 작가는 화를 내는 두 단계의 과정을 말하며 각 단계별로 화를 적절히 처리할 수 있는 팁을 알려주고 있다. 사실 고대부터 분노를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도 어렵다고 보고 양생의 기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사실 많은 생각과 감정, 선택 등이 그저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술이 술을 먹듯, 생각이 생각을 불러 그야말로 생각지도 않은 늪 속에 빠진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러다 퍼뜩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며 지레 깜짝 놀라버리곤 한다. 작가는 이렇게 자동화되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본질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으로 '명상'을 제시한다.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의미를 배제한 마음챙김 명상은 현재 미국과 유럽의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신체적, 정신적 질환의 치료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타인의 우로나 치료로는 충분치 않고,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의 시작과 끝은 결국 스스로를 바라보는 내면의 힘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마음챙김이란 지금 여기서 here and now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또렷이 알아차리는 것 awareness 을 말합니다

3교시 밥상수업은 잘먹는 태도에 관한 내용인데, '무엇을 먹느냐보다 무엇을 안먹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옛 주나라 기록에 보면 여러 의사들 중에서 식사담당 食醫를 높은 지위에 놓았다고 하니 옛 선조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면서, 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이치가 이리도 똑같을까 놀라게 된다. 특별해보이는 우리들만의 문제도 결국 늘 있어왔던 고리타분한 문제일 뿐인가보다. 고유한 나만의 문제라고 끙끙대고 있는 것들도 결국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일 뿐이겠지.

'배고픈 것인가, 외로운 것인가'라는 꼭지에서 작가는 양색에서 과식을 경계하는 이유는 적게 먹는 것이 생리적으로 좋을 뿐 아니라 몸에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음식을 탐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소비를 권하는 사회에서 소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 중 하나인 '음식'을 놓칠 리가 없다. 먹방열풍에, sns 까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새로운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하는 일종의 마케팅이 우리의 과식을 조장하고 있는것 같다. 한편, 잘 알려진 것처럼 우울감이나 정서적 공허감이 과식, 폭식을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는데 이렇듯 외부의 무언가를 소비하거나 소유함으로써 내면의 공허를 채우고 삶의 행복을 찾으려는 '소유적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적게 소유하고, 사랑하되 가지려고 갈구하지 않는 '존재적 삶'을 살 때 나의 삶을 능동적으로 완전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4교시는 습관수업, 잘 사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각 꼭지들을 보면 시간의 질서를 따르는 일, 쓸데없는 짓의 아름다움, 혼자 걷고, 함께 걷고, 그냥 또 걷기, 제대로 숨쉬고 있습니까. 같은 것들이다.

특히 요즘 '멍때리기', '쓸데없는 짓'에 대한 이야기들이 솔솔 나오고 있는데 삶이 고단할고 시간에 쫓길수록 이런 시간들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작가는 활동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체가 목적인 활동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두번째 활동, 즉 쓸데없는 짓을 통해 단순히 수동적 쾌락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지성과 능력, 탁월성을 능동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만약 당신이 오늘 누군가에게 '먹고 사는데 도움도 안되는 일을 뭐하러 그리 열심히 하나?'라는 말을 들었다면 당신의 삶은 어제보다 더 풍성해진 것입니다.

새로운 걸 발견하기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나의 마음 상태와 몸 상태를 고요히 돌아볼 수 있도록 일깨워주고 격려해주는 책이었다. 모두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진심을 담아 인사를 건네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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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어를 보다 - 31개의 핵심패턴으로 310개의 문장이 이어지는 마법같은 이야기
오석태 지음 / (주)담당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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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띠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영어를 다시 시작할 때다."라고. 영어를 '시작'한 것은 백만년 전의 일이고, '다시 시작'한 것은 너무 여러번이라 언제와 어떻게, 얼마나를 말하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그럼에도 결국 '다시' 시작하는 영어. '제발 마지막 '다시'가 되었으면 좋겠군'하는 체념섞인 생각을 하면서 책을 펼쳐들었다.

