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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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시기 이런 책이 마음의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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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1월 2주

스필버그의 최신 영화가 12월에 개봉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목이 ‘틴틴...’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십년 동안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느끼는 점이 있다.

‘죠스’ 신드롬으로 떠들썩했던 일이 불과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을까 싶었다.

상어가 출몰했을 때 그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상어의 공격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사투가 그려지는 모습에 제대로 공포감을 느꼈던 그 영화 ‘죠스’.

TV에서 처음으로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이불 속에서 그 영화를 보던 어린 나는 이제 어느새 30대 후반이 되었고, 당시 패기 넘치는 청년이었던 스필버그 감독은 이제 70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로버트 쇼와 로이 샤이더는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 되어버린.. 세월이 유수같음을 알게 해주는 추억 속의 명작이 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몇 달 전 아주 우연찮게 그가 연출한 영화 중에서 ‘죠스’ 보다도 한참이나 더 오래된 ‘심야의 미술관’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 명화극장에서 한번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영화였다.

60년대 작품인데 지금 보면 다소 촌스럽기도 하고, 때론 엉성한 부분도 있지만, 시대를 떠나서 제법 흥미로운 영화였다. 미술작품과 관련하여 3편의 옴니버스 구성으로 이어진 어두운 분위기의 공포영화로 여기서 2번째 작품의 연출자가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밖에 주변의 입소문을 통해 알게 된 자동차 추격씬이 일품인 ‘대결’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슈가랜드 특급’ 역시 스필버그가 ‘죠스’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 이전에 나온 진흙 속의 진주같은 작품임을 알았다.

이 3편의 영화들을 본 후 난 이미 천재 감독의 역량이 벌써부터 범상치 않았다는 사실도 느끼게 되었다. 모두 당시 시대의 영화 분위기와는 차별화되는 색다른 흥미로움과 긴장감, 바로 그런 느낌을 계속해서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것이 스필버그의 특징이었다. 이제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 감독이 된 그가 오늘날 이 자리에 오기 전까지, 그의 천재성이 아직 세상에 드러나기 전의 시절에 연출한 3편의 숨겨진 수작들을 내 나름대로의 감상으로 조명해보고 싶다. 
  

 

 

  

1. 심야의 화랑(Night Gallery/1969)

3편의 그림에 담긴 각각의 사연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영화인데 모든 에피소드의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1편. 저택을 노리고 숙부를 살해한 조카가 이후 계단 벽에 걸린 그림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그림은 저택과 저택 주변의 풍경을 그린 것인데 처음엔 그림 속의 묘지가 파헤쳐지더니, 이후 관이 열리고, 관에서 죽은 숙부의 시신이 나오고, 그 시신이 일어나서 점차 저택으로 걸어오고, 결국 문 앞까지 와서 문을 두드리는 모습으로 그림이 계속 변화하는 것이다. 헌데 마지막 그림의 장면을 본 후 실제로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죄의식과 공포에 질린 조카 역시 결국 계단에서 굴러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기이한 현상은 바로 또다른 저택의 식구인 집사가 화가를 고용해 꾸민 음모였던 것, 결국 원래의 집 주인들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저택을 물려받은 집사는 그러나 그 자신 또한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는 내용...   

 

                        


그 다음 2번째 스토리. 부유하면서도 탐욕이 강한, 그리고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어느 중년부인이 잠시만이라도 직접 세상을 보기 위해 음모를 꾸며 어느 남자에게서 눈을 이식받게 된다. 그러나, 그녀가 안대를 풀고 세상과 마주 보게 되는 바로 그 순간 대규모 정전으로 주변은 한순간에 암흑천지가 되고 만다. 수술을 하고도 다시 어두운 세상과 마주하게 된 중년부인은 결국 절규를 하다 사고를 당하게 된다는 내용...   

 

                                       


3편은 나치전범의 과거를 지닌 한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이들에게 쫓기자 평소 좋아하던 미술관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를 소원했지만, 자신이 바라던 평화로운 낚시꾼의 그림이 아닌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고통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당시만 해도 인과응보에 대한 인식이 강했던 것 같다. 3편의 에피소드 모두 죄를 지은 주인공들이 결국 자신의 과욕으로 인해 벌을 받게 된다는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특색이 있다.

