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성장기 사랑의 존재 방식**

 

<개밥바라기 별>은 무엇보다 사랑이 가득한 성장소설이 아닐 수 없다.1960년대를 살아냈던 예민한 청춘들은 어떤 가슴앓이를 했으며 어떻게 반응하고 또 각성했을까.인간이 성장함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민감할 시기인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사랑의 존재방식에 주목했다. 청춘의 성장에 사랑이라는 순정하고도 총체적인 국면을 제외한다면 이보다 허허로운 인생이 어디있을까.하여 청춘들이 어떤 사랑과 조우하며 대화하고 내면 성장을 일구어 내는가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이 작품을 읽어 보았던 것이다.

 
#상진이와 로사리아의 경우:통과의례라기엔  너무나 순수하고 매혹적인

'그리고 다시 잡은 손을 꼼지락 거리며 침묵.
나는 일어나서 다리운동을 잠깐 하고는점퍼를 벗어서 누나의 등에 씌워주려고 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팔을 저으며 말렸지만 나는 억지로 씌워주고 앞자락까지 여며 주었다.
그런 다음 반대쪽으로 옮겨 앉아서 이번에는 그녀의 다른쪽 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질러넣어 주었다.(116쪽)'

알퐁스 도데의 '별'과 같이 읽어 보았다.손색이 없다.아니  더 큰 매혹이었다.통금이 있던 시절 후미진 골목의 어느 집 앞 계단에 둘이 앉아 있다.마침 새벽이었고 이 세상엔 둘만이 있는 듯한 아늑한 기분이었을 것이다.한 사람은 순정한 사랑에 몸이 떨렸을 것이다.다른 사람은 이별의 말을 꺼내려는 적절한 타이밍,상대방의 마음을 다치지 않는 시점을 고르려 숨을 고르고 있었을 것이다.이윽고 날은 희부염해지면서 세상은 점차 현실감있게 또렷해졌을 것이다.그래도 바로 저 순간,비록 몇 시간 앞을 내다보지 못할지라도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이었을 것인가.한 청춘의 내면은 정화되어 거룩해졌을 것이다.현실의 따가운 햇살에 더욱 여물어졌으리라. 

 

#유준이와 미아의 경우:일상의 애틋함을 기대하는 사랑,종국적으로 아름다운 꽃을 찾는  사랑

유준이는 비좁고 옹색했을 자신의 다락방을 '잠수함(12쪽)'이라고 별명지어 부른다.일상에서 종종 세상 사람들과 절연하면서 자신만의 '잠수함' 속에서 선장이 되어 깊은 침잠속에 빠지고 싶었을 것이다.미아의 방도 '윗목에 앉은뱅이책상 하나 놓였고 벽 주위에는 책이 일렬로 빙 둘러 세워져 있(201쪽)'는 다락방이다.당시 여염집의 일반적인 풍경내지는 애옥살이의 한 일면을 묘사한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두 사람은 이 공간에서 일상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면서 또한 일상의 비루함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한 사람은 우회하여 대학생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학창시절 줄곧 수석을 했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진학을 하지 못하고 구청 임시직인 신분인채로 만났다.운명이었을까.

'우리는 눈이 쌓인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눈 내린 밤이라 춥지는 않고 오히려 포근하게 느낄 정도였다.중도에 낮은 처마가 손에 잡힐 듯한 작은 집과 흐린 불이 비친 유리창문이 보였고 '국밥'이라고 붓글씨로 써붙인 신문지만한 종이가 보였다.미아가 유리창을 넘겨다보고는 내게 물었다.막걸리 딱 한 주전자만 먹죠.나는 대답 대신 문짝을 드르륵 열었다(20쪽).'

눈 내린 밤은 순결하고 서정적인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통금은 점점 가까워 오고 가난한 연인들 앞에 국밥집이 어둠 속에서 축복처럼 깜박였을 것이다.깍듯했던 말투는 점점 짧아지고 이내 정겨운 반말이 된다.딱 한 주전자의 막걸리는 얼마나 달콤했을 것인가.허허로우면서도 관능적인 노래 <카니발의 아침>이 내내 삼바 리듬을 탔던 영화 <흑인 오르페>가 오버랩된다(221,222쪽).

한 사람은 일상의 애틋함이 그리웠고 지긋지긋한 자기 인생에 떠 오르는 해 같은 사람을 기대한다.다른 사람은 일상의 지리멸렬과 동어반복에 몸서리치면서 그만의 '아름다운 년(245쪽)'을 위해 결연히 작별을 고한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간과해서는 안되는 우리 삶의 세목을 주목하는 청춘과 늦어지더라도 인생을 좀더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한 청춘이 아프게 부딪힌다.그 부딪힘은  가슴이 에리면서도  '어쩐지 후련했(251쪽)'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한없이 품어주는,끝없이 인내하는

 
'오늘도 안 들어오나 하구 걱정했다.활자가 작아서 눈두 아프구,네가 좀 읽어주면 좋겠구나.나는 부엌 마루에 앉아서 어머니에게 내 작품을 읽어 드렸다.처음으로 내가 쓴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는 셈이다.어머니는 가끔씩 의미 전달이 안되어 놓치면 다시 읽어 달라고 그랬다(193쪽).'

이 얼마나 숭고한 장면인가.이 작품에서 가장 흐뭇하고 뭉클했던 장면이 아닐까.자식들 누구보다 공을 들였으되 항상 우회하고 엇나가기만 했던  큰 아들.그 아들이 문학에 천부적 재능이 있음을 알아보고는 사춘기 때부터 상처받기 쉬운 예술가로서의 정밀한 내면 세계를 무던히도 이해하려고 했던 어머니.그 어머니가 드디어 재학 중 등단하는 아들의 작품을 부엌 마루에서 저자인 아들의 육성으로 듣게 되는 것이다.'나두 네가 의대엘 갔으면 했는데...책을 쓴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제 팔자를 남에게 다 내주는 일이란다.(194쪽)' .어머니는 그 간의 아쉬움과 현재의 자부심과 앞으로의 걱정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들의 낭독을 듣는 내내 행복하고 보상받는 기분이었을 것이다.그런 대견스러운 감정과 외유내강의 다짐 속에서 유준이가  전국을 떠돌며 나중에는 불가의 한 선원에서 행자가 되었을 때에도 끝까지 곁에서 지켜보았던 것이리라.유준이가 종국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에도 묵묵히 인내하며 다독이고 당신의 가슴을 남몰래 쓸어 내렸을 것이다. 최후의 보루인 어머니는 다그치지 않고  정해진 어떤 길을 강요하지 않고 한없이 너른 품으로 유준이를 끝없이 감싸 안았던 것이다.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은 아마도 유준이의 의식 성장에 가장 크고 든든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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