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어휘 지식 백과 : 생활 교양 편 영어 어휘 지식 백과
이지연 지음 / 사람in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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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참지식을 맛볼 수 있는 통로입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권력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정신적인 풍요와 행복도 우리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삶의 본질과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참지식을 맛보고 삶의 통찰력과 지혜를 갈구하는 마음이 또한 지적 생물인 우리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아주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부분이죠이러한 마음을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가 바로 '언어'입니다.

p4

언어 확장의 중요성을 알아보았으니 어휘를 무한 확장시켜 주는 이 책의 장점을 알아보겠다.

주제와 어원 모두를 아우르는 방식으로 확장한다.

영어를 배우며 어휘를 확장하는 방법으로 어원별로 묶어 익히는 방법, 주제별로 묶어 익히는 방법 등이 있는데, 이 책은 이 두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책이라고 보여진다.

기본 구성으로는 7개의 챕터로 나눠 각 챕터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주제별로 어휘를 확장시키고 있다. 주제별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접두사 접미사 어근 등으로 나눠 접근하진 않지만 영어가 영향을 받은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등의 다양한 언어의 어원을 밝혀가며 확장시키는 방식도 함께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Scissors 가위

이 단어의 어원을 라틴어 ()caedere = cut 자르다, kill 죽이다 에서 찾아 확장해본다.

/caedere에서 파생한 단어

hicide 살인 (homo=man 인간)

deicide 신을 죽임 (deus=god )

parricide 존속살해 (parus=relative 친척)

circumcise  할례를 받게 하다 (circum=around ~의 주위에)

excise 삭제하다 소비세

incisor 앞니

cutkill의 의미를 가진 라틴어 어원을 통해 확장해가는 방법이 아주 유용해 보인다.


구성과 편집이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좋다.

일러스트가 난무한다 던지 지면이 복잡함이 없이 깔끔하다. 각 챕터의 시작마다 한 번쯤 물어도 좋을 질문이 던져지는데 앞으로 시작될 그 챕터의 주제를 환기시키며 생각 해보게 한다.


또 각 챕터의 소제목도 한 눈에 보여져서 마치 어휘의 숲으로 들어가기 전 안내도를 볼 수 있게 하는 구성이었다.


일상 용어를 주제별로 깊게 총망라하여 한꺼번에 건져갈 수 있다.

크고 촘촘한 뜰채를 가지고 소주제에 다가가 한꺼번에 건져낸 듯 깊고 넓게 망라되어 있어 좋다. 예를 들어 골프 용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여러 단어를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도 한꺼번에 다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으니 주제별로 찾아보기만 하면 된다.

골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다, 그러면 이 책의 골프 부분을 찾아보면 된다.


파스타의 종류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이 책의 파스타 부분을 펼치면 된다.




어휘에 얽힌 이야기가 풍성하게 있다.

어휘의 분류와 나열에 그치지 않고 담긴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풀어놓고 있어 덤으로 관련 지식을 익혀 나가기에 더없이 좋다.

몇 가지 소개를 해보면,

격리, 검역을 뜻하는 (quarantine) 단어는 이탈리어 방언에서 유래된 말로 ‘40을 뜻하는데, 1300년대 흑사병이 돌던 시절에 항구에 들어오던 외부 사람들을 40일간 격리하던 행위에서 유래된 말이다.


프랑스 미쉐린 타이어와 미슐랭 가이드처럼 흔히 아는 관련된 이야기부터


maverick(개성 강하고 속박받지 않는 사람을 뜻함)이란 단어에 얽힌 흔히 알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어 흥미를 놓지 않고 읽게 되어있다.


적절한 일러스트로 이해를 돕는다.


