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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ㅣ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평점 :
여행 – 스물세 살(1951년) 체 게바라는 친구와 함께 낡은 오토바이를 몰고 긴 여행을 떠났다. 남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는 이 긴 여행에서 그는 사실상 새로 태어난다. 여행 이전의 그가 쾌활하고 의지가 굳으며 실행력이 뛰어난 젊은이였다면 여행 과정에서 그는 투철한 신념으로 다져진 ‘미래의 혁명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때로 한 권의 책이, 한 사람과의 만남이, 또는 한 번의 여행이 어떤 사람의 인생을 급선회시켜 전혀 새로운 길로 이끌기도 한다는 모범 사례를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단 한 방의 무엇으로 변화할 수 있는 인생이 있기는 한 것일까? 어떤 한 방으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이미 그에게 가득 찬 변화의 기운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책 – 체 게바라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여행 중에도, 무장투쟁 중에도 독서를 멈춘 적이 없었다. 정조, 뉴턴, 마오쩌뚱, 레오나르도 다빈치...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는 이들의 공통점은 정말 미친 듯이 책을 읽었으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사람이라는 것. 체 게바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천식 – 천식과 게릴라라니! 전혀 화합할 수 없는 두 단어는 체 게바라의 삶에서 공존하면서 그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는 평생 천식으로 고통 받았으나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길로 나아갔다. 나는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그 육체가 부여하는 한계를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 뛰어난 소수가 있고, 체 게바라는 그 중 하나이다. “천식은 체 게바라의 운명과 떼어놓을 수 없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과도한 활동성과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밀도 높게 살았던 날들, 그리고 그가 럭비 경기장에서 몸을 굴릴 때 조차도 그를 떠나지 않았던 고통들을 모조리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 한편으로는 질병이 한 이유가 됐을 수도 있을 것이다 – 매 순간이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누구보다도 꽉 찬 시간을 살았다.”(60-61쪽)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 없이 경험하며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을까? 아니면 삶의 엄중함을 일찍이 깨닫고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게 된 것일까?
유랑 혁명가 – 역사상 수많은 혁명가들이 있다. 승리한 혁명가들은 모두 승리와 함께 그 곳에 남았다. 레닌, 마오, 호치민, 가다피, 카스트로... 승리한 혁명을 뒤로 하고 또 다른 혁명을 위해 떠난 이는 체 게바라 뿐이다. 이것이 체 게바라와 다른 이들을 구별 짓는 가장 특별한 차이이다. 혁명에 뛰어들었던 초창기부터 체 게바라는 스스로를 유랑 혁명가라고 불렀다. 쿠바에서의 영광스러운 직책들을 모두 버리고, 시민권마저 포기하고 그는 벨기에령 콩고로, 볼리비아로 떠났다. “물레방아를 향해 질주하는 돈키호테처럼 나는 녹슬지 않는 창을 가슴에 지닌 채, 자유를 얻는 그날까지 앞으로만 달려갈 것이다.”(체 게바라)
군복과 별 달린 베레모 – 올리브색 군복에 별 달린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의 모습은 수많은 이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누구든 체 게바라를 생각하면 바로 그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체는 게릴라 투쟁의 와중에도, 혁명 승리 후 쿠바의 요직에 있을 때도, 쿠바의 외교 사절로 전 세계를 누빌 때도 늘 한결같은 차림이었다. 늘 같은 차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일미일까? 먼저, 자신의 차림새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신경을 분산시키지 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보다는 지금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겠다는 의지. 둘째, 흔들림 없는 하나의 세계가 완성되었다는 뜻도 될 것 같다. 이미 ‘최선’을 찾았다는 것, 최선의 삶의 방식을 확립했다는 것이 최선의 차림새를 찾아낸 것으로 외화된 것은 아니었을까. 셋째, 체 게바라는 혁명을 위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고, 그 ‘무엇이든’에는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는 일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는 한결같은 이미지로 언론에 보도되는 자신의 모습이 쿠바 혁명의 진전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흔들림 없이 혁명의 길로 매진하는 이 혁명가의 모습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던가를 생각해 보자. 이게 우연히 얻어진 결과일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외국인 – 체 게바라는 외국인이었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으나 쿠바인으로, 콩고인으로, 볼리비아인으로 살아갔다. 궁극적으로 그는 한 국가에 귀속되지 않은 존재였다. 어떻게 자신이 태어난 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의 혁명을 위해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설 수 있을까? 그런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외국인으로서 다른 나라의 혁명/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리스 독립 전쟁에는 유럽의 많은 지성들이 참여했다. 시인 바이런도 참전했었다. 스페인 내전에는 유럽의 반파시스트 운동가들이 참전했다. 헤밍웨이,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었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나/우리에게 국경을 뛰어넘은 연대가 낯선 것은 한국/아시아에서의 연대 경험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우리는 스스로의 자아를 아시아인으로, 세계인으로 확장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왜일까? 역사적 경험? 언어? 지리적 요소? 이 질문에 답을 찾은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아시아인으로서, 세계인으로서 자아를 확장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남아메리카의 낯선 지명, 인물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먼 곳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시아라고 해서 다른가? 체 게바라가 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순방하는 부분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이 아니면 철저히 무지해진다는 점에서도 나/우리의 한계가 드러난다. 나는 왜 아시아인이면서 서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 더 친숙한가? 왜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