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전출처 : 작가와의만남님의 "김혜순, 문태준 시인과의 만남 후기"

먼저 홍대 이리카페의 분위기부터 말해보자.곳곳에 책이 꽂혀 있었고 의자며 탁자들이 일사불란하지 않아 좋다.배치도 자유스럽고 탁자 크기도 일정하지 않다.약간 비좁은듯했지만 큰 거울이 여러개 있어 전체적으로 안온하면서 입체적인 공간감이 있다.도란도란 시 낭송으로는 제격인 카페같다. 모던하고 세련된 미인 김혜순 선생님이 수줍은 모습으로 먼저 나타나셨다.영화배우 유해진씨 닮았다는 얘길 많이니 들으신다는 문태준 선생님도 역시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오셨다.사회를 보신 분은 아름다운 시인 이원 선생님이신데 시종 화기애애하고도 진지하게, 순발력 있는 진행을 해 주셨다.맥을 짚어주셨고 어떤 대목에선 시의 의미를 독자를 대신하여 새겨주셨다. 신작 시집에 있는 시중에서 3편의 시가 시인의 육성으로 낭송되었다. 김혜순 선생님은 "당신의 첫(문학과 지성사 刊)"에서 랩송 같은 시를 가려뽑았다고 하시며 '양파' '불가살''전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를 조근조근하면서도 리드미칼하게 들려 주셨다.느린듯했지만 어떤 대목에 이르러선 속도감이 있고 고저며 장단이 있는 낭랑한 목소리였다. 낮이 오고 밤이 가고 사랑하고 헤어지는걸 생각하며 쓰셨다는 '양파', 고려말의 설화 불가사리를 쭉 설명하시면서 마지막에 그 설화와는 상관이 없다며 좌중을 폭소에 떨어뜨린뒤 읊은신 '불가살', 인도에 가보니 인도엔 3천여 神이 있다던데 그 신들을 생각하며 쓴 시라고 하시며 들려 주신 '전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는 뜻은 잘모르겠지만 어찌나 재미있고 신이 나든지! '같은 도형은 그리지 않으'신다는 평을 받고 있는 시인은 같은 목소리도 들려 주시지 않았다.모두들 숨죽였고 탄성이 이어졌다.

무테 안경 속의,온화하게 꿈벅거리는 눈빛의 시인 문태준 선생님은 나직하되 힘있는 목소리로 자선시를 낭송하셨다.
나뭇가지 그늘이 지붕에 어른대면 불길하다는 말에 따라 감나무를 베시는 아버지를 나뭇 아래에서 지켜 보시며 지으셨다는 "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 刊)"의 표제시,단골 술집에 갔더니 목숨 壽자 대신에 百年이라는 글귀가 바느질되어 시렁에 싸여 있는 베개를 보며 착상하셨다는 '百年', 댁에서 키우는 화분들은 대체로 죽어 나간다는데(일동 웃음) 어떤 화분은 죽은 줄 알았지만 물(삼다수라고 하니 또 일동 웃음)을 계속 주다 보니 풀이 자라나는 걸 보고 쓰여진 시 '화분'이 연속적으로 낭송되어 시의 향연에 깊이를 더했다.

객석에서 몇가지 질문이 있었고 두 분 선생님께서 아주 정성껏 답변해주셨다.
독자들의 낭송이 있었는데 빛고을 광주 멀리서오셨다는 클래시컬하고 온유한 시선의 여자분이 김혜순 선생님의 시를 암송하다시피했는데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듣다가 분위기에 홈빡 빠져서 지금 돌이켜봐도 무슨 시를 읖으셨는지 기억이 안난다.진짜 송구스럽다.아무래도 프로페셔널이신듯하다는게 중평이었다.이어지는 차례는 사실 문태준 선생님 시를 독자들 중 한 분이 낭독해야 되는데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김혜순 선생님 시는 뜻은 잘 모르겠으나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시어들로도 공시적 통시적으로 시의 무대가 광대무변하고 활달해서 좋았다고 간단하게 나의 총평을 말했다.시대신에 김혜순 선생님의 시집 "당신의 첫" 뒷표지에 있는 산문을 낭송했다.큰 목소리로 아주 멋대가리 없이!세 분선생님들과 그 곳에 계셨던분 모두에게 이자릴 빌어 죄송함돠 곱하기 백번!!