간결하고 정확하게 그려진 일러스트 만큼 지식의 이해를 돕는 수단도 없을 것이다. 중간중간 적절하게 실린 일러스트는 관련 어휘를 한꺼번에 눈으로 익히기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큰 주제로부터 소주제까지 주제별로 어휘를 확장시켜 나가는 구성이며, 책의 말미에는 인덱스를갖추어 필요 단어를 찾아보기에도 좋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 체계를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가지고 있는 언어가 풍성하면 더 넓고 깊은 고차원의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어휘의 확장과 지식의 팽창 이 두가지를 모두 가질 수 있는 책 한 권으로서 이 [영어 어휘 지식 백과]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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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쫌 아는 10대 - 인류세가 지구의 마지막 시대가 되지 않으려면 과학 쫌 아는 십대 15
허정림 지음, 이혜원 그림 / 풀빛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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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빛 출판사의 '쫌 아는' 시리즈는 10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눈 여겨 보는 시리즈입니다. 먼저 출간되었던 사회 쫌 아는' 시리즈는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주제를, '과학 쫌 아는' 시리즈는 여러 흥미 있는 과학 이슈를 콕콕 찝어 출간되고 있어서 찾아보게 됩니다. 이번에 만나 본 '인류세 쫌 아는 10'는 현생 인류가 어떻게 인류세로 불리게 되었는지 알기 쉽게 이야기해 주는 과학 시리즈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인류세의 배경과 특징을 알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환경 문제에까지 심층적으로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겨냥한 독자층은,

인류세라는 용어를 들어봤으나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10

인류가 미친 환경 오염에 관해 관심이 많은 10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싶은 10

위의 내용들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싶은 성인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마지막에 해당이 되는데, 140페이지의 얇은 책에서 간략한 내용을 기대하였다가 예상 외의 깊이 있는 내용으로 기대 이상의 만족스러움을 얻었습니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지질학적 용어로 인류가 한 행동이 지층에 그 자국이 새겨질 정도로 영향을 미쳤다는 뜻입니다. 지구의 탄생 이후 46억년을 일 년 달력으로 표현하였을 때 인류가 등장한 것은 1231일 밤 11시 라고 할 수 있는데, 고작 그 짧은 시간동안 인간은 지구 환경에 이토록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고 합니다.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거론되는 지점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농업이 시작된 시기

18세기 말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된 산업 혁명

1945년 최초의 핵 실험

입니다.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시점은 인류가 경쟁적으로 핵폭탄을 개발하였던 1950년 경입니다.

여기서 거대한 기록보관소 역할을 하는 아이스코어의 역할이 빛을 발하는데, 남극 얼음을 1.5킬로미터 깊이로 뽑아낸 이 아이스코어 안에는 약 74만년 동안의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스코어 안에 로마제국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는 납 오염부터 산업 혁명으로 화석 연료 사용이 늘어나면서 발생한 메탄과 프레온 가스, 그리고 1945년에 사용된 원자폭탄에서 나온 방사성 탄소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다고 하니 엄청난 데이터베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인류세의 3가지 특징을 알아보면,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선 물질

플라스틱

닭 뼈 화석

이라고 합니다.

플라스틱은1930년 영국 화학자들에 의해 발명되어 100년이 채 안된 기간 동안 유리, 나무, , 종이, 섬유 등 다양한 물질을 대체하며 사회 전반에 걸쳐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편리하다고 무분별하게 사용한 끝에 인류는 플라스틱을 83억톤 생산하고 63억톤을 쓰레기로 남겨놓았습니다. 500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이 플라스틱 쓰레기는 아주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합니다. 해양 생물에 위험을 끼치며, 해류와 바람을 따라 모인 해양 쓰레기가 바다 한가운데에 플라스틱 아일랜드를 이룬다고도 합니다. 가장 큰 쓰레기 섬은 우리나라의 약 16배에 달한다고 하니 어마한 인류의 흔적에 심각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핵실험과 원자력 발전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의 위험성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두 건을 통해 익히 알고 있습니다. 방사능 물질은 인류세의 시작점을 나타내는 요인이면서 특징 중 하나입니다. 1945년 미국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르도에서 인류 최초의 핵실험으로 그때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플루토늄-299’성분의 방사선 낙진을 지질층에 선명하게 남김으로써 인류세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인류세의 특징은 지질층에 남겨질 닭 뼈 화석입니다. 한 해 지구인이 먹는 닭은 650억 마리로 그 개체 수가 너무 많아 생태계의 불균형이 야기되었습니다. 또 야생동물의 수는 줄고 공장형 축산 시설은 늘면서 조류독

