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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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국어교사모임 독서모임 ‘고행(가입문의는 광주 김지선 선생님)’의 겨울 방학 책은 바로 『걸리버 여행기』이다. 십 대 시절 이후로 두 번째로 읽는다. 어릴 때 본 걸리버 여행기 책에서도 릴리펏(소인국) 사람들이 바닥에 누워있는 걸리버를 올라가는 그림이 있었다. 이번에 구입한 현대지성 출판사에 표지 그림이 바로 그 내용이다.

예전에는 소인에 둘러싸인 걸리버의 모습과 거인에 둘러싸인 걸리버의 모습, 하늘을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 등의 내용을 재미로만 읽었다. 다시 읽은 걸리버 여행기는 온통 영국사회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였다. 신랄한 표현이 많이 등장하여 읽다가 깜짝깜짝 놀랐다.

“황제폐하는 사형에 적극 반대하면서 이런 관대한 대답을 내리셨습니다. ‘각의가 양 눈을 뽑아버리는 것만으로는 너무 약한 처벌이라고 하니 다른 추가적인 징벌을 생각해 보도록 하라’. (84쪽)”

“자네 나라의 국민들 대부분은 가장 해로운 자그마한 벌레 같은 족속일세. 자연이 일찍이 땅위에 기어다니도록 허용한 벌레들 중에서 말이야(162쪽)”

내가 엎드려 그의 발굽에 입을 맞추려고 하자 그는 스스로 내 입 가까이 천천히 발을 들어올려 나에게 관대하게 대어주었다. (345쪽)

걸리버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영국 사회에 대한 풍자는 정말 강렬했다. 풍자의 강도는 이성을 지닌 말(후이늠)이 열등한 인간(야후)를 지배하는 이야기에서는 절정에 달했다. 걸리버는 후이늠을 존경하고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껴서 인간 사회로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와서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외진 곳에 정착한다.

인간 사회의 탐욕, 기만, 절도, 살인, 방화, 약탈, 전쟁 등을 혐오하는 작가의 의도는 뚜렷하다. 나 역시 상당 부분 동의한다. 변호사가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 의뢰인의 암소를 의뢰인 것이 아니라고 거짓말해야한다는 부분에서는 실소가 나올 정도였다.

다만 불편한 부분은 너무나도 자주 기술되고, 선명하게 드로나는 작가의 여성 혐오 사고방식이었다. 릴리펏 왕궁에서 걸리버가 소변으로 화재를 진압하자 왕비가 노골적으로 걸리버를 혐오한다. 반영론적 관점에서는 앤 왕비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잉글랜드 사제 보직을 반대한 것을 비꼰 것이라고 한다. 66쪽 주석 참조

브롭딩낵(거인국)에서는 여성들이 대소변을 보는 장면을 참을 수 없어 하는 걸리버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후이늠 나라에서는 암컷 야후가 걸리버를 강간하려는 사건이 있었다. 문장에서 노골적으로 “음탕함, 교태, 혹평, 험담의 싹이 틀림없이 여자의 본능에 내재되어 있는 것(323쪽)”이라고 기술하기도 한다. 역자 이종인 교수의 해설(392쪽)을 읽어보니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어렸을 적 어머니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였고, 어른이 되어서도 바리나, 스텔라, 바네사 세 여성과의 관계 모두 안정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작품에서 그렇게 표현을 하다니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성 인지 감수성이 오늘날과 그 당시는 달랐음을 감안하면 명작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은 놀랍게도 1726년에 출판된 책이다. 초판이 일주일 사이에 매진되었고 3주 이내에 1만부가 판매되었다고 하니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거의 3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읽어도 손색이 없는 고전이니 좋은 작품이다.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볼 만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유토피아』 읽기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후이늠국을 묘사할 대 작가가 그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방송 프로 “책읽어드립니다”도 찾아서 걸리버 여행기를 다룬 편을 시청해야겠다.

역시 좋은 책은 곧바로 다른 책으로 이어진다.

 

이런 것들은 내가 다음과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지적해대는 문건들이었다네.



