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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만물관 - 역사를 바꾼 77가지 혁명적 사물들
피에르 싱가라벨루.실뱅 브네르 지음, 김아애 옮김 / 윌북 / 2022년 9월
평점 :

인류의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론중에 문헌학과 고고학이 있다.
문헌학은 사료가 문자의 형태로 남아있는 것을 연구하는 분야를 말한다. 기록가와 보존가의 손을 거치며 역사적 사실이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해 두어야한다. 이에 반해 역사가가 사물의 형태(유물)로 남겨진 사료를 연구하는 분야를 고고학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록과 사물 둘 중에 어떤 것이 역사를 연구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까?
물론 기록을 통해서 검증하기 힘든 사실들을 물질적인 자료를 통해서 연구하고, 발견된 고고학 유물을 사료를 통해 고증하는 등, 두 학문은 밀접하게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특히 고대로 갈수록 문자로 기록된 사료의 양이 현저하게 적어지기 때문에 고대사를 연구하고자 한다면 고고학에 대한 이해가 거의 필수적이다.
이 책 [세계사 만물관]에서는 사물에 담겨있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인류 역사의 이야기를 풀어보여준다. 바로 물건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다.
그렇다면 고고학처럼 물건을 통해 알아보는 것들의 가치가 왜 중요할까?
우리는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짜집기한 세계사에 익숙하다. 그러나 수면 위로 드러난 이야기만을 전하는 이러한 역사는 개개인의 다양성과 인간의 삶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문학사와 예술사의 수많은 담론 또한 문자가 없던 시대나 문자가 있는 사회이더라도 문맹인들의 경험은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말 없는 사물은 역설적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보편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사물은 대량생산이 시작된 18세기 말부터 사람들의 최소 공통분모가 되었다. 사람들은 거의 똑같은 물건을 시기와 장소에 따라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교환하고 받아들였다. 각국의 사물과 그 사물의 사용법(연구자들은 이를 '물질문화'라고 부른다.)을 비교해보는 것은 세계의 서로 다른 사회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기록에 있어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게 되는, 기록하는 이의 주관적 시각으로부터 사물은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 하겠다. 이것이 사물의 역사적 가치라 할 수 있다.
하나의 물건에 담긴 이야기와 역사는 지리적으로도 넓은 영역을 걸쳐 있기도 하고 시간적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긴 기간에 걸쳐 발명 발전 쇠퇴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들도 책을 기획할 당시만 해도 '시공간이 뒤섞이며 이렇게까지 격변의 시대가 연이을 줄 몰랐다'고 한다.
먼저, 책에서는 77가지 사물을 7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 것을 읽어보며, 의미가 있게 다가온 몇 가지 사물들을 분류하여 정리해보고자 하였다.
시공간이 뒤섞이며 이어져온 사물
- 밴조와 해먹
밴조의 선조격인 아콘팅은 서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 지대에서 유래하였으며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인이 대서양을 건너 자행한 노예무역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에 보급되었다.
미국 전역의 아프리카계 후손들은 그들의 애환을 담아 밴조를 연주했다. 20세기 초까지 미국 흑인 음악은 밴조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1920년대에는 밴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고, 이 시기부터는 백인이 밴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 등에서 미국 땅으로 이민 온 백인들은 밴조를 보면서 고국의 소박한 악기를 떠올렸다.
흑인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는 표현 수단이었던 밴조는 대중에게 친숙한 컨트리 뮤직의 상징이 되었다. 흑인의 악기였던 밴조가 이제 진정성이라는 환상을 쫓는 가난한 백인의 악기가 된 셈이다. 그 결과 서아프리카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힌 채 미국 남부 시골의 정체성을 가진 물건으로 둔갑했다. 밴조에 담긴 노예제 역사가 완전히 부정당하고 향토성 짙은 악기가 된 것이다.
오늘날 열대 지역에서의 휴가와 안락함을 상징하는 해먹은 스페인 왕정과 대영제국 미국의 야심을 위해 이용된 원주민의 물건이었다. 오래전부터 이 물건은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의 가정에서 취침용으로 쓰였다. 후에 17세기부터 포르투갈-인도 항로를 오가는 선박의 해병과 선원들을 설치류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1969년 11월 19일 달 착륙 우주선 아폴로 12호의 휴식공간으로 두 개의 출구 사이에 특수 해먹이 설치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수천 년 전부터 사용하다 16세기 콩키스타도르가 발견한 물건인 해먹은 이렇게 우주로 진출한 것이다.