, 메르스, 사스, 코로나 등등의 인수공통감염병도 생겼습니다. 공장형 축산 시설에서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투여 받고 공장의 상품처럼 빠르게 길러지는 건강하지 못한 닭들은 인간에게 좋은 먹거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인류세를 사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으며 관심이 생겨 제로 웨이스트에 관한 책도 보게 되었습니다. 환경학자들은 인류가 너무 오랜 기간 생태 용량을 초과하여 지구 환경을 이용하고 파괴하고 있어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적자 상태의 생태 환경을 조금이라도 돌이키려는 노력은 다음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양심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환경을 파괴하며 이룩한 선진국이라는 점에서 그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구 환경 파괴로 인한 자연 재해나 환경 난민 문제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욱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상식을 채우러 왔다가 환경문제에 심각성을 느끼고 책임을 나누어 지고, 실질적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돌아서는 계기가 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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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만물관 - 역사를 바꾼 77가지 혁명적 사물들
피에르 싱가라벨루.실뱅 브네르 지음, 김아애 옮김 / 윌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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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론중에 문헌학과 고고학이 있다.

문헌학은 사료가 문자의 형태로 남아있는 것을 연구하는 분야를 말한다. 기록가와 보존가의 손을 거치며 역사적 사실이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해 두어야한다. 이에 반해 역사가가 사물의 형태(유물)로 남겨진 사료를 연구하는 분야를 고고학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록과 사물 둘 중에 어떤 것이 역사를 연구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까?

물론 기록을 통해서 검증하기 힘든 사실들을 물질적인 자료를 통해서 연구하고, 발견된 고고학 유물을 사료를 통해 고증하는 등, 두 학문은 밀접하게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특히 고대로 갈수록 문자로 기록된 사료의 양이 현저하게 적어지기 때문에 고대사를 연구하고자 한다면 고고학에 대한 이해가 거의 필수적이다.

이 책 [세계사 만물관]에서는 사물에 담겨있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인류 역사의 이야기를 풀어보여준다. 바로 물건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다.

그렇다면 고고학처럼 물건을 통해 알아보는 것들의 가치가 왜 중요할까?

우리는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짜집기한 세계사에 익숙하다. 그러나 수면 위로 드러난 이야기만을 전하는 이러한 역사는 개개인의 다양성과 인간의 삶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문학사와 예술사의 수많은 담론 또한 문자가 없던 시대나 문자가 있는 사회이더라도 문맹인들의 경험은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말 없는 사물은 역설적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보편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사물은 대량생산이 시작된 18세기 말부터 사람들의 최소 공통분모가 되었다. 사람들은 거의 똑같은 물건을 시기와 장소에 따라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교환하고 받아들였다. 각국의 사물과 그 사물의 사용법(연구자들은 이를 '물질문화'라고 부른다.)을 비교해보는 것은 세계의 서로 다른 사회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세계사 만물관 ] p9

기록에 있어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게 되는, 기록하는 이의 주관적 시각으로부터 사물은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 하겠다. 이것이 사물의 역사적 가치라 할 수 있다.

하나의 물건에 담긴 이야기와 역사는 지리적으로도 넓은 영역을 걸쳐 있기도 하고 시간적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긴 기간에 걸쳐 발명 발전 쇠퇴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들도 책을 기획할 당시만 해도 '시공간이 뒤섞이며 이렇게까지 격변의 시대가 연이을 줄 몰랐다'고 한다.

먼저, 책에서는 77가지 사물을 7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 것을 읽어보며, 의미가 있게 다가온 몇 가지 사물들을 분류하여 정리해보고자 하였다.

