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조각. 투우. 강 박사. 셋은 과거의 상처로 인해 정상의 궤적에서 벗어나 소외된 삶을 살아간다.
먼저 조각. 아들을 낳기 위해 키울 능력 없는 가난한 집안임에도 불구 딸을 줄줄 낳은 부모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입을 덜기 위해 부자 친척집으로 식모살이를 가게 되고, 거기서 도둑으로 몰려 쫓겨난 후 류와 조라는 부부를 만나 미군부대 근처에서 일을 하다 신산고난한 과정을 거친 후 촉망받는(?) 살인청부업자가 된다. 현재 65세. 여전히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투우. 조각의 에이전시에서 최근 뜨고 있는 기대주 살인청부업자. 그 잔인함이 어떠하든, 고객의 니즈에 적확한 결과를 내놓는 깔끔한 일처리가 특징이다. 어릴 때 살해당한 아버지의 시신을 목격한 후 탈출하는 살인자를 보며 양가감정을 가진다.
마지막 강 박사. 대학 병원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하던 의사였으나 아내의 죽음을 초래한 의료사고에 항의하다가 조직의 압력에 좌절, 이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페이닥터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을 키우며 재래시장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부모님과 함께 산다.
주인공은 조각이다. 여러 면에서 드문 성질을 가진 캐릭터이다. 여성, 노령, 킬러라는 직업. 이 세 부분에서 교집합을 가진 인물은 내가 읽거나 본(영화로) 범위 내에서는 조각뿐이다. 비인간적인 직업을 지고 평생 살아왔지만 그녀가 살아온 시간은 자비롭고 휴머니즘 가득찬 인간적인 품성을 안겨주었다.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들, 그리고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감각으로 하나 하나 느끼며 공감할 수 있게, 긴 문장 속에 담아놓았다.
작가 구병모가 이 소설을 창작하게 된 동기는 냉장고 속에서 잊혀진 채 삭아가는 과일을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破果). 하지만 작가 후기에서도 밝혔듯, 제목 파과에 한자는 달아놓지 않았다. 제목의 정확한 의미는 독자들의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 조각이 냉장고에서 사놓고 잊어 뭉크러진 복숭아를 찾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 외의 장면에서도 복숭아는 자주 등장하는데, 뭉크러진 외양이 남긴 잔상은 은은한 빛을 가진 반듯함일 것이란 추측을 갖게 하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은 것은 초판이다. 개정판에서 부분부분 첨삭된 부분이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작가 후기가 없다고도 들었다.
*만약 영화화된다면, 조각으로 누가 좋을까. 생각할 것도 없이 문숙 배우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