이 가운데 2번째 스토리의 연출자가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짧은 에피소드였지만 충분히 인상적인 내용이었다. 아마도 이 당시 그의 나이가 20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연출력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30분여 정도의 짧은 내용이지만 어느 에피소드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주인공 여성은 많은 사람들이 가진 세상을 보는 눈을 선천적으로 가지지 못했지만,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부유함과 그로 인해 더욱 탐욕스러운 마음을 지닌 존재로 외로운 사람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눈을 뜨는 것이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방법이기 보다는 더 많은 탐욕을 위한 단계로 비춰진다. 그런 그녀가 마침내 눈을 뜨는 바로 그 순간 대규모 정전으로 모든 것이 다시 눈을 뜨기 전과 같은 모습이 되면서 그녀의 탐욕으로는 결코 세상과 가까워질 수 없음을 암시하는데, 60년대답게 전형적인 인과응보 형식의 교훈을 남기는 스토리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대사를 보면 각막 이식이 당시만해도 흔하지 않거나 아예 불가능으로 치부했던 시절이었음도 알 수 있게 된다.

8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던 환상특급 시리즈와 유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영화인데 이런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옴니버스 시리즈물을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한다.  


 

 

 

 

  

                          

 

                          2. 대결(Duel/1971)

요즘은 이 영화에 대해서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이미 스필버그의 숨겨진 걸작으로 널리 알려졌다. 영화가 나온지 40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 감상해도 그 긴장감은 여전하다.

영화 시작부터 기괴한 음향이 흐른다. 처음엔 쇠파이프 내부가 울리는 그런 소리인가 했지만 영화를 감상하고 나서 그것은 죽음의 추격을 벌인 정체불명의 트레일러가 울부짖는 외침처럼 들려왔다. 영화는 시작되었지만 뭔가 특별한 것은 없다. 그저 어느 가정집 차고에서 나온 차량 한대가 시내를 지나 시외도로를 달리는 모습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잡다한 뉴스 등 그저 평범해보이는 장면뿐이다.    

 

                        

 

하지만 평온했던 도로의 모습은 서서히 두 자동차 간의 광란에 가까운 추격전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끼어들기, 추월하기 등으로 인해 도로 위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이런 사건을 영화화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그 긴장감이나 액션을 연출한 스필버그의 재능 역시 감탄스럽다. 특히 트럭 하단의 바퀴 부분이나 도로바닥 가까이를 근접해서 보여주면서 트럭의 위압감이나 속도감을 더 배가시켜 영화의 긴장감과 액션을 더해준다.  


                       

 

그리고, 이 영화의 대결은 단지 승용차와 트럭의 대결만이 아니다. 승용차 운전자는 분류하자면 화이트칼라 중산층, 그리고 트럭 운전사는 그 실체를 끝내 드러내진 않지만 짐작으로 청바지에 가죽부츠를 신는 노동자 계층으로 추정된다. 당시 시대상이 깔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중산층과 노동자층을 대표하는 이들이 서로 투쟁을 벌이는 구도이기도 하다. 거기엔 중산층을 대표하는 주인공 데니스 웨버의 모습이 자신을 쫓아온 트럭 운전수를 오인해 식당에서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나지만 이내 일방적으로 맞고 쓰러지거나, 트럭에게 쫓기는 내내 불안해하하는 등 다소 무력하고 약하며 그 실체나 존재감이 미미한 그런 모습으로 보여짐으로서 중산층의 각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준다.   

 

                    

               

 계급과 계급의 대결이라고도 볼 수 있는 마지막 대결에서 결국 데니스 웨버가 트럭 운전사에게 승리를 거두긴 하지만 그 승리 뒤엔 허무함만이 남았을 뿐이다. 어딘지도 모를 계곡에서 자신의 차마저 잃어버린 채 그 자리에 주저앉은 그의 모습은 이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해 보이기만 하다. 미국 중산층의 위기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액션극으로 승화시킨 스필버그의 영화재능은 이 TV용 장편영화 하나로 확실히 보여준 것 같다.  

 

  

 

 

 

                                 

 

        3. 슈가랜드 특급(The Sugarland Express/1974)

 

1969년 텍사스에서 발생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이고 유명배우인 골디 혼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있다.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남자가 아내의 면회를 통해 전과자라는 이유로 인해 자신의 아이를 정부에서 입양시키려 한다는 움직임을 알게 되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 탈옥에 성공, 아이를 찾아 나서게 된다. 경찰을 인질로 한 채 여행을 떠나면서 각종 언론을 통해 큰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된 그들은 그러나 결국 경찰과의 대치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는 내용...  


