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별
엠마 캐럴 지음, 이나경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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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태어난 순간 곧바로 버려져 평생 이름조차 갖지 못한 존재,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만큼 마음 짠~한 괴물이 또 있을까. 지금은 에니메이션 등에서 귀여운 모습으로 그려져 친숙해져버린, 끝내 자신의 이름은 얻지 못하고 자신을 만든 박사의 이름으로 불리는 프랑켄슈타인. 겨우 10대 중반에 아버지의 제자와 사랑의 도피를 떠났다는 작가 메리 셰리가 19상의 나이에 처음 구상하기 시작했다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이렇듯 책의 내용 뿐 아니라 그 탄생 스토리도 흥미로운 소설이다. 소설 <이상한 별>은 바로 그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쓰여진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작가인 엠마 캐럴은 청소년을 위한 창작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프랑켄슈타인> 집필에 대한 역사적 기록, 즉 '여름이 없는 해'로 알려진 1816년 밤 한 저택에 모인 작가들이 유령 이야기를 하나씩 지어내기로 한 후 이 소설이 쓰여졌다는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며, 이 책을 읽고 독자들이 <프랑켄슈타인>과 메리 셸리에게 더 큰 호기심을 갖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보면 나는 <프랑켄슈타인>과 메리 셸리에 대한 관심(애정)에서 이 책 <이상한 별>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으니 역주행인 셈이다.

이야기는 한 장의 초대장에서 시작된다. 준비물은 '모인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할 유령 이야기', 초대자는 바이런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시인 바이런)이다. 이렇게 해서 1816년 6월의 어느 폭풍우 치는 밤, 바이런과 초대받은 네 명은 제네바 호숫가 한 저택에 모이게 된다. (초대받은 사람 중 한명은 당연히도 메리 셰리이다.) 그리고 그들을 시중들기 위해 그 곳에 있는 또 한명,호기심 가득한 흑인 소년(하인) 펠릭스의 존재가 스토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어린 시절, 여름 밤에 동네 계단 같은 곳에 모여앉아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놀았던 기억이 흐릿하게 떠올라 책 속의 장면들과 겹쳐졌다. 으스스하게 이어지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뚝 끊기면 그제서야 등줄기가 '오싹' 일어서던 그 느낌. 이야기 속 귀신이 내 등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그 서늘한 느낌. 그런 날 밤에는 늘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런 기억 탓일까? 바이런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고, 갑자기 천둥이 울리고, 모두의 얼굴이 가면처럼 창백해지고, 소년 펠릭스의 맥박이 빨라지고...  이런 장면이 마치 오랜 전에 내가 그 속에 앉아있었던 것처럼 아련하면서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고, 몇몇이 둘러앉아 집중해서 그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주는 분위기가 내 기억을 혼동시키고 있는가보다.

그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현관문을 두드린다. 낯선 방문객은 이미 죽어버린(것처럼 보이는) 소녀였다. 무서운 이야기는 끝났고, 이제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고 해야할까. 진짜 '일'이 벌어지자 하나둘 응접실을 떠나버리고 거실에는 이제 메리 셰리와 펠리스 그리고 몸에 알 수 없는 흉터가 있는 소녀만이 남겨졌다. 그리고 죽은 듯 보였던 소녀의 몸이 조금씩 따뜻해지더니 마침내 깨어나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찾아 왔어요."

이 소녀 리지를 통해 이제 또다른 새롭고 오싹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리지의 시점으로 쓰여진 2부 '리지의 이야기'는 리지의 시점으로 쓰여져 있는데 분량이나 내용으로 볼때 1부와 3부는 2부 '리지의 이야기'의 큰 액자가 되고 있다.

리지가 살았던 곳은 전통적인 문화와 가치들이 여전히 유효한 시골마을, 하지만 변화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새로운 발명과 발견의 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 곳으로 이사와 수상한 실험을 하는 과학자, 자꾸만 사라지는 마을의 가축들, 벼락을 맞아 상처입고 눈이 멀어버린 리지.. 이야기는 점차 '괴물'의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데...

마치 리지의 모험소설 같은 느낌으로도 읽히는 스토리는 과학만능주의, 과학에 대한 맹신 등이 또다른 문제로 나아가는 당시의 양상을 담고있다. 인간을 위한 발명, 발견이라기 보다는 한 과학자의 명예를 위해 개별적 인간은 오히려 수단이 되버리는 연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졌던 과학 여명기의 그림자들. '인류'라는 추상이 '개인'이라는 구체적 존재를 위협하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정신병을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터무니없는 뇌실험과 뇌수술이 행해지기도 하지 않았던가.