작가는 오석태, 영어 컨텐츠 전문 저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저서 목록을 보니 정말 영어 컨텐츠에 대한 모든 것들을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최신작인 이 책은 어쩐지 작가분의 그런 겹겹의 컨텐츠와 노하우가 쌓여서 만들어졌을거란 생각에 왠지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예전의 회화책들이 상황별로 편집되어 나오던 것에 비해 요즈음의 회화책들을 보면 패턴을 이용한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언제라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서점에 들를 때마다 영어 교재들을 스캔하고 시장조사를 하는 습관이 붙어버렸다. ㅠ)  이 책 역시 기본적으로 패턴을 이용한 교재이다. 모두 31개의 패턴을 제시하고, 각 패턴마다 단어만을 바꿔넣은 10개의 문장을 보여준다. 그렇게 모두 310개의 기본 문장을 통해 연습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문장들을 '다시 읽다' 파트를 통해 읽어보고, 마지막으로 '다시 쓰다' 파트를 통해 써볼수 있도록 되어 있다. 보고, (연습하고), 읽고, 쓰기. 310개의 문장을 시청각적으로 반복 경험해볼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다. 그리고 출판사 앱을 통해 MP3 파일로 들어볼 수도 있다.

흔히 사용되는 문장들의 패턴을 제시하고, 연습할 수 있는 책들은 참 많은데 이 책만의 특장점은 무엇보다 단어의 쓰임을 설명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꿔넣은 문장 속 단어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단지 그 뜻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뉘앙스까지도 설명하고, 나아가 소설이나 영화 대사 속에서 그 단어가 실제 어떻게 쓰였는지를 제시해준다. 유명한 명작 속 주인공의 입을 통해 들리는 패턴과 단어들은 뭔가 묘하게 허영심을 자극해주기도 하고, 그 책이나 영화를 떠올리며 따라서 말해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문장이나 단어의 느낌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녀는 ~하게 행동했다'라는 간단한 패턴에 달려있는 'She nodded'라는 문장, 이정도 쯤이야.. 할 수 있지만 한장을 넘겨 '다시 스토리텔링' 코너를 넘겨 읽다보면 덴브라운의 <인페르노>에 나왔던 멋진 대사로 탈바꿈한다. "She nodded in agreement" 라는 문장과 영화 포스트를 보게되면 말이다.  모든 단어와 문장들이 이처럼 스토리의 일부로 다시 보여지니 단어는 자연스럽게 친숙해지고, 이미 본 책이나 영화를 마주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편으로 'I know him' 과 'I know of him' 처럼 혼동되기 쉬운 문장의 의미와 쓰임에 대해서도 잘 짚어주고 있다.

이렇게 310개의 문장을 다 보고 익히고 나면 '다시, 읽다' 파트가 시작된다.앞서의 문장들을 활용해 하나의 스토리를 보고있어 마치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읽어내려가도록 되어 있는데, 모두 앞서의 어휘와 문장들을 활용한 것들이다. 요렇게 문장들을 구성해 이야기를 꾸미는데 정말 공이 들었을것 같다.

난이도를 본다면 초급자라도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단어들의 유의어까지 공부하고, 여러번 연습해보고, 소설 속 문장들을 직접 찾아 읽어보는 등등 스스로 확장해서 영어를 익혀간다면 중급까지도 충분히 향상시켜 나갈 수 있는 교재로 보였다. 붙들고 진지하게 '공부'하는 느낌이라기 보다 가볍게 패턴을 익히면서 영화나 소설 속 문장들을 접하듯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었다. 당분간 들고다니며 다시 한번 '다시' 영어를 보아야겠다. 내 인생에서 영어는 영원히 '미워도 다시한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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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특별판, 양장)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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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전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를 읽었다. 책 안 쪽에 <1984>와 <시녀 이야기>의 계보를 잇는 소설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어라? 뭔가 눈에 익은 책인데... 보관함에 담긴지 꽤나 오래되어 거의 부패되어가던 책 <시녀 이야기>는 그렇게 살아남아 쇼핑카트에 담겼고, 파란 에코백과 함께 내게로 왔다.

