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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 다시, ‘저녁 없는 삶’에 대한 문제 제기
김영선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0. 사담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처음 봤을 땐 추리/스릴러 소설인줄 알았다. 표지에 써있는 52시간 근로라는 말을 보고서야 '아 사회과학책이구나' 했다.
#1.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신자유주의가 죽였다. 자본주의가 죽였다. 정부의 허술한 법적용이 죽였다. 좁디좁은 땅덩이에 넘쳐나는 인구가 죽였다. 죽도록 일해서 버틸 수 밖에 없는, 부실한 사회안전망이 죽였다.
'과로'에 대해 다루는 기존 책들이 단순히 현상을 설명하고 '바쁘게 사는게 답이 아니에요'라는 위로와 자조 섞인 말을 끝에 건네는 정도에 머물렀다면, 이 책은 저자 나름대로 사회구조를 분석하고 그 끝에 내린 해법이 담겨있다. 법, 법의 실제 적용도, 사내근무환경, 근로자들의 심리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최대한 나무가 아닌 숲을 보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중간 '과로'로 인해 우리 삶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다방면적으로 쓴 부분도 흥미로웠다. '과로'로 인해 민주주의가 약해진다거나, 가족간의 유대가 약화된다거나 등등. 한번쯤은 생각해봤던 내용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좋았다.
#2. 워라밸을 위해서는
1. 수익배분구조 개선
- '과로'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임금
- 플랫폼 구조 개선
2.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 강화 및 수시단속
- 법이 강해도 실제로 편법을 사용해 빠져나가는 기업들이 대다수
3. 근로자들의 의식 개선
- 야간/추가 근무에 따른 수당을 당연한 권리
- 워라밸의 디폴트화
#3. 총평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 다양한 사례, 통계들이 나와있어 이해하기 쉬웠고 내가 궁금하지만 잘 몰랐던 내용들이 많았다. 책의 내용이 무조건 다 맞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분야에 대해서 더 공부를 하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책장에 꽂아뒀다 잊을만 할 때 쯤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p.22]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의 한도는 주당 12시간이지만 실제 야근 실태를 보면 제도적 기준을 무색하게 만드는 사업장이 한둘이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314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2013년 상반기 근로시간 감독' 에 따르면, 업체의 86.6%가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했다. 특히 자동차 업체의 연장근로 한도 위반은 94.9%에 달했다. 법정근로시간이 얼마나 무력화되어 있는지를 말해준다.
[p.25]
우리가 더욱 우려해야 하는 점은 폭력적인 장시간 노동에 발을 딛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시간 노동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거나 못한다는 사실이다.
[p.28]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쟁점 가운데 하나로 생산성이 꼽힌다.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오래 일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일을 오래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은 것일까? 전자는 일의 태도가 느슨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이 불가하다는 자본의 입장을 대표한다. 한국의 생산성이 여느 국가에 비해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생산성 낮음의 사회적 맥락을 간과하고 있다.
1. 정시퇴근의 권리가 없음 -> 느슨한 태도로 작업
2. 기술혁신지체
3. 비합리적 업무관행
4. 야근을 해도 야근수당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음
[p.46]
과로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 있어왔다. 그러나 의제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먼저 죽음과 업무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는 논리와 죽음의 원인을 개인적인 것으로 환언하는 논리가 난무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두 가지 논리는 돌연사가 발생했을 때 일반적으로 사측이 보이는 첫 번째 반으이자 가장 강력한 방어논리다. 과로로 인한 죽음을 개인적인 사유로 설명하면 과로이 구조적 위험은 더 이상 정치화되지 못한다.
[p.92]
새로운 위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업 간 불공정 거래를 차단하고 수익을 공정하게 분배하도록 만드는 장치들이 요청된다. "부는 상층에 축적되고,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는 말처럼 개발사와 퍼블리셔, 플랫폼 사이의 수익 양극화는 매우 심화된 상태다. (...) 개발사들의 리스크 가중은 게임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리고 게임 노동자의 건강을 심히 악화시킬 것이다.
[p.100]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 시대 아이들에게 사실상 아빠는 없는 존재에 가깝다. 오전 6시 30분까지 공사 현장으로 출근해 밤 0~11시에야 집에 도착하는 펌프카 기사는 장시간 노동이 시달리는 이 시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p.103]
장시간 노동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토대가 허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은 그래서 눈여겨볼 만하다.
: 일하기 바쁜데 정치 신경쓸 틈이 어딨나. 맞는 얘기다. 그래서 당장 눈 앞에 있는 문제들 밖에 못본다. 남 VS 여 / 무슬림인권 VS 자국민보호 / 좌 VS 우 등등. 의도적으로 갈라놓는게 뻔히 보인다. 하지만 일하느라 이미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로는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
[p.107]
아이와 애착을 형성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많은 부모들은 만족도 효과가 눈에 보이는 행복 상품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려 한다.
[p.109]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라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최근의 수면 산업은 '돈 되는 장사'라고 한다.
[p.144]
일찍이 러셀은 "한쪽 사람들에게 과로를, 다른 쪽 사람들에게 굶주림을 낳는" 방식보다 "더 정신 나간 짓을 상상할 수 있냐"며 반문했다. 피에르 바소도 적은 수의 과도 노동자와 많은 수의 과소 노동자라는 이중 구조를 비판했다. 신자유주의적 시간 통치는 사회 전체의 노동력을 이중으로 낭비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p.149]
미디어에 소개된 위의 인용들은 근면과 성공을 연결 짓는 전형적 서사들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보여준다. 여전히 슈퍼맨, 전사, 수도자, 기계로 거듭나길 요구하는 언어들이 연예인, 스포츠 스타의 일상과 성공 스토리, 오디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생산, 유통, 소비되고 있다.
[p.155]
일련의 임근 통제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에도 '임금 상승은 곧 경제 위기'라는 담론의 형태로 등장했다. 다양한 형태로 모습만 바꿔온 발전국가 주도의 임근 억제책은 '싼값에 오래 일을 시키는'시스템의 핵심이었다. 임금이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설명은 임금 통제의 역사를 간과하거나 은폐하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p.161]
독소 조항의 예를 들어 보자. 첫째,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상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았다. 행정해석은 1주를 휴일을 제외한 주 5일로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 8시간씩 총 16시간의 초과근무를 허용했다.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까지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들어 기업은 일주일을 5일로 보고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을 적용한 뒤 휴일근로 16시간을 근무하도록 하고, 휴일근로에 연장근로수당 없이 휴일 근로수당만 지급해왔다.
[p.175]
노동자를 ICT(Info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플랫폼에 불러들여 오로지 콜별, 건별, 프로젝트별로 노동력을 추출하는 플랫폼 노동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비용과 위험의 외부화와는 결이 다르다. 이는 노동의 탈공간화, 노동자의 탈노동자화, 위험의 개인화라고 부를 수 있다.
[p.181]
플랫폼 노동자는 일하는 시간을 얼마나 어떻게 쪼개든지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특정 시공간에 구속되지 않은 채 원하는 스케줄대로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율적' '독립적'이라고 이야기된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신조어처럼 장밋빛 언어들로 채색되어 있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들은 실제 일거리가 어떻게 할당되는지, 노동과정이 어디까지 모니터되고 기록, 평가되는지, 관련 데이터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