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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별
엠마 캐럴 지음, 이나경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태어난 순간 곧바로 버려져 평생 이름조차 갖지 못한 존재,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만큼 마음 짠~한 괴물이 또 있을까. 지금은 에니메이션 등에서 귀여운 모습으로 그려져 친숙해져버린, 끝내 자신의 이름은 얻지 못하고 자신을 만든 박사의 이름으로 불리는 프랑켄슈타인. 겨우 10대 중반에 아버지의 제자와 사랑의 도피를 떠났다는 작가 메리 셰리가 19상의 나이에 처음 구상하기 시작했다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이렇듯 책의 내용 뿐 아니라 그 탄생 스토리도 흥미로운 소설이다. 소설 <이상한 별>은 바로 그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쓰여진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작가인 엠마 캐럴은 청소년을 위한 창작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프랑켄슈타인> 집필에 대한 역사적 기록, 즉 '여름이 없는 해'로 알려진 1816년 밤 한 저택에 모인 작가들이 유령 이야기를 하나씩 지어내기로 한 후 이 소설이 쓰여졌다는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며, 이 책을 읽고 독자들이 <프랑켄슈타인>과 메리 셸리에게 더 큰 호기심을 갖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보면 나는 <프랑켄슈타인>과 메리 셸리에 대한 관심(애정)에서 이 책 <이상한 별>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으니 역주행인 셈이다.
이야기는 한 장의 초대장에서 시작된다. 준비물은 '모인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할 유령 이야기', 초대자는 바이런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시인 바이런)이다. 이렇게 해서 1816년 6월의 어느 폭풍우 치는 밤, 바이런과 초대받은 네 명은 제네바 호숫가 한 저택에 모이게 된다. (초대받은 사람 중 한명은 당연히도 메리 셰리이다.) 그리고 그들을 시중들기 위해 그 곳에 있는 또 한명,호기심 가득한 흑인 소년(하인) 펠릭스의 존재가 스토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어린 시절, 여름 밤에 동네 계단 같은 곳에 모여앉아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놀았던 기억이 흐릿하게 떠올라 책 속의 장면들과 겹쳐졌다. 으스스하게 이어지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뚝 끊기면 그제서야 등줄기가 '오싹' 일어서던 그 느낌. 이야기 속 귀신이 내 등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그 서늘한 느낌. 그런 날 밤에는 늘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런 기억 탓일까? 바이런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고, 갑자기 천둥이 울리고, 모두의 얼굴이 가면처럼 창백해지고, 소년 펠릭스의 맥박이 빨라지고... 이런 장면이 마치 오랜 전에 내가 그 속에 앉아있었던 것처럼 아련하면서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고, 몇몇이 둘러앉아 집중해서 그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주는 분위기가 내 기억을 혼동시키고 있는가보다.
그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현관문을 두드린다. 낯선 방문객은 이미 죽어버린(것처럼 보이는) 소녀였다. 무서운 이야기는 끝났고, 이제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고 해야할까. 진짜 '일'이 벌어지자 하나둘 응접실을 떠나버리고 거실에는 이제 메리 셰리와 펠리스 그리고 몸에 알 수 없는 흉터가 있는 소녀만이 남겨졌다. 그리고 죽은 듯 보였던 소녀의 몸이 조금씩 따뜻해지더니 마침내 깨어나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찾아 왔어요."
이 소녀 리지를 통해 이제 또다른 새롭고 오싹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리지의 시점으로 쓰여진 2부 '리지의 이야기'는 리지의 시점으로 쓰여져 있는데 분량이나 내용으로 볼때 1부와 3부는 2부 '리지의 이야기'의 큰 액자가 되고 있다.
리지가 살았던 곳은 전통적인 문화와 가치들이 여전히 유효한 시골마을, 하지만 변화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새로운 발명과 발견의 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 곳으로 이사와 수상한 실험을 하는 과학자, 자꾸만 사라지는 마을의 가축들, 벼락을 맞아 상처입고 눈이 멀어버린 리지.. 이야기는 점차 '괴물'의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데...
마치 리지의 모험소설 같은 느낌으로도 읽히는 스토리는 과학만능주의, 과학에 대한 맹신 등이 또다른 문제로 나아가는 당시의 양상을 담고있다. 인간을 위한 발명, 발견이라기 보다는 한 과학자의 명예를 위해 개별적 인간은 오히려 수단이 되버리는 연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졌던 과학 여명기의 그림자들. '인류'라는 추상이 '개인'이라는 구체적 존재를 위협하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정신병을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터무니없는 뇌실험과 뇌수술이 행해지기도 하지 않았던가.
"과학자로서, 저는 사람보다는 인체에 대해 생각하는 편을 더 선호하죠." (217쪽)
리지의 이야기가 끝나고 3부에서 모든 이야기는 권신징악,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사랑과 상냥한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모두 괴물이 된다"는 (당연한 이야기라서 오히려 쉽게 잊고 지내는) 교훈적인 마무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