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를 읽다가, 삶이란 게 예감한 대로 너무도 쓸쓸하고 앙상하여 나 역시 남은 인생은 그 특수성에 편입될 수밖에 없겠단 생각에 서글퍼졌습니다. 단편 <봄밤>엔 일찍 겪은 배신과 상실로 알콜중독자가 되어버린 영경이 컵라면 하나에 급하게 소주와 맥주를 들이키고 김수영의 <봄밤>을 읊조립니다. 외우지 못하기에 읊조릴 수도 없는 저는 시집을 꺼내서 조용히 읽습니다.폭염주의보가 내린 여름 오후에 읽는 봄밤. 새삼 시인의 모던함에 놀라는 봄밤.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봄밤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오오 봄이여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오오 인생이여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절제여나의 귀여운 아들이여오오 나의 영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