       

 

이 영화를 보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제법 많다. 자동차 추격씬은 역시 스필버그 자신의 작품이었던 '대결'을 떠올리게 하고, 아이 때문에 탈옥을 감행하지만 이래저래 어리숙한 모습을 많이 보이는 주인공 부부를 볼 때면 코엔형제의 ‘애리조나 유괴사건’의 어리숙한 유괴범 니콜라스 케이지와 홀리 헌터 부부 같은 설정과 그런 느낌의 코미디같은 성격이, 어딘지 모를 인생의 끝을 향해 떠나지만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삶의 여정이 되는 비극적인 로드무비라는 점과 그들을 동정하는 경찰들의 모습에서는 리들리 스코트의 ‘델마와 루이스’와 유사하다. 대결을 제외하고는 이 영화가 훨씬 먼저 만들어졌으니 어쩌면 후임 감독들이 스필버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여기서도 스필버그 감독의 초기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사회 비판적인 시각이 빠지지 않고 나타난다. 탈옥의 계기가 되는 전과자 부모의 아이 양육문제, 언론플레이에 놀아나는 일반 시민들의 잘못된 영웅주의에 대한 환상, 총기 소지의 위험성, 경찰의 허술한 인질대응책 등 사회 전반의 대표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80년대 이후 스필버그의 흥행작들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다소 낯선 느낌이 들었다. 스필버그가 이따금씩 ‘칼라 퍼플’이나 ‘태양의 제국’, ‘쉰들러 리스트’같은 자신의 전공과는 다른 진지한 영화들을 선보이는 것도 아마 이런 초창기 작품을 만들 당시의 열정 때문인 것 같다. 자신도 스스로 예술작가로서의 명성을 희망해왔다고 하니 단지 흥행만이 중요한 목표는 아닌 듯 싶다. 그리고 때로는 그가 바라던대로 흥행성보다는 예술적 재능을 살린 영화들이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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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수업 - 법륜 스님이 들려주는 우리 아이 지혜롭게 키우는 법
법륜 지음, 이순형 그림 / 휴(休)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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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좋은 엄마, 지혜로운 엄마의 방법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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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먹고살기 - 경제학자 우석훈의 한국 문화산업 대해부
우석훈 지음, 김태권 그림 / 반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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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힙합댄스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었다. 아는 지인이 같이 해보자고 권유해서이지만 30대 나이에 젊은 친구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처음엔 부끄럽고 망설여졌는데 막상 시작하게 되니 마음이 새로워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젊은 친구들은 모두 10대에서 20대초중반 나이의 남녀. 모두들 개방적인 마인드를 지녔고 요즘 젊은 세대답게 활달하고 패기있고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그중에서 성공한 이들은 사실 거의 없다. 유명 기획사에 스카우트 되어 한창 전성기를 누리는 아이돌 그룹에서 활동중인 1명을 제외하면 모두들 자신의 꿈과 열정만으로는 연예계의 문턱에 가보지도 못한채 소수의 선택된 자들만 겨우 살아남게 되는 현행 구조에 상처만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아이들 뿐만아니라 지금도 숱하게 연예계 무대를 동경하면서 성공을 꿈꾸는 이들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어떤가. 이 책은 지금의 그런 현실을 꼬집고 있다. 내가 다니던 댄스스쿨의 아이들이 이 책을 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아이들의 무한도전을 힘없이 꺾어버릴지도 모를 이 '나쁜 책(?!)'을 권하고 싶진 않다. 나 또한 어린 시절엔 예술가의 삶을 꿈꿔보기도 했지만 대학진학 무렵부터 현실을 깨닫고 마음을 바꾼 기억이 있었다. 그때 나의 꿈은 만화가 또는 애니메이션 작가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그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대우가 열악하다는 얘기는 여전한 것 같다. 세월도 많이 흘렀고, 우리나라 문화산업도 점차 글로벌화되어가면서 세련미도 더해지고 발전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겉은 그럴싸해보이지만 속은 텅비어만 가는 공갈빵같은 구조가 된건 아닐까. 이상과 현실의 거리감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구조. 88만원세대로 우리의 눈길을 끌었던 우석훈 교수님이 이번에도 예리한 지적으로 일침을 가하고 있다. 제목만 보고 책을 집었던 이들은 문화산업의 문제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관한 잘못된 부분과 맞물려 분석하는 이 책의 내용이 딱딱하고 지루해서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석훈 교수야말로 제대로 문제제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가져라, 도전하는 자가 아름답다라는 막연하고 뜬구름잡는 에세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출산업에 주력하고 토건경제 발전에만 힘쓰는 것이 정치권에서는 암묵적인 시나리오처럼 진행되는 현실에서는 문화산업은 그 자리가 더욱 비좁고 또한 거기에 종사하는 이들은 더욱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내몰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단지 꿈만 꾸고 열정만 가지고 도전하라는 소리가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라는 명령과 별 차이 없어보인다. 얼마전 벌어진 한예슬 사태라든지 방송작가의 투신자살과 아사 등의 뉴스를 볼때면 씁쓸해진다. 아직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따는 이상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표정이 어두워지는 스포츠인들의 모습도 그러하다. 문학작가라는 명함을 내밀기 이전에 장사라도 해야 먹고 살수 있는게 우리나라 문학계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들, 진정 우리가 고쳐나가야 할 부분은 못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안고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정부가 각종 재개발에 신경을 쓰고 열을 올리는 만큼 문화산업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해서 과감한 투자 육성을 길러야할 때이다. 언제까지 7080 시절처럼 똑같은 수출유치, 토건경제 발전에 매달리며 지낼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도 문화산업의 발전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도 같은 수준이다. 새로운 가치 투자 창출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태백의 멍에를 쓰고 절망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의 문화산업으로 먹고 살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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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 3주


