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디자인 (10주년 기념판)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 안그라픽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예쁜 여자가 착한 여자는 아닐지 몰라도, 책을 사고 만지작거리는 일이 취미생활 중 하나인 나에게 예쁜 책은 착한 책이다. 막상 써놓고 보니 내 지갑을 노리고 있으니 착한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마음에 드는 모양새를 가진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주는 충족감은 대체로 다른 욕망을 채웠을 때보다 오래가는 것 같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는 일본의 디자이너, 무인양품의 디자인 고문이기도 한 하라 켄야의 디자인 이야기를 담은 <디자인의 디자인>을 내 것으로 만들고, 읽고, 다시 책장에 꽂은 지금도 만족감은 남아있다. 읽는 즐거움과 소유하는 즐거움. 두가지의 긴 만족을 주는 '책사는 일'을 멈추기 힘든 이유이다. 발간 십주년을 맞아 기념판으로 발간된 이 책은 일단 하드장정이 천으로 싸여져 있다. 깔끔한 흰 색에, 띠지를 벗기고 나면 제목과 작가의 이름만이 오목한 속에 까맣고 깔끔하게 찍혀있다. 내지도 희고 도톰하면서 번쩍거리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흔히 책의 줄거리를 요약해놓으면 그 자체가 또하나의 새로운 텍스트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작가는 디자인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또하나의 디자인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제목이 <디자인의 디자인>이다.

내용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그 역사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본인이 해왔던 여러 디자인 작업들, 일본인으로서 느끼는 일본의 미의식 같은 것들에 대해 쓰고 있다. 디자이너로서의 생생한 현장 경험과 디자인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 철학 같은 것들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앞 쪽에는 10주년 기념판 출간에 붙이는 한국 여러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에 대한 짧은 글들이 실려있는데, 같은 듯 다른 다양한 관점들이 흥미롭게 읽혔다.

"책상 위에 가볍게 턱을 괴어보는 것만으로 세계가 다르게 보인다. 사물을 보고 느끼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 수없이 많은 보고 느끼는 방법을 일상의 물건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적으로 반영해가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디자인에 대한 참 쉽고도 깔끔한 정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위에 가볍게 턱을 괴어보는 것, 멍하니 벽지 무늬를 바라보는 것.. 이런 순간을 하루 속에 슬쩍 끼워넣는 것이 내 시간을 디자인하는 일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가 말하는 무인양품의 비전 또한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그는 무인양품의 상품을 통해 생활의 '기본'과 '보편'을 제시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것으로 충분한' 것을 만드는 것, 바로 세계 합리 가치 (World rational value)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익을 독점하거나 개별 문화의 가치관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미래를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억제하는 이성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책이나 종이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책에서, 어떻게 쓰여있건 늘 나의 흥미를 끄는 부분이다. 책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 시각, 종이책을 바라보는 작가의 미학적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오늘날의 종이는 미디어의 주역에서 내려와 실무적인 임무에서 해방된 덕분에 다시 본래의 '물질'로서 매력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중략) 디지털 미디어가 정보 전달의 실질적인 도구라면, 책은 '정보의 彫刻'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은 지능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는 감성과 통찰력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무엇보다 대상에 대한 애정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물을, 그 사물을 사용하는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자세히 오래 바라보는 노력이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 뭐든 제대로 한다는건 그런게 아닐까. 치밀하면서도 정중하게 대상의 본질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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