시공간이 뒤섞이며 이어져온 사물

- 밴조와 해먹

밴조의 선조격인 아콘팅은 서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 지대에서 유래하였으며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인이 대서양을 건너 자행한 노예무역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에 보급되었다.

미국 전역의 아프리카계 후손들은 그들의 애환을 담아 밴조를 연주했다. 20세기 초까지 미국 흑인 음악은 밴조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1920년대에는 밴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고, 이 시기부터는 백인이 밴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 등에서 미국 땅으로 이민 온 백인들은 밴조를 보면서 고국의 소박한 악기를 떠올렸다.

흑인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는 표현 수단이었던 밴조는 대중에게 친숙한 컨트리 뮤직의 상징이 되었다. 흑인의 악기였던 밴조가 이제 진정성이라는 환상을 쫓는 가난한 백인의 악기가 된 셈이다. 그 결과 서아프리카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힌 채 미국 남부 시골의 정체성을 가진 물건으로 둔갑했다. 밴조에 담긴 노예제 역사가 완전히 부정당하고 향토성 짙은 악기가 된 것이다.

오늘날 열대 지역에서의 휴가와 안락함을 상징하는 해먹은 스페인 왕정과 대영제국 미국의 야심을 위해 이용된 원주민의 물건이었다. 오래전부터 이 물건은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의 가정에서 취침용으로 쓰였다. 후에 17세기부터 포르투갈-인도 항로를 오가는 선박의 해병과 선원들을 설치류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1969년 11월 19일 달 착륙 우주선 아폴로 12호의 휴식공간으로 두 개의 출구 사이에 특수 해먹이 설치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수천 년 전부터 사용하다 16세기 콩키스타도르가 발견한 물건인 해먹은 이렇게 우주로 진출한 것이다.

밴조와 해먹은 지리적으로나 시기적으로 아주 넓은 영역에 걸쳐 발전해오며 그 공간과 시간에 담긴 역사를 담고있다. 특히 밴조는 사용자가 변하며 그 의미 역시 바뀌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또 많은 물건들이 그렇겠지만 해먹은 사용 시기에 따라 쓸모와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어 사용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느 민족 혹은 계급의 애환과 아픔을 담고 있는 사물

- 피아노, 재봉틀, 경구피임약

피아노의 역사는 음악의 역사이자 유럽의 세계 정복사이며, 결국은 사회 격변의 역사다 그 격변을 먼저 겪은 건 유럽 사회였다. 귀족적인 하프시코드에 대항해 19세기 피아노가 거둔 성공은 사실 부르주아의 성공과 같은 말이었다. 피아노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르주아는 새로운 계층에 속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부터 피아노의 검은 건반은 흑단으로, 흰 건반은 상아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피아노가 제일 발전하던 시기는 어땠을까? 아마 피아노 재료를 구하기 위해 군사 작전이 펼쳐졌다는 걸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의 코끼리 상아는 아시아코끼리나 아프리카 숲에 사는 코끼리 상아보다 상태가 좋았고 가공하기도 더 쉬웠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 초원에서 수백만 마리의 코끼리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물론 피아노만 문제였던 건 아니다. 당구공이나 상아로 만든 칼자루, 장신구 같은 물건에도 마찬가지로 상아가 쓰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상아를 얻으려고 사냥꾼의 수를 늘린 사실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유럽식 총기를 든 직업 사냥꾼들은 점점 더 먼 곳까지 내달리며 노예무역을 위한 약탈과 납치를 일삼았다. 노예무역의 경로는 상아의 이동 경로와 일치한다. 결국 코끼리가 점차 사라져감과 동시에 현지 정권이 붕괴되었고 19세기말 식민지 기업은 더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음악사를 살필 때는 유럽에서 시작한 음악이 예술적으로 어떻게 변모했는지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다른 사실도 알고 기억해야 한다.

