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밥솥의 밥은 반쯤 그대로였다.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심사가 만들어낸 결과로 싱크대엔 며칠 째 방치된 그릇이 가득했다. 주방세제 ‘한 방에 오케이, 한 방울’이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온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눈을 감고 있었다. 겨우 11시 40분인 것이다. 와아, 하는 웃음과 박수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 눈을 뜨자마자 그는 보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티브이를 틀곤 했다. 적막함보다는 나은 것이다. 자기네들끼리 한바탕 파티를 벌이는 모양인지 설정된 웃음소리가 방에까지 흘러들었다. 별안간 그의 표정이 밝아진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워, 커튼을 젖히고, 오리털 이불을 털어 개고, 노트북의 랩을 닫고, 스탠드 불을 끈 후 어질러진 책상을 대충 정리한 다음, 널브러진 옷가지를 주워들어 녹색 옷걸이에 걸었다. 자신의 입 냄새를 맡아본 후 청바지를 입었다. 서둘러 통장에 입금되었을 잔고를 확인하고픈 기분이 찾아와서이기도 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잠시 활기를 불어넣어준 덕분이었다. 나란히 선반에 뒤집혀 놓여 있던 물 컵 두 개. 왜 물 컵에다 밥을 넣어 먹으면 안 되는가. 주방으로 나가 싱크대에서 물을 트는 순간까지 특허신청감이라는 스스로의 생각에 도취되어 그는 자신의 실수를 떠올리지 못했다. 수돗물을 트는 순간에야 그는 아차, 싶었다. 물줄기의 압력으로 ‘대가리’가 휙 빠져나가 개수대에 나뒹군 뒤였다. 그의 팔뚝과 옷이 일부 젖었다. 눈썹까지 튄 물기를 손으로 훔치면서 그는 ‘대가리’를 싸늘하게 쏘아보았다. 작은 누나처럼 ‘대가리’ 또한 그에 맞서는 것 같았다. 팽팽한 침묵이 둘 사이를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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