"과학자로서, 저는 사람보다는 인체에 대해 생각하는 편을 더 선호하죠." (217쪽)

리지의 이야기가 끝나고 3부에서 모든 이야기는 권신징악,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사랑과 상냥한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모두 괴물이 된다"는 (당연한 이야기라서 오히려 쉽게 잊고 지내는) 교훈적인 마무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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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심령학자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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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경로로 꽤 오래 전부터 귀에 익숙한 작가, 배명훈. 내게는 까닭없이 베일 뒤에 숨어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던 작가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소설을 읽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뭔가 선입견을 주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작가의 이력을 힘껏 잊어버리며 첫 장을 펼쳤다.

'과거'를 알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수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과거', '역사'에 대해 우리는 꽤나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낸 것들이 과거라는 축적된 총량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일부분일 뿐일 것이다. 이 책이 상정하는 고고심령학자들은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과거의 조각들을 살려내는 이들이다. 혼령을 보고, 그들을 직접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방법으로 말이다.

고고심령학 / 고고학 연구에 도움이 되는 심령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츠정해 역사 연구의 끊어진 고리를 연결해주는 학문.

물론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학문이지만,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만큼 직접적인 역사 연구방법도 없을 것이다.

소설은 서울에 갑자기 나타난 검은 성벽의 미스테리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빙의 현상으로 보여지면서 이 현상을 진지하게 추적하는 몇몇 고고심령학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성벽이 점점 자주 출몰하고 점점 파괴적이 되어가는 가운데 '누가', '왜' 빙의하는지, 빙의가 끝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알아내려는 이들의 추적은 조금씩 구체화되어간다.

뭔가 굉장히 비과학적으로 보여지는 소설의 설정과는 달리 그들이 소위 '요새빙의' 현상을 추적해가는 과정은 일종의 지적인 게임처럼 보인다. 하나의 단일한 문화요소가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그 지역마다의 개별문화를 흡수하고 변형되어 가는 과정들이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그리고 일부 공명심에 사로잡힌 고고심령학자들의 행태들, 사건 자체보다는 이것을 흥행시킬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의 모습은 진지한 유머처럼 읽히기도 했다.

SF이거나 판타지이거나 괴담이거나.. 그 어디쯤에 자리잡고 있었던 소설.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재미있었고,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에 크게 호소했던 소설이었다.

한편으로 줄거리와 관계없이 저절로 다시 읽게되는 문장들, 맞아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그런 문장들도 많았다.

"오래된 망원경은, 자세히 볼 필요는 없는 대신 긴 시간을 들여 지켜봐야 하는 별들을 관측하는 일에 노년을 바쳤다."  사람도 망원경도 노년에 가장 내세울 것은 시간인지 모르겠다. 자세히 볼 필요는 없지만 긴 시간을 들여 지켜봐야하는 별들은 어떤 별을 말하는 걸까? 천문학의 '천'자도 모르니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자세히 보기보다 멀리서 오래 지켜봐주길 바라는건 다만 그 별들만은 아닐 것 같다.

이런 문장에도 포스트잇을 붙이고 말았다. "웃어주지 않았다는 자부심. 별것도 아닌 것에 저항해놓고 별것도 아닌 성취감을 챙겨가는 청춘들." 맞다, 청춘은 바로 그런 묘한 시기이고, 여전히 철들지 못한 나는 청춘의 가장 부끄러운 조각들을 여전히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휘두르며 살고있는건 아닐까?

"각주 가득한 700쪽짜리 학술 서적 사이에 낀 삽화 세 장처럼 귀한 날이었다." 한창 겨울, 뜻밖에 봄날씨같은 순간을 묘사한 장면이다. 학술 서적에 묻혀 지내면 귀하고 소중한 걸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모든 비유는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의 한계 속에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옷가게를 하던 지인이 돈계산을 할 때면 늘 '저 돈 벌려면 티셔츠 몇 장을 팔아야되는데' 했던 생각이 문득 나기도 했다. 사실 글자가 빽빽한 책에서는 흐릿한 흑백사진 한 장도 큰 위안이 되긴 한다. 끄덕끄덕.

