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육아 열차에서 철학자를 만난다면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완두콩같은 발가락을 보면서 다짐하였다. 좋은 엄마가 될거야. 그러자 바로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된다. 소크라테스 등장.

“엄마는 무엇으로 정의하는가?”

“누구냐면, 여성이고, 어린아이를 돌보는 사람이죠.”

“그렇다면 내가 만약 몇 시간 가량 네 딸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다녀온다면 나는 네 딸의 엄마인가?”

“당연히 아니죠, 소크라테스. 엄마가 된다는 건 더 많은 것을 수반합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를 돌보는 성인 여성과 엄마 자격을 가진 성인 여성을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

“사랑이죠.”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기저귀 갈게 비켜 보실래요?”

아마도 결국 난감한 질문들 앞에서 오줌 기저귀를 들고 화를 낼 것이다. 정곡을 찔린 불편함을 감추기 위해 부풀린 몸짓을 하겠지.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75쪽). 그리고 부모에게 성찰은 자신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기피하고 싶어진다.

아이가 돌을 넘기고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하였다. 두 다리로 세상 모든 것을 탐험할 것처럼 걸어다닌다. 아이에게 루소가 잠재된 것인가? “나는 멈춰 있을 때에는 생각에 잠기지 못한다.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만 머리가 잘 돌아간다(93쪽 재인용).”이라고 온 몸으로 외친다. 아이는 아직 위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지 못하므로 엄마는 부지런히 따라다닌다. 아이야, 날카로운 모서리 피해야해, 아이야, 책을 건드리면 쏟아져, 아이야, 그거 만지지마, 아이야, 그거 건드리지마. 이렇게 하다보면 아이는 항의한다. 가장 아이가 즐겁게 걷는 곳은 집을 벗어난 야외. 놀이터 모래를 걷다가 손으로 만지고 자연스레 입에 넣고 나무를 만지고 돌을 집어든다. 그래, 너의 영혼에는 루소가 있구나. 아이의 자연스러운 발달을 위해서는 산책은 중요하다. 하지만 엄마도 루소를 좋아하니 아이는 다른 보호자에게 맡기고 ‘홀로’ 걷고 싶다.

아이가 3살이 되었다. 이제 자신의 요구 조건을 당당히 말하면서 제왕처럼 부모를 부리는 시기가 되었다. 강제로 직장과 단절된 엄마는 우울의 세계에 빠진다. 미세먼지가 심해 놀이터에도 못 나가는 어느 날, 집안에서 세 끼 밥을 차리고 뽀로로 소꿉놀이, 자동차 놀이 상대가 되어주고,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히고 목욕을 시킨다. 이제 엄마도 쉴 차례인데 아이는 또 말한다. “빠방-” 자동차 놀이를 하자라고. 이제 화가 난다.

“엄마도 좀 쉬자! 자동차 놀이는 너 혼자 하면 안 돼?”

아이는 엄마의 거친 음성에 울음을 터뜨린다.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힘들어서.”

24시간 아이 옆에 붙어 있는 하루는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는 것에 좌절하게 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직장 일도 하고 싶단 말이다. 내가 ‘쓸모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오늘은 사정이 나쁘고, 하루하루 갈수록 더 나빠질 것이며, 종국엔 최악이 도래할 것이다.(150쪽 재인용). 우울한 마음에 아이 엉덩이를 때린 어느 날 저녁, 선언했다. 직장으로 돌아가겠어.

직장에서 일을 할 때 나는 통제 가능한 영역이 눈곱만큼 생긴다. 3살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어른들과 대화를 하니 살 것 같다. 그것도 잠시 비합리적인 직장의 일들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왜 일을 안 하는 사람은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그 일이 나에게로 오는 거지? 이럴 때 나타나는 철학자들은 바로 스토아 학파.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렸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403쪽 재인용)”

그래, 나는 내 일을 하자.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다. 사무실에서 하루 열네 시간씩 일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상사가 당신을 싫어해서 당신의 커리어를 방해할 수도 있다(404쪽). 좋아, 운명에 순응하는 태도로 열심히 일해보자. 조그마한 성취를 얻고 조용히 기뻐하는 나날들. 인생은 역시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나보다. 이제 좀 살맛이 나는데 싶을 때 걸려오는 전화. 아이가 아파서 입원했어요. 병원으로 와요.

“엄마가 옆에 있어주지 않아서 아픈거야? 엄마가 이제 야근도 안하고 빨리 빨리 올게. 친구도 안 만나고 빨리 올게. 간식도 몸에 좋은 것만 챙겨줄게. 목욕도 자주 시켜줄게. 책도 더 많이 읽어줄게. 빨리 나으면 좋겠다.”

수액 바늘을 꽂은 아이 옆에서 혼자 다짐한다. 좋은 엄마가 되겠노라고. 질주하는 내 삶의 속도를 성찰한다.

3~4일 지나고 열이 내린 아이는 다시 기운차게 활동을 개시한다. 하루에 30킬로 이상을 걸었다는 루소처럼 넘치는 아이의 에너지를 늙은 엄마는 감당할 수 없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장일에 매진한다. 6개월 후 다시 아이는 어린이집 전염병으로 입원한다. 엄마가 너한테 너무 소홀했어. 정말 잘할게. 아이는 다시 건강해진다. 엄마는 다시 일을 하러 간다. 아이는 다시 몇 달 후 입원한다. 엄마는 다시 반성한다. 아이가 건강해진다. 엄마는 다시 일을 한다. 커리어는 상승 곡선이 보이질 않는다. 아이가 아프다. 엄마는 반성하고 후회한다.

“영원회귀”

니체가 등장한다. “앞으로도, 뒤로도, 영원토록,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381쪽 재인용). 편집도 불가능하다. 모든 결함과 지루한 대화가 그대로 들어있는 이 삶을 다시 살아야만 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육아 롤러코스터. 내 뜻대로 안 풀리는 내 삶.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춤추는 것. 춤춰야 할 이유를 기다리지 말 것. 그냥 춤출 것. 삶이 행복해도 춤을 추고, 삶이 괴로워도 춤을 출 것.그리하여 시간이 다 되어 춤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 것. 아니 외칠 것.다 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내 인생을

(389쪽)

 

춤추는 것. 춤춰야 할 이유를 기다리지 말 것. 그냥 춤출 것. 삶이 행복해도 춤을 추고, 삶이 괴로워도 춤을 출 것.그리하여 시간이 다 되어 춤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 것. 아니 외칠 것.다 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내 인생을 - P3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