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일까요? 며칠 동안 우울한 기분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건 왜일까요? 성공하자마자 느끼게 된다는 끝 모를 허무감 때문에? 그것이 혀끝에서 빙글빙글 맴돌던 씁쓸함의 정체였을까요? 그러니 차라리 실패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 고통에 달콤한 위안이 되었을까요? 그랬을까요? 아아, 아닙니다. 위안······ 위안이 아니라 치켜든 가운데 손가락처럼 떠오른 그들의 조롱하는 눈초리가 떠오르는군요. 크악, 크악. 이튿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킥킥거릴 동급생들,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수군거릴 후배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겨드랑이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크악, 크악. 그리고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인문학부 건물 전체로 소문이 쫙 퍼져나간 후 학교 전체의 안주거리로 전락하겠지요. 그 남자 봤어? 그레이 스키니 진을 입었잖아, 게다가 남자가 어떻게 저렇게 다닐 수 있어? 그로부터 며칠 후 한강에서는 눈알이 뜯겨나간 시체가 발견됩니다. 20대 후반의 청년으로, 취업난으로 인한 투신자살로 추정된다는 아나운서의 말에 안타깝게도 모두 놀라운 반응을 보입니다. <겨우 그거야?> <그래서 어쨌다고?> 다음날 그의 죽음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짝 남아있게 되고, 이틀 후에는 아주 살짝, 다음에는 희미한 그림자로써 아른거리다 종국에는 새로운 소식들에 짓눌려 완전히 증발해버립니다. 크악, 크악. 그리고! 반전이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서부터! 진실을 추구하는 끈질긴 기자에 의해 혁명적 삶을 꿈꾸었던 리얼리스트의 고뇌가 책상의 맨 아래 서랍 속에서 발견됨으로써 말이지요. 크악, 크악. 몇 개월간 다듬어져 발간된 그의 평전은 무려 1년 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그리하여 그의 삶이 재조명되고,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떨치게 되고, 진호를 함부로 대했던 자들은 후회하고, 이어 스테디셀러가 됨으로써 연인인 미미와 더불어 그의 존재가 국민의 기억 속에서 불멸의 신화로 자리매김하는, 바로 실패를 전제로 한 이런 달콤하고도 우울한 상상 속에서 위안을 받아온 그가 그날의 성공 이후 얼마나 허탈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지 이제야 아시겠지요? 크악, 크악.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그가 무슨 말을 했냐고요? 그렇습니다. 자리가 몇 개 비어 있던 식당 앞에서 그가 한 말은 고작 이것이었습니다.

<귀찮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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