"저는 인류를 신뢰해요. 다만 구체적인 인간을 믿지 않을 뿐이지, 추상적인 인간은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 속에서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모든' 인간은 추상적인 인간이 아닌 구체적인 인간이라는게 비극인걸까? 구체적인 대학원생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쓰고있다. "구체적으로 멍청하고 저마다 독창적으로 게으르며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무기력하고 겁에 질려 있는 인류의 표본들"이라고. 나의 매우 독창적인 게으름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독창적인 비난에 딱 어울릴만한.

"공부라는 건 스스로 단단히 마음을 먹지 않으면 이어지기보다는 끊어지기가 더 좋은 사치스러운 취미였다."  지금까지 어떤 시대에서도 의식주와 직접 관련이 없는 활동을 하는 것은 '사치'이며 '과시'의 한 표현이었다는걸 생각한다면, 오늘날 누군가가 입시나 취업(돈벌이)와 관계없는 공부를 한다면 그다지 크게 격려받지 못할 것이고, 사치스런 취미로 여겨질 것이다. '사농공상'의 전통이 있다보니 공부하는 일을 높이 치면서도, (구체적인 성취 없이) 공부하는 사람을 은근히 백안시하는 분위기 또한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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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파리 - 한 조각.한 모금.한 걸음, 더 맛있는 파리 빵집.카페 가이드북
양수민.이지연 지음 / 벤치워머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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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이런 부제를 만들어 봤다.
"파리 바게트의 빵이 아닌, 파리의 바게트 빵이 먹고싶다면 이 책을 읽으세요" (좀 허접하긴 하다 ㅠ) 이 책은 말하자면 파리의 빵에 대한 책이다.
정식 부제는 '한 조각, 한 모금, 한 걸음 더 맛있는 파리 빵집, 카페 가이드북'

두 작가 모두 단순한 미식가가 아닌, 그저 빵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빵순이들'이 아닌, 무려 르 꼬르동 불루에서 프랑스 제과를 전공한 전문가들이다. 그래서 단순히 여행자로서 예쁜 까페나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며 쓴 책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느낌이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감각적인 제과점 입구와 인테리어, 맛있는 빵과 디저트들, 멋쟁이 셰프들의 사진을 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리고 꼼꼼하게 소개된 빵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새 입에 침이 고인다. 맛있는 빵을 위해 소금 한 톨, 버터 한 조각도 고르고 또 고르는 파티시에들의 엄격한 고집과 배려에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난 그다지 맛에 예민하지 않아, 라고 쿨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이라도 사진 속 빵들의 모양새를 살피는 것으로 충분히 황홀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빵은 빵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무심히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예감조차 하지 못했던 맛으로 입 안이 가득 찬다면... 그 순간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생의 한 컷이 될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빵 하나로 그런 경지로 안내하기 위해 지금도 제과실에서 지혜와 노동을 쏟아붓고 있을 많은 제빵제과사들에게 저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무언가에 인생을 거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나를 경건하게 만들어준다.

그럼 ( 경건한 마음으로) 각별히 기억에 남는 빵을 소개해보자면 우선 '대나무 숯 화이트 초콜렛'이다. 숯을 넣어 까만 빵이라는데, 새로운 식재료에 대한 도전이 거의 무모함의 수준이란 생각이 들었다. 숯이 들어간 초콜렛맛 빵이라니.. 너무나 맛있어서 3분거리의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먹어버렸다는데... 이렇게 도전적인 빵을 만드는데는 얼마나 많은 실패가 필요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꼭꼭 먹어보고 싶어진다. 제비꽃을 모티브로 한 빵도 특별했다. 느리게 걸어야만 발견할 수 있을만큼 작고 소박한 빵집, 그곳에서 플로리스트 아내를 위해 만든 제비꽃 보랏빛 빵을 먹으며 파티시에의 에너지 파동을 느껴본다면 행복이 성큼 다가설것만 같다.

처음 마카롱을 먹어보고 너무 단 맛에 질겁했던 기억, 이후로 좀더 균형잡힌 맛의 마카롱을 먹었던 기억, 그리고 이제는 진짜 완벽한 마카롱을 찾아서 파리로 떠나고 싶어진다. 파리의 어느 길목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들렌이 있는 빵집에 가게 된다면 거의 장식용으로 전락한 책장 속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리며 화들짝 놀라겠지. 그 유명하다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의 복잡함을 피해 옆쪽에 있다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카페에 들러 투박한 쿠키로 요기를 하게 된다면 분명 멋진 한 순간이 될 것이다. 무엇이든 파리만의 스타일로 변신시켜버리는 그들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싶다.

