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 읽을 수록 좋은 <네 인생의 이야기>. 세 번째 읽었는데 헵타포드어와 그들의 목적론적 사고 방식이 두 번째 읽었을 때보다 좀더 이해되었다. 처음엔 그들의 운명론이 싫어서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 생각을 못했는데 오늘 독서에선 그 거부감이 덜했다. 과거와 같은 의미를 같는 미래라는 시간, 그 시간을 따라감은 자유의지의 박탈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과거만큼 명료하게 아는 자로서의 의무라는 사실은 미래를 공란으로 만들어두는 것만큼 개인에겐 의미가 있는 일이었던 것. 또한, 그렇게 정해진 세계관에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표현인 동시에 실행이기도 하다. 주인공 루이즈가 일러준 문제대로 미래를 알고 있는데 무슨 언어가 필요할까 싶지만 수행문의 경우 발화는 곧 실행이며, 헵타포드의 모든 문장들은 수행문의 역할을 한다는 것. 지구인의 문자언어가 아닌 ‘어의문자’ 체계를 디자인한 작가에게 존경을. 하지만 이것의 토대가 된 사피어-워프 가설의 조악함은 좋아질 수가 없다. 그리고 딸을 잃게 되는 루이즈의 미래도 미래지만 전쟁이나 재난, 범죄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는 미래를 의무로 살아낼 수 있을까? 종교적이기까지 한 목적론적 사고를 이전보다 이해를 하나 여전히 반감이 드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