장면1
두 명의 한국인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택시 뒤의 트렁크에서 교대로 들어가고 나온다. 이를 지켜보는 외국인 주인공들의 대화 내용은 저들이 먹고 살기 어려운데다 딱히 잘 곳도 없어 저렇게 산다는 식으로 말한다. (택시) 

뤽 베송 감독이 '제5원소' 홍보차  방한했다가 허락도 없이 가위질된채 상영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그대로 돌아가버렸다는데, 이후 만든 '택시'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반감이 담긴 위의 장면을 보여주었다고 하니 그를 탓하기 앞서 우리 영화계가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보였는지부터 반성해야할 것 같다. 이런 부분만 아니었다면 스릴 넘치는 자동차 추격씬에 역동적인 장면들이 넘쳐나는 이 영화가 더 재미있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장면2
무더운 여름 짜증이 제대로 난 어느 평범한 백인 샐러리맨은 음료수를 사러 가게에 들어왔다가 가게 주인의 언행 때문에 제대로 폭발하고 만다. 가게 주인은 한국인으로 영어발음도 엉망이고 바가지요금을 요구한데다 퉁명스럽기까지 해 주인공을 더욱 자극시킨다. (폴링다운)   
  우리나라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기에 궁금해서라도 이 영화를 한번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본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의 평가는 그당시 어떤 느낌과는 달랐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한국인 가게주인을 보며 내뱉는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나쁘게 묘사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쩌면 가게주인 역할을 맡았던 배우의 연기가 더 실감나서 관객들로하여금 한국인이 왜 저런 이미지인가하고 짜증나게 만든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나 왜 저리도 영어발음이 시원찮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극중에 등장하는 일본인 형사는 유창하게 말하던데, 마치 일본과 우리나라 사람을 대표적으로 비교하는 듯해서 그런 부분은 다소 실망스럽긴 했지만..


한류를 얘기하며 사람들이 떠든다. 아니, 언론이 떠드는 것이겠다. 마치 우리가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 제대로 각인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상은 정말 그런지 의문이 든다.

서양인들의 인식 속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이미지로 남아있을까? 사실 수많은 영화들을 봐도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다양한 반면 한국인과 관련한 내용은 비교될 정도로 잘 눈에 띄질 않는다. 심지어 우리가 업신여기는 베트남에 대해서조차도 미국인들은 월남전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무수한 전쟁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시키며 오히려 영상물의 비중있는 출연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나은 대접을 받는다 하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외국 영화계를 통해 접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은 실망스러운 것이 대부분이다. 위 두 작품은 우리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로 대표되는 불명예스러운 영화가 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작품 이외에도 논란이 될 만한 작품들은 더 있었다.  