이 여행기는 위대한 정치가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 여행기는 인간의 본성을 모독하고 있다(그들은 아직도 뻔뻔스럽게 자신을 야후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부르고 있다네)

이 여행기는 여성을 경멸하고 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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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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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열차에서 철학자를 만난다면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완두콩같은 발가락을 보면서 다짐하였다. 좋은 엄마가 될거야. 그러자 바로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된다. 소크라테스 등장.

“엄마는 무엇으로 정의하는가?”

“누구냐면, 여성이고, 어린아이를 돌보는 사람이죠.”

“그렇다면 내가 만약 몇 시간 가량 네 딸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다녀온다면 나는 네 딸의 엄마인가?”

“당연히 아니죠, 소크라테스. 엄마가 된다는 건 더 많은 것을 수반합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를 돌보는 성인 여성과 엄마 자격을 가진 성인 여성을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

“사랑이죠.”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기저귀 갈게 비켜 보실래요?”

아마도 결국 난감한 질문들 앞에서 오줌 기저귀를 들고 화를 낼 것이다. 정곡을 찔린 불편함을 감추기 위해 부풀린 몸짓을 하겠지.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75쪽). 그리고 부모에게 성찰은 자신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기피하고 싶어진다.

아이가 돌을 넘기고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하였다. 두 다리로 세상 모든 것을 탐험할 것처럼 걸어다닌다. 아이에게 루소가 잠재된 것인가? “나는 멈춰 있을 때에는 생각에 잠기지 못한다.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만 머리가 잘 돌아간다(93쪽 재인용).”이라고 온 몸으로 외친다. 아이는 아직 위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지 못하므로 엄마는 부지런히 따라다닌다. 아이야, 날카로운 모서리 피해야해, 아이야, 책을 건드리면 쏟아져, 아이야, 그거 만지지마, 아이야, 그거 건드리지마. 이렇게 하다보면 아이는 항의한다. 가장 아이가 즐겁게 걷는 곳은 집을 벗어난 야외. 놀이터 모래를 걷다가 손으로 만지고 자연스레 입에 넣고 나무를 만지고 돌을 집어든다. 그래, 너의 영혼에는 루소가 있구나. 아이의 자연스러운 발달을 위해서는 산책은 중요하다. 하지만 엄마도 루소를 좋아하니 아이는 다른 보호자에게 맡기고 ‘홀로’ 걷고 싶다.

아이가 3살이 되었다. 이제 자신의 요구 조건을 당당히 말하면서 제왕처럼 부모를 부리는 시기가 되었다. 강제로 직장과 단절된 엄마는 우울의 세계에 빠진다. 미세먼지가 심해 놀이터에도 못 나가는 어느 날, 집안에서 세 끼 밥을 차리고 뽀로로 소꿉놀이, 자동차 놀이 상대가 되어주고,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히고 목욕을 시킨다. 이제 엄마도 쉴 차례인데 아이는 또 말한다. “빠방-” 자동차 놀이를 하자라고. 이제 화가 난다.

“엄마도 좀 쉬자! 자동차 놀이는 너 혼자 하면 안 돼?”

아이는 엄마의 거친 음성에 울음을 터뜨린다.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힘들어서.”

24시간 아이 옆에 붙어 있는 하루는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는 것에 좌절하게 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직장 일도 하고 싶단 말이다. 내가 ‘쓸모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오늘은 사정이 나쁘고, 하루하루 갈수록 더 나빠질 것이며, 종국엔 최악이 도래할 것이다.(150쪽 재인용). 우울한 마음에 아이 엉덩이를 때린 어느 날 저녁, 선언했다. 직장으로 돌아가겠어.

직장에서 일을 할 때 나는 통제 가능한 영역이 눈곱만큼 생긴다. 3살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어른들과 대화를 하니 살 것 같다. 그것도 잠시 비합리적인 직장의 일들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왜 일을 안 하는 사람은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그 일이 나에게로 오는 거지? 이럴 때 나타나는 철학자들은 바로 스토아 학파.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렸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403쪽 재인용)”

그래, 나는 내 일을 하자.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다. 사무실에서 하루 열네 시간씩 일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상사가 당신을 싫어해서 당신의 커리어를 방해할 수도 있다(404쪽). 좋아, 운명에 순응하는 태도로 열심히 일해보자. 조그마한 성취를 얻고 조용히 기뻐하는 나날들. 인생은 역시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나보다. 이제 좀 살맛이 나는데 싶을 때 걸려오는 전화. 아이가 아파서 입원했어요. 병원으로 와요.