아참 낭송의 시간 중간에 서로 상대방의 시도 한수씩 낭송해 주셨다.
시를 읽고 문태준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셨다는 김혜순 선생님의 '당신 눈동자 속의 물(66쪽)',
김혜순 선생님께서 시를 보면서 태어나기도 전의 태아를 보면서 이별을 떠올렸다는게 대단한 시라는 게 느껴지셨다는
문태준 선생님의 '이별의 말이 생겨나기 전(46쪽)'이 바로 그것이다.

이윽고 기다리던 사인회였다.

***선생님께
무거운 지구가 고독에 잠긴다는
이 가을! 2008.9.26 문태준 드림

가까이서 뵈니 영화배우 유해진씨보다 롯데 자이언츠 마해영 선수를 닮으신,
'침착한 천재성("그늘의 발달" 117쪽의 김주연 선생님의 해설 中 )'이 단연 돋보이는 문태준 선생님,감사합니다.

***님께
낭독 잘 들었습니다.
2008.9.26
김혜순 올림


사실 들어 오실 때부터 제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습니다.서명해주실 땐 제 얼굴도 안보시더니 어떻게 낭독한 사람인 줄 아시고 귀한 글귀를 넣어 주셨습니다. 어찌나 콩콩딱딱대던지요.아,정말입니다.김혜순 선생님 대단히 고맙습니다.

다 쓰고보니 그 날의 감동과 재미의 백만분의 일만 표현한 듯합니다.여러분들 정말 죄송합니다.꾸뻑!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한 젊은 예술가의 성장기 눈뜸 방식**
-직관적 이해 및 총체적 인식 중심으로

 
고전들이 항용 그러하거니와  <개밥바라기 별>도 읽는 방법이나 해석의 갈래가 여려 겹이다.전체적으로 주인공 유준이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작품인데 연애소설로도 예술가 소설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그 다층적 독해의 방식 중 고등학교 때 이미 등단한 조숙한 천재 문인 유준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따라가고 싶다.감히 말하거니와 이 작품을 이해하는 키워드 중 하나일 것이다.회한 많은 한 젊은 예술가의 눈뜸 과정을 인식론 차원에서 살펴 본다.

 
#직관으로 바라보는 사물과 현상

무엇보다 유준이는 직관으로  세상을 알고 싶어한 것 같다.
직관이란 학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느 누구의 생각에 그대로 쫓아 가지 않고
사물과 현상의 본질에 곧장 다가서는 인식 방법일 것이다.


유준이는 인호와 학교를 그만 두고 산에서 2개월쯤 머물면서 자기 수양을 했는데 직관 훈련에 집중한다.어느 철학자를 빌어  '사물을 상징화하는 힘은 직관에서 나(52쪽)'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등장 인물 특유의 간접 화법인 이른 바 '공중전'은  일종의 직관적 화법이다.

'우리가 초저녁부터 명상에 들어간 것은(...)철이 들기도 전에 너무 남에게 휘둘리며 자랐으니 제 눈으로 보는 기술을 습득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107쪽)'.유준이는 직관적 인식의 방법론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유준이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쓴 액자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 김황원이 보경선사 앞에서
항아리를 일부러 깨뜨린 것이나  학교 교육에 누구보다 불편함을 드러낸 것 등은 직관적 인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추론이나 판단, 기존의 지식의 매개없이 '물(物)의  일기(一氣)'를 단박에 이해하려는 방식인
직관적 이해는 다음에 언급하는 유준이의 또 다른 방법론적인 세계관인 '총체적 인식'의 전제를 이루고 있다.

