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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기 좋은 날 - 이민수 선생님의 다정한 독서 수업 ㅣ 함께 걷는 교육
이민수 지음 / 우리학교 / 2022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2가지 욕망이 있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남들도 좋아하길 바라는 것. 다른 사람에게 책을 추천했을 때 그 사람이 책을 읽고 재미있다, 감동받았다 이런 긍정적 반응을 해주길 바란다. 책의 저자도 아니면서 널리 책을 전파하고 싶은 욕망에 대해서 진정한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여기, 그 욕망을 적극적으로, 직업상의 이점을 발휘하여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서울 삼정중학교 교사 이민수. 이미 지인들 사이에서는 책 소개를 맛깔나게 해서 수많은 책을 영업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 한 바, 직업이 교사가 아니라 실은 온라인 서점 MD 아니냐, 혹시 책이야기로 밤을 지새울 세헤라자데 전설을 이어갈 사람 아니냐 이런 평을 듣고 있다.
그런 그녀가 드디어 책을 냈다. 보랏빛 예쁜 표지의 책은 『함께 읽기 좋은 날』의 제목을 갖고 있으며 한 번 책장을 펼치면 끝을 보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책을 영업하는지 그 영업기술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바, 많은 선생님들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특히 3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쓰는 중학생 민철이의 사례를 보고 있으면 선생님들은 마음이 노곤노곤해질 것이다. 대개 선생님들은 감동을 느끼는 방식이 논리적이지 않다. 희한하게도 전교 1등이 써낸 1등짜리 독후감 3편보다 책과 거리가 멀었던 학생이 졸업 직전 써낸 8줄의 글에서 감동을 더 찐하게(?) 받는다. 그건 어쩔 수 없이 아픈 손가락을 향한 애정의 발현인가 보다.
“나는 원래 책 읽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마법 천자문』이었는데 독서 시간에 자기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추천해 주는 시간이 있었다. 당연히 많은 카테고리 중에서도 예술형이 끌렸고, 랩에 관심이 있으니 이 책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의 제목은 『랩으로 인문학 하기』이고 저자는 박하재홍이다. 책의 내용은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책의 소개와 랩, 가사, 랩을 하는 법, 장소가 있었다.
이 책을 읽고 1세대 래퍼들의 가사를 보니까 엄청 올드하지만 즐거웠다.(56쪽)”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민철이들. 나는 그 친구들에게 적절한 책을 추천해 주었던가. 민수샘처럼 찾아가서 “구구절절한 애원과 설득(54쪽)”을 하면서 책을 직접 학생의 품에 안겨주었던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조금 많이 편하게 대처했다. 너는 랩을 잘하니까, 혹은 운동을 잘 하니까, 혹은 그림을 잘 그리니까 책은 안 읽어도 괜찮을거야, 이렇게 친히 명분을 세워주고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1년에 3명 씩은 지나쳐 갔다.
두 번째로 감정이입을 하는 대목이 있었으니 바로 학원 숙제만 주구장창 하는 모범생과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이다. 책 읽기 시간에는 학원 숙제를 한다면서 수학 문제집이나 영어 문제집을 푸는 친구를 한 두명은 만나게 된다.
“책을 왜 읽기 싫은데? 샘이 정해 준 게 아니라, 네가 읽고 싶은 책으로 읽는 거잖아.”
“그냥요, 책 읽는 시간이 아까워요.”
“책 안 읽고 수학 문제만 풀고 싶은 거야? 수학만 잘하면 뭐해? 영어, 수학만 잘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게 다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알아야지.”