디스토피아의 이미지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위 소설들이 그리고 있는 세계는 철저한 통제사회, 감시사회이다. 기술의 발전은 편리함이라는 점에서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는 점차 기술의 함정 같은 곳으로 자진해서 걸어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기꺼운 마음으로 오늘도 구글신에게 나의 정보를 갖다 바치고 있지않은가. 완전한 통제와 감시의 기술적인 장벽들인 그렇게 무너져가고 있지만 당장의 편리함에 빠진 우리는 조금씩 삼켜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누가? 우리를 삼키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이다. 공해와 질병으로 출산율이 급감하고,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나라. 그 곳에서 임신이 가능한 모든 여성은 '시녀'라는 이름으로 관리된다. 아직 과거의 자유로운 시대의 기억을 가진 30대 초반의 주인공은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현재의 기괴한 가치관을 수용하려고 애쓴다.  스스로를 겁쟁이라 자책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행주는 하얀 바탕에 파란 줄무늬가 있다. 행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가끔 이렇게 문득 비치는 정상적 삶의 흔적이 매복하고 있는 병사처럼 옆에서 나를 덮칠 때가 있다. 평범한 것들, 일상적인 것들, 세찬 발길질처럼 과거를 환기시키는 것들. 문맥에서 떨어져 나온 행주 한 장을 보며 나는 그만 헉 하고 숨을 멈춘다." (85쪽)

과거는 그렇게 곳곳에 널려있지만, 또한 그 어디에도 없다. 자신이 낭비해버렸던 '남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그 자유로움'을 그녀는 갈구하지만 이미 더이상 허용되지 않는 자유이다. 여전히 또렷이 기억하는 자유, 하지만 이제는 놓쳐버린 자유. 그녀는 자유에 대해 무지하지 않다. 다만 노력을 기울여 무시할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조차 알지 못할만큼 아예 무지한 여자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차피 나는 이 순간 속에 있고, 탈출구는 없다. 시간은 덫이고, 나는 갇혀 옴짝달싹도 못한다. 내 비밀 이름과 과거로 향하는 길은 모두 잊어야 한다. 내 이름은 이제 오브프레드고, 여기가 내 살 곳이다."

이런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생각이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

"달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소.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오. (중략) 더 좋은 세상이라 해서, 모두에게 더 좋으란 법은 없소. 언제나 사정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조금 있게 마련이지."

하긴, 인간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이 '더' 나은 일이라는 최소한의 편리한 확신이 없이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겠는가.

주인공이 마지막까지 가지는 희망은 그냥 '사는 것'이다. 탈출을 시도하거나, 체제에 맞서 투쟁하는 주인공이 아니다.

"고통은 싫다. (중략) 어떤 식으로든, 계속 살아가고 싶다. 내 몸은 다른 사람들 마음대로 쓰라고 맡기겠다. 그들이 내 몸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해도 좋다. 나는 비굴하다."

살아가면서 인생에 많은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의 문장을 인용하자면 '무엇 하나 다른 것보다 나아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은 그저 장식적인 효과일 뿐이란 생각에 갑자기 쓸쓸한 마음이 든다. 결국 큰 시대의 흐름이나 감춰져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수많은 사회적 규제들, 타인의 시선들, 혹은 운명 같은 것들에 너무도 쉽게 휩쓸려버리는 개인의 자유의지나 선택 따위,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지 않을까. 나 역시 이 소설 속 여인처럼 다른 카드를 쓰기보다는 그냥 순응하며 살기를 선택했을 것 같다.