 

#서술 방식의 객관성, 인식의 총체성

이 작품은 복수의 1인칭 화자를 등장시켜 1인칭 화자 시점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서술의 주관성을 보완한다.주인공 유준이와 그 친구들을 번갈아 시점을 이동시킴으로써도 인식의 총체성을 지향한다.당대의 여러 계층의 시대상이랄까 풍속도를 다양한 복수 화자의 시선으로 교차시켜 전형성을 포착하고 있다.직접 인용 부호를 없앰으로써도 인식의 전체성을 획득해가고 있다.요컨대 서술 전략상으로도 총체적 인식의 한 흐름을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명문고등학교를 뛰쳐 나오며 그가 쓴 자퇴서 일부이다.

'인식은 통일적이고 총체적이며 이것저것으로 나눌 수 없'고 이는 '자유로운 독서와 학습 가운데서 창의성이 살아난다(88쪽)'.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 이런 이유들이 그가 자퇴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번에는 작품 중 인용된 바쇼의 단시(99쪽)를 보자.

 
오래된 연못에
개구리가 뛰어든다
물소리

 
'물소리가 간신히 개구리 저것과,보는 자 이것을 연결하고 있(103쪽)'는데
유준이는 '좀더 성숙해진 뒤에 곡절많은 생을 살면서 스스로를 연결자라고 생각(104쪽)'했다.

 

이런 맥락에서 유준이의 자퇴와 끝없는 방랑을 이해해 본다.
기존의 진부한 학습체계,관습,권위, 억압 굴하지 않고 자기만의 시각으로 즉,직관적으로 세상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총탄에 맞아 죽은 중길이를   눈물 범벅으로 부여 안을 때부터 등산반 친구들과의 드라마틱한 만남, 길 떠남의 곳곳에서 마주친 약초상 아저씨 아주머니,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영길이 작은 아버지 이야기나 한라산에서 우연히 마주친 군용파카 입은 단발머리 여자를 통해 듣게 되는 우리 역사의 아픈 과거사를  온몸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을 것이다. 

 

빈민 노동자들의 거주지역인 영단주택의 한가운데에서 몰락한 중산층의 도련님으로 '외로운 섬'처럼  살았던 유년기, 재학 중 등단한 조숙한 천재 문인임에도 명문고를 중퇴하고 공고 야간부에 가서  '두 가지의 세상을 겪(186쪽)'으면서 보내는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도 유준이의 세계 인식에 깊이와 넓이를 더해 주었을 것이다.세상에는 명과 암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총체적 인식'이길러졌을 것이다. 유준이의 운명적 만남인 30대 부랑 노동자인 '대위'아저씨와 '뱃전에 나란히 서서 파랑새담배 한 대씩 물고 멀리 가물거리는 항구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내 힘으로 살고 있다는 실감 때문에 담배연기를 길고 거세게 내뿜곤 했(261쪽)'던 장면도 이런 한층 성장된 유준이의 자아를 묘사한 것이리라.미아와의 첫 사랑의 불씨를 살리지 않고 그만의 '아름다운 년(245쪽)'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 것이며 음독 자살을 기도한 것은 세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자기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보려는 간절한 의지와 참담한 좌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 이유

이 모든 힘겨운 자기 모험의 끝에  유준이는 상념에 빠진다.'나는 그 순간에 회한덩어리였던 나의 청춘과 작별하면서,내가 얼마나 그 때를 사랑했는가를 깨(30쪽)'닫게 되는 것이다.한 청춘의 눈뜸의 성장기는 이렇듯 고통과 시련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를 하는 과정에서 고통스럽게 일구어진 것이리라.'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두렴움'은 없다.'대위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니까(282쪽).'오늘'은  인생 전체의 사소한 일부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여기가 인생의 축소판이며 꽃다운 우리 인생의 총체적 국면인 것이다.그렇다면 '오늘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전심전력으로  우리의 인생과 거침없이, 신나게 맞짱을 떠 보는  것이다.아름다운 우리 인생을 으스러지도록 껴안아 보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성장기 사랑의 존재 방식**

 

<개밥바라기 별>은 무엇보다 사랑이 가득한 성장소설이 아닐 수 없다.1960년대를 살아냈던 예민한 청춘들은 어떤 가슴앓이를 했으며 어떻게 반응하고 또 각성했을까.인간이 성장함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민감할 시기인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사랑의 존재방식에 주목했다. 청춘의 성장에 사랑이라는 순정하고도 총체적인 국면을 제외한다면 이보다 허허로운 인생이 어디있을까.하여 청춘들이 어떤 사랑과 조우하며 대화하고 내면 성장을 일구어 내는가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이 작품을 읽어 보았던 것이다.

