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스키니 진에 롱부츠를 신고 등교하는 게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몸의 일부처럼 편안해졌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 아침마다 느끼는, 부츠의 깊은 구멍 속에 발을 쏙 집어넣을 때의 짜릿한 쾌감에 이어 무언가에 푹 빠져든 듯한 아늑한 기분을 오후 수업이 끝나는 내내 느끼고 있으면 다른 누군가가 되는 야릇한 기분에 사로잡혀 양 팔에는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아아, 부츠에 올라탄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이런 게 행복이란 거구나. 부츠를 신은 채 집안 여기저기를 활보하기 시작합니다. 근사한 일이지 않습니까? 상상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후 거실의 전신 거울 앞에 서서는 빙그르르 돕니다. 또 다시 돕니다. 돌고, 돌고 선풍기처럼 회전합니다. 어느 새 그는 한 마리 우아한 백조가 되어 푸른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크악, 크악. 곧 거리의 사람들은 지상을 활보하는 한 사내에 경악하겠지요. 찌는 듯 무더운 여름날에 부츠를 착용하다니! 아아, 그에게로 향할 군중들의 시선을 상상해보십시오. 크악, 크악. 바깥은 일주일후로 다가온 장마의 전조인지 바람 한 점 불지 않은 채 끈끈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매미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는 전형적인 여름의 흐름 속에서 무릎까지 올라온 부츠는 계절파괴라는 또 다른 폭발적 효과를 가져다주겠지요. 크악, 크악. 왜, 왜 부츠를 겨울에만 신어야 합니까? 크악, 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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