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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특별판, 양장)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전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를 읽었다. 책 안 쪽에 <1984>와 <시녀 이야기>의 계보를 잇는 소설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어라? 뭔가 눈에 익은 책인데... 보관함에 담긴지 꽤나 오래되어 거의 부패되어가던 책 <시녀 이야기>는 그렇게 살아남아 쇼핑카트에 담겼고, 파란 에코백과 함께 내게로 왔다.
디스토피아의 이미지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위 소설들이 그리고 있는 세계는 철저한 통제사회, 감시사회이다. 기술의 발전은 편리함이라는 점에서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는 점차 기술의 함정 같은 곳으로 자진해서 걸어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기꺼운 마음으로 오늘도 구글신에게 나의 정보를 갖다 바치고 있지않은가. 완전한 통제와 감시의 기술적인 장벽들인 그렇게 무너져가고 있지만 당장의 편리함에 빠진 우리는 조금씩 삼켜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누가? 우리를 삼키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이다. 공해와 질병으로 출산율이 급감하고,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나라. 그 곳에서 임신이 가능한 모든 여성은 '시녀'라는 이름으로 관리된다. 아직 과거의 자유로운 시대의 기억을 가진 30대 초반의 주인공은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현재의 기괴한 가치관을 수용하려고 애쓴다. 스스로를 겁쟁이라 자책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행주는 하얀 바탕에 파란 줄무늬가 있다. 행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가끔 이렇게 문득 비치는 정상적 삶의 흔적이 매복하고 있는 병사처럼 옆에서 나를 덮칠 때가 있다. 평범한 것들, 일상적인 것들, 세찬 발길질처럼 과거를 환기시키는 것들. 문맥에서 떨어져 나온 행주 한 장을 보며 나는 그만 헉 하고 숨을 멈춘다." (85쪽)
과거는 그렇게 곳곳에 널려있지만, 또한 그 어디에도 없다. 자신이 낭비해버렸던 '남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그 자유로움'을 그녀는 갈구하지만 이미 더이상 허용되지 않는 자유이다. 여전히 또렷이 기억하는 자유, 하지만 이제는 놓쳐버린 자유. 그녀는 자유에 대해 무지하지 않다. 다만 노력을 기울여 무시할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조차 알지 못할만큼 아예 무지한 여자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차피 나는 이 순간 속에 있고, 탈출구는 없다. 시간은 덫이고, 나는 갇혀 옴짝달싹도 못한다. 내 비밀 이름과 과거로 향하는 길은 모두 잊어야 한다. 내 이름은 이제 오브프레드고, 여기가 내 살 곳이다."
이런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생각이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
"달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소.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오. (중략) 더 좋은 세상이라 해서, 모두에게 더 좋으란 법은 없소. 언제나 사정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조금 있게 마련이지."
하긴, 인간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이 '더' 나은 일이라는 최소한의 편리한 확신이 없이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겠는가.
주인공이 마지막까지 가지는 희망은 그냥 '사는 것'이다. 탈출을 시도하거나, 체제에 맞서 투쟁하는 주인공이 아니다.
"고통은 싫다. (중략) 어떤 식으로든, 계속 살아가고 싶다. 내 몸은 다른 사람들 마음대로 쓰라고 맡기겠다. 그들이 내 몸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해도 좋다. 나는 비굴하다."
살아가면서 인생에 많은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의 문장을 인용하자면 '무엇 하나 다른 것보다 나아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은 그저 장식적인 효과일 뿐이란 생각에 갑자기 쓸쓸한 마음이 든다. 결국 큰 시대의 흐름이나 감춰져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수많은 사회적 규제들, 타인의 시선들, 혹은 운명 같은 것들에 너무도 쉽게 휩쓸려버리는 개인의 자유의지나 선택 따위,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지 않을까. 나 역시 이 소설 속 여인처럼 다른 카드를 쓰기보다는 그냥 순응하며 살기를 선택했을 것 같다.
어이없게도 이 나라는 몇십년만에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시녀가 남긴 기록이 후대에 발견되지만 그 진위조차 의심받는다. 1938년생인 작가는 2차 세계대전 속에서, 히틀러 치하의 독일처럼 모든 분명한 것이 하룻밤새에 사라질 수도 있고, 변화가 번개처럼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하며 자랐다고 하는데 바로 그러한 체험이 이런 설정의 배경이 된 것 같다.
작가의 말을 하나 더 빌려오자면, 분명 미래사회 소설로 읽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없었던 일은 넣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정말 오싹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