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잘하는 교사, 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유창하고 열정적인 강의로 학생들을 사로잡는 교사.
학생들은 숨죽이며 교사의 강의를 경청하고,
질문을 하면 답이 쏟아지고,
질문 없나요, 물으면 여기 저기서 손이 올라가는,
아, 교사의 꿈!
그러나 핀켈은 <침묵으로 가르치기>에서 이 꿈과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좋은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핀켈의 정의에 따르면 좋은 교육이란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사의 '가르침'이 아니라 학생의 '배움'인 것이지요.
좋은 교사는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진정한 배움은 배우는 이의 주체적인 노력 없이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학생을 주체적으로 배움의 장으로 나서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한걸음 뒤로 물러설 필요가 있습니다.
배움의 길로 안내하는 잘 조직된 지도 계획과 인내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켜보고 도와주는 교사야 말로 좋은 교육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침묵으로 가르치기'가 무엇인지 짐작해볼 수 있도록 이 책의 목차를 소개해 볼께요.
01. 침묵으로 가르치기는 무엇인가
02. 책이 말하게 하라.
03. 학생이 말하게 하라.
04. 교사와 학생이 함께 탐구하라.
05. 친숙한 글쓰기로 말하라.
06. 학습을 일으키는 경험을 설계하라.
07. 민주적인 선생님이 되어라.
08. 동료와 함께 가르쳐라.
09. 경험을 제공하고 생각을 불러일으켜라.
핀켈은 이 책에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수업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특히 우화를 이용해 수업하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화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짧은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완벽한 상황에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둘째, 우화에서 전하는 의미는 심오해 보인다. 이야기 이면에 소중한 지혜나 지식이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셋째, 뜻이 다소 모호하다. 진귀한 보물을 쉽게 꺼내 보여주지 않는다. (~)우화에는 단순한 줄거리를 넘어서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우화를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지성을 갖추어야 한다. 우화를 들으면 '무엇을 전하려하는지' 알고 싶어진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된다. 명확히 해석되지 않는 모호한 이야기는 진지한 성찰의 자양분이 된다. 뜻이 모호해서 오히려 풍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따라서 이런 작은 우화를 수업에서 탐구할 문제로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을 정신 없이 읽으면서 제 스스로에게 몇 가지 과제를 부여해 보았습니다.
<1> '책이 말하게 하라'를 실천할 수 있는 작품 목록을 만들어보자.
핀켈은 여기서 <일리아드> <오이디푸스왕> <펠레폰네소스 전쟁> <소크라테스의 대화편> <줄리어스 시저> <빌러비드>(토니 모리슨의 소설입니다.)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화적 배경에서는 낯설지요? 우리에게 적합한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학생에게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고전적인 저작들, 그러면서도 학생들의 읽기 수준에 적합하고 우리의 문화적 배경에도 맞는 책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일단 <장자>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권을 가지고 '목록'이라고 할 수는 없죠. 목록을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고전을 읽어보려합니다.
<2> '친숙한 글쓰기로 말하라'에서 제시된 감상 편지 쓰기를 실천해 보자. 학생들의 글을 읽고 빨간펜 선생님만 하지 말고 감상 편지를 써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 수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는 방법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글을 쓰게 한다면 진지하게 지도해 주어야 한다, 는 생각은 이전부터 해오고 있었습니다.
<3> 세미나를 할 때, 그냥 줄거리를 요약하고 감상을 나누는 수준에 머물지 말고 개념 연구 수업을 해보자.
부록에 실린 <침묵으로 가르치기에 관한 개념 연구>라는 개념연구 수업 설계를 보면서 반성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연구해야 '배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구나 생각했지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과제들이지만, 일단 이런 것들을 '방향'으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철렁했던 대목 하나 소개합니다. 여러분도 그냥 읽지 마시고, 텍스트에서 시키는 그대로 해보세요. 꼭이요.
"종이와 연필을 준비한다.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머릿속에서 지운다. 아래 질문에 답을 적어보자. 학창시절 경험만 떠올리지 말고 인생 전반의 경험을 돌이켜보고 답한다.
지난온 삶을 돌이켜보고 가장 중요한 지식을 배운 경험 두세 가지를 떠올려 보자. 이를테면 살면서 오래도록 중요한 영향을 미친 배움의 순간이나 사건을 적는다.
한 가지만 떠올라도 종이에 적는다. 여기서 잠깐! 반드시 책을 내려놓고 답을 적어야 한다. 몇 분만 시간을 내면 된다. 답을 다 적었으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한 가지든 두 가지든 세 가지든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배움의 순간이나 사건을 적었으면 적은 사례마다 아래 여섯가지 질문에 답해 본다.
1. 교실에서 일어난 일인가?
2. 학교에서 일어난 일인가?
3. 배움의 경험을 얻는데 교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4. 배움의 경험을 얻는데 교사와 유사한 인물(예: 코치, 성직자, 학교 상담사, 무대감독)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5. 3번이나 4번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면 교사나 그 인물이 실제 배움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6. 전체적으로 배움을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이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