P151,153

초기 피아노의 흰건반이 상아로 만들었다는 것은 들어 알고있었지만, 상아의 수급을 위해 그런 약탈의 역사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또 피아노의 선조격인 하프시코드라는 악기에 비해 보급이 좀 더 쉬웠던 탓에 피아노의 소유가 부르주아의 성공의 척도 같은 것이었다고 하니, 우리 어릴 적 피아노가 있는 거실의 풍경이 문화와 경제를 갖춘 가정의 표식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1906년 알베르 아프탈리옹은 재봉틀을 보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재봉틀 제조사들은 릴 전 지역에 넘쳐났다…훗날 엄청난 보수를 받을 수 있다며 미끼를 던지는 수금업자들은 할부로 재봉틀을 구입하라는 압력을 넣으면서 그때까지는 의류 산업과 무관했던 마을이나 숙소에거 재택으로 일하던 젊은 인력을 부추겼다." 기계화는 빈 부터 부에노아이레스까지 서민층이 사는 모든 지역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이를 꿰뚫어 본 카를 마르크스는 "재봉틀은 모든 착취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방식에 무차별적으로 들어맞았다."고 썼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건 대부분 이민자였다. 1870년대부터 수많은 이민자가 재봉틀 한 대만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가령 파리 상티에 지역은 벨기에인과 독인인, 다음에는 동유럽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이탈리아인이 들어왔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 생존자들이, 그 이후에는 북아프리카 유대인, 유고슬라비아인, 파키스탄인, 중국인들이 잠식했다. 로스앤젤레스의 패션 디스트릭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은 1990년대에 노동자 10만 명을 고용했고, 대다수가 가장 싼 임금을 받는 라틴계 불법 이민자들이었다. 재봉틀만 잘 다룰 수 있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언제든지 궂은일을 하며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P308~309

한 때 우리나라도 봉제 산업의 비중이 컸던 때가 있었다. 공단의 여공들의 미싱 실력이 경제도 일으키고, 가정의 생계와 동생들의 교육까지 떠안았던 시절이다. 재봉틀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런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노동자들의 아픔이 담긴 물건이었다.

1956년에는 더 큰 규모의 경구피임약의 임상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푸에르토리코를 선택했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동부에서 가까웠고 폭발하는 인구수 때문에 피임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현지 가족계획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임상 시험은 수도 산후안의 빈곤한 교외 지역인 리오피에드라스와 섬 동쪽의 시골 지역 두 곳에서 진행되었다. 다른 임상 시험은 아이티에서 진행되었다.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실험용 기니피그 역할을 한 것이다.

P78

이 경구피임약 사태를 읽으며 한 거대기업이 떠올랐다. 1970년대 그 기업은 분유를 팔기 위해 아프리카 엄마들을 상대로 분유 샘플을 주어가며 선동하였고 아프리카의 오염된 식수로 분유를 먹은 영아들의 사망한 사건이다.

경구피임약의 무분별한 임상 시험이 약소국인 나라를 상대로 강대국이 한 짓이라는 점이,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한 거대 기업의 분유 사태와 아주 닮을 꼴이다. 늘 약자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이렇게 당할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환경 문제에 관한 물건

- 페트병

낭비 사회로의 진입을 상징하는 페트병은 음료 산업의 역사와 포장재의 역사가 만난 결과물로, 유통 체계와 생활 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아시아의 태국, 인도, 베트남에서 페트병은 가속화된 도시화와 심각한 지역 불균형을 드러내는 물건이다. 전 세계의 쓰레기를 보관, 분류, 가공하는 베트남의 찌에우쿡이나 말레이시아의 젠자롬 같은 플라스틱 마을이 지구의 재활용 처리 구역이 된 모습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처음 나왔을 때는 위생적이고 현대적인 물건으로 여겨지던 페트병은 이제 환경 파괴의 상징이 되었다. 많은 나라, 적어도 공공 상하수도 시설이 있는 곳에서는 페트병을 없애야 한다고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50여 년 전부터 워낙 집중적으로 사용해왔기에 페트병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미세 플라스틱과 나노 플라스틱으로 지표면 전체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제 페트병은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의 지층학 표지로도 연구되고 있다.

