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한 젊은 예술가의 성장기 눈뜸 방식**
-직관적 이해 및 총체적 인식 중심으로

 
고전들이 항용 그러하거니와  <개밥바라기 별>도 읽는 방법이나 해석의 갈래가 여려 겹이다.전체적으로 주인공 유준이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작품인데 연애소설로도 예술가 소설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그 다층적 독해의 방식 중 고등학교 때 이미 등단한 조숙한 천재 문인 유준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따라가고 싶다.감히 말하거니와 이 작품을 이해하는 키워드 중 하나일 것이다.회한 많은 한 젊은 예술가의 눈뜸 과정을 인식론 차원에서 살펴 본다.

 
#직관으로 바라보는 사물과 현상

무엇보다 유준이는 직관으로  세상을 알고 싶어한 것 같다.
직관이란 학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느 누구의 생각에 그대로 쫓아 가지 않고
사물과 현상의 본질에 곧장 다가서는 인식 방법일 것이다.


유준이는 인호와 학교를 그만 두고 산에서 2개월쯤 머물면서 자기 수양을 했는데 직관 훈련에 집중한다.어느 철학자를 빌어  '사물을 상징화하는 힘은 직관에서 나(52쪽)'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등장 인물 특유의 간접 화법인 이른 바 '공중전'은  일종의 직관적 화법이다.

'우리가 초저녁부터 명상에 들어간 것은(...)철이 들기도 전에 너무 남에게 휘둘리며 자랐으니 제 눈으로 보는 기술을 습득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107쪽)'.유준이는 직관적 인식의 방법론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유준이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쓴 액자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 김황원이 보경선사 앞에서
항아리를 일부러 깨뜨린 것이나  학교 교육에 누구보다 불편함을 드러낸 것 등은 직관적 인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추론이나 판단, 기존의 지식의 매개없이 '물(物)의  일기(一氣)'를 단박에 이해하려는 방식인
직관적 이해는 다음에 언급하는 유준이의 또 다른 방법론적인 세계관인 '총체적 인식'의 전제를 이루고 있다.

 

#서술 방식의 객관성, 인식의 총체성

이 작품은 복수의 1인칭 화자를 등장시켜 1인칭 화자 시점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서술의 주관성을 보완한다.주인공 유준이와 그 친구들을 번갈아 시점을 이동시킴으로써도 인식의 총체성을 지향한다.당대의 여러 계층의 시대상이랄까 풍속도를 다양한 복수 화자의 시선으로 교차시켜 전형성을 포착하고 있다.직접 인용 부호를 없앰으로써도 인식의 전체성을 획득해가고 있다.요컨대 서술 전략상으로도 총체적 인식의 한 흐름을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명문고등학교를 뛰쳐 나오며 그가 쓴 자퇴서 일부이다.

'인식은 통일적이고 총체적이며 이것저것으로 나눌 수 없'고 이는 '자유로운 독서와 학습 가운데서 창의성이 살아난다(88쪽)'.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 이런 이유들이 그가 자퇴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번에는 작품 중 인용된 바쇼의 단시(99쪽)를 보자.

 
오래된 연못에
개구리가 뛰어든다
물소리

 
'물소리가 간신히 개구리 저것과,보는 자 이것을 연결하고 있(103쪽)'는데
유준이는 '좀더 성숙해진 뒤에 곡절많은 생을 살면서 스스로를 연결자라고 생각(104쪽)'했다.

 

이런 맥락에서 유준이의 자퇴와 끝없는 방랑을 이해해 본다.
기존의 진부한 학습체계,관습,권위, 억압 굴하지 않고 자기만의 시각으로 즉,직관적으로 세상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총탄에 맞아 죽은 중길이를   눈물 범벅으로 부여 안을 때부터 등산반 친구들과의 드라마틱한 만남, 길 떠남의 곳곳에서 마주친 약초상 아저씨 아주머니,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영길이 작은 아버지 이야기나 한라산에서 우연히 마주친 군용파카 입은 단발머리 여자를 통해 듣게 되는 우리 역사의 아픈 과거사를  온몸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을 것이다. 

 

빈민 노동자들의 거주지역인 영단주택의 한가운데에서 몰락한 중산층의 도련님으로 '외로운 섬'처럼  살았던 유년기, 재학 중 등단한 조숙한 천재 문인임에도 명문고를 중퇴하고 공고 야간부에 가서  '두 가지의 세상을 겪(186쪽)'으면서 보내는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도 유준이의 세계 인식에 깊이와 넓이를 더해 주었을 것이다.세상에는 명과 암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총체적 인식'이길러졌을 것이다. 유준이의 운명적 만남인 30대 부랑 노동자인 '대위'아저씨와 '뱃전에 나란히 서서 파랑새담배 한 대씩 물고 멀리 가물거리는 항구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내 힘으로 살고 있다는 실감 때문에 담배연기를 길고 거세게 내뿜곤 했(261쪽)'던 장면도 이런 한층 성장된 유준이의 자아를 묘사한 것이리라.미아와의 첫 사랑의 불씨를 살리지 않고 그만의 '아름다운 년(245쪽)'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 것이며 음독 자살을 기도한 것은 세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자기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보려는 간절한 의지와 참담한 좌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 이유

이 모든 힘겨운 자기 모험의 끝에  유준이는 상념에 빠진다.'나는 그 순간에 회한덩어리였던 나의 청춘과 작별하면서,내가 얼마나 그 때를 사랑했는가를 깨(30쪽)'닫게 되는 것이다.한 청춘의 눈뜸의 성장기는 이렇듯 고통과 시련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를 하는 과정에서 고통스럽게 일구어진 것이리라.'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두렴움'은 없다.'대위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니까(282쪽).'오늘'은  인생 전체의 사소한 일부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여기가 인생의 축소판이며 꽃다운 우리 인생의 총체적 국면인 것이다.그렇다면 '오늘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전심전력으로  우리의 인생과 거침없이, 신나게 맞짱을 떠 보는  것이다.아름다운 우리 인생을 으스러지도록 껴안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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