어이없게도 이 나라는 몇십년만에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시녀가 남긴 기록이 후대에 발견되지만 그 진위조차 의심받는다. 1938년생인 작가는 2차 세계대전 속에서, 히틀러 치하의 독일처럼 모든 분명한 것이 하룻밤새에 사라질 수도 있고, 변화가 번개처럼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하며 자랐다고 하는데 바로 그러한 체험이 이런 설정의 배경이 된 것 같다.

작가의 말을 하나 더 빌려오자면, 분명 미래사회 소설로 읽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없었던 일은 넣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정말 오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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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디자인 (10주년 기념판)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 안그라픽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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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가 착한 여자는 아닐지 몰라도, 책을 사고 만지작거리는 일이 취미생활 중 하나인 나에게 예쁜 책은 착한 책이다. 막상 써놓고 보니 내 지갑을 노리고 있으니 착한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마음에 드는 모양새를 가진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주는 충족감은 대체로 다른 욕망을 채웠을 때보다 오래가는 것 같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는 일본의 디자이너, 무인양품의 디자인 고문이기도 한 하라 켄야의 디자인 이야기를 담은 <디자인의 디자인>을 내 것으로 만들고, 읽고, 다시 책장에 꽂은 지금도 만족감은 남아있다. 읽는 즐거움과 소유하는 즐거움. 두가지의 긴 만족을 주는 '책사는 일'을 멈추기 힘든 이유이다. 발간 십주년을 맞아 기념판으로 발간된 이 책은 일단 하드장정이 천으로 싸여져 있다. 깔끔한 흰 색에, 띠지를 벗기고 나면 제목과 작가의 이름만이 오목한 속에 까맣고 깔끔하게 찍혀있다. 내지도 희고 도톰하면서 번쩍거리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흔히 책의 줄거리를 요약해놓으면 그 자체가 또하나의 새로운 텍스트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작가는 디자인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또하나의 디자인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제목이 <디자인의 디자인>이다.

내용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그 역사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본인이 해왔던 여러 디자인 작업들, 일본인으로서 느끼는 일본의 미의식 같은 것들에 대해 쓰고 있다. 디자이너로서의 생생한 현장 경험과 디자인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 철학 같은 것들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앞 쪽에는 10주년 기념판 출간에 붙이는 한국 여러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에 대한 짧은 글들이 실려있는데, 같은 듯 다른 다양한 관점들이 흥미롭게 읽혔다.

"책상 위에 가볍게 턱을 괴어보는 것만으로 세계가 다르게 보인다. 사물을 보고 느끼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 수없이 많은 보고 느끼는 방법을 일상의 물건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적으로 반영해가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디자인에 대한 참 쉽고도 깔끔한 정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위에 가볍게 턱을 괴어보는 것, 멍하니 벽지 무늬를 바라보는 것.. 이런 순간을 하루 속에 슬쩍 끼워넣는 것이 내 시간을 디자인하는 일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가 말하는 무인양품의 비전 또한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그는 무인양품의 상품을 통해 생활의 '기본'과 '보편'을 제시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것으로 충분한' 것을 만드는 것, 바로 세계 합리 가치 (World rational value)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익을 독점하거나 개별 문화의 가치관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미래를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억제하는 이성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책이나 종이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책에서, 어떻게 쓰여있건 늘 나의 흥미를 끄는 부분이다. 책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 시각, 종이책을 바라보는 작가의 미학적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오늘날의 종이는 미디어의 주역에서 내려와 실무적인 임무에서 해방된 덕분에 다시 본래의 '물질'로서 매력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중략) 디지털 미디어가 정보 전달의 실질적인 도구라면, 책은 '정보의 彫刻'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은 지능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는 감성과 통찰력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무엇보다 대상에 대한 애정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물을, 그 사물을 사용하는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자세히 오래 바라보는 노력이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 뭐든 제대로 한다는건 그런게 아닐까. 치밀하면서도 정중하게 대상의 본질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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