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었습니다. 후문은 식당으로 향하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오리를 기다리고 있던 해파리와 저 또한 수업이 막 끝난 직후여서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잠깐 벤치에서 쉬는 사이 사람들 틈에서 나타나 손을 흔드는 오리의 주둥이가 보이더군요. 크악, 크악. 오래간만에 본 오리의 얼굴은, 특히 수염이 잡초처럼 뻗쳐서 그런지 무척이나 초췌해 보였습니다.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요. <오리 같아, 산적, 산적 같아, 오리, 넣어, 입, 넣으라니깐, 주둥이, 뭐가 불만이야, 도대체?> 만나자마자 내뱉은 제 말에 오리가 인상을 찌푸리더군요. 그럴 만도 했지요. 크악, 크악. 그래도 고향 맛이 좋아, 에서부터 삼포 만두, 김밥천국, 장작개비, 토담, 엄마 손 식당, 그리고 산에 나물, 까지 단골로 가던 식당 모두가, 오리가 늦게 온 탓에 사람들로 꽉 차 있었으니까요. 여기저기 훑어보다 골목 끝에 이르러서야 제법 한산한 놀부 부대찌개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제 눈에 들어온 게 무엇이었겠습니까? 크악, 크악. 마루에 올라선 양말들이었습니다. 맨 앞에 서 있던 제가 오리와 해파리에게 재빨리 고개를 돌렸습니다.

<귀찮잖아, 신발 벗기, 가서 먹자, 딴 데.>

<다리 아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들어가자.> 해파리의 말에 저는 반박했습니다. <곧, 날 거야, 자리가, 다른 곳에도, 그리고, 비싸, 여긴, 너무.> 오리새끼가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린 건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 순간 제가 얼마나 놀랬는지, 몰래 숨겨둔 자위기구가 발각되었을 때의 기분처럼 얼굴이 뻣뻣해지면서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박동과 보조를 맞춰 오리의, 그들의 낄낄거림이, 다 안다! 다 안다! 다 안다! 하고 제 귀에다 못을 박아대고 있었습니다. 겨드랑이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식은땀 또한 바늘이 되어 다 말해! 다 말해! 다 말해! 하고 제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고 있었으니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하여 저는 태연스레 다 말했습니다. <아직도 그래.> 그런데, 오리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꽥 꽥, 야, 다시 해봐. 귀.찮.잖.아. 그 녀석 말투하고 똑같네. 히히. 귀-찮-잖-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귀차니스트의 하루’에 나오는 림보맨의 말투와 똑같다며 몇 번이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오리를 멍하니 바라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무언가를 중얼거려야 했기에 저는 중얼거렸습니다. <더 많네, 아는 게, 나보다, 넌, 고시공부하면서, 태도인걸, 여유 만만한> <네가 모르는 거야, 더 많은 게 아니라, 아는 게, 안 좋아하잖아, 프로, 코미디, 넌, 어때 똑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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