P101, 104

페트병이 처음 개발되어 나왔을 때 얼마나 편리하고 놀라웠을지 짐작이 된다. 형태가 있으면서, 매우 가볍고, 유리처럼 파손이 되지 않으며 휴대와 보관이 쉬운 용기라는 점에서 혁신적인 물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활 방식과 유통 체계를 바꾸었던 이 물건도 환경적인 측면에서 더 이상 인류에게 이롭지 못한 물건이 되었으니 이제 대체제를 위해 자리를 내주어야 할 물건이 된 듯 싶다.

전환점이 되는 사물, 혁신의 물건

-지도, 타자기, 페니실린

지도 없이는 전체성에 대한 감각을 가질 수 없다. 지도는 지구를 '그린' 것이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행성 전체를 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지구를 '만들어낸다'. 1972년 아폴로 17호에 탑승한 우주 비행사들이 '파란 구슬' 사진을 찍기 전부터 말이다. 지도만이 지구 전체를 한눈에 보여주며 인류의 지성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말로는 묘사하기 힘든 지구의 끝없음을 우리 누앞에 펼쳐준 것도 지도였다. 학술 지도, 군사 지도, 행정 지도, 무역 지도, 식민지 지도처럼 다양한 형태와 상징을 가진 지도들은 세상을 차지할 수 있게끔 도왔다. 정밀과학에 의한 지도 제작 방식은 18세기부터 유럽에서 무르익어갔다. 대대로 천문학자인 카시니 가문이 삼각측량법을 이용해 제작한 국가 지형도는 옛 지도에서 볼 수 있던 바다 괴물과 괴수들을 상상 속으로 밀어넣고 논리적으로 지형을 나타냈다.

P360

지도는 인류에게 이성적인 세계관에 큰 영향을 준 물건이라 할 수 있겠다. 과거 다양한 기준으로 제작되었던 세계의 여러 형태의 지도들은 이제 명확한 측정 도구와 방법으로 인해 다양성을 잃었다. 하지만 그 만큼 우리는 한 눈에 보이는 지구를 눈 앞의 지구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세계인이 같은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타자기의 성공은 자본주의적 조직 변화, 임금노동 경제활동 인구의 증가, 서비스산업 기술의 발전, 속도의 중시 등 현대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었지만 더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쓰기를 기계화하고자 하는 욕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P276

타자기는 지금은 대체되어 사장된 물건이지만 손으로 쓰지 않고 기계의 힘으로 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혁신이었을지 상상이 된다. 새로운 물건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낸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점이다. 타자기는 타이피스트 직업군도 생기게 했다.

원자폭탄과 마찬가지로 페니실린은 군수산업과 불가분의 관계다. 기술혁신보다는 정치와 조직이 변모한 결실에 가까운 페니실린은 의학이 빅 사이언스 시대로 진입했다는 걸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미생물, 발효와 연관된 생물학을 산업적으로 제어한 긴 역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P234

전쟁을 위해 과학이 동원되던 시기를 등에 엎고 페니실린의 개발과 발전은 혁신을 이룬다. 지금은 오히려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필수 의약품임에도 값싼 가격으로 인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의약품이 되어 점점 더 잦은 재고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합성 페니실린의 개발로 쉬운 접근성이 가능해 다제내성(감염균의 약물 내성이 한 종류의 약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약제들에 대하여 내성을 갖게 되는 경우)의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사물에 얽힌 77가지 이야기들을 통해 세계사를 알아보는 이 책을 통해 기록 역사 이면의 이야기까지 들어볼 수 있었다. 일곱 가지 큐레이션에 배치된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나가는 동안 대륙과 바다를 넘나들며 수십 개의 국가와 지역을 탐험하게 된다. 게다가 각 사물에 깃든 역사를 알아가는 동시에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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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성교육 - 아이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대답하는
김소영 지음 / 빌리버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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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린 시절 초등학생을 둔 어머니들이 모여 성교육에 관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휴, 어떻게 애랑 그런 얘기를 해. 몇몇 모여 성교육 신청하면 전문가가 알아서 몇시간 동안 잘 교육시켜줘.” 