 
#상진이와 로사리아의 경우:통과의례라기엔  너무나 순수하고 매혹적인

'그리고 다시 잡은 손을 꼼지락 거리며 침묵.
나는 일어나서 다리운동을 잠깐 하고는점퍼를 벗어서 누나의 등에 씌워주려고 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팔을 저으며 말렸지만 나는 억지로 씌워주고 앞자락까지 여며 주었다.
그런 다음 반대쪽으로 옮겨 앉아서 이번에는 그녀의 다른쪽 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질러넣어 주었다.(116쪽)'

알퐁스 도데의 '별'과 같이 읽어 보았다.손색이 없다.아니  더 큰 매혹이었다.통금이 있던 시절 후미진 골목의 어느 집 앞 계단에 둘이 앉아 있다.마침 새벽이었고 이 세상엔 둘만이 있는 듯한 아늑한 기분이었을 것이다.한 사람은 순정한 사랑에 몸이 떨렸을 것이다.다른 사람은 이별의 말을 꺼내려는 적절한 타이밍,상대방의 마음을 다치지 않는 시점을 고르려 숨을 고르고 있었을 것이다.이윽고 날은 희부염해지면서 세상은 점차 현실감있게 또렷해졌을 것이다.그래도 바로 저 순간,비록 몇 시간 앞을 내다보지 못할지라도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이었을 것인가.한 청춘의 내면은 정화되어 거룩해졌을 것이다.현실의 따가운 햇살에 더욱 여물어졌으리라. 

 

#유준이와 미아의 경우:일상의 애틋함을 기대하는 사랑,종국적으로 아름다운 꽃을 찾는  사랑

유준이는 비좁고 옹색했을 자신의 다락방을 '잠수함(12쪽)'이라고 별명지어 부른다.일상에서 종종 세상 사람들과 절연하면서 자신만의 '잠수함' 속에서 선장이 되어 깊은 침잠속에 빠지고 싶었을 것이다.미아의 방도 '윗목에 앉은뱅이책상 하나 놓였고 벽 주위에는 책이 일렬로 빙 둘러 세워져 있(201쪽)'는 다락방이다.당시 여염집의 일반적인 풍경내지는 애옥살이의 한 일면을 묘사한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두 사람은 이 공간에서 일상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면서 또한 일상의 비루함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한 사람은 우회하여 대학생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학창시절 줄곧 수석을 했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진학을 하지 못하고 구청 임시직인 신분인채로 만났다.운명이었을까.

'우리는 눈이 쌓인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눈 내린 밤이라 춥지는 않고 오히려 포근하게 느낄 정도였다.중도에 낮은 처마가 손에 잡힐 듯한 작은 집과 흐린 불이 비친 유리창문이 보였고 '국밥'이라고 붓글씨로 써붙인 신문지만한 종이가 보였다.미아가 유리창을 넘겨다보고는 내게 물었다.막걸리 딱 한 주전자만 먹죠.나는 대답 대신 문짝을 드르륵 열었다(20쪽).'

눈 내린 밤은 순결하고 서정적인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통금은 점점 가까워 오고 가난한 연인들 앞에 국밥집이 어둠 속에서 축복처럼 깜박였을 것이다.깍듯했던 말투는 점점 짧아지고 이내 정겨운 반말이 된다.딱 한 주전자의 막걸리는 얼마나 달콤했을 것인가.허허로우면서도 관능적인 노래 <카니발의 아침>이 내내 삼바 리듬을 탔던 영화 <흑인 오르페>가 오버랩된다(221,222쪽).

