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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헝가리 구두를 6월에 구입한 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구입하는 거야 여름에도 봄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니 말입니다. 또 반드시 ‘줄줄이 비엔나’ 때문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게, 크악, 크악, 오랫동안 구두를 동경해오다 몇 해 전부터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가죽 구두를 그것도 한 여름에 신을 계획을 세워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줄줄이 비엔나'는 방아쇠 역할을 한 셈이겠군요. 크악, 크악.
수업을 마치고 동료들과 카페에서 잠시 토론을 한 후 집으로 오다 중학교 동창을 만난 게 시작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지지리도 못생긴데다 새까만 피부 탓에 촌닭처럼 보인다고 늘 놀림을 받던 녀석이었는데, 그 친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번에는 제가 긴장하여 휘청거리고 말았습니다. <야, 반갑다, 진짜, 정말로, 반갑다, 넘넘, 반갑다, 정말, 진짜, 아, 반갑네, 하하, 너무, 너무 반갑네. 하하. 반갑다, 미치도록, 하하> 저도 모르게 내뱉은 장황한 인사가 저를 더욱 당혹스런 기분으로 몰아가는 바람에 결국 눈을 내리깔고 말았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패배를 시인하는 동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넌 아직 여자 없냐? 하는 득의만만한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크악, 크악. 인사를 나눈 후 곧장 헤어지면서 흘끗 바라본 여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몸매는 늘씬했고, 하늘거리는 푸른 색 원피스를 입은 채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물고 있었습니다. 크악, 크악. 저는 땅을 보며 다시 중얼중얼 침을 뱉기 시작했습니다. <저 따위 상판 때기로 여자를 사귈 수 있다니, 빌어먹을. 이건 치욕이다> 그러다 적개심이 돌연 선글라스에게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따위 상판 때기에 끌려 다니는 골빈 년. 저 년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야?> 환한 미소를 띤 미미를 중심으로 친구들이 빙 둘러싼 풍경을 본 직 후 엉뚱하게도 화가 솟구친 것과 비슷한 기분이더군요.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크악, 크악. 그들에게 저주를 퍼붓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전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고,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진 저는 비도 피할 겸 서둘러 지하철의 화장실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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