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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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를 그저 완벽한 무(無)의 상황에 세워두었던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지상의 어떠한 것도 그보다 더 강력하게 인간영혼을 압박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을 각각 완전한 진공상태, 즉 외부세계로부터 애매모호하게 폐쇄된 각 방에 가둠으로써 채찍과 추위로 인해 가해지는 외부의 압력 대신 내부로부터 압력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지요. 그 내부로부터의 압력이 결국 우리의 입술을폭파하듯 열게 하는 것입니다. 제게 배정된 방은 얼핏 보기에는 조금도 불편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방에는 문이 하나 있고, 침대 하나, 안락의자 하나, 세면대 하나, 창살이 있는 창문도 하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문은 항상 잠겨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책 한 권도,
신문도, 종이도, 연필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창문은 방화벽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제 몸과 자아를 에워싼 것은 완벽한 무였습니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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