한 사람은 일상의 애틋함이 그리웠고 지긋지긋한 자기 인생에 떠 오르는 해 같은 사람을 기대한다.다른 사람은 일상의 지리멸렬과 동어반복에 몸서리치면서 그만의 '아름다운 년(245쪽)'을 위해 결연히 작별을 고한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간과해서는 안되는 우리 삶의 세목을 주목하는 청춘과 늦어지더라도 인생을 좀더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한 청춘이 아프게 부딪힌다.그 부딪힘은  가슴이 에리면서도  '어쩐지 후련했(251쪽)'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한없이 품어주는,끝없이 인내하는

 
'오늘도 안 들어오나 하구 걱정했다.활자가 작아서 눈두 아프구,네가 좀 읽어주면 좋겠구나.나는 부엌 마루에 앉아서 어머니에게 내 작품을 읽어 드렸다.처음으로 내가 쓴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는 셈이다.어머니는 가끔씩 의미 전달이 안되어 놓치면 다시 읽어 달라고 그랬다(193쪽).'

이 얼마나 숭고한 장면인가.이 작품에서 가장 흐뭇하고 뭉클했던 장면이 아닐까.자식들 누구보다 공을 들였으되 항상 우회하고 엇나가기만 했던  큰 아들.그 아들이 문학에 천부적 재능이 있음을 알아보고는 사춘기 때부터 상처받기 쉬운 예술가로서의 정밀한 내면 세계를 무던히도 이해하려고 했던 어머니.그 어머니가 드디어 재학 중 등단하는 아들의 작품을 부엌 마루에서 저자인 아들의 육성으로 듣게 되는 것이다.'나두 네가 의대엘 갔으면 했는데...책을 쓴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제 팔자를 남에게 다 내주는 일이란다.(194쪽)' .어머니는 그 간의 아쉬움과 현재의 자부심과 앞으로의 걱정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들의 낭독을 듣는 내내 행복하고 보상받는 기분이었을 것이다.그런 대견스러운 감정과 외유내강의 다짐 속에서 유준이가  전국을 떠돌며 나중에는 불가의 한 선원에서 행자가 되었을 때에도 끝까지 곁에서 지켜보았던 것이리라.유준이가 종국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에도 묵묵히 인내하며 다독이고 당신의 가슴을 남몰래 쓸어 내렸을 것이다. 최후의 보루인 어머니는 다그치지 않고  정해진 어떤 길을 강요하지 않고 한없이 너른 품으로 유준이를 끝없이 감싸 안았던 것이다.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은 아마도 유준이의 의식 성장에 가장 크고 든든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떠남으로 끌어안기, 방기(放己)로써 사랑하기**

 

성장통을 앓는 청춘들에게 삶은 선뜻 잡히지 않는  '밤안개(51쪽)'일 것이다.
어슴푸레해서 안달이 났을 것이고 밤이어서 막막하기도 했을 것이다.
1960년대라는 근대와 전근대가 혼융된 배경에서 진행된 젊은이들에겐 더욱 그러했으리라.

황혼 무렵의 고즈넉함에서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뜨는 밝은 별(270쪽)'이 있다.
길 위의 구도자 주인공 유준이가 문득 올려다 본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인(270쪽)' 개밥바라기 별이다.여기,그 자신 개밥바라기 별인 유준이가 내려다 본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웠던 '청춘의 祭지냄'이 있다.



#관습 제도 혹은 익숙한 것을 넘어서

소설 중 상진이가 말한다."우린 제도가 노골적인 억압이라 차라리 공기를 못 느끼는 것처럼 그냥 살지 않냐?(95쪽)"라고.주인공 유준이에게 학교는 그러한 제도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학교는 '부모들과 공모하여 유년기 소년기를 나누어놓고 성년으로 인정할 때까지 보호대상으로 묶어놓겠다는 제도(85쪽)'였던 것이다.억압이며 속임수인 학교에서 벗어나기는 그래서 자연스럽다.독학으로 대입을 치르게 하는 제도가 없었던 시절이고 보면 명문고 학생이며 재학 중 등단 했던 조숙한 천재 문인 유준이의 자퇴는 용기 있는,어쩌면 무모한 방기(放己)였을 것이다.'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으로 '흘러 가면서 내 길을 만들(45쪽)'겠다는 유준이에겐 두렵고도 지난한 모험의 시작일 터였다.