나는 속으로 “아 저런 소규모 교육이 있구나. 그럼 정말 난감한 설명을 하지 않고 피해갈 수 있어 좋겠구나.” 하며 생각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어느덧 그 어린 아이가 자라 이제 초등 고학년이 되니 2차 성징에 관해서도 성관계나 피임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누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아이의 학습에 관해서도 전문가에게 전적으로 맡기기보다는 학습서를 읽고 엄마표를 찾아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 성교육에 관한 것도 직접 책을 찾아 읽어 보고 같이 풀어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학창 시절 성교육은 중학교때 여자 남자를 구분하여, 동성인 학급 친구들을 모아 놓고 보건 선생님께서 피임이나 성관계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건너뛰고(당연히 성평등이나 성인지 감수성 같은 것은 들어 보지도 못한 개념이었다.) 생물학적으로 간단하게 설명한 후 여학생으로서 주의할 사항들을 교육하는 시간들이었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돌이켜보니 그 시절 성교육은 잘못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부모에게 이야기를 터놓을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또래들끼리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둘째, 시기상의 문제로 유아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성을 인지하고 존중하는 교육이 이루어 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늦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셋째, 생물학적인 성 외에도 성역할이나 성평등에 관한 개념도 함께 다루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이러한 성교육의 문제점들을 타파할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양육자에 의해 가정에서 이루어 지는 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생활에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성교육 하는 데 가장 좋은 환경은 가정입니다. 가정은 자녀들이 정서적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로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성과 관련된 내용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녀가 양육자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아이의 마음에 귀 기울이세요.

성교육은 일정한 공식이 있는 교육이 아니라 몸에 스며드는 교육입니다. 아이는 양육자의 표정, 말투, 분위기로 성 지식(성 문화)을 이해합니다. 양육자가 성을 불편해하거나 아이의 질문에 귀찮은 듯이 대답하면, 아이도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궁금한 것이 있어도 양육자에게 질문하지 않으려 합니다.

<돌직구 성교육> P44

또, 성교육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많은 양육자가 성교육을 일정한 시기에 알고 넘어가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성교육을 사람이 생활하면서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인성교육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생활 속에서 양육자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접하면서 차근차근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지요.

<돌직구 성교육> P5

이렇듯 일정 시기가 아닌, 유아기부터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준비 하라고 조언한다.

그 구체적 방법은 아래와 같이 다섯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1. 아이의 감정을 인정합니다.

2. 아이 때부터 경계 존중 교육을 합니다.

3. 거절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4. 사생활을 존중합니다.

5. 외모에 대한 관심을 인정합니다.

이 중에서 경계 존중과 거절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은 양육 과정에서 아이의 원만한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때때로 아이들 개인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기도 하며,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거절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못하기도 하는데, 그런 잘못된 지점들을 구체적 사례들로 알려주어 바르게 인지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또 성교육을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과 2차성징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넘어가는 좁은 의미로서가 아니라,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성별에 상관없이 상대와의 차이를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는 포괄적인 의미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은 어느 한 시기에 국한된 것이 아닌 양육자의 지나온 이야기이며 자녀가 태어나 사춘기를 겪고 어른이 되어가고, 사랑하고, 성관계를 경험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전 과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성에 관한 여러 주제들을 자녀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양육자가 일상적 대화에 함께 녹여 자연스럽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로 아이와 일상의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아이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관계 형성을 잘 해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성교육 또한 부모와 아이의 원만한 관계속에 이루어져 가야 하는 것 이었다니.. 성교육도 결국 엄마표구나. 가정 교육이 이래서 정말 중요한 것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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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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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는 단어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채도 높은 컬러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 여인의 웅크리고 있는 푸른빛이 감도는 표지의 책을 보는 순간 제목과 대치되는 톤에 본능적으로 끌렸다.