“엄마가 옆에 있어주지 않아서 아픈거야? 엄마가 이제 야근도 안하고 빨리 빨리 올게. 친구도 안 만나고 빨리 올게. 간식도 몸에 좋은 것만 챙겨줄게. 목욕도 자주 시켜줄게. 책도 더 많이 읽어줄게. 빨리 나으면 좋겠다.”

수액 바늘을 꽂은 아이 옆에서 혼자 다짐한다. 좋은 엄마가 되겠노라고. 질주하는 내 삶의 속도를 성찰한다.

3~4일 지나고 열이 내린 아이는 다시 기운차게 활동을 개시한다. 하루에 30킬로 이상을 걸었다는 루소처럼 넘치는 아이의 에너지를 늙은 엄마는 감당할 수 없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장일에 매진한다. 6개월 후 다시 아이는 어린이집 전염병으로 입원한다. 엄마가 너한테 너무 소홀했어. 정말 잘할게. 아이는 다시 건강해진다. 엄마는 다시 일을 하러 간다. 아이는 다시 몇 달 후 입원한다. 엄마는 다시 반성한다. 아이가 건강해진다. 엄마는 다시 일을 한다. 커리어는 상승 곡선이 보이질 않는다. 아이가 아프다. 엄마는 반성하고 후회한다.

“영원회귀”

니체가 등장한다. “앞으로도, 뒤로도, 영원토록,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381쪽 재인용). 편집도 불가능하다. 모든 결함과 지루한 대화가 그대로 들어있는 이 삶을 다시 살아야만 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육아 롤러코스터. 내 뜻대로 안 풀리는 내 삶.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춤추는 것. 춤춰야 할 이유를 기다리지 말 것. 그냥 춤출 것. 삶이 행복해도 춤을 추고, 삶이 괴로워도 춤을 출 것.그리하여 시간이 다 되어 춤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 것. 아니 외칠 것.다 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내 인생을

(389쪽)

 

춤추는 것. 춤춰야 할 이유를 기다리지 말 것. 그냥 춤출 것. 삶이 행복해도 춤을 추고, 삶이 괴로워도 춤을 출 것.그리하여 시간이 다 되어 춤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 것. 아니 외칠 것.다 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내 인생을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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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기 좋은 날 - 이민수 선생님의 다정한 독서 수업 함께 걷는 교육
이민수 지음 / 우리학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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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2가지 욕망이 있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남들도 좋아하길 바라는 것. 다른 사람에게 책을 추천했을 때 그 사람이 책을 읽고 재미있다, 감동받았다 이런 긍정적 반응을 해주길 바란다. 책의 저자도 아니면서 널리 책을 전파하고 싶은 욕망에 대해서 진정한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여기, 그 욕망을 적극적으로, 직업상의 이점을 발휘하여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서울 삼정중학교 교사 이민수. 이미 지인들 사이에서는 책 소개를 맛깔나게 해서 수많은 책을 영업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 한 바, 직업이 교사가 아니라 실은 온라인 서점 MD 아니냐, 혹시 책이야기로 밤을 지새울 세헤라자데 전설을 이어갈 사람 아니냐 이런 평을 듣고 있다.

그런 그녀가 드디어 책을 냈다. 보랏빛 예쁜 표지의 책은 『함께 읽기 좋은 날』의 제목을 갖고 있으며 한 번 책장을 펼치면 끝을 보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책을 영업하는지 그 영업기술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바, 많은 선생님들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특히 3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쓰는 중학생 민철이의 사례를 보고 있으면 선생님들은 마음이 노곤노곤해질 것이다. 대개 선생님들은 감동을 느끼는 방식이 논리적이지 않다. 희한하게도 전교 1등이 써낸 1등짜리 독후감 3편보다 책과 거리가 멀었던 학생이 졸업 직전 써낸 8줄의 글에서 감동을 더 찐하게(?) 받는다. 그건 어쩔 수 없이 아픈 손가락을 향한 애정의 발현인가 보다.