#일상 또는 첫사랑과의 결별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첫사랑의 달콤함이 막  움트오던 때에 '뒤로 돌아서더니 신문 배달 소년처럼 멈추지도 않고 휭하니 달려가버리'는 유준이.'꼬리 뒤로 목줄을 길게 끌고'사는 개처럼 살지 않겠다며 '팔자를 한번 바꿔 살아(249~250쪽)'보련다는 작정으로 집과 학교와 어머니와 사랑하는 이에게  작별을 고했던 유준이.낡은 것 매너리즘 소아적인 것 진부하고 기계적인 일상과의 과감한 결별이었으리라.



#'만물의 소멸에 대하여 겸손(245쪽)'해 지는법

베트남으로 파견되기 전날 기차로 귀대하면서 유준이는  회상한다. 고교 시절의 포졸 선생님 황새 선생님이 추억의 인물로 차례로 호명되고  등산반 친구들과의 만남이  등장 인물들간 특유의 간접화법인 '공중전'으로 펼쳐진다.'간이 맞는 친구' 인호와 산에서 자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했던 것이며  전국을 떠돌며 만나게 되는 학교 친구들인 정수 상진이 영길이 그리고  장무 선이 마침내 첫사랑 미아와의 얘기가  박진감있게 전개된다.

감히 말하거니와 상진이와 로사리아의 '보건체조(117쪽)' 사랑 이야기는 세계 연애 문학사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준이와 미아의 '흑인 오르페(221쪽)' 사랑 이야기는 아마도 이 작품을 통틀어 가장 매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좌절하고 작별하는 첫사랑으로 주인공(들)은 자기 삶에 한층 겸손해했으리라.

전국을 떠돌며 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친구들과 만나고 부대끼면서 자기만의 삶을 표현해 나감을 보여주는 듯하다.유치장에서 만난 30대 부랑 노동자 '대위' 아저씨와 떠돌던 때 오징어잡이배에서 격렬한 노동을 끝내고 '새벽녁에 항구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내 힘으로 살고 있다는 실감(260~261쪽)'은 이런 구도적 여정의 막바지에서였다.철저히 자기를 내어놓음으로써 '수많은 낯선 사람들을' 유준이는 '가슴 깊숙이 끌어안'은 것이다.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285쪽 작가의 말 中에서)'치지  않으면서 삶은 유준이 자신에게 한껏 밀착되어 자기 갱신이 이루어지고 있다. 

떠남으로써 타인의 처지를 올곧게 이해하고 그 낯선 사람들을 자기 가슴에 긍정적으로 끌어 안게 되는 것이다.자신을 철저히 방기함으로써 자기 삶의 주체로 서게 되고 젊음의 내면 풍경은 한층 풍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도정에서 유준이는 세상과 '세상을 보는 자의 육신의 한계'를  절감한다. 자기와 타자 물(物)과 아(我) 나와 세상의 연결자(連結者)가 되려 한다(101~104쪽). 궁극적으로 찾아 헤매는 자기의 '아름다운 년(245쪽)'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추구한다. 경치좋고 근사한 곳이 아니라 '지저분하고 시끌벅적한 부둣가나 뱃사람들의 선술집에서(169쪽)'  반성하고 탐색한다.그러나  '내 생애 전부만큼 나는 사랑하지 못하였(97쪽)'음에서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성장의 변증법

기나긴 성장기라는 터널의 끝에 유준이는 '눈에 보이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따지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아울러 심취하게 된다.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 잡다한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과,거기서 벗어나야하는 무심함이 간발의 차이로 늘 함께(252~253쪽)' 있음을 아프게 실감한다.