맛있는 빵이야기, 감동이 있는 빵만드는 사람들 이야기, 멋진 파리의 골목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수년전 잠시 들렀던 파리, 그 아름다운 도시와 맛있는 빵을 남겨두고 떠나며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곳이다. 언젠가 다시 파리를 찾는다면 빵빵! 빵을 저격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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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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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눈부신 표지를 보았을 때, '이 책은 무조건 읽어야해'라고 생각했었다. 이어서 이 책이 두 여인의 60년에 걸친 우정 이야기이며, 4부작의 첫 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마지막 권이 나올 때까지 아껴뒀다가 단번에 읽어야겠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하나 둘 씩 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2권, 3권이 출간되고, 올해 안에 4권이 나온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이제야말로 책을 읽기 시작할 때야.'

그날 저녁 돈 아킬레의 현관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층계를 난간을 따라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기로 결정한 바로 그 순간 릴라와 나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이렇게 긴긴 이야기는 시작된다. 첫 권은 유년기에서 사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릴라와 레누, 1950년대 빈곤한 나폴리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소녀의 우정과 성장이 펼쳐진다. 한 아이가 어른이 되는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그 시간만큼 흔들리는 감정과 그 감정에 할퀴인 상처들이 필요한 것인지... 우정을 나눌 눈부신 친구가 있다면 그 시간들은 상처투성이인 가운데서도 얼마나 찬란할 수 있는지...

책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남아있지 않다고, 그래서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작가는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도 서면으로만 한다니 '그인지? 그녀인지?' 조차도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달리보면 그만큼 이 책에서 할 말을 모두 했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4부까지의 긴긴 드라마의 시작을 예고하듯 첫 세 쪽은 등장인물 소개에 할애되어 있다. 처음 접하는 이탈리아어 이름이 낯설지만, 낯선만큼 '분위기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조심스럽게 한명 한명씩 소리내어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읽기를 시작했다.

소설은 레누의 이야기로 쓰여져 있다. 폭력과 죽음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처음 만난 릴라는 확신에 차 보였다. 레누는 "내 행동과 내가 항상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느꼈지만 "릴라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 아이였다." 레누는 모범생이고 릴라는 못된 아이였지만 결국 둘은 친구가 된다.

한 권 전체가 숱한 에피소드들로 엮여있는데, 유년기 에피소드 중 가장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둘이 바다를 보러가는 장면이었다. 허락되지 않은 시간에, 낯선 곳에서 느끼는 설레임과 두근거림, 그리고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일상의 경계에서 한발짝 더 나간다는 것이 어린 시절의 나를 얼마나 가슴뛰게 했었는지, 그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시도 역시 나의 시도처럼 실패로 끝나지만, 아름다운 흉터가 남는 실패가 아니었을까.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던 릴라는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진학하지 못하고, 레누는 상급학교로 진학해 공부를 계속한다. 하지만 모든 일과 공부는 릴라의 손길을 거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겼고, 레누는 릴라의 눈부신 지성과 열정에 끝없이 좌절하며 아등바등 모범생의 길을 걷는다.

그녀는 독립적인데 나는 그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내가 접근할 수 없는 내면의 세계가 있었기 때문에, (중략) 슬프고 비참했다.


레누의 세상이 논리의 대상이었다면 릴라의 세상은 직관의 대상이었다. 논리의 층을 아무리 착실하게 두텁게 쌓아올려도 결국 직관에 이르지는 못한다. 객관적인 평가나 조건을 아무리 유리하게 가져가도 결국은 평생 릴라의 뒤를 쫓게될까봐 두려운 레누의 마음이 책을 읽을수록 아프게 다가왔다.

평생 그녀를 뒤쫓아 다니거나 반대로 그녀가 나를 뒤쫓아 온다고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어느 경우건 그녀보다 못한 것은 나였다.

매일같이 선생님들과 학교 친구들과 자기 자신에게 근면성실성을 증명하는 일에 힘쓰는 레누, 하지만 내면의 외로움은 점점 커져가고, 학교를 떠나야할 시간이 다가온다. 그리고 점차 거친 마을 사람들과도 이질감이 커져간다. 한편으로 만 16세의 릴라는 그 동네에서 가장 부유한 식료품상의 장남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면서 첫 권, 나의 눈부신 친구는 끝이 난다.  아름답고 부유한 릴라는 이제 그 마을의 재클린 캐네디였다. 릴라는 더이상 혼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지 않았고, 책도 읽지 않았다.