“다른 사람이 사는 걸 왜 알아야 하는데요? 저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왜 상관이 없어? 네가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거야나?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고 싶어도 직접 의사를 만나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보람이 있는지 들을 기회는 거의 없잖아. 지금 네가 만나는 사람이 부모님과 선생님밖에 없는데, 더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나중에 그 일을 선택할 때 도움이 되지.”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저는 전데, 그 사람 얘기가 무슨 도움이 돼요? 저한테는 필요 없다니까요. 시간만 아까워요.”(66쪽)
이런 복장 터지는 녀석을 보았나. 아니 사실 학교에서 나도 매년 만난다. 수업 시간에 책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대놓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고 대다수는 눈빛으로 말한다. 고등학교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선생님이 시키고 있잖아요. 그런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여 진행하는 것이 책읽기 수업. 쓸쓸하다. 수행평가 점수 받기 위해 책 읽는다는 한 아이의 눈빛을 난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그렇지만 민수샘의 이야기는 반전이 있으니, 문제의 그 학생은 3일만에 샘이 권한 책을 다 읽었다면서 먼저 다가온다.
“샘 제가 커서 뭘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생각해서 써야지.”
“에이 샘이 더 잘 알 것 같은데.”(71쪽)
이렇게 남중생의 애교로 끝났다. 그 비결은 역시 찾아가는 맞춤형 책 서비스였다.
학생 개개인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적절하게 처방하는 것. 전학년의 독서 시간을 담당하는 민수샘의 일이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 명이라도 책을 놓칠까봐 발을 동동 구르면서 교실을 직접 찾아가서까지 책을 건네주고 온다. 학생이 외모에 관심이 많다면 『조선가인살롱』을 추천한다. 학생이 사랑에 관한 말랑말한 책을 읽고 싶다면 『사랑에 빠질 때 이야기하는 것들』을 추천한다. 주제에 맞게 책을 추천하는 그 힘은 어마어마한 독서량에 있다. 그리고 민수샘은 한 번 읽은 책을 정확하게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다. 이건 내가 옆에서 분명히 목격했다. 나에게는 단지 “따뜻했다. 서늘했다.” 이런 형용사로만 남는 책들은 6하 원칙에 맞춰서 이야기하는 민수샘. 그리고 결정적 대목에서 줄거리 설명을 끊는 센스까지.
아하, 약은 약사에게 책 처방은 민수샘에게 받아야 한다.
“나는 이후로 (공부나 독서보다) 아이들끼리 잘 지내는 걸 담임 소원 일 순위로 둔다. 아이가 학급에서 무난한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반 여학생들 덕분이다. 조용히 책만 읽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 옆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얼마나 기쁘고 반갑던지. 교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준 아이들, 혼자 있는 친구에게 손을 먼저 내미는 마음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 마음을 배우자고 책을 읽는 것인데…….
인류가 책을 읽기 시작한 역사는 매우 짧다. 앉아서 읽기보다는 나가서 뛰어노는 사냥을 하는 시간이 길었기에 독서는 쉽지 않다. 아이들이 책을 덜 읽거나 혹은 안 읽을지라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몸을 활기차고 절도있게, 마음을 따뜻하고 정직하게 쓰는 사람이 된다면, 책 그게 뭐라고!(186쪽)“
책 처방을 하는 사람이 장사꾼이 아니라 마음씨 따뜻한 사람이기에 우리는 믿고 보는 민수 샘의 추천 목록을 오늘도 기다린다.
아, 독자의 2가지 욕망에 대해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널리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책을 쓰는 것이다. 내가 책을 쓸 수 있을까? 내가? 감히? 하지만 수많은 책을 읽게 되면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나고, 주위의 격려에 힘입어 발을 딛은 창작의 시간 이후, 첫 번째 작품은 자동으로 그 다음 작품을 부른다. 예언가는 아니지만 예언할 수 있다. 민수샘은 그 다음 책을 쓸 것이다. 제목은 『딸은 좋아하고 아들은 싫어하는 책읽기』, 『자녀보다 더 많이 책 읽는 부모가 되려면』 등 마음껏 추천해 보겠다.
나는 이후로 (공부나 독서보다) 아이들끼리 잘 지내는 걸 담임 소원 일 순위로 둔다. 아이가 학급에서 무난한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반 여학생들 덕분이다. 조용히 책만 읽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 옆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얼마나 기쁘고 반갑던지. 교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준 아이들, 혼자 있는 친구에게 손을 먼저 내미는 마음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 마음을 배우자고 책을 읽는 것인데…….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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