 

장면3
여자주인공은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 중 외모에서 그닥 주목받을 만한 사항이 없는 살찐 여성이 자기가 서울에서 왔다고 영어로 소개를 한다. (은밀한 유혹)   
 한국인이 다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닐터인데 어째서 그녀를 대표로 등장시킨 걸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사실 이 장면은 금방 지나가버렸기에 잊혀질 수도 있었지만 그 뒤 몇차례 더 이 영화를 보면서 이 장면에 대해서 계속 기억이 남게 되었다. 경제적 곤란에 처한 부부가 돈과 아내를 거래로 하게된다는 설정이 충격적이면서도 현대 사회에서 저지르는 부정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심어주어 나름 생각하면 열중하게 되었던 영화였지만.. 단지 저 장면은 아쉬웠다. 다른 영화들처럼 노골적인 한국인 비하는 아니었고, 또한 비의도적인 설정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이미지가 한국인을 대표하는 것처럼 된듯해서 어째 씁쓸해진다..
 
 장면4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는 원숭이. 그 원숭이를 밀수하는 밀수선은 한국의 태극호이다. (아웃 브레이크) 
영화 속에 한국어 대사가 들리면 반갑다기 보다는 긴장부터 된다. 이 영화가 그렇다. 바이러스 숙주 원숭이를 싣고 오는 배는 한국의 태극호. 선장과 선원들끼리 '뭐라는 거야' 라면서 한국말을 주고 받는다. 여기서도 한국인은 영어에 대한 스피킹 & 토킹이 약한 모습이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 노이로제에 걸리는 것은 외국인들이 이렇게 영어에 약한 우리를 우습게 본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특별히 여기서 한국인들이 비하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앞서 본 작품들로인해 점점 한국인 관객들에게 이런 모습이 유쾌하지만 않았던 것 같다.
  
장면5
여기 등장하는 안마사는 전형적인 우리의 수다쟁이 한국인 아줌마들이다.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 코치) 
수다는 어느나라든 여인네들이라면 다들 좋아하는 강력한 무기아닐까. 우리 또한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으며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모습 자주 보게 된다. 미국영화에서 그런 모습들이 보여지는 것이 그렇게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동안 한국인은 이런 이미지였다고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갖게 된 것이 우리로서는 비하하고 왜곡되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 문화에 대해, 우리 나라에 대해 우리가 그들에게 제대로 어필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독도 문제만 해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다가 일본이 나서니까 부랴부랴 파악하다보니 세계 곳곳에 오류투성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아닌가.
 
 
장면6
총격전을 보고도 멋있다고 감탄하고 있는 4차원 세계의 소녀, 그리고 총격전에도 아랑곳않고 계속 일하라고 강요하는 공장장, 모두 한국인으로 묘사되었다. (아드레날린24)  
 미국에 이주한 한국인들은 아무래도 여유를 즐기기 보다는 생업에 매달리면서 생존하고자 노력하느라 일벌레 또는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줄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 나오는 공장장 같은 한국인은 어느 영화에서나 자주 보게 되었던, 이젠 익숙한 외국 속의 한국인 모습이다.  
 
 
 



이런 경우 한국인에 대한 서양인의 인식이 좀 나아졌다고 해야되는 건가? 아니면 조롱하는 것일까? 그저 영화의 한 장면일 뿐 공연히 흥분할 필요는 없다고 하면서도 한국인에 대한 묘사가 나오면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하는게 예사다.

헐리우드 영화에 우리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아니면 그 반대가 될지도 모르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 그것은 우리가 그만큼 그들에게 관심을 받을만한 인식이 부족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헐리우드에서도 변방국으로 밀려나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자격지심 때문에 조금이나마 부정적인 모습만 보이면 발끈하는지도 모른다. 

다소 아쉽고, 때로는 열받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게된다. 우리의 모습이 저들에게 비쳐지게 된 것은 결국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나 하고 말이다.. 주로 묘사되는 한국인 모습은 돈만 밝히고, 퉁명스럽거나 또는 수다스럽거나, 그다지 진지하고 무게감있는 캐릭터는 거의 보질 못하는 듯 하다. 결정적으로 영어가 어눌한 사람들이 주로 나온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 발음이 poor해서 아닐까.


우리나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보고 느낀 바를 묘사한 점은 다소 우려되는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섣불리 이런 상황에 대해서 분노만 낼 것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깰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로스트에서 배우 김윤진이 장기간 등장하고,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엔 헐리우드 유명배우들도 출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국계 출신 배우들이 종종 미드나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이제 흔한 편이다. 다음에는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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