1장과 마지막13장이 기차(플랫폼)에서 귀대하는 장면이다.집과 친구들과 어머니에게서 멀어지면서 '회한덩어리 청춘(30쪽)'이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던 시절에 대한 종언이 된다.동시에 베트남 전쟁에 파견되는 부대와 가까워지면서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대위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니까(282쪽'.개바밥라기 별이 이윽고 샛별이 되기 전이라도,어쩐지 쓸쓸할지라도, 온통 밤안개일뿐이라도 우리의 청춘은 지금 이 순간 눈 물 겹 게  아 름 답 다.Carpe Die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성장소설의 한 고전(古典)

 

사춘기에서 스무살 초반.
우리가 기특하게 통과했으되 잊고 있었던 '온갖 외로움과 방황(10쪽)'의 나날들.
우리가 힘겹게 통과하고 있는 중이거나, 언젠가 부딪혀 이겨나가야할  미지의 시간들.

주인공 유준이는 말한다(31쪽)
나는 그 순간에 회한덩어리였던 나의 청춘과 작별하면서,내가 얼마나 그 때를 사랑했는가를 깨달았다.

어른이나 애들이나 왜들 먹구사는 일을 무서워하는 거야.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이야.흘러가면서 내 길을 만들 거야.
(유준이가 착한 학생 박영길에게,41쪽)

애매함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 있냐?...밤안개라는 노래를 좋아하긴 하지만 별로 생각은 안 해봤어요.
(등장인물 상호간의 일종의 간접화법인  '공중전' 중에서,51쪽)

어째서 앞길은 불안한가 길이 없어지면 광야인데
어째서 지루함은 죽음인가 저지르면 살아나거늘 모든 자고 깨는 꿈은 내 것.
(유준이와 '간이 맞는 친구' 인호가 쓴 詩,72쪽)

아아,행복하구 든든한 걸.
(상진이와 로사의 이른바 '보건체조' 사랑의 일부,117쪽)

나는 바다를 내 속에 갖고 있었다.내 주위에 영원히 넓혀진 바다를.
(유준 인호 정수 일행이 배로 제주도에 닿기 전에 선상에서 정수가 인용한 싯귀 일부,170쪽)

바람 피해 오시는 이처럼 문득, 전화하면
누가 뭐래요?
(미아가 유준이게게 관제엽서로 보낸 편지,223쪽)

살아 있음이란,그 자체로 생생한 기쁨이다.대위는 늘 말했다.
사람은 씨팔....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거기 씨팔은 왜 붙어요?
내가 물으면 그는 한바탕 웃으며 말했다.
신나니까......그냥 말하면 맨숭맨숭하잖아.
(30대 부랑 노동자 장씨와 유준이가 유치장에서 나누던 대화中,257쪽)

 
<개밥바라기 별>에는 이런 명구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도처에 흥미진진한 서사가 반갑게 맞이해준다.우리들 대부분이 잊고 있었던 그러나 잊혀지지 않은, 아픔이면서 기쁨인 한 청춘의 추억이 아로새겨있는 것이다.

<개밥바라기 별>을 읽는다는 뜻은 우리 인생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되산다는 뜻이리라.
<개밥바라기 별>에 동참한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 인생의 가장 순정한 시기를 미리 산다는 의미이리라.

작품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현실에서는 실존모델인 작가 황석영 선생님이
청춘의 애틋함으로, 마에스트로만이 쓸 수 있는 도저한 장인정신으로 공들여 쓴

당대 성장소설의 한 고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로셔 2008-08-08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내면의 잃어버린 일기장을 찾은 듯하다는 평에 느낌이 동합니다.
구구절절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문장들,글귀들,
차라리 그것은 나의 고백이라고 할 만하다.
포에너벨님 평에 조금 빌붙기를 합니다.
-브로셔-

forannabel 2008-08-09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로셔 님 감사합니다.님의 덧글에 깊이 동감합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