먼저, 작가가 생각하는 푸른빛은 이러하다.

바깥과 실내의 푸른 기운이 서로 만나는 새벽과 어스름은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때 창밖의 하늘과 실내의 빛은 완전히 포개어져 안팎을 구별하기 힘들다. 그곳은 완벽한 푸름 속에서 머무를 수 있는 나만의 은거지다. 그 시간과 공간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유효하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찾아온다.

p85 [여름의 피부]

푸르름을 새벽녘의 어스름한 빛깔로 표현한 것이 머릿속에 이미지화 되면서 떠올려진다.

하지만 다시 한번 어떤 푸른빛인지 콕 찝어서 다시 표현해 주기도 한다.

푸른 그림에 대한 책을 쓴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종종 어떤 파랑을 좋아하는지 물어왔다. 파랑은 투명하고, 넓고 깊다. 그런 색의 구체적인 좌표를 짚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결국 나는 피에르 보나르의 블루를 말하게 될 것이라고.

p86 [여름의 피부]

그리고 피에르 보나르의 블루를 볼 수 있는 그림을 같이 보여준다.




<세면대 위의 거울> 1908. 피에르 보나르

<욕조 속의 누드> 1925. 피에르 보나르

(저작권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책 속 그림은 총 두 점만 첨부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컬러에서 받는 느낌이 다른데, 나는 보통 밝고 채도가 높으면 에너지를 빼앗기는 느낌이고 채도가 낮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

퍼스널 컬러. 진단받아 본 적은 없지만, 얼굴에 핑크 기운이 돌고 블랙그레이톤 헤어보다 브라운톤 헤어가 더 어울리는 것을 보면 웜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나는 무채색이나 푸른빛의 쿨톤에 더 끌린다. 아마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이 책이 표지부터 본능적으로 끌렸으며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의 예술가적 기질이 글 곳곳에 묻어나 에세이집에 가깝다 할 수 있겠다. 그림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는 해설서나 도슨트북이라고 하기에는 문학적 표현에 가까운 문장이 많다.

여름에는 새로운 단어를 껴안을 수 있는 몸을 갖게 된다. 여름이 나를 통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계절의 모든 흔적을 남기고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볕이 내리쬐는 대로 느슨하게 몸을 푼다. 바람이 들도록 몸을 연다. 어떤 것이든 안으로 흘러들어와 나를 간지럽히도록 내버려둔다. 눈꺼풀 위로, 손톱 아래로, 등줄기로, 귓바퀴로, 양 뺨으로, 발가락 사이로, 무릎 뒤편으로,

......(중략)

내가 여름에 주운 단어 중 하나는 나신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 나는 종종 그 단어를 즐기는 일을 좋아한다. 혼자이고, 외롭지도 않은, 남자 없는 여름, 창문을 연 뒤 옷을 훌훌 벗고 집 안을 거닌다. 타인의 시선이 부재할 때 몸은 가벼워진다. 그 행위에는 은밀한 자유로움이 깃든다. 신기한 일이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 몸은 나에게서 고립되지 않는다. 혹은 그럴 때만 나에게 몸이 있음을, 살아 있음을, 여기 있음을 깨닫곤 한다. 

p76 [여름의 피부]


화자를 작가 자신이 아닌, 소설 속 주인공이라 바꾸면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림과 함께 생각하고 느꼈던 바를 절묘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여러 편의 단편 소설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해 준다.



나는 때때로 그림 보는 것을 즐겨하지만, 그림을 사조로 묶고 연대별로 묶고 작가 화풍의 특징을 몇마디로 정의하는 그런 미술책은 보아지지 않는다.

[여름의 피부]는 그런 책이 아니어서 이 여름 끝 무렵을 매우 만족스럽게 채워주었다. 작가님과 소개해준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 [여름의 피부] 속 제일 좋았던 그림

<무제> 1970. 루치타 우르타도

<안락의자에 앉아 글을 쓰는 여인> 1929. 가브리엘레 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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