“나는 원래 책 읽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마법 천자문』이었는데 독서 시간에 자기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추천해 주는 시간이 있었다. 당연히 많은 카테고리 중에서도 예술형이 끌렸고, 랩에 관심이 있으니 이 책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의 제목은 『랩으로 인문학 하기』이고 저자는 박하재홍이다. 책의 내용은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책의 소개와 랩, 가사, 랩을 하는 법, 장소가 있었다.

이 책을 읽고 1세대 래퍼들의 가사를 보니까 엄청 올드하지만 즐거웠다.(56쪽)”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민철이들. 나는 그 친구들에게 적절한 책을 추천해 주었던가. 민수샘처럼 찾아가서 “구구절절한 애원과 설득(54쪽)”을 하면서 책을 직접 학생의 품에 안겨주었던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조금 많이 편하게 대처했다. 너는 랩을 잘하니까, 혹은 운동을 잘 하니까, 혹은 그림을 잘 그리니까 책은 안 읽어도 괜찮을거야, 이렇게 친히 명분을 세워주고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1년에 3명 씩은 지나쳐 갔다.

두 번째로 감정이입을 하는 대목이 있었으니 바로 학원 숙제만 주구장창 하는 모범생과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이다. 책 읽기 시간에는 학원 숙제를 한다면서 수학 문제집이나 영어 문제집을 푸는 친구를 한 두명은 만나게 된다.

“책을 왜 읽기 싫은데? 샘이 정해 준 게 아니라, 네가 읽고 싶은 책으로 읽는 거잖아.”

“그냥요, 책 읽는 시간이 아까워요.”

“책 안 읽고 수학 문제만 풀고 싶은 거야? 수학만 잘하면 뭐해? 영어, 수학만 잘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게 다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알아야지.”

“다른 사람이 사는 걸 왜 알아야 하는데요? 저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왜 상관이 없어? 네가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거야나?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고 싶어도 직접 의사를 만나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보람이 있는지 들을 기회는 거의 없잖아. 지금 네가 만나는 사람이 부모님과 선생님밖에 없는데, 더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나중에 그 일을 선택할 때 도움이 되지.”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저는 전데, 그 사람 얘기가 무슨 도움이 돼요? 저한테는 필요 없다니까요. 시간만 아까워요.”(66쪽)

이런 복장 터지는 녀석을 보았나. 아니 사실 학교에서 나도 매년 만난다. 수업 시간에 책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대놓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고 대다수는 눈빛으로 말한다. 고등학교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선생님이 시키고 있잖아요. 그런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여 진행하는 것이 책읽기 수업. 쓸쓸하다. 수행평가 점수 받기 위해 책 읽는다는 한 아이의 눈빛을 난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그렇지만 민수샘의 이야기는 반전이 있으니, 문제의 그 학생은 3일만에 샘이 권한 책을 다 읽었다면서 먼저 다가온다.

“샘 제가 커서 뭘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생각해서 써야지.”

“에이 샘이 더 잘 알 것 같은데.”(71쪽)

이렇게 남중생의 애교로 끝났다. 그 비결은 역시 찾아가는 맞춤형 책 서비스였다.

학생 개개인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적절하게 처방하는 것. 전학년의 독서 시간을 담당하는 민수샘의 일이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 명이라도 책을 놓칠까봐 발을 동동 구르면서 교실을 직접 찾아가서까지 책을 건네주고 온다. 학생이 외모에 관심이 많다면 『조선가인살롱』을 추천한다. 학생이 사랑에 관한 말랑말한 책을 읽고 싶다면 『사랑에 빠질 때 이야기하는 것들』을 추천한다. 주제에 맞게 책을 추천하는 그 힘은 어마어마한 독서량에 있다. 그리고 민수샘은 한 번 읽은 책을 정확하게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다. 이건 내가 옆에서 분명히 목격했다. 나에게는 단지 “따뜻했다. 서늘했다.” 이런 형용사로만 남는 책들은 6하 원칙에 맞춰서 이야기하는 민수샘. 그리고 결정적 대목에서 줄거리 설명을 끊는 센스까지.

