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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떠남으로 끌어안기, 방기(放己)로써 사랑하기**
성장통을 앓는 청춘들에게 삶은 선뜻 잡히지 않는 '밤안개(51쪽)'일 것이다.
어슴푸레해서 안달이 났을 것이고 밤이어서 막막하기도 했을 것이다.
1960년대라는 근대와 전근대가 혼융된 배경에서 진행된 젊은이들에겐 더욱 그러했으리라.
황혼 무렵의 고즈넉함에서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뜨는 밝은 별(270쪽)'이 있다.
길 위의 구도자 주인공 유준이가 문득 올려다 본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인(270쪽)' 개밥바라기 별이다.여기,그 자신 개밥바라기 별인 유준이가 내려다 본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웠던 '청춘의 祭지냄'이 있다.
#관습 제도 혹은 익숙한 것을 넘어서
소설 중 상진이가 말한다."우린 제도가 노골적인 억압이라 차라리 공기를 못 느끼는 것처럼 그냥 살지 않냐?(95쪽)"라고.주인공 유준이에게 학교는 그러한 제도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학교는 '부모들과 공모하여 유년기 소년기를 나누어놓고 성년으로 인정할 때까지 보호대상으로 묶어놓겠다는 제도(85쪽)'였던 것이다.억압이며 속임수인 학교에서 벗어나기는 그래서 자연스럽다.독학으로 대입을 치르게 하는 제도가 없었던 시절이고 보면 명문고 학생이며 재학 중 등단 했던 조숙한 천재 문인 유준이의 자퇴는 용기 있는,어쩌면 무모한 방기(放己)였을 것이다.'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으로 '흘러 가면서 내 길을 만들(45쪽)'겠다는 유준이에겐 두렵고도 지난한 모험의 시작일 터였다.
#일상 또는 첫사랑과의 결별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첫사랑의 달콤함이 막 움트오던 때에 '뒤로 돌아서더니 신문 배달 소년처럼 멈추지도 않고 휭하니 달려가버리'는 유준이.'꼬리 뒤로 목줄을 길게 끌고'사는 개처럼 살지 않겠다며 '팔자를 한번 바꿔 살아(249~250쪽)'보련다는 작정으로 집과 학교와 어머니와 사랑하는 이에게 작별을 고했던 유준이.낡은 것 매너리즘 소아적인 것 진부하고 기계적인 일상과의 과감한 결별이었으리라.
#'만물의 소멸에 대하여 겸손(245쪽)'해 지는법
베트남으로 파견되기 전날 기차로 귀대하면서 유준이는 회상한다. 고교 시절의 포졸 선생님 황새 선생님이 추억의 인물로 차례로 호명되고 등산반 친구들과의 만남이 등장 인물들간 특유의 간접화법인 '공중전'으로 펼쳐진다.'간이 맞는 친구' 인호와 산에서 자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했던 것이며 전국을 떠돌며 만나게 되는 학교 친구들인 정수 상진이 영길이 그리고 장무 선이 마침내 첫사랑 미아와의 얘기가 박진감있게 전개된다.
감히 말하거니와 상진이와 로사리아의 '보건체조(117쪽)' 사랑 이야기는 세계 연애 문학사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준이와 미아의 '흑인 오르페(221쪽)' 사랑 이야기는 아마도 이 작품을 통틀어 가장 매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좌절하고 작별하는 첫사랑으로 주인공(들)은 자기 삶에 한층 겸손해했으리라.
전국을 떠돌며 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친구들과 만나고 부대끼면서 자기만의 삶을 표현해 나감을 보여주는 듯하다.유치장에서 만난 30대 부랑 노동자 '대위' 아저씨와 떠돌던 때 오징어잡이배에서 격렬한 노동을 끝내고 '새벽녁에 항구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내 힘으로 살고 있다는 실감(260~261쪽)'은 이런 구도적 여정의 막바지에서였다.철저히 자기를 내어놓음으로써 '수많은 낯선 사람들을' 유준이는 '가슴 깊숙이 끌어안'은 것이다.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285쪽 작가의 말 中에서)'치지 않으면서 삶은 유준이 자신에게 한껏 밀착되어 자기 갱신이 이루어지고 있다.
떠남으로써 타인의 처지를 올곧게 이해하고 그 낯선 사람들을 자기 가슴에 긍정적으로 끌어 안게 되는 것이다.자신을 철저히 방기함으로써 자기 삶의 주체로 서게 되고 젊음의 내면 풍경은 한층 풍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도정에서 유준이는 세상과 '세상을 보는 자의 육신의 한계'를 절감한다. 자기와 타자 물(物)과 아(我) 나와 세상의 연결자(連結者)가 되려 한다(101~104쪽). 궁극적으로 찾아 헤매는 자기의 '아름다운 년(245쪽)'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추구한다. 경치좋고 근사한 곳이 아니라 '지저분하고 시끌벅적한 부둣가나 뱃사람들의 선술집에서(169쪽)' 반성하고 탐색한다.그러나 '내 생애 전부만큼 나는 사랑하지 못하였(97쪽)'음에서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성장의 변증법
기나긴 성장기라는 터널의 끝에 유준이는 '눈에 보이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따지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아울러 심취하게 된다.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 잡다한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과,거기서 벗어나야하는 무심함이 간발의 차이로 늘 함께(252~253쪽)' 있음을 아프게 실감한다.
1장과 마지막13장이 기차(플랫폼)에서 귀대하는 장면이다.집과 친구들과 어머니에게서 멀어지면서 '회한덩어리 청춘(30쪽)'이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던 시절에 대한 종언이 된다.동시에 베트남 전쟁에 파견되는 부대와 가까워지면서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대위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니까(282쪽'.개바밥라기 별이 이윽고 샛별이 되기 전이라도,어쩐지 쓸쓸할지라도, 온통 밤안개일뿐이라도 우리의 청춘은 지금 이 순간 눈 물 겹 게 아 름 답 다.Carpe Di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