밴조와 해먹은 지리적으로나 시기적으로 아주 넓은 영역에 걸쳐 발전해오며 그 공간과 시간에 담긴 역사를 담고있다. 특히 밴조는 사용자가 변하며 그 의미 역시 바뀌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또 많은 물건들이 그렇겠지만 해먹은 사용 시기에 따라 쓸모와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어 사용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느 민족 혹은 계급의 애환과 아픔을 담고 있는 사물
- 피아노, 재봉틀, 경구피임약
피아노의 역사는 음악의 역사이자 유럽의 세계 정복사이며, 결국은 사회 격변의 역사다 그 격변을 먼저 겪은 건 유럽 사회였다. 귀족적인 하프시코드에 대항해 19세기 피아노가 거둔 성공은 사실 부르주아의 성공과 같은 말이었다. 피아노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르주아는 새로운 계층에 속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부터 피아노의 검은 건반은 흑단으로, 흰 건반은 상아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피아노가 제일 발전하던 시기는 어땠을까? 아마 피아노 재료를 구하기 위해 군사 작전이 펼쳐졌다는 걸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의 코끼리 상아는 아시아코끼리나 아프리카 숲에 사는 코끼리 상아보다 상태가 좋았고 가공하기도 더 쉬웠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 초원에서 수백만 마리의 코끼리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물론 피아노만 문제였던 건 아니다. 당구공이나 상아로 만든 칼자루, 장신구 같은 물건에도 마찬가지로 상아가 쓰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상아를 얻으려고 사냥꾼의 수를 늘린 사실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유럽식 총기를 든 직업 사냥꾼들은 점점 더 먼 곳까지 내달리며 노예무역을 위한 약탈과 납치를 일삼았다. 노예무역의 경로는 상아의 이동 경로와 일치한다. 결국 코끼리가 점차 사라져감과 동시에 현지 정권이 붕괴되었고 19세기말 식민지 기업은 더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음악사를 살필 때는 유럽에서 시작한 음악이 예술적으로 어떻게 변모했는지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다른 사실도 알고 기억해야 한다.
초기 피아노의 흰건반이 상아로 만들었다는 것은 들어 알고있었지만, 상아의 수급을 위해 그런 약탈의 역사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또 피아노의 선조격인 하프시코드라는 악기에 비해 보급이 좀 더 쉬웠던 탓에 피아노의 소유가 부르주아의 성공의 척도 같은 것이었다고 하니, 우리 어릴 적 피아노가 있는 거실의 풍경이 문화와 경제를 갖춘 가정의 표식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1906년 알베르 아프탈리옹은 재봉틀을 보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재봉틀 제조사들은 릴 전 지역에 넘쳐났다…훗날 엄청난 보수를 받을 수 있다며 미끼를 던지는 수금업자들은 할부로 재봉틀을 구입하라는 압력을 넣으면서 그때까지는 의류 산업과 무관했던 마을이나 숙소에거 재택으로 일하던 젊은 인력을 부추겼다." 기계화는 빈 부터 부에노아이레스까지 서민층이 사는 모든 지역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이를 꿰뚫어 본 카를 마르크스는 "재봉틀은 모든 착취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방식에 무차별적으로 들어맞았다."고 썼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건 대부분 이민자였다. 1870년대부터 수많은 이민자가 재봉틀 한 대만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가령 파리 상티에 지역은 벨기에인과 독인인, 다음에는 동유럽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이탈리아인이 들어왔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 생존자들이, 그 이후에는 북아프리카 유대인, 유고슬라비아인, 파키스탄인, 중국인들이 잠식했다. 로스앤젤레스의 패션 디스트릭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은 1990년대에 노동자 10만 명을 고용했고, 대다수가 가장 싼 임금을 받는 라틴계 불법 이민자들이었다. 재봉틀만 잘 다룰 수 있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언제든지 궂은일을 하며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한 때 우리나라도 봉제 산업의 비중이 컸던 때가 있었다. 공단의 여공들의 미싱 실력이 경제도 일으키고, 가정의 생계와 동생들의 교육까지 떠안았던 시절이다. 재봉틀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런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노동자들의 아픔이 담긴 물건이었다.
1956년에는 더 큰 규모의 경구피임약의 임상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푸에르토리코를 선택했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동부에서 가까웠고 폭발하는 인구수 때문에 피임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현지 가족계획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임상 시험은 수도 산후안의 빈곤한 교외 지역인 리오피에드라스와 섬 동쪽의 시골 지역 두 곳에서 진행되었다. 다른 임상 시험은 아이티에서 진행되었다.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실험용 기니피그 역할을 한 것이다.
이 경구피임약 사태를 읽으며 한 거대기업이 떠올랐다. 1970년대 그 기업은 분유를 팔기 위해 아프리카 엄마들을 상대로 분유 샘플을 주어가며 선동하였고 아프리카의 오염된 식수로 분유를 먹은 영아들의 사망한 사건이다.
