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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수업 - 섬마을 젊은 한의사가 알려주는 쉼의 기술
김찬 지음 / 웨일북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만병통치약이나 불로초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단어가 되었고, 그 자리를 메꾼 것이 '잘 먹고 잘 쉬고 스트레스 줄이고'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한편으론 건강을 위해 병원과 약을 찾지만 그만큼 어떻게 잘 먹고 잘 쉴 것인가에 대한 강의나 책들도 많이 찾아보는 것 같다. 이 책은 질병보다는 사람을 보고 싶다는 젊은 한의사가 '휴식'에 대해 쓰고있는 책이다. 우리에게 왜 휴식이 필요한지, 제대로 쉰다는 것이 뭔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수업을 하듯 총 4교시로 실려있다.
이 책이 내 마음을 끈 가장 큰 이유라면 표지이다. 평소 낯선 곳에서 빈의자를 발견하면 사진을 찍곤 했는데, 하얀 표지에 그려진 미니멀한 빈 의자가 '쉼'이라는 이 책의 키워드와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표지 속 빈 의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언제든 몸과 마음을 앉힐 수 있을 것 같은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성장하면서 쉼없이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시기, 그리고 찾아온 알수없는 통증과 불안을 겪던 시기를 거치며 작가가 다시 펴보게 된 책이 학창시절 잠시 공부했던 <양생학 養生學>이었다고 한다. 그저 시험과목의 하나였던 그 책에서 그가 읽어낸 성인들의 지혜의 요체는 '비워내고 휴식하라'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이 때 휴식에는 마음을 다시리고 욕심을 비워 삶의 균형을 찾으며 자신의 삶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1교시 수업의 부제는 '피로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이다. 대체로 한병철의 <피로사회>나 알랭드보통의 <불안> 등에서 다뤄진 내용들, 즉 자유라는 이름아래 열심히 하면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초래한 패배주의와 자기착취 등을 논하며 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소극적 휴식이 아닌 보다 적극적 노력이란 의미의 휴식을 이야기한다.
외부의 물질이나 서비스가 내 상처를 치유해줄거란 기대, 소비를 부추기는 힐링 산업에 휩쓸려 수동적 쾌락에 빠지게되면 휴식은 커녕 더 피곤해져 버리고 주머니만 털린 씁쓸함을 느끼게 될테니 말이다. 욕망에 기인한 자기착취를 수동적 쾌락으로 치료하려는 것은 결국 또다른 욕망으로 옮겨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홍삼 권하는 사회'라는 꼭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아마도 내가 요즘 남편과 아들들에게 홍삼을 권하고있어서 제 발이 저렸던 모양이다. 작가 말처럼 자기착취를 부추기고 있는 느낌이랄까. '건강'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기능'을 향상시키려고 먹이고 있는 느낌이랄까... 무심히 봐넘겼던 홍삼 광고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2교시, 마음수업에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욕망이라고 말하며 욕망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자크 라캉의 유명한 말을 이용하면서 작가는 타자의 욕망을 따르는게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쨋든 내 것은 아니므로, 타자의 욕망을 고민없이 받아들일수록 주체인 '나'는 점점 소외되어 간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최근 부쩍 자주 접하게 되는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있는데, 이 장에서는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꼼꼼히 다루고 있었다. 한의학에서 분노는 칠정의 하나로, 생존본능과 연관되어 꼭 필요한 감정으로 본다고 한다. 하지만 풍족해진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생존에 대한 강박이 점점 강해져 사람들이 더 자주, 쉽게 분노한다. 작가는 화를 내는 두 단계의 과정을 말하며 각 단계별로 화를 적절히 처리할 수 있는 팁을 알려주고 있다. 사실 고대부터 분노를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도 어렵다고 보고 양생의 기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사실 많은 생각과 감정, 선택 등이 그저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술이 술을 먹듯, 생각이 생각을 불러 그야말로 생각지도 않은 늪 속에 빠진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러다 퍼뜩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며 지레 깜짝 놀라버리곤 한다. 작가는 이렇게 자동화되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본질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으로 '명상'을 제시한다.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의미를 배제한 마음챙김 명상은 현재 미국과 유럽의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신체적, 정신적 질환의 치료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타인의 우로나 치료로는 충분치 않고,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의 시작과 끝은 결국 스스로를 바라보는 내면의 힘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마음챙김이란 지금 여기서 here and now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또렷이 알아차리는 것 awareness 을 말합니다
3교시 밥상수업은 잘먹는 태도에 관한 내용인데, '무엇을 먹느냐보다 무엇을 안먹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옛 주나라 기록에 보면 여러 의사들 중에서 식사담당 食醫를 높은 지위에 놓았다고 하니 옛 선조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면서, 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이치가 이리도 똑같을까 놀라게 된다. 특별해보이는 우리들만의 문제도 결국 늘 있어왔던 고리타분한 문제일 뿐인가보다. 고유한 나만의 문제라고 끙끙대고 있는 것들도 결국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일 뿐이겠지.
'배고픈 것인가, 외로운 것인가'라는 꼭지에서 작가는 양색에서 과식을 경계하는 이유는 적게 먹는 것이 생리적으로 좋을 뿐 아니라 몸에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음식을 탐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소비를 권하는 사회에서 소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 중 하나인 '음식'을 놓칠 리가 없다. 먹방열풍에, sns 까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새로운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하는 일종의 마케팅이 우리의 과식을 조장하고 있는것 같다. 한편, 잘 알려진 것처럼 우울감이나 정서적 공허감이 과식, 폭식을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는데 이렇듯 외부의 무언가를 소비하거나 소유함으로써 내면의 공허를 채우고 삶의 행복을 찾으려는 '소유적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적게 소유하고, 사랑하되 가지려고 갈구하지 않는 '존재적 삶'을 살 때 나의 삶을 능동적으로 완전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4교시는 습관수업, 잘 사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각 꼭지들을 보면 시간의 질서를 따르는 일, 쓸데없는 짓의 아름다움, 혼자 걷고, 함께 걷고, 그냥 또 걷기, 제대로 숨쉬고 있습니까. 같은 것들이다.
특히 요즘 '멍때리기', '쓸데없는 짓'에 대한 이야기들이 솔솔 나오고 있는데 삶이 고단할고 시간에 쫓길수록 이런 시간들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작가는 활동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체가 목적인 활동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두번째 활동, 즉 쓸데없는 짓을 통해 단순히 수동적 쾌락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지성과 능력, 탁월성을 능동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만약 당신이 오늘 누군가에게 '먹고 사는데 도움도 안되는 일을 뭐하러 그리 열심히 하나?'라는 말을 들었다면 당신의 삶은 어제보다 더 풍성해진 것입니다.
새로운 걸 발견하기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나의 마음 상태와 몸 상태를 고요히 돌아볼 수 있도록 일깨워주고 격려해주는 책이었다. 모두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진심을 담아 인사를 건네고 싶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