릴라는 무대의 여주인공처럼 머리를 빗어 넘기고, 영화배우나 공주 같은 옷을 입고 스테파노의 팔을 끼고 거리를 활보했다. 나는 창문에서 릴라를 바라보면서, 과거의 그녀 모습이 망가져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편지에 쓴 아름다운 문장들과 금이 가고 구겨진 구리 냄비를 생각했다.

레누에게 릴라는 너무도 간단히 자신을 응달로 만들어버리는 눈부신 친구였고, 그럼에도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하지만 결혼식 날, 릴라는 오히려 레누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이 말을 들은 레누의 심경이 얼마나 복잡했을까? 얼마나 격렬한 감정들이 그녀를 훑고 지나갔을까?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는 '지적 교만함을 타고난 것은 릴라이지만 이를 꽃피우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릴라에게 밀리는 화자 레누다'라고 쓰고있다. 자신은 평범하지만 누군가의 '비범함'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레누가 무엇을 이루든 그녀의 열등감을 완전히 해소시킬 수 는 없지 않을까.

이제 둘은 완전히 다른 길에 접어들 것이다. 2권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전개될지, 둘은 자신의 운명 속에서 어떤 태도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될지 너무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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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도도 - 사라져간 동물들의 슬픈 그림 동화 23
선푸위 지음, 허유영 옮김, 환경운동연합 감수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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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간 동물들에 대한 슬픈 보고서라고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작가가 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어서 아름다운 동화처럼 읽혔다. 하지만 많은 전래동화들이 그러하듯이 매혹적이면서도 잔혹한 동화였다. 내가 그들이 아니고 인간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질만큼.

인간에 의해 멸종된 18종의 동물 이야기들, 그들은 참으로 여러가지 이유로 죽어갔다. 하나의 種이 만들어지기까지 헤아릴수 없이 긴 시간과 셀 수 없는 진화의 선택을 거쳐왔을텐데, 인간의 손에 의해 사라지는데 걸린 시간은 깜짝 놀랄만큼 짧았다. 때론 모자 장식을 위해서, 때론 단백질이 필요해서, 때론 그저 재미삼아서 우리는 그들을 죽였다. 나는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들의 이름을 접한다. 후이아, 고달루페카라카라, 주머니늑대, 모래고양이, 코끼리새...

이야기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새삼새삼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에 모골이 송연해지기까지 했다. 심지어 같은 인간까지도 단지 '다르다' 혹은 '미개하다'는 이유로 멸종시키기까지 했다는게 놀라울 뿐이었다. 이미 알고있는 (혹은 배운) 이야기라고해도, 언젠가 들어본 이야기라고해도 그 충격이 줄어들지 않는 종류의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특별히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동물은 파키스탄의 모래고양이였다. 고양이라는 동물이 주는 아련하고 연약한 느낌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사라져간 과정이 조금 특별했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살았던 그들은 "뱀과 죽기 살기로 싸울 만큼 용감하지만 사람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온순"(126쪽)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랑스럽고 온순한 이들을 애완용으로 길렀고, 이들은 "사람의 집에서 애완용으로 길러지는 것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따랐다"(126쪽)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번식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의 보호와 사랑 속에서 점점 죽어가고 사라져간 것이다. 사막이라는 극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모래고양이를 멸종시킨 것은 바로 그들의 온순함이었다니.

이제는 박제된 모습으로 자연사 박물관에 남겨진 수많은 동물들, 자연스러운 진화와 멸종의 과정을 거친 동물들도 있지만 인위적인 파괴로 인해 멸종해가는 동물들도 있다. 인식이 많이 바뀌어 나름대로 보호책을 마련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개발에 따른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 등이 진행되고 있는만큼 생각보다 빠른 속도와 규모로 멸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고있다. 언젠가 읽었던 <여섯번째 대멸종>이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했다

 
            
"생물종 하나가 멸종할 때마다 인류는 고독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한다. 다른 생물종의 동행 없이 우리가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을까?"

결국 우리 인간도 자연과 환경의 사슬 안에 있는 존재이고, 종 하나하나는 그저 단순히 그 새 한마리가 아니라 다른 자연계의 사슬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잃어버린 조각들이 하나 늘어갈 때마다 우리는 고독해지고, 우리의 세계는 무너져내리고 있다는걸 기억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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