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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의 발걸음은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아니, 진보의 발걸음 말입니다. 크악, 크악. 내일 저는 꼬깃꼬깃 그레이 스키니 진 위에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물소 가죽 부츠를 신은 채 당당히 학교로 가겠습니다. 더 이상 숨기지 않겠습니다. 그 남자 봤어? 스키니 진에 롱부츠를 신은 남자 말이야. 물론이지. 그들의 시선을, 손가락질을 당당히 밀어내고 교정을 활보하겠습니다. 수백 명의 눈이 저의 물소 가죽 부츠를 바라보겠지요. 저는 혁명가가 될 것입니다! 크악, 크악.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나와 함께 혁명의 행진에 동참하십시오! 모두 스키니 진을 입고 부츠를 신고 거리를 활보합시다! 머리통이 커도 상관없고, 어깨가 좁아도, 갈비씨도 뚱뚱보도, 숏-다리도, 배불뚝이도, 젓가락질 못하는 자도, 다리가 휜 자도 상관없습니다. 크악, 크악. 모두 나에게 오십시오! 로베스삐에로를 위해! 나폴레옹을 위해! 레닌을 위해! 체 게바라를 위해! 세상의 모든 림보맨을 위해! 마지막으로 쭈욱, 원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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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시간이 지났군요. 잉잉. 곧장 토하고 잠이 들었는데 다시 토하고 싶어 눈을 떠 보니 형광등 불빛 아래 모든 게 엉망이 되어 있더군요. 널브러진 나폴레옹 양 주 두 병. 안주로 찍어 먹던 토마토소스가 핏자국처럼 방바닥과 제 소맷자락에 묻어 있는데, 잠결에 이리저리 뒤척인 모양입니다. 잉잉.
양주인데도 오래간만에 먹어서 그런지 머리가 빠개질듯 하네요. 잉잉. 다시 화장실에 가서 모조리 게워내고 오니 정신이 좀 드는 기분이긴 한데, 뭐랄까, 약간은 공허한 느낌인데, 이 느낌, 그래요, 껍질만 남았다고 해야 할까, 잉잉, 뭐랄까, 하여튼, 뭔가가 빠져나간 기분이네요. 잉잉. 토하고 난 뒤여서 그렇겠지요. 잉잉. 어쨌든, 다시 피곤이 몰려오는군요. 18년 산 나폴레옹 양주를 혼자서 두 병이나 까버렸으니, 잉잉. 그런데, 제가 무슨 말을 한 것이죠? 무슨 삐에로라고 한 것 같은데······ 체······ 맞나? 림보맨? 도무지 헷갈리는군요. 원래 이렇게 횡설수설하지 않는답니다. 술에 너무 취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그만 흥분해 떠들어댄 것 같네요, 잉잉.
그런데, 갑자기 슬퍼집니다. 잉잉. <왜 너는 술만 들어가면 크악, 크악, 이라고 하는 거니?> <왜, 크악, 크악 하냐고?> <넌, 술만 취하면 말을 잘하는데, 평소엔 왜 그래?> <왜, 자꾸 크악, 크악 하는 거냐?> 하지만 누구든지 자기만의 술버릇이 있고, 자신만의 방식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잉잉. 그러니 제발 제게 왜, 라고 묻지 마십시오. 왜 너는······ 왜, 왜, 외······ 그러면 저는 아주 슬퍼집니다. 잉잉.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걸까요? 사랑하겠지요,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아마. 그렇겠지요? 잉잉.

여러분······ 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잉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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