아하, 약은 약사에게 책 처방은 민수샘에게 받아야 한다.

“나는 이후로 (공부나 독서보다) 아이들끼리 잘 지내는 걸 담임 소원 일 순위로 둔다. 아이가 학급에서 무난한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반 여학생들 덕분이다. 조용히 책만 읽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 옆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얼마나 기쁘고 반갑던지. 교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준 아이들, 혼자 있는 친구에게 손을 먼저 내미는 마음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 마음을 배우자고 책을 읽는 것인데…….

인류가 책을 읽기 시작한 역사는 매우 짧다. 앉아서 읽기보다는 나가서 뛰어노는 사냥을 하는 시간이 길었기에 독서는 쉽지 않다. 아이들이 책을 덜 읽거나 혹은 안 읽을지라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몸을 활기차고 절도있게, 마음을 따뜻하고 정직하게 쓰는 사람이 된다면, 책 그게 뭐라고!(186쪽)“

책 처방을 하는 사람이 장사꾼이 아니라 마음씨 따뜻한 사람이기에 우리는 믿고 보는 민수 샘의 추천 목록을 오늘도 기다린다.

아, 독자의 2가지 욕망에 대해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널리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책을 쓰는 것이다. 내가 책을 쓸 수 있을까? 내가? 감히? 하지만 수많은 책을 읽게 되면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나고, 주위의 격려에 힘입어 발을 딛은 창작의 시간 이후, 첫 번째 작품은 자동으로 그 다음 작품을 부른다. 예언가는 아니지만 예언할 수 있다. 민수샘은 그 다음 책을 쓸 것이다. 제목은 『딸은 좋아하고 아들은 싫어하는 책읽기』, 『자녀보다 더 많이 책 읽는 부모가 되려면』 등 마음껏 추천해 보겠다.

 

나는 이후로 (공부나 독서보다) 아이들끼리 잘 지내는 걸 담임 소원 일 순위로 둔다. 아이가 학급에서 무난한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반 여학생들 덕분이다. 조용히 책만 읽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 옆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얼마나 기쁘고 반갑던지. 교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준 아이들, 혼자 있는 친구에게 손을 먼저 내미는 마음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 마음을 배우자고 책을 읽는 것인데…….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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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한 거의 모든 생각 - 이제부터 당신 메뉴에 '아무거나'는 없다
마틴 코언 지음, 안진이 옮김 / 부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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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한 거의 모든 생각, 마틴 코언, 부키

프리드리히 니체는 항상 고기에 집착했다. 특히 그는 샤퀴테리(돼지고기로 만든 프랑스식 건조 가공육)를 좋아했고 갖가지 햄과 소시지에서 영감과 기력을 얻었다. 초인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창시한 악명 높은 철학자 니체는 잠시 채식을 해보기도 했지만 식상활에서는 건강보다 쾌락을 우선시하기로 마음먹었다.

115

사르트르는 부족함 없이 잘살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나 늘 비싼 음식을 푸짐하게 먹고 적포도주를 잔뜩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뚱뚱한 사람을 가혹하게 비난했다. 아니 어쩌면 그가 잘 먹고 살았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는 사람의 몸에 붙은 살이 저절로 출렁거리는 것이 일종이 기형이며 통제력 상실의 징표라고 생각했다.

244

바이런은 캐롤라인에게 라는 제목의 시에서 초콜릿에 대해 이렇게 썼다

! 그렇다면 마실 수 있을 때 실컷 마시자, 기쁨의 물약을

거기서 우리의 열정과도 같은 뜨거운 열정이 끊임없이 흘러나올지니

사랑의 축복이 가득 담긴 잔을 한 바퀴 돌리자

그리고 우리 아래 놓인 달콤한 음료를 벌컥벌컥 마시자

375

음식에 관한 책은 재미가 없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루 중 먹는 시간이 즐거움인 사람이 많을테니까. 나는 식사보다는 군것질을 더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으로 이 책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니체, 칸트, 루소, 사르트르 등 유명한 철학자들이 음식에 대하여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재미있다. 사르트르가 몹시 비만이었다는 사실도 신기하고 칸트는 커피1잔 마시는 것조차 힘들게 결정했다는 것. 칸트가 커피를 하루에 2잔씩 마셨으니 정언 명령보다 더 뛰어난 철학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든다.