경구피임약의 무분별한 임상 시험이 약소국인 나라를 상대로 강대국이 한 짓이라는 점이,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한 거대 기업의 분유 사태와 아주 닮을 꼴이다. 늘 약자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이렇게 당할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환경 문제에 관한 물건
- 페트병
낭비 사회로의 진입을 상징하는 페트병은 음료 산업의 역사와 포장재의 역사가 만난 결과물로, 유통 체계와 생활 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아시아의 태국, 인도, 베트남에서 페트병은 가속화된 도시화와 심각한 지역 불균형을 드러내는 물건이다. 전 세계의 쓰레기를 보관, 분류, 가공하는 베트남의 찌에우쿡이나 말레이시아의 젠자롬 같은 플라스틱 마을이 지구의 재활용 처리 구역이 된 모습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처음 나왔을 때는 위생적이고 현대적인 물건으로 여겨지던 페트병은 이제 환경 파괴의 상징이 되었다. 많은 나라, 적어도 공공 상하수도 시설이 있는 곳에서는 페트병을 없애야 한다고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50여 년 전부터 워낙 집중적으로 사용해왔기에 페트병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미세 플라스틱과 나노 플라스틱으로 지표면 전체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이제 페트병은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의 지층학 표지로도 연구되고 있다.
페트병이 처음 개발되어 나왔을 때 얼마나 편리하고 놀라웠을지 짐작이 된다. 형태가 있으면서, 매우 가볍고, 유리처럼 파손이 되지 않으며 휴대와 보관이 쉬운 용기라는 점에서 혁신적인 물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활 방식과 유통 체계를 바꾸었던 이 물건도 환경적인 측면에서 더 이상 인류에게 이롭지 못한 물건이 되었으니 이제 대체제를 위해 자리를 내주어야 할 물건이 된 듯 싶다.
전환점이 되는 사물, 혁신의 물건
-지도, 타자기, 페니실린
지도 없이는 전체성에 대한 감각을 가질 수 없다. 지도는 지구를 '그린' 것이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행성 전체를 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지구를 '만들어낸다'. 1972년 아폴로 17호에 탑승한 우주 비행사들이 '파란 구슬' 사진을 찍기 전부터 말이다. 지도만이 지구 전체를 한눈에 보여주며 인류의 지성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말로는 묘사하기 힘든 지구의 끝없음을 우리 누앞에 펼쳐준 것도 지도였다. 학술 지도, 군사 지도, 행정 지도, 무역 지도, 식민지 지도처럼 다양한 형태와 상징을 가진 지도들은 세상을 차지할 수 있게끔 도왔다. 정밀과학에 의한 지도 제작 방식은 18세기부터 유럽에서 무르익어갔다. 대대로 천문학자인 카시니 가문이 삼각측량법을 이용해 제작한 국가 지형도는 옛 지도에서 볼 수 있던 바다 괴물과 괴수들을 상상 속으로 밀어넣고 논리적으로 지형을 나타냈다.
지도는 인류에게 이성적인 세계관에 큰 영향을 준 물건이라 할 수 있겠다. 과거 다양한 기준으로 제작되었던 세계의 여러 형태의 지도들은 이제 명확한 측정 도구와 방법으로 인해 다양성을 잃었다. 하지만 그 만큼 우리는 한 눈에 보이는 지구를 눈 앞의 지구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세계인이 같은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타자기의 성공은 자본주의적 조직 변화, 임금노동 경제활동 인구의 증가, 서비스산업 기술의 발전, 속도의 중시 등 현대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었지만 더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쓰기를 기계화하고자 하는 욕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타자기는 지금은 대체되어 사장된 물건이지만 손으로 쓰지 않고 기계의 힘으로 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혁신이었을지 상상이 된다. 새로운 물건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낸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점이다. 타자기는 타이피스트 직업군도 생기게 했다.
원자폭탄과 마찬가지로 페니실린은 군수산업과 불가분의 관계다. 기술혁신보다는 정치와 조직이 변모한 결실에 가까운 페니실린은 의학이 빅 사이언스 시대로 진입했다는 걸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미생물, 발효와 연관된 생물학을 산업적으로 제어한 긴 역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전쟁을 위해 과학이 동원되던 시기를 등에 엎고 페니실린의 개발과 발전은 혁신을 이룬다. 지금은 오히려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필수 의약품임에도 값싼 가격으로 인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의약품이 되어 점점 더 잦은 재고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합성 페니실린의 개발로 쉬운 접근성이 가능해 다제내성(감염균의 약물 내성이 한 종류의 약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약제들에 대하여 내성을 갖게 되는 경우)의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사물에 얽힌 77가지 이야기들을 통해 세계사를 알아보는 이 책을 통해 기록 역사 이면의 이야기까지 들어볼 수 있었다. 일곱 가지 큐레이션에 배치된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나가는 동안 대륙과 바다를 넘나들며 수십 개의 국가와 지역을 탐험하게 된다. 게다가 각 사물에 깃든 역사를 알아가는 동시에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