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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 닦고 다시 전화를 걸어 만수형이 받았을 때에는 벌써 2시가 지나 있었다. 화장실에 잠깐 다녀왔다고 말하는 만수형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잠시 멀어졌다. 만장에 형에게 하는 말로 내가 이겼으니 어서 다녀오라고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장은 ‘파란만장’을 줄여 부르는 별명이었지만, 만수는 본래의 이름이었다. 어제도 쉬었기 때문에 거짓말하기가 사실은 미안하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그곳에 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였지만 이상하게도 일을 하기가 싫었다. 새벽골목을 걸은 탓에 잠이 덜 깬 목소리를 최대한 감추어 나는 아직 감기몸살이 덜 나았다고 둘러댔다.
“어어. 그래. 그래. 그다지 바쁜 일은 아니니까. 그냥 쉬어. 큼큼. 참, 월급은 들어왔어? 큼큼.”
“아직 확인 안 해봤어요.”
“아마 들어와 있을 거야. 큼큼. 한 번 확인해 봐. 큼큼.”
“예. 그리고 과장님한테 말씀 좀······.”
“털보 오늘 안 나왔으니까, 괜찮아. 큼큼.”
“그래요? 왜요?” 저번 주말에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몸이 아프다고는 하는데. 내가 볼 때 그건 핑계고. 큼큼. 일할 맛이 나겠냐? 큼큼.”
‘본드’ 때문이었다. 만장이 형도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고 했다. 그나마 사장님의 경우 투자한 5천 만 원이 완전히 토막이 나버려 4만원이 통장이 남았다는 소식으로 위안을 삼았다. 너도 본드 했냐? 본드 하지 마라. 그거 몸에 해롭다.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얼마간의 위안을 얻었던가? 어차피 펀드로 날렸을 거라고 생각하는 식으로. 털보도 펀드로 엄청난 손해를 입어 휴게소에서 담배를 무는 시간이 늘어나는 걸 알 수 있었다. 입가의 웃음과 유쾌한 분위기도 퇴색된 듯했다. 1층의 분류업무를 책임지는 과장을 가리켜 우리는 털보라 부르고 있었다. 나를 면접 본 사람이 바로 그였다. 처음 마주보는 순간 굉장히 낯이 익었다. 간혹 그런 사람이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내가 맡은 일은 2층에서 화장품의 뚜껑을 스티커로 ‘밀뽕’하는 일이었다. 주말마다 임시로 일을 하는 거라고 했다. 택배회사. 그래서 나는 주중으로 야간 PC방에 일을 구했다. 지루했다. 끽끽대는 철제 계단을 오를 때마다 맞은 편 창고 문짝의 ‘관계자외 출입금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정직원을 가리킬 게 틀림없는 ‘관계자’에 나는 포함되지 않을 터였다. 주중에 야간으로 근무하는 PC방 또한 아르바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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