1번 밀가루

2번 소금

3번 물

4번 이스트

5번 비타민과 철분

6번 지방(주로 콩기름)

7번 황산칼슘

8번 모노글리세라이드, 디글리세라이드

9번 액상과당

10번 프로피온산칼슘 곰팡이제거제

11번 대두레시핀

12번 스테아릴젖산나트륨

13번 제 1인산칼슘

14번 황산암모늄

15번 효소

16번 아조디키본아미드 표백제

17번 글리세린주석산지방산에스테르

흰 빵에는 이런 재료들이 들어간다. 막연히 몸에는 안 좋겠지 하고 먹었던 프랜차이즈 빵이나 편의점 빵이 몸에 얼마나 안 좋을지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알다시피 진짜 빵은 곱게 빻은 밀(밀가루), 약간의 물, 이스트, 그리고 소금 한 자밤으로 만든다. 이게 전부다! 요즘 필수로 취급되는 설탕이나 오일 같은 재료는 없어도 된다. 유일한 비법은 반죽을 부풀리고 빵을 부드럽게 하는 이스트 몇 숟가락이다. 45

이런 진짜 빵을 먹어본 적이 언제인가? 봄에는 송정역 근처 비건 빵집 “빵과 장미”에서 두 번 정도 빵을 사 먹었다. 하지만 여름부터는 편리하다는 이유로 프랜차이즈 빵집만 다니고 있다.

조금만 더 발품을 내면 집 근처에 있는 맛있는 빵을 만들어서 파는 빵집 “Dose Doze”에 갈 수 있었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100미터만 더 걸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하루 세 끼를 먹고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요리를 싫어하고 시간에 쫓기는 나에게 아이의 저녁 밥상은 항상 고민이다. 정확히는 요리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데 그것은 시간을 쏟아부은 만큼 음식맛이 나지 않아서이다.

주말에는 그래도 시간이 많으니까 요리를 평일보다 더 많이 한다. 토요일에는 카레를 해서 나와 남편이 먹고 아이는 새우야채볶음밥을 해주었다. 나머지 끼니들은 자연드림 생선까스와 자연드림 탕수육과 주먹밥으로 아이를 먹였다. 일요일에는 김밥을 싸서 셋이 먹었다. 이렇게 한 줄로 쓰면 굉장히 단순한 작업처럼 느껴지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자연드림 매장에서 장을 본다. 김, 단무지, 계란, 햄, 맛살을 산다.

없는 재료는 마트에서 산다. 시금치

시금치를 데치고 양념을 한다.

단무지는 체에 받쳐 물을 뺀다.

밥에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한다.

달걀 지단을 부친다.

햄을 길게 잘라 굽는다.

김에 밥을 곱게 편다.

재료를 모두 올리고 김밥을 싸기 시작한다.

아이 김밥은 작은 크기로 준비한다.

맛있게 먹는다.

설거지를 한다.

이 모든 것을 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면 내가 양질의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든가 많은 돈을 내고 믿을만한 식당에 가야 한다. 하지만 요리는 너무 피곤하다. 믿을만한 식당은 대체로 가격이 사악하다.

그래서 결국은 배달음식을 많이 먹는다. 가성비에 못 미치는 기름진 배달음식을 먹고 나면 배가 더부룩하다. 지난 주에는 찰순대국밥을 시켜먹었다. 뜨거운 국물이 플라스틱 용기에 배달되어 왔다. 이것을 보며 환경호르몬과 미세플라스틱과 내가 좋아하는 연어 초밥과 바다거북의 죽음을 동시에 떠올렸다.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환경을 위해서 집밥을 먹는 횟수를 늘려야겠다

알다시피 진짜 빵은 곱게 빻은 밀(밀가루), 약간의 물, 이스트, 그리고 소금 한 자밤으로 만든다. 이게 전부다! 요즘 필수로 취급되는 설탕이나 오일 같은 재료는 없어도 된다. 유일한 비법은 반죽을 부풀리고 빵을 부드럽게 하는 이스트 몇 숟가락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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